117화: 내기
“계 대랑의 명성이 허명이든 아니든, 내가 보기엔 너보단 낫다. 나보다도 낫고.”
영원이 주육을 끌어 앉히며 말을 이었다.
“글공부를 못 하면 못하는 거지, 말도 못 하게 해? 저런 도발에 휘말릴 것 없다. 네 수준으로 과거를 보고 거인이 된다고? 우스운 소리! 그럴 것 없다. 계 대랑이나 보러 가라고 해라. 자자, 이렇게 하자. 주육, 네 학문이 별로인 건 사실이니, 인정해야지, 안 그러냐?”
영원이 주육을 바라보자, 주육은 내키지 않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이 계소영을 바라보며 웃는 듯 마는 듯 물었다.
“하지만 계 대랑의 학문은 공인된 것 아닌가. 안 그런가?”
영원이 모두를 바라보며 하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계소영의 재능은 경성에서 어느 정도는 이름 나 있었다.
“그럼 계 대랑, 자네는 가을에 과거를 보기로 하지. 추시에서 거인으로 급제하는 거지. 춘시에서 진사가 되는 건 됐고. 거인이 되지 못하면…… 재능이 있는 재자(才子)라는 계 대랑의 명성도 의미 없어지는 거지. 다들 그렇지 않은가? 한 달 동안 붙일 것도 없어. 그저 그 문장을 써서 주육에게 보내면 되지. 첫 마디 양일소를 계소영으로 바꾸고 말이야.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
영원이 부채를 휙휙 돌리고는 상을 내리치며 물었다.
“좋아!”
주육이 가장 먼저 발을 구르고 손뼉 쳤다.
영원 형이 큰 힘이 되어주는군! 그 문장을 보내오면 반드시 제대로 표구해서 대문 앞 영벽에 떡하니 걸어 놓을 것이다!
여염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 내기로 계소영이 돌연 올해 과거를 보는 돌발적인 상황이 자연스러워졌다. 두 사람이 짜고 친 것일까? 어제 혹시…….
“좋아, 좋아! 매우 공정하군! 난 찬성일세!”
재빨리 머리를 굴린 여염은 뒤지지 않고 곧바로 손뼉 치며 찬성했다. 계소영이 그를 툭 쳤다.
“자네까지 덩달아 이러긴가?”
“확실히 좋은 생각이지. 이렇게 하는 게 가장 공정해!”
이신도 따라 손뼉 치며 찬성했다. 이런 내기가 있든 말든, 계소영은 올해 가을에 과거를 봐야 한다.
“이런 사람들 같으니! 나를 불 위에 올려놓으려는 게지! 추시, 춘시가 어디 그리 쉬운가.”
계소영은 기가 찬 듯이 모두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군자의 약속이다!”
주육이 다급하게 이 일을 마무리 지었다.
“다들 찬성하니 그렇게 하는 거로 하자! 올해 추시, 내년 춘시! 네가 급제하면 내가 크게 연회를 열어 사흘 동안 축하해주지. 앞으로 3년 동안 급제하지 못한다고 나를 놀려도 절대로 화내지 않겠다. 마음대로 말해라! 자자자, 다들 술잔 채우라고! 나와 계 대랑의 증인이 되어 줘야지!”
다들 웃고 고함치며 일어서서 주육과 술잔을 부딪쳤고, 오로지 계소영만 제자리에 앉아서 쓴웃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연회가 끝난 후, 영원은 강가에서 낚시하자고 주육을 불렀다. 두 사람은 나태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삐딱하게 의자에 기대 있었다. 영원이 나른한 말투로 말했다.
“소육, 계가는 제대로 된 서생 가문이다. 계소영 부친은 장원 출신이고. 내 생각엔 어쩌면 정말로 급제할 것 같은데.”
“급제하면 하는 거지! 어차피 내가 그딴 걸 적어서 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걸!”
주육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급제하게 되면 관리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시 만날 때…… 관리 신분으로 너를 누르면 어쩔 거냐? 무릎 꿇고 조아리라고 하면 해야 하는데?”
“어딜 감히!”
주육이 낚싯대를 강물로 던지자, 사환이 허둥지둥 건져냈다.
“오늘도 태연하게 도발했는걸? 네가 뭘 어쩌겠어.”
영원이 다리를 흔들어대면서 자연스럽게 낚싯대를 들고 물고기를 끌어냈다.
“그럼 어쩌지? 아니면 고모를 찾아가서 음서로 올려 달라고 할까?”
영원은 주육이 재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하는 말을 상대하지 않았고, 주육은 턱을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음서로도 안 되지. 계가 놈을 누르지 못해. 아니면…… 맞다! 아니면 나도 어전 시위가 되면 되겠어! 영원 형과 함께!”
영원이 눈을 내리깔며 주육을 흘겨봤다.
“이런 어리석기는! 시위영엔 이미 내가 있는데 너까지 와서 무얼 해? 우리 둘이 같은 곳에 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건 그렇지. 그럼 어쩌지? 음서로는 시위 자리 아니면 한직밖에 못 얻는데. 임무 없는 한직을 맡아 봐야 무얼 해. 아니면 춘시를 보든가…….”
주육이 눈살을 찌푸리며 하는 말에 영원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강물에 얼굴을 비춰 보고나 말해라.”
“그러니까. 내가 급제할 리가 있나. 그럼 어쩌지? 영원 형, 영원 형은 똑똑하니까 대신 방법 좀 생각해 보라고. 길을 알려줘야지.”
주육이 영원을 어깨로 쿡쿡 치며 치댔다.
“정말로 어리석긴. 나한테 부탁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다고. 외사촌 형이 둘이나 있잖냐.”
영원이 경성 방향으로 입을 비죽였다.
“네 외사촌 형들이 이 세상에서 못 할 일이 있더냐?”
주육이 허벅지를 내리쳤다.
“맞네! 사황자를 찾아가서 자리를 달라고 해야겠어! 지금부터 임무를 맡으면, 계가 놈이 급제할 때쯤엔 나는 그 자리에 못 해도 반년은 있을 테지. 그럼 계가 놈보다 낮아질 일은 없지. 무서워할 거 있겠어?”
“사황자? 소육, 내가 참견 좀 해야겠다. 널 형제로 생각하는 이상, 꼭 해야 하는 말이다. 사황자를 찾아가면, 대황자가 언짢아하지 않을까? 그리고, 너희 가문에서는 어쩔 셈이라고 하더냐? 가문의 뜻과 달리 움직이면 안 돼.”
“우리 집안에서는…… 내가 들어보니, 아무래도 상관없어하는 것 같아. 당연히 상관없어 하지. 고모도 상관없어하고. 다 고모의 친아들이니까. 누가 되든, 주가가 외가니까. 하지만 내 큰형님은 어릴 때부터 대황자의 글동무였으니까…….”
“세자?”
“음. 작년에 막 세자가 되었어. 대황자가 매우 애썼지.”
“그럼 잘 생각해야겠군.”
영원은 낚싯대를 휘두르며 또 물고기를 낚았다.
“큰형님은 날 안 좋아해. 좋아하든 말든, 그건 신경 쓰지 않는데 대황자는……. 내가 대황자를 멀리해와서, 아마 대황자도 날 좋아하지 않을 거야. 큰형님은 속이 좁은 사람이라, 대황자 앞에서 날 좋게 말했을 리도 없고. 난 사황자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서 잘 통해. 내가 대황자를 찾아가 부탁한다고 해도 분명 상대해주지 않을걸. 어쩌면 큰형님을 시켜서 훈계나 하겠지. 사황자에게 갈 수밖에 없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주육은 조금 울적해졌다.
“네 말을 들어보면, 네 형님은 분명 대황자에게 기울었겠구나. 세자이니, 형님의 뜻이 너희 주가의 뜻이겠지?”
영원이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이 매우 의미심장했다.
“쳇! 형님의 뜻이 우리 주가의 뜻? 어림도 없는 소리! 형님은 경성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가문의 일을 몰라. 우리 가문에 모두 다섯 방이 있어. 사실 장방과 내 부친, 그리고 고모님만 할머님 적출이야. 다른 세 방은 없는 사람으로 여겨도 돼! 사실 예전에 부친이 큰 백부보다 훨씬 뛰어났어. 지금도 부친이 훨씬 인물이고!”
주육은 자부심 넘치는 표정이었다. 이미 추밀부사가 된 그의 부친이 주가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인 건 사실이었다.
“예전엔 조부께서 작위를 내 부친에게 물려주려 했어. 그런데 조모와 고모님 생각은 달랐거든. 안 그래도 큰 백부가 부친보다 변변찮은데, 작위까지 없으면 장방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다고 여기셨지. 부친이 먼저 조부를 찾아가서 작위를 큰 백부에게 물려주라고 말씀드렸지. 부친은 자기 능력으로 사방의 미래를 열겠다고.”
“대단하시네!”
영원이 주육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자, 주육은 더 뿌듯해했다.
“그야 물론이지! 우리 고모…… 황상께서도 우리 같은 집안엔 작위를 더 내려야 한다고 하셨거든. 국공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백작? 그런데 조모가 아직 계시고 분가하지 않은 때라 아직 급하진 않아. 하지만 부친이 그러는데, 황상은 우리 집안의 작위를 새로운 황상이 하사하도록 할 생각인가 봐.”
영원은 물고기가 몇 번 입질하는 것도 못 보고 집중해서 주육의 이야기를 들었다.
“부친이…….”
주육이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형,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마.”
영원이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그만해라. 네 부친께서 하신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이지? 그럼 나에게도 하지 말아야지. 그만! 이야기하지 말아라. 해도 되는 말만 하자, 우리.”
“다른 사람은 안 되지만, 형님은…….”
“나도 안 되지!”
영원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다른 이야기하자. 큰형님이 널 안 좋아하면, 너도 큰형님을 안 좋아하나? 참나, 그건 나랑 똑같군. 우리 큰형님도 날 안 좋아하고, 나도 큰형님을 안 좋아한다.”
영원이 낚싯대를 멀리 집어던지자, 사환 대영이 받아서 다시 지렁이를 걸었다. 영원은 다시 낚싯대를 강물에 던지고 고민하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우리 집안은 말이다. 휴, 엉망진창이지. 너희 집이랑 비슷하다. 나는 둘째 형님이랑 사이가 좋다. 둘째 형님이 나와 가장 가깝게 지내니까, 큰형님은 언짢아하지. 뭐든 언짢아한다. 나만 보면 언짢아서 혼내지 않으면 벌을 주지. 이번에 경성에 온 것도 다 큰형님이……. 휴, 됐다. 됐어. 그만하자. 어차피 이왕 온 거, 다시 북삼로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돌아가지도 못해. 큰형님이 어찌나 사나운지, 둘째 형님과 손잡아도 소용없다. 말하자면 패주맥성(敗走麥城), 싸워 보지도 못하고 초라하게 맥성으로 도주한 관우 같은 신세지.”
“형님의 큰형님도? 형님 집안은…… 휴. 그렇겠지. 우리 같은 가문은 어느 가문이든 집안 싸움하지. 으이그, 성가셔라!”
크게 고함친 주육은 한순간 영원 형과의 사이가 훨씬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그야말로 난형난제 아닌가.
“내가 형보단 조금 낫군. 맥성으로 달아날 필요도 없고. 난 큰형님이 두렵지 않아. 나중에 분가하면 큰형님도 세자고, 나도 세자니까. 무서울 게 뭐가 있어?”
영원이 주육을 흘깃 쳐다봤다.
“그건 모를 일이지. 우리끼리 하는 속 이야기니, 듣고 흘려라. 앞으로 행여 대황자가 그……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때도 무섭지 않겠어? 물론, 사황자가 그 자리에 오르면 큰형님이 널 무서워하겠지.”
깨달음을 얻은 주육은 금세 얼떨떨해졌다.
“그렇긴 하네. 정말 그런 생각은 못 했네……. 부친이……. 아이고! 골치 아파라! 형, 아무리 생각해도 어른이 되는 건 별로야. 개 같은 일이 너무 많아. 형이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정말 걱정스러운데.”
“그럼 그 이야기는 그만하자. 황상은 아직 젊으시다. 몸은 또 얼마나 건장하고. 걷어차이면 얼마나 아픈 줄 아냐?”
영원이 아픈 표정을 짓자, 주육이 낄낄 웃었다.
“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형님이 더 대단해 보이는걸? 감탄이 나와. 황상처럼 성격 좋은 분이…… 형님만 만나면……. 하하하! 우리 고모가, 영가 소칠은 그 잘난 얼굴로 왜 그렇게 터무니없는 짓을 하냐고 하셔.”
“허허. 기회가 생기면 네 고모 앞에서 내 얘기 잘해줘야 한다.”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그걸 굳이 말해야 하나? 내가 좋은 소리 안 하겠어? 사황자에게도 기회만 있으면 잘 말할 생각이야. 다만 대황자 쪽은 나도 방법이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