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12화 (112/463)

112화: 다 함께 임강성에

영원 일행은 오는 내내 경마, 도박, 토끼 사냥을 하며 오느라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완월루로 들어가자, 먼저 도착한 시종들이 뜨거운 물을 비롯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사람들이 우선 시원하게 씻고 정리하고 나왔을 때, 계소영 일행이 아래층에 도착했다.

계소영 세 글자를 들은 영원은 눈을 가늘게 뜨다가 단추를 채워주던 사환을 밀치고 장삼을 펄럭이며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갔다.

“역시 계 형, 여 형이었군! 난 또 이 어리석은 물건들이 사람을 잘못 알아보고 허튼소리를 하는 줄 알았지!”

아래로 내려간 영원은 계소영과 여염을 향해 공수하고는 모두를 향해 일제히 공수하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허리를 살짝 숙이며 올라가라고 손짓했다.

“자네 이게…….”

여염은 영원의 어깨로 축 처진 장삼을 부채로 끌어올려 주었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기분이었다. 이건, 예법에 연연하지 않아도 너무 연연하지 않는 거 아냐?

“내내 말을 타고 달리느라 땀 냄새가 진동했거든. 얼른 씻지 않았으면 다들 냄새에 기절했을걸?”

영원이 대충 장삼을 끌어당기는데, 몇 번 당겼더니 매무새가 더 엉망이 되었다.

이신은 눈썹을 까닥였다. 역시 사람은 잘생기면 유리한 게 너무 많았다. 이렇게 저속한 행동도 영 칠야가 하니 소탈하고 멋져 보여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모두 위층으로 올라가 보니, 계단부터 얼음을 넣은 대야가 위층까지 줄줄이 놓여 있었다. 사방의 창을 활짝 열어 놓았더니, 얼음이 하도 많아서 열기 하나 없이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완월루는 배산임수의 위치에 있었고, 창문 한쪽엔 하얀 돛단배가 두둥실 떠 있는 강물, 다른 쪽은 푸르른 나무가 가득한 청산이었다.

이미 다 터놓은 위층엔 탁자와 의자는 모두 치우고 한쪽에만 커다란 둥근 탁자가 놓여 있었다. 사환 여남은 명이 옆에 원탁을 하나 더 놓을 수 있도록 재빠르고 날렵하게 원탁을 들어 올려 옮기고 있었다.

원탁 맞은편에 청수한 기녀들이 금, 피리, 비파를 안고 살며시 현을 튕기고 연주했고, 운수는 창가에 서서 금과 피리에 맞춰 산과 강을 노래하고 있었다.

고자의는 실내를 슬쩍 둘러보고 혀를 내두르며 절찬했다. 정말이지, 즐길 줄 아는 자로구나!

여염이 운수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가 데리고 온 건가?”

“그렇지.”

영원이 악기를 들고 있는 기녀들을 향해 입을 내밀었다.

“저기는, 임강성에서 가장 뛰어난 기녀다. 봤나? 꼴이 저렇다니까. 비파 소리 좀 들어보라고. 흐느적흐느적. 그리고 저 금도 보게, 음만 바뀌면 어긋난다니까. 들어줄 수가 없어. 거기 둘, 그만둬라. 내려가, 내려가! 관소만 그나마 들을 만하다니까.”

영원은 피리와 운판(雲版: 구름 모양을 청동판에 새긴 타악기)만 남기고 금과 비파는 내쫓았다.

계소영은 눈빛을 빛내며 임강이 보이는 창가로 다가가서 창을 등지고 영원을 바라봤다. 그의 평가는 지극히 정확했다. 음률에 저렇게 정통한 사람이 글은 일자무식이다?

머저리 같은 척을 잘도 하는군!

옷을 갈아입고 나온 주 육소야, 묵칠 일행도 계소영 일행과 두루두루 예를 갖추고 한담을 나눴다.

영원은 다리를 쩍 벌리고 창문 앞 의자에 앉아서 두 팔은 창틀에 걸친 채 인사하느라 정신없는 두 무리 세도가 자제들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봤다. 한쪽은 경성에서 전도 무량하다고 손꼽히는 명문가 자제들, 한쪽은 사고뭉치, 망나니로 유명한 집안 말아먹을 놈들.

정말 너무 재미있군!

내 밥을 얻어먹으러 가자고 한 건 누구 생각일까? 계소영? 여염? 다른 사람? 무슨 생각으로? 무슨 속셈으로?

영원은 사람들을 하나씩 살펴봤다.

계소영은 오늘 꽤 열정적이고 다가가기 편해 보이는군. 평소에 냉담한 모습과 달라. 여염은 역시나 사교에 능하고. 고자의는…… 다들 고 사사가 오만하고 가까이하기 어렵다더니, 고자의도 제 아비 같은 면이 있군.

이신, 이신도 왔군. 좋았어. 이 이가, 아주 재미있거든.

영원은 이신을 바라보다가 무심결에 여염을 힐끔 바라봤다.

“여봐라!”

슬슬 한담도 끝나갈 때쯤, 영원이 별안간 고함치자 여염 일행은 화들짝 놀랐다. 영원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계단에서 장신구가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류만을 선두로 아라와 기녀들이 뒤를 따라 순서대로 위로 올라왔다.

운수의 노랫소리가 멈추고, 금소리가 변하더니 류만이 미끄러지듯 중앙으로 나와 가는 허리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라와 기녀들이 재빨리 접시와 젓가락을 놓으며 주변에서 시중들었다.

고자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기녀들을 바라봤다.

“저들도 다 불러온 겐가?”

주 육소야는 뿌듯한 표정이었다.

“불러와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저것 좀 보라고. 임강 같은 작은 현에 어디 꼴 같은 기녀가 있나? 저들을 불러오지 않았다면 긴긴 이 밤 우리 영원 형님이 어떻게…… 아, 내 말은 우리 모두, 우리 모두 긴긴밤을 어찌 보냈겠나.”

주 육소야가 실내 가득한 공자들을 가리키며 하는 말에, 영원과 함께 온 무리가 일제히 입 모아 동의했다.

“그렇지, 그렇지. 긴긴밤을 어찌 버텼겠나.”

계소영 무리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기분으로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묵칠은 술주전자를 들고 고분고분한 모습으로 영원 뒤에 서 있는 아라를 걱정스럽기 짝이 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반나절 동안 걱정이 한가득이라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아라가 고생하고 있잖아. 영칠, 어떻게 아라를 이렇게 대할 수가 있지. 이러고도 나를 돕는 건가? 자기가 거두려는 건 아니겠지?

묵칠은 애끓는 마음으로 울적하게 탁자에 앉아 있었다. 떠들썩한 실내에서 유독 홀로 풀이 죽었다.

“왜 그래? 꼴 좀 봐라.”

소자람이 묵칠을 쿡쿡 찔렀다.

“아라, 아라 좀 봐.”

묵칠은 속이 상해 죽을 것 같아서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느껴졌다.

“아라가 왜? 멀쩡하니, 다른 사람과 똑같구먼. 영 칠야 시중만 들어서? 그렇지도 않잖아. 봐라, 계 대랑에게도 술을 따라 주잖나. 그리고 이 대랑에게도.”

소자람은 고분고분한 아라의 모습에 속이 다 시원해졌다. 이제야 기녀 같은 모습이로구나!

묵칠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게 아니라, 형님, 아라가 영칠에게 반한 건 아닐까?”

소자람은 풉 하고 뿜고는 한참 만에 겨우 말을 꺼냈다.

“그 뭐냐, 여인은 잘생긴 걸 좋아하지.”

아라가 영원에게 반했다고 묵칠이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이 어리석은 물건이 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구나!

“난 영칠이 뭐가 잘난지 모르겠구만! 형님보다 못한데!”

묵칠은 원망 가득한 얼굴로 영원을 삐딱하게 바라봤다. 소자람은 이번엔 뿜지 않고 목이 걸려서 힘껏 묵칠을 두드렸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나보다 못하다니…….

계소영은 술잔을 들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영원을 곁눈으로 살폈다. 영원은 장삼을 반쯤 풀어 헤친 채 한 손에 주전자, 한 손에 잔을 들고 호쾌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조명헌과 서로 팔을 엮고 술을 마시자고 조르고 있었다. 조명헌은 운수의 품에 기대서는 흐물흐물 웃고 있었다.

“자네랑 교환배를 마셔? 그런 건 운수 소저와 마셔야지! 영칠, 날 좀 살려주게. 웃겨 죽겠네. 운수, 나 대신 영 칠야랑 마셔라.”

조명헌과 딱 붙어서 앉아 있던 손방서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서 웃느라 목소리가 다 변해서 말했다.

“마셔야지! 자네랑 영칠이 마셔야 재미있지! 운수는 물러서라! 다른 사람은 안 돼! 헌가아, 이 술을 마시지 않으면 마음에 응어리가 남았다는 뜻이다! 얼른 마셔라! 응? 나는 또 왜? 난 못생겨서 자네랑 교환배를 마실 주제가 못 되네! 칠야…… 살려주게.”

계소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그 장면을 바라봤다.

영원이 지금까지 술을 마시고 있지만 잔마다 노리는 게 있었다.

영원을 바라보던 계소영의 시선이 잔뜩 알랑거리는 표정으로 영원의 뒤에 서 있는 주 육소야에게로 향했다. 영원이 어떻게 묵칠보다 더 고약한 주 육소야를 무릎 꿇렸는지,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개 몇 마리 때문에?

개 몇 마리로 이 꼴이 될 정도였다면, 영원이 무릎 꿇릴 필요도 없었을 텐데…….

계소영의 시선이 주 육소야에서 아라, 아라에서 다시 울적한 얼굴로 술을 마시는 묵칠로, 또 묵칠에서 조명헌과 손방서를 붙들고 교환배를 마시는 고자의까지 향했다.

이 영 칠야가 정말 마력이 있는 것 같군. 나조차 몇 번 왕래하는 사이 저자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었으니. 호탕하고 위선적이지 않고, 언행 모두 진실하기 짝이 없으니, 마음 터놓고 교류해도 될 만한 사람이긴 하지.

그 바람에 이 영 칠야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람을 현혹할 수 있다고 시시각각 스스로 일깨우지 않을 수가 없어. 영 칠야는 시기를 기다리는 뱀 같은 사람이라 할 만하거든.

거나하게 취한 고자의가 비틀비틀 다가와 여염과 계소영 중간에 털썩 앉았다.

“자네, 자네들 들었지? 영…… 영 칠야 일행, 산에 사냥하러 간다고 하네. 사냥개를 잔뜩 데리고 왔대. 최고의 사냥개를. 그…… 주가 별장에 묶는다더군. 좋은 유월황도 있고, 술도 있다네. 우리 문회는 산에 가서 하세. 산에 오르면 글이 술술 써질 걸세!”

여염은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몰랐고, 계소영이 눈알을 굴리며 여염을 바라보며 웃었다.

“며칠 동안 골머리를 앓느라 나도 지쳤네. 같이 가서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좋지 않겠나. 글이 술술 풀리진 않아도 마음이 홀가분해질 걸세. 적어도 머리가 이렇게 흐리멍덩하진 않겠지. 안 그런가?”

여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 임강행은 너무 공교로웠다. 배는 계가의 배였다. 사람 사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금기가 바로 남이 하려는 일을 망치는 것이다.

“다들 춘시를 볼 거라서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네. 계 형이 괜찮다면…… 우리도 며칠 재미를 누리는 걸 바라고 있었지. 안 그런가?”

여염이 옆에 있는 이신을 쿡 찌르며 물었다.

서로 다른 부류의 두 무리 세도가 자제들이 떠들썩하게 즐기는 걸 남 일인 듯 지켜보던 이신은 여염이 그렇게 묻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짧은 몇 마디에 얼마나 많은 꿍꿍이가 감춰졌는지 모른다. 인정을 베풀며 교류하는 일에서는 여염을 보고 배워두라고 문 이야도 말했다. 여염이 바람 따라 돛을 달고 배를 밀려고 하니, 적어도 돛을 다는 일은 도와야 했다. 게다가 이 두 무리에서 말발이 서는 사람 중엔 상인 가문 자제인 자신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세. 내가 영칠 저놈에게 가서 좋은 말을 골라놓으라고 하겠네. 그리고 활도…….”

고자의가 비틀비틀 일어나 몇 걸음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탕호우 앞에 고개를 박았다.

“자네 집안…… 장원도 있지 않은가. 뭐가…….”

“지극히 좋은 석류주가 있네.”

탕호우가 재빨리 대답했다.

“사람을 보내서 가지고 오게. 좋은 걸로. 주육 저놈…… 도 장원이 있던가?”

고자의가 조금 취해서 횡설수설하는 말에 이신이 영해를 돌아봤다. 영해가 재빨리 앞으로 나와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도 산과 이어진 장원이 있습니다. 산에 계화와 찻잎을 심었고요. 지극히 좋은 찻잎인데 양이 많지 않고 낭자가 가장 좋아하는 차라서 팔려고 내놓은 적은 없습니다. 다른 건…… 유월황도 있습니다. 매우 훌륭한 물건이고요. 이 근처 장원에서 나는 건 다 비슷합니다. 찻잎 좀 가지고 오라고 할까요?”

“양이 되나?”

“됩니다. 낭자 혼자 얼마나 마시겠습니까. 시장에 판매할 양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태태께서 해마다 선물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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