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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107화 (107/463)

107화: 우중 한담 一

“산에 사는 가장 큰 장점이야. 춘하추동 할 것 없이, 비만 내리면 으스스하게 추워. 성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편안해.”

“네, 저도 산이 좋아요.”

이동은 일어서서 샘물을 홍니로 위에 올리고 복안 장공주 앞에 놓인 방아를 가져다가 차를 찧기 시작했다.

“궁 안은 매우 더워. 아버지는 더위를 타는데 얼음을 싫어하셔서 물 위에 궁전을 몇 군데 지었지. 수전(水殿)이라고 들어봤어?”

장공주의 목소리는 매우 담담했는데, 그 담담한 목소리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알아요. 저희 집에도 물 위에 지은 정자가 있어요. 나무 그늘에 지었죠. 그 정자에 가려면 겉옷을 걸쳐야 했어요.”

차를 다 빻은 이동은 은수저로 가루를 찻잔에 넣었다.

“내가 궁에 있을 때도 작은 수전이 있었어. 여름엔 물소리를 들으면 잠이 잘 왔어.”

복안 장공주가 돌연 코웃음을 쳤다.

“아버지는 사치스러웠는데, 황상은 자비롭고 근검하다고 인력을 아끼지.”

복안 장공주는 말을 뚝 그치고 이동이 차를 내리는 걸 말없이 바라봤다. 차를 내린 이동이 찻잔을 밀어주었다.

“네. 몇 전 년 경성에서 평금(平金: 두드려서 평평하게 늘인 금박)이 유행했죠. 옷 전체에 촘촘하게 평금을 놓은 사치스러운 것도 있었어요. 입고 나가면 햇살 아래 번쩍번쩍, 눈이 다 부셨거든요. 나중에 황상께서 요사스러운 옷이라고, 옷에 평금을 금지한다고 성지를 내리셨죠. 힐수방은 외할머니 사업이었는데, 그 당시에 사치스러운 옷을 금한다는 황명만 해도 여러 번 내려왔어요. 다만.”

이동이 장공주를 바라봤다.

“경성 사람 중에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사람 말고 금은실로 잔뜩 수놓은 옷 한두 벌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명절엔 어딜 봐도 금빛으로 휘황찬란했는걸요.”

복안 장공주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찻잔을 들어 올렸다.

“여인네들이 치장하는데 그런 걸 상관하겠어? 게다가 그걸 어떻게 단속해?”

“그렇죠. 힐수방에 이런 황명이 내려온 적도 있어요. 오래전 일인데, 물고기 모양 화전(花鈿: 비녀. 머리에 꽂는 장신구)을 금지하는 황명이었어요. 의복에 물고기 무늬도 안 되고요, 다른 머리 장식도 물고기 모양은 안 된다고요.”

복안 장공주가 깔깔 웃었다.

“나도 알아. 황상이 즉위한 다음 해 일이었지. 그해에 변하가 갑자기 물이 불어서 경성 절반이 물에 잠겼잖아. 궁까지 여기저기 물이 잠겼지. 선대 수국공이 상주서를 올려서 하는 말이, 이번 물난리는 다 경성 여인들 사이에서 검은 물고기 모양 화전이 유행해서 그런 거라고. 검은 물고기는 불길하다고. 황상이 모든 물고기 모양 무늬를 금지하는 성지를 내렸지. 정말이지, 고약하기 짝이 없어.”

이동은 장공주의 ‘고약하기 짝이 없다’는 말에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 선대 수국공을 가리키는 말일까, 아니면 황상일까?

“고약하지 않아?”

이동의 시선에 장공주가 반문했다.

“고약하긴 하지만 작은 일이었죠. 게다가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고요.”

장공주가 한참 만에 코웃음 쳤다.

“흥, 다 이런 작은 일부터 퇴락하기 시작하는 거야. 명이 떨어졌는데 따르지 않아 봐, 오늘은 이렇게 작은 일이겠지만, 내일은? 모든 황명을 안중에 두지 않을 수도 있어. 그 당시 상평창도……. 됐다, 됐다. 그 이야기는 하지 말자. 우리랑 무슨 상관이람!”

이동은 대답하지 않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가 대답할 화제가 아니었다.

“성에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던데. 너도 들었어?”

복안 장공주는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듯이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어떤 일 말씀이세요?”

“영원 말이야. 경성에 들어와서는 여기저기 사람들이랑 놀고먹고 즐기는 일로 싸우고 다닌다던데. 며칠 전엔 예부 조 시랑, 한림원 조 학사하고 기녀 때문에 다퉜대. 아라, 류만? 다음 날엔 이부 원외랑이랑 창하는 운수 때문에 다투고. 어쨌든 경성에 들어온 이래 거의 매일 사람들과 기녀 때문에 싸움을 일으킨대. 어제 조회에선 영원이 그 자리에서 상주서를 올려서 그동안 기녀를 두고 싸웠던 관리를 탄핵했다네. 관리들이 기녀나 끼고 즐기고 덕행에 문제가 있다고. 놀고 즐기느라 정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관리의 체통을 실추시키는 일이라고. 관리들을 정돈하시라고 황상에게 고했대. 어사대가 이렇게 큰일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업무를 소홀히 했으니 중벌하라고 했다는군.”

복안 장공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웃음을 터트렸다.

“황상이 백관들을 호되게 야단치고, 영원은 오전 내내 대전 앞에 무릎 꿇려두셨대.”

이동도 참지 못하고 웃었다.

“나쁜 짓을 한 놈이 먼저 고자질한 셈이네요?”

“영리한 거지.”

복안 장공주는 웃느라 찻물을 손에 쏟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진짜든 가짜든, 응석받이로 자라서 될 성 그른 세도가 자제인 척하고 있잖아. 4품 시위 직함도 조상의 공덕으로 받은 거고. 그런 사람과 부딪쳐서 좋을 게 뭐가 있겠어. 지금도 봐. 그자는 조 시랑을 덕행이 문제 있고, 정무에 소홀하다고 탄핵할 수 있지만, 조 시랑은 그자에 대해 뭐라고 할 말이 있어?”

“그건 그러네요.”

이동이 웃으며 말했다. 장공주는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영가 조상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어?”

이동은 고개를 저었다. 영가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지만, 우선 진위를 알 수 없고 설사 진짜라고 해도 어떻게 알았는지 밝힐 수 없는 이야기는 모른다고 하는 게 나았다.

복안 장공주가 느긋한 말투로 말을 꺼냈다.

“영진산은 영가 6대째야. 영가는 사실 제대로 따지면, 본적이 북삼로가 아니야. 영가는 항주부 사람이야.

영가 선조 중에 영청명이라는 사람이 수재가 된 후 선생의 딸과 혼인했어. 혼인한 1년 뒤에 아들을 낳았지. 아들이 두 달쯤 되었을 때, 영청명이 벗들의 초대를 받고 출타했다가 다음 날 집에 돌아왔을 때 처자식이 피를 철철 흘리며 횡사했지.”

이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같은 현 류씨 집안에서 저지른 일이야. 돈도 좀 있고 세력도 있는데 아들이 마을의 사고뭉치였어. 영청명의 아내의 미모에 반해서 나쁜 생각을 품게 되었지. 영청명의 아내는 불같은 성격이었고, 류가가 실수해서 죽이게 되었어. 아기도 내던져서 죽였지. 증인, 물증 다 있었는데, 영청명이 관아에 고발했을 때 관아에서…….”

복안 장공주가 이동을 힐끔 바라봤다.

“이건 전 황조의 일이야. 그때 관리 사회가 혼탁하고 어두웠어. 관아에서 류가의 은자를 받고 실제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지. 소문에 의하면, 지현이 그렇게 말하면서 천천히 조사해야만 한다고 했을 때, 영청명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런 말 없이 장읍하고 물러났대. 이틀 후 밤에 류가 온 가족이 살해당했어. 짐승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죽었대. 날이 밝은 다음에, 영청명이 류가 온 가족을 자기가 죽였다고 자수했대.”

복안 장공주는 눈빛을 빛내며 혀를 내둘렀다.

“이래야 사내지!”

이동은 아무런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영가의 흉포함과 용맹함은 조상 대대로 내려왔구나 싶었다.

“류가는 현지에서 악명 높아서, 온 가족이 몰살당하자 폭죽을 터트리며 축하했다는군. 영명청은 백성을 위해 화근을 제거한 사람이라고, 목숨을 살려달라는 만인첩(萬人貼: 성명서)를 썼대.”

장공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봐봐. 이게 바로 영청명의 영리한 점이야. 아들 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온 가족을 싹 다 죽이니, 고발할 사람도 없고 류가는 주인 없는 재물이 되었지. 혼란한 말세에 인심이 얼마나 혼탁한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거든. 항주부 지현은 자연스럽게 민심이라는 말로 영청명의 구명을 청했고, 목숨을 부지한 영청명은 북삼로에 유배되었어.”

복안 장공주는 개인의 견해를 섞어가며 이야기했고, 이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말세 때만 그럴까. 현 황조도 나라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세라고 할 수 있는데 인심이 좋은 것도 아닌 것을.

“영원을 만난 적 있어?”

“네. 복음루에서 난리를 부렸을 때, 저와 어머니가 마침 그 자리에 있었어요.”

“어때? 잘생겼지?”

복안 장공주가 눈썹을 까딱이는데, 오랜 세월 쌓아온 장중하고 단정한 느낌이 사라지고 어딘가 짓궂은 느낌이었다. 이동은 놀라서 바라보다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잘생긴 듯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억에 남은 건 내내 횡포를 떨던 모습이었다. 장공주가 묻지 않았다면 얼굴이 잘생겼다는 걸 떠올리지도 못 할 뻔했다.

“난 본 적 없지만 잘생겼을 것 같았어. 영가 사람들은 다 잘생겼거든. 몇 대 동안 못난 사람이 없었어. 영가 선조, 영청명도 지극히 잘생겼어. 얼마나 잘생겼냐면…….”

복안 장공주는 동경의 표정이었다.

“전에 영청명의 초상을 본 적 있어. 대가의 그림이었지. 겉모습과 분위기, 모두 갖췄어. 얼굴에 자자(刺字: 얼굴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 그 글자)가 있었는데, 미화하지 않고 오히려 또렷하게 그렸거든. 그런데 그 자자가 오히려 비범한 풍채를 풍겼지. 영명하고 준수하고, 우아함과 용맹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어. 그를 만나본 사람이 남긴 글마다 그의 품격이 겉모습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쓰여 있었어.”

복안 장공주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난 그 영가 조상을 너무나 존경해. 영청명은 북삼로에 간 뒤로 안(顔)씨 가문에 팔려 갔어. 안씨 가문은 당시 북삼로 토박이 족장 중 하나였지. 안가 그 계파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았어. 하지만 다른 족장과 비교하면 안 족장의 장점은 딸 하나뿐이었다는 거야. 데릴사위를 들일 생각이었지. 북부에서는 데릴사위가 흔하거든. 그런데 나중에 안씨가 영명청과 혼인해서 영가 며느리가 되었어. 영안씨가 된 거야! 안씨가 낳은 세 아들 중에 둘째가 안씨 성을 따랐어. 지금 관외 안가야. 첫째와 셋째는 영씨를 따랐지. 영원 쪽이 바로 장방이었어. 하지만 영가라고 하면 영원 직계 일가 이야기만 들었지? 안 그래?”

“네.”

이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가 직계 중에 이름난 건 정북후부뿐이었고, 정북후부도 자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영청명의 셋째는 오랑캐 여인을 처로 들였다고 하더라고요. 혼인한 후에 북삼로 서북으로 멀리 갔고. 그 일파는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몰라. 아마 영가 사람들만 알겠지.”

“왜 그런 거죠?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고, 일부러 몸을 숨긴 건가요?”

이동의 첫 반응에 복안 장공주는 감탄하듯 그녀를 바라봤다.

“너도 그걸 떠올렸어? 세 아들이 제각기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있어. 우리 임가 태조께서 천하를 손에 넣었을 때, 정북후 영가는 영청명의 손자 영중해 대가 되었어. 당시 영중해는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 임가 태조와 밤새 긴 이야기를 나눈 다음, 다음 날 영씨 일족과 영가 8천 철기병을 거느리고 태조에게 귀순했지. 영씨가 귀순하니, 태조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북삼로를 영토로 거둬들인 거야. 비록 북삼로는 거의 마지막에 임가 영토로 들어왔지만, 영가의 공은 여전히 지극히 컸지.”

이동은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이 부분은 전에 백 노부인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니었다.

“태조께서는 원래 영씨를 왕으로 봉하려고 하셨어. 이성왕으로 봉하려고 했지. 그런데 영중해가 열네 번이나 상주서를 올려 거절했다는군. 영씨는 왕위에 오를 정도로 공을 세우지 않았다고. 그리고 영씨 자손이 발전할 여지를 주어야 한다고. 결국 국공 자리도 거절하고 후작 자리만 세습하기로 했지. 그렇게 정북후가 된 거야.

태조는 영중해보다 스무 살이나 많았는데, 영중해를 매우 추앙하고 칭찬하셨어. 영중해는 조상과 비교하면 청출어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영청명과 비교해서 크게 떨어지진 않았대. 아, 맞아. 영중해도 매우 잘생겼어. 조상처럼 우아하진 않아도 더 용맹했고 기세가 더 뛰어났어.”

복안 장공주가 빙그레 웃었다.

“궁에 영가 다섯 대 가주의 초상이 있어. 한 줄로 걸어두니, 눈이 즐겁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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