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추론
“둘째, 계소영이지. 안타깝게도……. 계소영은 마음에 맺힌 게 있는 데다가 매우 냉담한 성격이지. 추시를 보지 않을 테니, 춘시는 아마도 상관하지 않을 걸세.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멀찍이 밀어두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것이야.”
“계 형은…….”
이신이 조금 주저하며 말했다.
“올해 추시를 볼 생각인 것 같았습니다.”
“음. 응? 뭐라고? 어찌 알았나? 자네에게 말하던가? 그것참 희한하군! 얼른 자세히 말해 보게!”
문 이야는 몹시 놀랐다. 이신은 일어서서 서안에 쌓인 두루마리 중에 하나를 뽑아 문 이야에게 건넸다.
“제 추측입니다. 이건 어제저녁에 계 형이 보낸 겁니다. 한동안 문장을 쓰지 않았는데 어제 갑자기 흥이 나서 지어 봤다고요. 읽어봐 달라고 하더라고요.”
문 이야는 두루마리를 다급하게 받아서 대충 훑어보고는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숙이고 다시 읽었다. 이번엔 제법 꼼꼼히 읽었고, 다 읽은 다음엔 두 손가락으로 문장 한 문단을 짚고서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이 문장, 평소의 문체와 조금 다르군. 매우 몸을 사린 글이야. 수수한 글에 가깝군. 자네 말이 맞았어!”
문 이야는 문장을 서안에 탁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더니 뒷짐을 지고 서안 주변을 빠른 걸음으로 빙빙 돌았다.
“몸을 사린다라……. 왜 사리는 거지? 수수한 글이라……. 수수한 글의 장점은? 분명 노리는 게 있을 것이다! 그래! 그런 것이다! 계소영은 경성 추시를 참가하려는 건가? 그렇다면 경기 일대에…….”
문 이야는 걸음을 멈추고 성큼성큼 이신 앞으로 다가가 들뜬 얼굴로 눈빛을 빛냈다.
“갈피가 잡혔네! 일단, 왜 자네에게 문장을 보냈을까부터 생각해 보세. 내가 생각하기에 원인은 둘일세. 하나, 자네는 경성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 없고 낯설지. 자네에게 문장을 보여주는 게 제일 말이 안 나올 것이야. 즉, 자네를 매우 믿는 거지. 좋아. 아주 좋아. 계소영의 신뢰를 얻었군.”
문 이야가 이신의 어깨를 두드렸다.
“제법이군!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아주 좋아! 다만, 이건 아주 작은 이유일 뿐이야. 가장 중요한 이유는 두 번째네. 자네 보게, 이 문장, 평소와 비교하면 수수해. 자네 문체와 아주 비슷하지. 왜일까? 자네, 그 점을 곰곰이 생각해야 하네. 반드시 곰곰이 생각해야 해. 왜일까?”
“추시의 시험관 때문에?”
이신이 매우 빠르게 알아차리자, 문 이야는 껄껄 웃으며 이신의 어깨를 마구 두드렸다. 이신은 저녁에 어깨에 고약을 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맞아! 아주 정확해! 자, 계속 추리해 보세. 문장을 이렇게 수수하게 쓴 건, 물론 자네 마음에 들라고 그런 게 아니야. 자네 문장, 자네가 쓰는 이런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겠나? 자네가 급제한 해에 양절 지역 시험관은 포정사(布政使) 주 번사(藩司: 포정사의 다른 말)였네! 주 번사는 자네 글을 매우 추앙했지. 심지어 자네가 그해 쓴 문장을 베껴서 주씨 학당에 보냈어. 주 번사의 문장이 바로 수수하고 통달한 것으로 유명하네. 계소영은 분명 주 번사 때문에 이렇게 수수한 글을 쓴 거야!”
“주 번사는 아직 양절 번사로 있는걸요. 계소영의 본적은 강남 동로입니다.”
이신은 너무나 들뜬 문 이야를 일깨워주지 않을 수 없었다.
“강남? 아니, 강남이 아니야! 강남 동로는 너무 멀어서 오가는 시간이 너무 걸려. 한여름에 길 떠나는 건 매우 험난하지. 거기에 병이라도 걸리면……. 시간이 너무 촉박해. 강남 동로로 돌아가지 않을 걸세. 어째서 강남 동로를 떠올린 건가? 몇 년 동안 세상을 돌며 견문을 높인 사람이 말일세. 경성에서 강남 동로까지 오가는 거리가 얼마인가. 시간을 따져 봐도 강남 동로는 아니지! 마음을 써서 생각하라니까! 마음을!”
문 이야가 눈을 치켜뜨자, 이신이 답답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다시 앞으로 가보세. 계소영의 문장의 방향은 명확하네. 아무래도 올해 경기 일대의 시험관이 이미 정해진 것 같네. 내 짐작이 맞다면, 올해 경기 추시 시험관은 분명 국자감 하 제주일걸세!”
문 이야는 부채를 손바닥에 탁탁 치며 껄껄 웃었다. 이신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문 이야를 빤히 바라봤다.
조금씩 추리해서 여기까지 추리해 내다가, 하지만 갑자기 하 제주라니?
“음! 분명 맞을 걸세. 하지만 왜 굳이 올해 보려는 거지? 다음까지 기다렸다가 강남 동로로 돌아가면, 계가의 명성과 세력에 계소영 본인의 실력이라면 해원(解元: 향시의 수석 합격자)도 문제없을 텐데. 왜일까?”
“이야, 왜 하 제주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신이 문 이야의 혼잣말을 잘랐다.
“응? 아, 이건 아는 사람이 많지 않네. 하 제주와 주 번사는 진사가 되기 전에 같은 스승 밑에 있었지. 두 사람은 당시에 매우 사이가 좋아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녔네. 가장 재미있는 건, 두 사람은 서로 상대의 문장을 이어서 글을 짓기도 했네. 문체가 완전히 비슷해서 전혀 티가 나지 않았어. 그래서 나중에 상주서의 진위에 얽힌 사건이 일어났지.”
문 이야가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은 같이 진사가 되고 서길사가 되었지. 선황이 계실 때인데, 선황을 가까이에서 모시며 잡다한 문서를 정리할 사람으로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을 뽑게 되었지. 선황이 두 사람의 글을 한 편씩 살폈는데, 하 제주 글에 격식에 어긋난 부분이 몇 군데 있었지. 선황은 지금 황상보다 화가 더 많은 사람이었고, 그 자리에서 죄를 물었지. 하 제주는 세상 억울한 일이라고 난리를 부리면서 누군가 글 후반부를 고쳤다고 주장했네. 고친 사람이 바로 주 번사라고.”
이신은 경악했고, 문 이야는 실실 웃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지. 두 사람의 상주서는 모두 직접 올린 거였으니까. 그런데 상주서를 쓰던 날, 두 사람이 같이 새벽까지 술을 마신 건 맞네. 나중에 선황이 두 사람 모두 지방으로 내려보냈지. 황상이 등극한 후에야 두 사람은 숨통이 트여서 한 걸음씩 위로 올라왔지.”
“그래서 하 제주의 문체와 취향이 주 번사와 판에 박힌 듯이 비슷하다는 겁니까?”
“원래 한 판에서 나왔으니까. 하지만 하 제주가 추시 시험관이라는 건 조금도 의미가 없네. 이번 추시 시험관이 아니라고 해도 춘시 시험관이 될 리는 없으니까. 에효.”
문 이야는 유감인 듯 고개를 저었다.
“계속해 보세. 계소영이 어째서 올해 추시를 꼭 보려고 하는 걸까? 왜?”
문 이야가 빤히 바라보자 이신이 눈살을 찌푸렸다.
“도모할 일이 생겨서?”
“맞네! 생각이 생긴 것이지. 기회가 생겼으니, 도모해 보려는 것이네. 정북후부 칠야……. 역시 내 짐작이 맞았어. 계가에서 마음이 동한 거네! 하지만 무얼 보았기에 마음이 동했을까. 아니면…….”
문 이야가 부채로 이마를 두드리며 다시 빙빙 돌기 시작했다.
“생각만 해서는 모르겠어. 직접 만난 게 아니라서 아는 게 너무 없어. 이래서는 안 되지. 반드시 기회를 찾아서 영원을 직접 만나 봐야겠어! 하지만……. 분명 맞아. 맞을 것이야. 계소영, 계가, 이런 결단, 정말 감탄스럽군. 이렇게 즉시 결단을 내리다니……. 휴, 응어리가 단단히 맺힌 것이다!”
이신은 간담이 서늘해져서 연신 침을 삼켰다. 문장 하나로 영원까지 추론해 내다니.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그 일까지…… 추론해 내다니. 하지만 이 추리는 세밀하고 조리가 있어서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답신했는가?”
문 이야의 두 눈이 무서울 정도로 빛났다. 이신은 고개를 저었다.
“어제 해가 거의 저물었을 때 받았고, 격식에 어긋나는 곳이 몇 군데 있어서 세심히 본 다음에 답신할 생각이었습니다.”
“격식에 어긋나? 그건 아무것도 아닐세!”
문 이야가 손을 내저었다.
“격식이니 마니, 계가에 그 부분 꼬집어줄 사람이 없을까. 자네는 그런 작은 부분은 상관할 것 없네. 문장이 주 번사의 취향에 맞는지 아닌지만 보게. 이렇게 하세. 주 번사가 자네 문장을 어떻게 평가했었는지, 세세히 써서 답을 주게. 그리고 주 번사가 했던 말도. 문장에 관련된 말이라면 자세할수록 좋네. 그 부분을 확실하게 쓰면 되네.”
“너무 갑작스럽지 않겠습니까?”
이신이 조금 주저하며 말하자, 문 이야가 히죽 웃었다.
“상대를 보고 그 사람을 대해야 하네. 그 점은 여염에게 잘 배워야 해. 계소영 같은 사람은 천성이 거리낌이 없고 감정적이네. 기분파야. 이런 사람은 맞으면 맞고 안 맞으면 안 맞아. 게다가 성격이 올곧아서 화통한 사람을 좋아하네. 분명 재능 있고 담대한 사람을 좋아할 걸세. 내가 말한 대로 쓰게. 분명 구미에 맞을 것이네. 나는 계가를 좋게 본다네. 우리는 계소영과 잘 지내야 해.”
“알겠습니다.”
이신은 서안 앞에 앉아서 먹을 갈기 시작했다. 계소영의 문장을 더 자세히 볼 것도 없이 문 이야가 시키는 대로 썼다.
이신은 서신을 쓰고, 문 이야는 계속해서 빙빙 돌면서 큰일을 궁리했다.
“그나저나, 영원을 어떻게 해야 들여다볼 수 있을까.”
문 이야는 부채로 쉴 새 없이 이마를 두드렸다.
“영원은, 쓸모라곤 하나도 없는 어리석은 물건이거나, 아니면 지극히 교활하고 약삭빠른 야심가인데. 이 야심가는 쉽게 뒷조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지. 어쩌지? 어떡해야 하지?”
이신은 빙빙 도는 문 이야를 재미있다는 듯이 고개를 들고 바라봤다.
“이야, 진정하세요. 경성에 있으니 언젠간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일이란 때가 있는 법 아닙니까.”
“아이고! 그래, 자네 말이 맞네!”
문 이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멈추고 털썩 의자에 앉았다. 조금 김이 샌 것 같았다.
“그래, 인연이 되어야 할 일이지. 인연이 있어야 해. 큰일을 벌여야 하니, 그렇지, 인연이 있어야 해. 휴.”
문 이야가 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한숨 소리에 유감과 괴로움이 가득했다.
인연만 믿고 어찌 기다려! 이렇게 큰일, 이렇게 흥미롭고 모처럼의 기회인데……. 만일 인연이 닿지 않으면 어쩌지? 다른 사람이 재미 보는 걸 눈 뜨고 바라봐야만 한다니……. 아이고, 괴로워라!
이동이 보림암에 도착했을 때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뜨락 안, 복안 장공주는 회랑에 뒷짐을 지고 서서 하늘 가득 흩날리는 보슬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동이 회랑에 이르자, 수련이 신발을 갈아 신겨 주고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후조방으로 향했다. 이동은 늘 앉은 자리에 앉아서 은주전자에 물이 끓는 걸 바라보다가 차관에서 가루를 덜어 차를 우렸다. 향긋한 차향을 맡으며 꼿꼿이 서 있는 복안 장공주를 바라봤다.
장공주는 비에 남다른 감정이 있겠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서서 비를 바라보고, 한 사람은 앉아서 차를 마셨다. 이동이 차 한 잔을 비웠을 때, 복안 장공주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서 이동의 맞은편에 앉아 나른하게 등을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