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05화 (105/463)

105화: 하소연

뱃속 가득한 고충과 말 못 할 답답함에 고 이낭은 더는 참을 수 없어졌다.

“오라버니, 그게 아니라……. 내 말은, 이모님 생신 연회를 열려고 하면, 다른 건 접어두고, 오라버니가 말한 그 가문들, 모두 식구가 많은 집이에요. 바깥손님, 안손님, 못해도 서른 명은 될 거예요. 그리고 전원, 후원 두 곳으로 나눠야 하죠. 떠들썩하게 하라니까, 후원엔 놀이패는 불러야겠죠. 전원엔 유명한 기녀, 소창은 반드시 있어야 하고요. 오라버니, 이러려면 은자가 얼마나 들겠어요.”

강환장은 얼떨떨하게 고 이낭을 바라봤다. 눈앞이 아른거리고 넋이 나갈 것 같았다.

“그리고 종복도 그래요. 안 그래도 종복이 별로 없는데, 얼마 전에 반 이상 팔았죠. 남은 사람은 늙고, 어리고, 쓸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새로 온 종복들은 다 초짜예요. 사람 가르치는 게 어디 쉽나요? 게다가 가르칠 사람도 없고요. 오라버니는 모르겠지만, 이 저택엔 모두 간교한 노비뿐이에요. 모두 약아 빠져서, 착한 사람 하나 없어요. 손님이 잔뜩 올 텐데, 왕 어멈이 큰 주방에서 그렇게 많은 요리를 못한대요. 자기는 제대로 배운 요리사도 아니라서 평소에 먹는 음식이나 하지, 연회 요리는 못한대요.”

한 번 입이 열리자, 고 이낭은 갈수록 할 말이 많아졌다.

이 생신 연회는 아예 열 수가 없다고요, 알아요?

강환장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한참 만에 겨우 물었다.

“이런 걸, 왜 이제야 이야기해? 이씨를 부른 건, 이씨더러 나서서 해결해 달라고 하려던 것이냐? 네가, 네가 못하는 걸 이씨는 할 수 있단 말이냐?”

“오라버니, 새언니는 돈이면 돈, 사람이면 사람 다 있어요. 내가 비교돼요? 우리 장방이 어떤지 오라버니가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난달에 남북 화행에서만 7백 냥을 받아 갔어요. 점포에서는 돈 없다는 소리만 하고, 길게 이야기하면 장부를 던지면서 모르겠대요. 다른 사람을 찾으래요. 오라버니,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장부는 엉망진창이고. 어머니와 이모님에게 배운 건 모두 글 읽고, 시 짓고, 여인의 법도 같은 거예요. 우리는 서생 집안이잖아요. 누가 상인들이나 하는 걸 배운 적 있어요?”

논리를 따지는 것이면, 강환장은 정말로 고 이낭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리고 종복도 그래요. 오라버니도 그랬잖아요. 이 저택에 제대로 일할 생각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이모님이 긴 세월 집안을 다스리면서도 제대로 못 한 걸,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일개 이낭이, 신분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고, 왕 어멈이 자기는 연회는 못 맡는대요. 정 안 되면 주방 일 그만두겠다고 다른 사람을 부르래요. 내가 어디서 사람을 구해요? 새언니가 데리고 있는 소유, 한 달에 월전이 스무 냥이래요. 연말엔 상금도 따로 주고요. 그런데도 이가에서 연회를 열 땐 소유 한 사람으로는 못 하고 기껏해야 두어 가지 만들 뿐이래요.”

“그만해라!”

강환장은 주절주절 끝도 없이 불평하는 고 이낭의 말을 고함치며 자르고는, 처음 보는 사람 바라보듯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네가 전에…… 네가 지금 한 말은, 한 말은…….”

그녀가 하는 말, 이 집안 모든 것, 예전과 달라졌단 말인가? 이씨가 이렇게 불평하는 걸 들은 적이 없는데, 어째서지? 자신이 입만 열면 이씨는 다 잘해 냈는데?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잘해 냈는데?

“너는 재능이 있다. 그냥 하기만 하면 되는데, 어려울 것이 무엇이냐? 넌 이씨보다 뛰어나다…….”

“오라버니, 이건 뛰어나고 말고가 아니에요. 내겐 지금 은자며 종복이며 하나도 없어요. 아무리 뛰어난 여인도 쌀 없이 밥을 못 짓는댔어요. 안 그래요?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내가 뚝 하면 만들어내는 신선도 아니고요.”

대놓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고 이낭은 줄줄 터놓고 이야기했다.

“내가 점포며 장원이며 다 네게 넘기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돈이 없다는 것이냐? 알고 말고 할 것이 뭐가 있어. 점포 일에 알아야 할 게 무엇이야?

장궤도 있고 일꾼도 있고, 네가 신경 쓸 일이 뭐가 있어서? 점포가 열려 있고 그 자리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물건 사러 갈 것이고, 장사가 되면 점포에 돈이 생기는 것이지. 돈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우리 점포는 다 장사가 잘되지 않느냐. 위치도 좋고, 아무도 상관하지 않고 내버려 둬도 매일 돈 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넘친다. 장궤가 말을 듣지 않으면 갈아치우면 되지. 돈은 점포가 버는 것이지, 장궤가 버는 것이냐? 바꾸면 그만이지, 뭐 대수라고. 경성에 거간꾼이 얼마나 많은데, 어떤 사람을 구하려고 하든, 몇 명을 구하려고 하든 장궤가 없을까? 이게 뭐 어렵다고. 재능이 뭐가 필요하다고.

장부를 몰라? 장부를 볼 게 뭐가 있다고. 틀린 내용이 없는지 숫자 더하고 빼보는 거 아니냐? 그걸 네가 할 필요가 있느냐? 계산할 줄 아는 시녀라면 누구나 맞출 줄 아는 것을. 넌 주판을 쓸 줄 모르니까 주판을 쓸 줄 아는 시녀를 불러서 시키면 되지. 저택에 주판 쓸 줄 아는 아이가 없는 것도 아니고. 어려울 게 무엇이야? 그리고 종복도, 어째서 부족하다는 것이냐? 온 경성에 거간꾼이 얼마나 많으냐. 원하는 사람으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거간꾼을 통해서 사들인 사람은 하나같이 다 노련하다. 다시 가르칠 필요가 뭐가 있어? 이게 뭐가 어렵다고…….”

강환장은 머리를 거치지 않고 술술 말을 내뱉었다. 너무나 익숙하게 입에서 줄줄 나왔다. 쉴 새 없이 나왔다.

이 말은 모두 예전에 고씨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이씨가 집안을 잘 관리한다고, 서무를 잘 처리한다고, 누가 칭찬하기만 하면 고씨는 이런 말을 했었다. 몇십 년 동안 듣다 보니, 강환장도 지극히 옳은 말이라고 여겼다. 맞는 말 아닌가? 어려울 게 뭐가 있어서?

고 이낭은 멍한 눈으로 강환장을 바라봤다. 얼이 빠졌다.

문 이야는 한 손은 뒷짐 지고 다른 손으로 은 꼬챙이를 들고 이를 쑤시면서 이동이 마차를 타고 자등 산장 대문을 나가는 걸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잠시 지긋이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갔다.

연달아 보름 동안 이동은 매일매일 같은 시각에 나갔다가 같은 시각에 돌아왔다.

소유는 허드렛일 어멈 몇을 데리고 광주리, 소쿠리를 들고 측문에서 들어오다가 문 이야를 보고는 소쿠리를 곁에 있는 어멈에게 건네주고 그에게 다가갔다.

“이야, 오늘 얼룩 새우를 꽤 많이 잡았어요. 깨끗한 거랍니다. 그리고 유월황(六月黃: 어린 게)도 한 소쿠리 잡았어요. 작긴 한데 살이 꽉 찼더라고요. 우리 낭자가 데친 새우랑 술 게를 좋아하셔서 만들 건데, 이야도 드시겠어요? 귀찮아서 싫으시면 팔보 오리를 만들고요.”

“새우도 실한가? 실하면 데친 새우도 내오게! 삭힌 두부 많이 넣고! 술 게는 됐네. 먹을 것도 없어. 게 몇 마리 가져다주고, 연고(年糕: 중국식 떡)도 볶아 오고. 쫄깃쫄깃해야 하네! 찰지고 씹을 맛이 있어야 해! 팔보 오리는 뼈를 다 발라줄 수 있나?”

문 이야가 친밀하게 웃어 보였다. 문 이야가 온 저택 사람 중에 가장 예의를 차리는 상대가 소유였다.

“마음 놓으세요. 유 어멈이 어제 막 연고를 쪘어요. 드시면 알아요. 게 몇 마리 살을 발라서 완자로 만들어드릴게요. 팔보 오리는 목하고 머리 잘라내고, 뼈 하나 남기지 않고 드시게 해드릴게요. 장담합니다. 쌀죽도 끓여드릴 테니, 오늘은 고기탕은 드시지 마세요. 매일 드시면서 질리지도 않으세요?”

소유도 온 저택에서 식객인 문 이야를 가장 좋아했다. 식사 때마다 즐겁게 만끽하며 시원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면 찬모로서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그래. 자네 말대로 하지!”

점심을 제대로 먹을 생각에 문 이야는 기분이 더 좋아져서 껄껄 웃으며 이신을 찾으러 갔다.

이신은 매일 한 편씩 쓰는 책론을 열심히 쓰고 있었고, 문 이야는 곁에서 지켜보다가 마지막 글자를 다 쓰자 들어 올려서 슥슥 훑어보았다.

“자네 문장은 이해하기 쉽고 간단해서 앞으로 상주서를 쓸 때 장점이 되겠군. 내년 춘시의 시험관은 섣달이 되어야 결정한다더군. 일단 정해지면 손님을 만나지 않지. 다만!”

문 이야는 책론을 내려놓고 빙그레 웃으며 이신을 바라봤다.

“섣달까지 어찌 기다리겠나. 아마 적어도 7, 8월엔 고를 사람 중에 대충 윤곽은 잡힐 걸세. 자네 문장은, 화려하고 미사여구를 좋아하는 시험관을 만나면 아무래도 크게 손해 보겠지.”

“시험관이 한 분도 아니잖습니까. 묵 승상과 여 승상, 두 분이 이 일에 관점이 같아서 시험관은 언제나 다양한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공평하게 분배한다던 걸요.”

“욕심 좀 내게!”

문 이야는 책론을 서안에 탁 내려놓고 부채로 종이를 탁탁 두드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일갑에 들려면 시험관이 수긍해야 하네. 시험관에게 인정받지 않으면 어찌 일갑에 들려고? 삼갑으로 떨어지고 싶은 것인가?”

이신은 문 이야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삼갑으로 떨어질 생각은 없지만, 일갑이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갑이면 되었지, 이갑은 안 되나?

“시험관이 누가 될지, 반드시 미리 가늠해 두어야 하네.”

문 이야가 의자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셈해 봤는데, 우리 손엔 인맥이 별로 없네. 태태는…… 자네가 가서 물어보게. 모자 사이이니 떠볼 것 없이 대놓고 묻는 게 좋아.”

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태태 쪽은 생각하지 말고, 없는 셈 치세. 지금으로서 우리가 알아볼 만한 곳은 첫째, 여염이지.”

문 이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여 승상 쪽은 걱정할 것 없었다. 이가 혹은 이신이 여 승상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몰라도, 여 승상이 그를 보낸 데다가 한 말도 있으니 이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면 그는 앞으로 이신을 따를 생각이었다. 이신이 낙방하거나 삼갑에 그칠 거란 걱정은 그다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조력자가 있다는 걸, 여 승상이 밝히지 않으니 그도 말할 수 없었다. 여 승상은 지금 이신에게 밝힐 생각이 없는 듯했고, 앞으로도 밝히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드러나지 않은 조력자이니, 이신 앞에서 대놓고 계산할 수도 없고.

장 태태가 세도가가 하는 대로 이신을 사방을 다니며 견문하게 하고 식견을 넓혀 주었지만, 이가는 세도가 집안이 아니라서 관료 사회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일을 알지 못하지. 이신은 더더욱 모르고.

이신이 진사에 급제한 다음에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늦지. 지금 이신이 이미 여염과 계소영 같은 미래의 관료 사회에 발을 들이긴 했지만, 발을 들인 것으로는 부족해. 더 경험을 쌓아서 시험관, 그리고 더 필요할지 모르는 다른 일들을 수소문해야 해. 그러다 보면, 총명한 이신은 분명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고.

이번 경험이 있으면 진사가 된 후 벼슬을 받아 출사한 다음에 조금은 느긋할 수 있는 거지. 그 작은 여유로움이 바로 기선이고.

“여 승상은 지극히 신중한 사람이네. 여염은 조부와 성격이 매우 닮았어. 여염 쪽은 시도해 볼 수 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아. 혹은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 게 좋고.”

이신은 얼떨떨해졌다. 어떻게든 내년 춘시 시험관이 누군지 알아내라는 말인가. 하지만 그건 위법이었다. 게다가 알아낸들 무슨 도움이 된다고. 시험관을 바꿀 방법을 찾을 수 있나, 아니면 문체를 바꿀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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