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03화 (103/463)

103화: 미인 촛대

위봉낭은 양손을 허리춤에 얹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한숨을 내쉬었다.

“건드릴 수 있는지 아닌지, 내가 알 게 뭔가. 난 그저 우리 칠야가 분부한 이상, 반드시 모시고 가야 한다는 것밖에 몰라. 우리 칠야가 성질을 부리면 큰일 나는 건 나라고. 자네가 안 간다니, 내가 가지.”

위봉낭이 쿵쿵거리며 위로 올라가자 행수기녀가 발을 동동 굴렀다.

“아이고! 내려오세요! 아니, 정말…… 이것들아, 어서 끌어내! 낭자, 내 말 들어요, 귀한 분들을 거슬렀다간…….”

얼마나 쏜살같이 움직이는지, 일꾼들과 행수기녀가 위층으로 올라갔을 때 위봉낭은 이미 방 안으로 들어가서 류만과 아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칠야께서 저녁에 연회를 여는데 두 분이 와서 흥을 돋워달라고 하시네요.”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손 학사는 한 손에 붓을 들고 굳은 채 위봉낭을 노려봤고, 식견이 넓은 조 시랑은 화가 나서 눈살을 찌푸렸다.

“어찌 이리 무례한 것이냐! 칠야라니, 어느 댁 칠야란 말이냐?”

“정북후부입니다.”

위봉낭은 조 시랑을 힐끔 보고는 류만과 아라에게 계속 말했다.

“서두르세요. 늦으면 칠야께서 화내세요.”

“무엄하다!”

손 학사도 뒤늦게 반응했다. 정북후부 칠야라면 며칠 전에 한림원으로 와서 글을 배우던 사람 아닌가.

“법도 없이 이게 무슨 짓이냐! 여봐라, 끌고 가라. 아랫사람 단속 제대로 하라고 영칠에게 전해라!”

일꾼들이 쩌렁쩌렁 대답하고는 그중 둘이 위봉낭을 잡으러 달려들었다. 위봉낭은 고민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고는 다리도 움직이지 않고 손만 휘둘러서 일꾼 둘을 날려버렸다. 그리고는 넋이 나간 일꾼들과 일꾼들 뒤에 서 있는 행수기녀를 돌아봤다.

“앞으로 우리 칠야가 류만 소저를 부를 일이 많을 텐데, 사이가 틀어질 것 없지 않을까.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이만 내려가지?”

행수기녀가 조 시랑과 손 학사만 바라봤다. 손 학사는 화가 나서 붓을 위봉낭을 향해 내던졌고, 조 시랑은 어두운 눈빛으로 위봉낭을 노려봤다.

“이렇게 방자하다니. 너희 칠야에게 화를 끼칠 것이다. 칠야가 알면 다리를 분질러 놓지 않겠느냐. 썩 꺼지지 못할까!”

위봉낭은 고민스러운 둣 이마를 톡톡 쳤다.

“아이고, 저도 정말로 이러고 싶지 않습니다. 시랑 어른, 우리 칠야가 두 소저를 모셔오라고 분부하셨으니, 저는 반드시 모시고 가야 합니다. 어르신, 시간이 늦었습니다. 수염을 보니 연세도 있으신 것 같은데, 이 시간까지 즐기셨으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얼른 댁으로 돌아가서 자식 가르치고, 몸 단련이나 하세요. 다 어르신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무엄하다!”

조 시랑은 화가 나서 입술이 다 달달 떨렸다.

정북후부, 정말 하나같이 무례한 것도 모자라 다들 미쳤구나!

“우리 칠야는 항상 저에게 마음이 너무 약하다고 하십니다. 휴,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는 겁니다. 두 분 어르신, 나이도 있는데 우리 칠야와 기 싸움하지 마세요. 두 분이 우리 칠야와 기녀를 놓고 다퉜다는 소문이라도 났다가는, 우리 칠야는 아직 어리지만, 두 분은…… 됐습니다, 됐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류만 소저, 아라 소저, 어서 가야 합니다. 나온 지 한참 됐다고요.”

위봉낭은 괴롭다는 듯이 손을 휘저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류만과 아라를 바라봤다.

“난 안 가! 피곤해.”

아라가 돌아서더니 맨 안쪽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두 살 더 많은 류만은 영리하고 면밀한 성격이라 생글생글 웃으며 슬그머니 조 시랑 뒤로 가서 섰다. 그녀가 가고 말고는 조 시랑의 뜻에 달려 있었다. 두 가문 모두 자신이 거스를 수 없는 곳이었다.

손 학사가 화가 나서 사람을 부르려고 하자, 조 시랑이 그를 잡아끌었다.

“그 얼뜨기와 싸울 것 없습니다. 어떤 물건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손 학사의 목에 힘이 빳빳이 들어가자, 조 시랑이 다시 잡아끌었다.

“이대로 끝낼 일이 아닙니다. 돌아가서 탄핵 상주서를 올리지요.”

“맞소! 그 사고뭉치에게 두고 보자고 전해라.”

손 학사가 화가 나서 발을 쿵쿵 구르자 류만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꺼냈다.

“시랑 어른, 다음에 오시면 사과하는 뜻으로 소녀가 자매들을 여럿 불러서 연회를 열어 드릴게요.”

조 시랑은 그녀를 상대할 생각 없이 손 학사를 잡아끌고 위봉낭을 지나쳐서 곧장 아래로 내려갔다. 위봉낭이 류만과 아라에게 눈짓을 보내면서 어서 가자고 했다.

류만이 알겠다고 나지막이 대답하고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오라고 분부하는데, 아라가 벌떡 일어섰다.

“피곤하다고 이야기했지? 비켜, 난 돌아갈 거야.”

위봉낭이 바람처럼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아라를 덥석 잡아당겼다.

“아라 소저, 몇 번이나 말했죠? 우리 칠야를 거스르지 마세요. 소저, 까탈 부리지 말고 얼른 갑시다. 잘 들으세요, 가서 말을 잘 듣고 눈치 빠르게 행동하세요. 류만 소저를 좀 보고 배우세요. 이 일을 하면서 성질이 원…….”

위봉낭이 아라를 달랑 들고 가면서 고개를 저었다. 류만은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하고 허둥지둥 따라서 아래로 내려갔다.

위봉낭으로서는 진심으로 아라를 위해서 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여인의 성깔이…….

아이고, 아무래도 크게 골탕 먹겠군.

류만과 아라가 한 마차에 탄 건 맞지만, 류만은 스스로 탔고 아만은 위봉낭에게 허리를 잡힌 채 그대로 던져지고 말았다. 아라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마차가 급히 출발하더니 내내 미친 듯이 달려갔다. 류만과 아라는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계속해서 엎치락뒤치락 해야 했다.

두 사람이 정북후부에 도착했을 때, 운수는 벌써 한참 전에 와 있었다. 세 사람이 모두 모이자, 나이 든 어멈이 엄숙한 표정으로 나와서 세 사람을 데리고 들어갔다.

어멈의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세 사람은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없었다.

버드나무를 지나 문 안으로 들어가, 지극히 넓은 호숫가까지 걸어갔다. 호숫가의 화청엔 불이 환하게 켜있고, 화청 옆 그늘 아래 남녀 몇 명이 비파, 금, 피리 등 악기를 안고 서 있었다.

어멈이 류만과 운수에게 분부했다.

“두 소저는 여기서 시중들면 됩니다. 곡조에 맞추기만 하면 되고, 운수 소저는 좋아하는 곡을 골라 부르세요. 명심하세요, 멋대로 부르지 마세요. 류만 소저도 잘 생각하고 고르세요. 사패(詞牌: 사의 곡조 명칭)에 어울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칠야는 그렇게 까다롭지 않답니다.”

운수와 류만은 화청으로 들어가서 살며시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나 불이 환하게 켜진 화청에서 밖을 바라봤자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멈을 따라 계속 안으로 들어가던 아라는 은근히 기대하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칠야 곁에서 시중들 모양이었다. 그럼 이따 칠야 시중들 때는 고분고분하게 굴 생각이었다.

어멈이 아라를 상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손을 저었고, 이내 시녀 둘이 다가오더니 동의도 구하지 않고 양식이 괴상하고 금박 은박 무늬가 가득한 좁은 소매 웃옷과 반짝이가 잔뜩 붙은 폭이 매우 넓은 긴 치마를 옷 위에 껴입혔다.

옷을 갈아입은 다음, 어멈은 다시 아라를 데리고 몇 번이나 모퉁이를 돌았는지 모를 만큼 이리저리 돌아서 하얗게 칠한 정교한 영벽 앞까지 다가갔다. 어멈은 아라에게 영벽 앞에 똑바로 서 있으라고 분부한 다음 허드렛일하는 어멈에게 촛대 아홉 개를 넘겨받아 아라에게 쥐여주었다.

“잘 들어요. 다리는 이렇게, 그래요, 이렇게. 절대로 움직이지 말아요. 팔은 이렇게. 더 위로. 맞아요, 그렇게. 머리는 위로 살짝 들고, 시선은 위로. 맞아요, 그렇게. 됐습니다. 이렇게 서서 움직이지 말아요.”

“어멈, 얼마나 서 있어야 하지? 뭐 하는 건데? 나 시중들러 온 거 아닌가?”

아라는 묵직한 촛대를 들고 어리둥절해졌다.

“응? 지금 이게 시중드는 게 아니고 뭔가요. 아까 둘은 노래하고 춤추고, 소저는 여기서 촛대를 들고 있고. 이게 바로 시중입니다.”

어멈은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무식하군.’ 하는 얼굴로 아라를 흘겨봤다.

“뭐?”

아라는 넋이 나갔다. 이런 시중법은 처음 들었다.

“이 댁에 촛대가 없나? 그래서 사람이 들어야 해?”

“우리 칠야가 원하는 게 이런 겁니다.”

어멈은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아라를 위아래로 살피면서 태연하게 대꾸했다.

“우리 칠야는 원래 미인을 촛대로 쓰는 걸 좋아합니다. 아라 소저가 촛대를 들고 있으니 꽤 보기 좋군요. 전에 왔던 소저보다 훨씬 나아요. 우리 칠야의 안목은 할 말이 없어요.”

아라는 기절할 것 같이 화가 나서 촛대를 저 멀리 던져버렸다.

“이 댁에서는 사람을 사람 취급하지 않나? 됐어, 난 안 해!”

“무엄하게! 시중들고 말고, 소저 마음대로 할 일입니까? 그걸 소저가 결정할 일이냐고요! 여봐라, 묶어라!”

어멈은 아라보다 더 빨리 안색이 바뀌어 냉랭해졌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딱 봐도 선해 보이지 않는 우람한 어멈들이 달려왔다. 어멈 둘이 아라를 붙잡고, 한 어멈이 유칠한 나무틀을 들고나와서 어멈이 분부했던 자세대로 노련하게 아라를 나무틀에 꽁꽁 묶었다.

아라는 몹시 두려워졌다.

“뭐 하는 거야? 잘 들어 너희들…….”

“입 막아라! 잘 듣긴 뭘 들어? 경성의 기녀는 어째서 이리 법도를 모르는 것이냐? 우리 북삼로와 너무 다르구나!”

나이 든 어멈은 완전히 막무가내였고, 위협은 더더욱 통하지 않았다.

건장한 어멈이 아라의 입을 벌리더니, 손수건도 아니고 마핵(麻核: 마취제)을 매우 노련하게 던져 넣고 힘껏 입을 다물게 했다. 아라는 순간 한쪽 얼굴에 감각이 없어진 듯 얼얼해졌다.

어멈은 마지막으로 다시 초를 켜서 아라의 손에 묶은 다음 뒤로 몇 걸음 물러나서 꼼꼼히 살폈다. 자기 솜씨가 꽤 마음에 드는 듯이 나이 든 어멈을 향해 다 됐다고 무릎을 구부렸다.

어멈은 가까이 다가갔다가 또 뒤로 돌아가서 앞뒤로 한 번 살펴보고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라를 바라봤다.

“소저, 이 노인네는 늙어서 마음이 많이 약해졌답니다. 그래서 한마디 해주는 거니 잘 들어요. 나리들은 저마다 성질이 있고 저마다 놀이법이 다르답니다. 우리 칠야는 미인을 틀로 쓰는 걸 좋아한답니다. 촛대는 우리 칠야가 가장 좋아하는 틀이랍니다. 등불 아래 미인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소저를 촛대로 쓰는 건 소저의 복입니다. 열심히 일하세요. 촛대를 잘 들고 있으면, 혹시 압니까. 우리 칠야가 기분이 좋아서 소저를 속량해서 앞으로 우리 저택에서 오래오래 촛대를 들게 할지 몰라요. 그렇게 되면 소저는 크게 복 받은 게지요.”

처음엔 그래도 괜찮았는데, 뒤로 갈수록 아라는 혼비백산할 듯이 놀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온몸이 너무 꽁꽁 묶여 있어서 떨고 싶어도 떨 수가 없었다.

“얼굴 구기지 말고, 웃어 보세요. 잘 들으세요, 우리 칠야는 성질이 아주 고약하답니다. 전에 북삼로에 있을 때, 촛대 드는 소저 하나가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고 죽어라 까탈 부리면서 울상을 하고 있다가, 결국 우리 칠야가 소저 입을…….”

어멈이 자기 입꼬리를 아래로 잡아당겼다.

“이렇게, 한쪽씩 칼로 그었답니다. 멀쩡한 미인이 평생 그렇게 울상을 하고 살아야 했지요. 아라 소저, 분별 있게 행동하세요. 절대로 우리 칠야를 거스르지 말고요. 소저 얼굴 좀 보세요. 이 늙은이가 봐도 이렇게 예쁜데, 남은 평생 입꼬리가 축 처져서 살아야 하면 얼마나 아깝습니까. 아이고! 그렇지요, 맞아요. 이렇게 하면 됩니다. 시중 잘 들면 우리 칠야가 상도 내릴 거예요.”

아라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어멈이 멀어지는 걸 바라봤다. 울고 싶어도 엄두가 나지 않고 웃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움직이고 싶어도 더더욱 움직일 수도 없어서 지옥에서 고난을 겪는 것만 같았다.

영벽 앞, 아라는 선녀처럼 아름다운 자세로 촛대를 들고 서 있었다. 수시로 시녀, 어멈들이 빠르게 지나쳤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살아 있는 미인 촛대를 놓아둔 것에 진작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아라는 온갖 생각이 다 드는 가운데 두려운 마음이 가장 컸다. 처음엔 그래도 버텼는데, 그리 오래되지 않아 온몸이 참을 수 없이 아파서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입엔 마핵을 물고 있어서 소리를 낼 수도 없고, 그저 눈물만 폭포처럼 아래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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