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102화 (102/463)

102화: 고 이낭의 호의 二

추미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전 알았다고 했죠. 한마디도 빼지 않고 낭자에게 전하겠다고요. 청서가 이 말도 전해달래요. 반드시 조용히 요양부터 하시래요.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고요. 그리고 자기에게 주인은 낭자뿐이라고요. 낭자, 웃기죠?

더 재미있는 일도 있어요. 중문에 도착했을 때, 맞은편에서 오 어멈이 오지 뭐예요. 어딜 가냐고 묻길래, 굳이 고 이낭 대신 감춰줄 것도 없잖아요. 안 그래요, 낭자? 그래서 있는 대로 다 털어놨죠. 그랬더니 오 어멈이 뭐라고 했게요? 대내내는 몸이 심하게 안 좋아서 어쩔 수 없이 요양하러 나온 거고, 병이라는 게 올 땐 무섭게 찾아오고 나을 땐 천천히 낫는 법인데 며칠 만에 대내내 병이 다 낫겠냐고요. 고 이낭이 정말 고약하고 못됐다고요. 대내내의 목숨이 장난인 줄 아냐고요.

대내내가 직접 부인의 생신을 챙기지 못하는 것도 자기가 진작 부인께 잘 말씀드렸다네요? 부인이 사리 분별 못 하는 분도 아니고, 대내내 몸이 이렇게 안 좋은데 굳이 연회를 열라고 하겠냐고요. 부인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악독한 시어머니냐고요. 부인은 정말 보기 드문 자비로운 사람이라고요.

그러면서 저더러, 부인, 그리고 저택 걱정은 말고 안심하고 요양하라고 전해달래요. 대내내 몸이 좋아지는 거야말로 강가의 복이라고요.

정말이지 그때 아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오 어멈이 저한테 그런 말을 다 하다니요. 낭자 편에서 생각해주다니요. 낭자는 상상이나 하셨어요? 아이고, 정말. 보세요, 낭자, 진작 강가에서 나왔어야 했어요. 고 이낭, 그리고 세자야, 둘이서 제대로 고생해 보라지. 실컷 고생해야지요. 인제 보세요, 얼마나 좋아요!”

이동은 별말 없이 웃기만 했다. 오 어멈은 그녀 편에서 생각해주는 게 아니라, 작은 장원에 연연하는 것일 뿐이었다.

“후우!”

추미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

“아까 나 먹는 꼴, 다들 봤죠? 불쌍하죠? 내 이야기 좀 들어봐요, 지금 강가는 주방에서 나오는 음식이 하나같이 기름기가 없어요. 있으면 난리라도 나는 것 같다니까요. 왕 어멈도 참. 요리 중 하나는 반드시 끓인 음식이에요. 소금만 좀 뿌리고, 향유도 넣지 않는다니까요? 얼마 전에 장방 손 관사가 그러는데, 세자야가 4만 은자를 빼내 갔대요. 강가에 돈이 어디 있겠어요. 점포에 쓸 돈으로 4만 은자를 모았대요. 점포 두 곳을 저당 잡히기까지 했고요. 겨우 모았다나 봐요.”

“그건 나도 알아.”

이동이 대답했다. 그녀가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추미는 낭자가 알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낭자는 똑똑히 알 거라고 생각했어요! 강가 장방에 돈이 어디 있어요. 박박 긁어도 돈 한 푼 안 나올 텐데요. 그런데 지난달에 남북 화행에서 계산하러 왔을 때 7백 냥이나 받아 갔대요. 손 관사가 그러는데, 평소엔 기껏해야 2백 냥이래요. 그것도 후야, 부인, 그리고 세자야가 드시는 제비집 값이요. 그런데 지난달에 대낭자, 이낭자까지 제비집을 먹기 시작했어요. 사실 그래 봐야 얼마 안 해요. 어쨌든,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7백 냥이나 되더래요. 손 관사 말이 계산은 다 맞대요. 중간에 구매 담당이 수작을 부린 거라고 고 이낭이 구매 담당을 내쫓았어요. 하지만 줄 돈은 줘야죠. 그렇게 주고 나니 장방이 텅 비었대요.”

추미는 고소한 얼굴이었고, 이동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남북 화행의 일은 오 어멈이 말했었다. 부인과 두 낭자의 백 제비집을 더 값비싼 붉은 제비집으로 바꿔서 그렇다고. 올해 붉은 제비집이 희한할 정도로 비싸서, 7백 냥이 과하게 많은 건 아니었다.

“우리만 불쌍하죠. 고 이낭은 매일 근검, 절약해야 한다고 하면서, 주방부터 아끼더라고요. 후야와 부인, 두 낭자, 세자야, 물론 자기도요, 이렇게만 평소처럼 벽경미(碧梗米: 하북 지방의 고급 쌀)를 먹고, 다른 사람이 먹는 쌀은 몽땅 현미로 바꿨어요. 그리고 기름도요. 올해 짐승 기름이 비싸고, 콩기름도 비싸고 씨기름이 싸다고 씨기름으로 바꿨어요. 씨기름도 많이 못 넣게 해요. 큰 주방에 양까지 정해주고, 왕 어멈이 매일 기름통을 들어가서 기름을 받아서 써요.

아이고, 주방에서 매일 만드는 음식이요, 기름도 안 쓰는 데다가 비린내만 나서 먹을 수가 없어요. 전에는 그래도 고기가 끊긴 적은 없잖아요. 지금은 고 이낭 말이, 고기 같은 건 느끼하기만 하고 몸엔 좋지 않다고 적게 먹어야 한대요. 세 끼 중에 한 끼밖에 못 먹게 하고요, 자기는요 매일 닭에 오리에, 허벅지살, 다리 살, 바꿔가며 먹어요. 질리지도 않나?”

청국은 눈이 휘둥그레졌고, 수련은 저도 모르게 추미의 팔을 만졌다.

“어쩐지, 딱 보니까 마른 것 같더라니.”

“나는 그래도 괜찮아. 낭자께서 은자를 많이 주고 가셨잖아. 배고프거나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먹을 걸 사 먹으니까. 춘연도 괜찮아. 우린 거의 밖에서 음식을 사서 같이 먹어. 청서도 보아하니 괜찮은 것 같았어. 낭자가 청서에게도 돈을 많이 주셨거든. 게다가 강가 사람들과 다 친하고, 내가 보니까 거처에 방 하나를 비우고 솥이니 화로니 다 갖췄더라고. 나랑 춘연보다 더 잘 지내.”

“2백 냥 가지고 와. 반은 석 냥, 닷 냥짜리 은표로, 나머지는 반 냥이랑 한 냥짜리 쇄은으로. 추미, 네가 가지고 가서 춘연이랑 같이 쓰렴.”

이동이 수련에게 분부하자 추미가 다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직 많이 있어요.”

“너랑 춘연은 대범해야 해. 시녀나 거처에서 부리는 허드렛일하는 어멈에게도 나눠 줘야지. 집에 가지고 갈 정도로 줘야 해. 돈 쓰는 곳에선 인색하면 안 돼. 그래야 너랑 춘연이 잘 지낼 수 있어. 이제 한여름이 될 텐데, 보아하니 얼음은 너희 몫까지 오지도 않겠다. 얼음을 사 오는 건 너무 눈에 띄고, 과일이나 빙수 같은 건 많이 사. 그래야 더위를 식히지.”

이동이 나긋나긋 하는 말에 추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낭자도 참. 전에도 집에서……. 제 말은 이모랑 같이 보냈을 때 말이에요. 그때도 여름엔 다 그렇게 버텼는걸요. 춘연네도 가난해서 저랑 비슷해요. 고생 안 해본 사람도 아니고. 낭자,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래.”

이동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름도 못 먹게 하는 고 이낭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맞다! 웃긴 일이 하나 더 있어요!”

추미가 신이 나서 말했다.

“며칠 전에 낭자가 대교랑 대요 아주머니 등등 다 돌아오라고 했잖아요. 저택에 말을 돌볼 사람이 없어져서, 고 이낭이 주방 왕 어멈 조카 왕희를 마구간으로 보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저께 세자야가 말을 타고 외출했는데, 가다가 말이 큰 거리에서 갑자기 설사했대요. 분수처럼 내뿜더니 그 자리에 엎어져서 일어나지 못했대요. 하마터면 세자야가 큰일 날 뻔했고요. 휴, 떨어졌어야 했는데.”

떨어지지 않은 게 추미는 매우 유감스러웠다.

“독산한테 들었는데, 세자야가 화가 나서 난리였대요. 그런데 왕희는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하고요. 고 이낭이, 말이 검은콩, 하얀 콩 같은 걸 먹는 건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하면서, 분명 왕희가 말 핑계를 대고 돈 뽑아 먹으려고 한 거라고, 말은 다 풀 먹지 않냐면서, 화원에 풀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먹이라고 했대요. 왕희는 고 이낭의 분부대로 화원에 가서 풀 뽑아서 먹였으니까, 말이 병들어서 설사한 게 자기 탓이 아니라고 하고요.”

“정말이지…….”

수련은 정말이지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몰랐다. 화원의 풀을 뽑아서 말을 먹이라고 했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고가에 말이 있었겠냐고. 강가에서도 십여 년 동안 말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살았을걸?”

추미가 혀를 찼다.

“고가 고것이 알지도 못하면서 묻지도 않고 아는 체만 하잖아. 나중에 세자야가 전부 왕희 탓이라고, 장 서른 대를 때렸어요. 고 이낭은 그래놓고도 억울하다고, 다음 날 왕 어멈을 불러다 된통 혼냈대요. 왕 어멈이 일부러 자기를 해쳤다고요. 왕 어멈은 화가 나서 나한테 와서 울고 욕하고. 자기 조카는 대교 밑에서 배웠다고요. 말이 얼마나 귀한 짐승이냐면서요. 풀도 깨끗하게 씻어서 검은콩이랑 건초를 섞여서 매일 먹여야지, 아니면 살 빠진다고요. 풀 중에서도 먹여도 되는 게 별로 없는데, 우리 화원에 그런 풀이 어디 있냐고요. 왕희가 고 이낭한테 다 이야기했는데,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굳이 화원에 가서 풀을 뽑아 먹이라고 했다면서, 또 뭐라더라, 일거양득이라고요. 화원도 정리하고 말 먹이도 주는 거 아니냐고요. 나중에 일이 터지니까 거북이처럼 목을 쏙 움츠리고 모든 일을 왕희에게 떠넘겼죠. 왕희는 서른 대나 맞아서, 다리를 쓸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요.”

이동은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놀랍게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장공주가 해주는 자기와 아무런 상관없는 먼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마구간 이야기를 끝낸 추미는 화원 이야기를 하고, 화원 이야기에서 세자야가 모기를 싫어하는 이야기를 했다. 고 이낭에게 얼른 천붕을 치라고, 천붕 없이는 여름을 못 난다고 했다고. 오 어멈은 수녕백부에서 언제 천붕 같은 걸 쳤다고 그런 소리를 하냐고 세자야가 정신 나갔다고 했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어느새 오후가 되었고, 이동은 소유에게 저녁을 조금 일찍 하라고 해서 추미에게 밥을 먹인 다음 대교를 시켜 그녀를 돌려보냈다.

영원은 저택에 돌아오자마자 위봉낭에게 저녁에 연회를 연다고 아라 소저와 운수와 류만을 불러오라고 분부했다.

위봉낭이 찾아갔더니 운수는 마침 시간이 있다면서 얼른 나와서 정북후부로 향했다. 그다음에 연향루로 갔더니, 류만이 아라를 불러서 함께 손님을 모시러 갔다기에 비연루로 달려갔다.

비연루엔 예부 조 시랑과 한림원 손 학사, 그리고 몇 명이 시를 읊고 그림을 그리며 고상하게 즐기고 있었다.

위봉낭이 빠른 걸음으로 위층으로 올라가서 휘장을 젖히며 이 방 저 방 찾아다니자, 일꾼들이 허둥지둥 뒤쫓으며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위 누님, 지금 무슨…….”

“우리 칠야께서 연회를 연다고 류만 소저를 모시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아라 소저도. 바로 가야 해.”

위봉낭이 안을 가리키면서 말하는데, 일꾼들이 행수기녀를 불러왔다. 행수기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위봉낭을 바라봤다.

“아이고, 봉낭 낭자, 오늘은 정말 안 되겠습니다. 안에 예부 조 시랑이 계세요. 한림원 손 학사도요. 조 시랑은 몰라도 손 학사는 황상이 매우 아끼는 분입니다. 하루도 떨어져 있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

위봉낭은 조금 주저했다.

아무래도 이곳은 경성인데, 저 두 사람을 거스를 수 있을까. 아니지, 지금은 거스를 때인지 아닌지, 아무래도 칠야에게 명확히 물어야 봐야 할 것 같군.

“돌아가서 여쭤보고 오겠네.”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던 위봉낭은 몇 걸음 만에 다시 휙 되돌아왔다.

내가 잠깐 어떻게 됐었군. 칠야의 규칙은 그냥 분부대로 따르면 그만인 것을. 칠야에게 생길 일을 내가 고민할 일은 아니지. 누굴 거스르든 아니든,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칠야는 세 소저를 반드시 데리고 오라고만 했지, 한가하면 데리고 오라고는 하지 않으셨어.

행수기녀가 막 한숨을 돌리는데, 위봉낭이 다시 돌아왔다.

“가서 이야기하게. 우리 칠야께서 지금 바로 류만 소저와 아라 소저를 데려오라고 하셨네. 그 두 분에 대해서는 자네 소관이지!”

행수기녀는 언짢아졌다.

“어머나, 위 낭자. 그분은 우리가 감히 거스를 분이 아니에요. 낭자, 돌아가세요. 저는 분명히 말씀드렸어요. 나중에 저를 탓하지 말고요. 칠야는……. 흥, 저 두 분은 칠야가 건드릴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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