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98화 (98/463)

98화: 또 훈계

“어떤 놈이 좋으냐? 가지고 싶냐? 간단하지! 몇 마리든 상관없다. 다만.”

영원의 말투가 확 바뀌었다.

“저택에 세견을 키울 줄 아는 사람은 있고? 정말로 아는 사람 말이다. 세견을 키우는 일은 매를 훈련하는 것과 같다. 대대로 내려오는 재주가 아니면 안 돼. 내 말해 두는데, 세견은 사람보다 키우기 힘들다. 그리고 저택에 그만한 장소는 있고? 세견은 한 마리, 두 마리 기르는 게 아냐. 그러면 개를 망치는 거거든. 기르려면 한 무리 같이 길러야 한다. 적어도 빈 땅이 열 묘는 있어야 해. 그리고 하루에 적어도 세 번은 달리게 해줘야 한다. 한 번에 최소 십 리는 달려야 하고. 손바닥만 한 땅에서 빙글빙글 돌게 하는 건 안 돼. 성질 버린다. 또 너무 불쌍하고. 우리 저택에 화원도 나는 너무 작은 것 같은걸. 그리고 사흘돌이로 성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사냥하며 몸 풀어야 한다. 이 개는 사냥개거든. 이걸 다 할 수 있고? 네 집에서 할 수 있어?”

주 육소야는 말문이 막혔다. 들을수록 우울해지고 들을수록 슬퍼졌다.

영원이 한 말은 다 사실이고 전혀 거짓말이 없었다. 세견을 기르는 사람들 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전에 기르다가 망친 적도 있었고.

휴. 너무 좋아 보여서 그렇지! 이 개들, 다 너무 멋지다! 너무 마음에 든다고!

수국공부는 그만한 장소가 없을뿐더러, 설사 있다고 해도 할머니가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전에 온갖 수단을 써서 밖에서 개를 길렀었는데……. 결국 끝까지 속이지 못하고 가족에게 들켰다. 가족에게 들켰으니 할머니에게도 들켰고.

주 육소야는 풀이 죽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리고 난각 밖으로 나가서 세견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렁그렁한 눈으로 개들을 바라봤다.

개 기르는 것만 따지면 자신은 영원과 비교할 수가 없었다. 정북후부는 저택이 크기로 이름났고 수국공부보다 반은 더 넓다고 들었다. 수국공부엔 수십 명이 함께 사는데, 영원은 혼자 사니, 개는 물론이고 말도 뛰어놀 만큼 넓은 게 아닌가.

영원이 뒤따라오더니 주 육소야 곁에 웅크리고 앉아 세견을 쓰다듬으며 주 육소야를 힐끔 바라봤다.

“정말로 요 녀석들이 좋은 모양이군. 하지만 세견은 키울 순 있어도 제대로 키우는 게 너무 어렵다. 우리 집엔 개를 기르는 공간이 따로 있다. 개를 기르는 사람도 다 몇 대 째 내려오는 전문가이고. 세견도 있고, 오견(獒犬: 티베탄마스티프, 티베트고원을 원산지로 하는 초대형 개. 사자개)이 제일 많다. 들어봤지? 아주 흉맹하지. 두 마리면 나이 든 사자 한 마리는 물어 죽이고.”

“나도 안다. 경성에도 기르는 사람이 있고. 하지만 못생겨서 싫다. 난 세견이 가장 좋다. 얼마나 예쁘냐.”

주 육소야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서 한창 잘 보이려는 듯 영원을 핥는 세견을 슬쩍 쓰다듬었다.

“우리 북부는 개와 떨어질 수 없다. 특히 전쟁이 그렇지. 적은 인원으로 적군을 탐색하거나 자원을 가로챌 때, 다 오견을 데리고 가야 한다. 세견도 좋긴 한데, 오견처럼 흉맹하지 않고, 또 고난을 견디지 못해. 이 녀석들은 사냥할 때나 쓸 뿐이지. 세견으로 사냥한 적 있나? 부양산은 높고 숲이 무성하다던데, 모레 휴목일(休沐日)이라 녀석들을 데리고 몸 좀 풀어줄까 하는데, 같이 갈 테냐?”

(※휴목일, 옛날 사람들은 머리카락이 길어서 말리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자주 씻을 수 없었다. 며칠 만에 한 번씩 목욕했고, 관리들도 하루 등청하지 않고 쉬며 목욕하는 데서 유래한 휴일.)

주 육소야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경성은 잘 모르지 않으냐. 부양산은 안 된다. 임강에 가야 해. 그곳이야말로 산이 높고 숲이 무성하거든. 휴목일이 하루뿐이냐? 하루로는 안 된다. 네 임무…… 그냥 이틀 더 휴일을 내라. 몇 명 더 모아서 다 함께 가면 되지. 임강에 우리 가문 장원이 있는데 좋은 게가 나는 곳이거든. 유월황이 나는 시기다. 게 좋아하나? 유월황은 좀 작긴 하지만, 말도 못 할 정도로 신선하다. 요리사를 데리고 가서…….”

주 육소야는 들떠서 주절거렸다. 주가 조상도 군공으로 가문을 일으켰고, 주가 역시 정통 장군 집안이었다. 그런데 조부 대에 와서는…….

조부가 직접 병사를 이끌어 본 적 없다고 했어도, 어찌 됐든 전장에 출정한 적은 있었다. 그런데 자기 대에 와서는 개도 마음대로 못 기른다니. 조상 대대로 내려온 장군의 위엄을 떨치고 싶어서 오래전부터 안달이었었다. 일단 사냥으로 몸을 풀다 보면 언젠간 직접 병사를 이끌고 전장에서 용맹을 떨칠 날이 오지 않을까!

이날 반가 화원엔 경성의 미식, 좋은 술,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름난 미인이 모두 모여 있었다. 미식과 좋은 술이야 필요하면 말 한마디면 바로 대령할 수 있다지만, 온 화원에 가득한 미인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하지만 미인들이 하나같이 온화하고 싹싹한 것이 원하는 건 모두 들어줬다. 다들 희한할 정도로 고분고분한 것이, 이렇게 싹싹한 건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영원은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본전까지 준비해 두었다. 따면 가지고 가고, 잃어도 영원이 내는 셈이었다.

묵칠은 이날 입을 다물지도 못할 만큼 즐거웠다. 아라가 이렇게 순종적이고 싹싹한 적이 없었다. 종일 곁에 있는 아라와 함께 운수의 연주를 듣고, 류만의 춤을 보며 아라의 작은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때때로 아라가 먹여주는 매실주를 마시고 있으니, 신선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만 같았다.

화원을 가득 채운 한량들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게 한스러웠다. 어찌나 날이 빨리 저무는지, 눈 깜빡한 사이에 화려한 등불이 켜지고 어느새 새벽이 되었다.

끝나지 않는 연회는 없는 법. 묵칠은 아라의 손을 붙들고 놓지 못했고, 주 육소야는 일어서지 못하고 세견을 쓰다듬었다. 처음엔 돈을 따다가 나중에 잃은 소자람은 매우 유감스러워했다. 너무 일찍 판이 끝나는 게 아닌가.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아주 잠시만 더 있어도 본전을 다시 따올 수 있는데!

살짝 취한 여염은 매우 멀쩡한 계소영과 나란히 서서 수시로 영원을 힐끔거렸다. 두 사람이 오늘 하루 동안 재미있는 구경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정말이지 흥미진진했다.

영원의 이 초호화 연회는 여기저기 피해를 줄 수밖에 없었다.

경성의 큰 주루,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름난 요릿집 당두는 사전 준비를 해야 해서 연회 당일은 물론 전날, 다음날까지 족히 사흘을 반가 화원에서 보냈다. 당두가 없으니, 주루들이 문을 닫은 건 아니지만 당두만 낼 수 있는 주요리는 내놓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작은 찬관은 대부분 당두가 자신 있는 요리 한두 가지뿐이라서, 당두가 없으니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경성의 유명한 기녀들도 전날부터 손님을 사절하고 준비했고, 연회 날엔 이른 아침부터 반가 화원에 가서 접대하고 새벽에 겨우 흩어졌으니, 다음 날엔 당연히 지칠 대로 지쳐서 하루 쉴 수밖에 없었다.

고관대작, 말단 관리, 문인, 서생들이 술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돈 몇 푼 뿌려서 흥을 돋울 기녀를 부르고 싶어도 며칠 동안은 그러지 못했다.

모두의 흥을 깼으니, 어사대가 놀고먹는 곳도 아니고 영원을 탄핵하는 상주서가 하룻밤 새에 한 광주리 쌓였다.

다음 날 조회, 문무백관은 대전으로 들어가자마자 대전 문 앞에 영원이 상주서를 껴안고 꼿꼿이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관리들은 영원을 지나쳐 대전으로 들어가 조회에 참석했고, 조회를 마친 후 다시 영원을 지나쳐서 나왔다. 영원은 상주서가 가득한 대나무 광주리를 안은 채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모두를 스쳐 지나치면서 일일이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는 전 안으로 들어갔다.

황상은 평소처럼 묵 승상을 비롯한 몇몇 대신과 함께 남아서 정사를 논하는 중이었다. 광주리를 안고 자극전 안으로 들어간 영원은 좌우를 둘러보며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 끽소리도 하지 않고 고분고분 무릎을 꿇었다.

“저, 저, 저것 좀 보게들. 저것 보라고, 아주 제 집이지!”

영원이 대전 안으로 들어갔을 땐 못 본 체하던 황상이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며 손가락질했다.

“황상, 다 제 잘못입니다. 고정하십시오.”

영원은 황상이 자기를 볼 수 있도록 중간으로 어기적어기적 옮겨가서 괴로운 얼굴로 후다닥 고개를 조아렸다.

황상은 기가 차서 죽을 지경이었다.

“다들 저 꼴 좀 보게. 얼마나 사리 분별이 밝은 모습인가? 저렇게 사리 분별할 줄 아는 놈이, 그동안은 뭘 했단 말인가?”

“영원은 그저 놀 생각이 지나쳐서 경중을 가늠하지 못하고 과했을 뿐입니다.”

여 승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득했다.

“가늠하지 못해? 가늠이라는 게 뭔지는 알고? 경중이 무엇인지는 알고?”

황상은 더 화가 난 듯 긴 서안을 쾅 두드렸다.

“탄핵 상주서들을 읽어 보아라! 하나하나 다 읽어 보아!”

“예.”

영원은 고분고분 대답하고는 상주서를 꺼냈다. 느리긴 해도 순조롭게 읽더니, 몇 줄 넘기지 못하고 막혔다.

“아뢰옵니다, 황상. 모르는 글자가 있습니다.”

사황자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대황자와 수국공도 따라 웃었다. 대황자가 웃으며 영원을 가리켰다.

“영원, 무학 무능하다는 말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배운 것이 없기도 쉽지 않구나.”

황상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이마를 짚으며 묵 승상을 바라봤다.

“영진산 같은 올곧은 사람이 어떻게 아들을 이렇게 가르쳤지? 상주서 하나도 읽지 못하다니!”

“사람 구실 못하는 제 손자 놈도 비슷합니다. 다들 지나치게 총애해서 그런 것이지요. 어릴 땐 자꾸 너무 어리게만 생각하고, 혹시나 너무 엄하게 단속하여 아프거나 할까 봐 걱정했지요. 휴, 자라면 자연히 철이 들겠거니 했건만 자라고 나니……. 아이고!”

묵 승상은 수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병상련의 마음이 조금 들었다.

“아이고.”

황상도 길게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착 달라붙을 듯이 고개를 숙인 영원을 바라봤다.

“부끄러운 줄은 아느냐! 웬일이냐! 잘 들어라, 네 아비가 널 짐에게 보낸 이상, 짐은 네 아비가 아니니 절대로 네 아비처럼 널 감싸는 일은 없을 것이다. 매일 허튼짓하고 발전할 줄 모르는 상태로는 안 된다! 상주서를 들고 지금 바로 한림원으로 가거라! 가서 선생을 찾아서 글자부터 제대로 배워! 그리고 상주서에 쓰인 것들이 무슨 말인지 배워라!”

“예! 황상, 한림원에 가서 누굴 찾습니까? 정말로 학식 있는 사람을 제게 붙여주셔야지요.”

“너 같은 놈을 가르치는데 진짜 학식 있는 사람이 왜 필요해! 한림원에 가서 시간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나 찾아도 된다! 짐의 한림원은 잡역도 널 몇 년이나 가르칠 만한 수준이니 마음 푹 놓아라! 잘 들어라, 앞으로 이틀에 한 번씩 적어도 한 시진은 한림원에 있어야 한다. 일단 글자부터 다 배우란 말이다! 짐이 검사할 것이다, 알아들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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