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연회 一
영원이 적당히 손을 썼고 또 하나는 정북후부의 약이 실제로 매우 잘 들어서, 영원의 기세등등한 대홍색 청첩이 묵 칠야 손에 들어갔을 때, 묵 칠야 얼굴의 상처는 거의 회복된 상태였다. 며칠 동안 집에 갇혀 요양한 덕에 다치기 전보다 더 포동포동, 반질반질해졌다.
“치워라, 치워.”
묵칠은 ‘영’자만 들어도 화가 치밀어서 영원의 청첩이라는 말에 보지도 않고 치우라고 손을 내저었다.
야우는 후다닥 청첩을 밖으로 던진 다음 잠시 생각하다가 손을 씻으러 갔다. 영가의 청첩을 만진 손이라고 소야가 타박하기 전에 씻는 게 나았다.
“머리 장식은 다 되었는지 가서 보고 와라. 아라가 조바심 내며 기다린단 말이다! 이게 다 영원 그놈 때문이다! 그 바람에…….”
묵칠은 이를 갈며 혀를 찼다. 머리 장식이 다 되면 쓰고 보여주겠다고 아라가 약속했는데, 그렇게 되면 연향루에서 반 시진은 이야기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다친 바람에 다 지체되었다.
“소야, 아라 소저는 며칠 전부터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답니다. 그게…….”
신무가 목을 내밀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게, 영 칠야의 연회를 준비하느라고 그런답니다.”
“뭐라고?”
묵칠은 튀어 오를 뻔했다. 왜 또 영원과 엮이는 건데?
“소야는 모르시지만, 영 칠야가 이번에 여는 연회 이야기로 온 경성이 며칠 동안 떠들썩합니다. 영 칠야가 반가 화원 전체를 세냈답니다. 소야도 아시다시피, 반가 화원은 손님을 접대하는 정자 몇 곳곳에만 천붕을 쳤는데, 영 칠야가 온 경성의 장인을 불러서 반가 화원에 천붕을 칠 수 있는 곳엔 모두 천붕을 쳤답니다.”
신무는 말을 할수록 눈썹이 휘날렸다. 영 칠야가 손님을 초대하는 기세, 정말로 대단하긴 했다.
“그리고, 우리 경성에서 조금이라도 이름난 당두는 모두 불렀답니다. 게다가!”
신무는 잠시 말을 멈추고 강조하듯 힘주어 말했다.
“듣자 하니 그 당두들 모두 참석한다고 했답니다. 그뿐만 아니라, 경성에서 유명한 기녀는 다 불렀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불렀답니다. 당두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참석한다고 했답니다. 안 가는 사람이 없답니다. 소야, 정말로 가지 않으시렵니까?”
이렇게 떠들썩한 일이 생겼는데, 소야가 안 가면 그들도 못 간다.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아라도 불렀다고? 아라가 간다고 했다고? 아라가 그런 도적 같은 놈을 상대한다고?”
묵칠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도적 같은 놈이라고, 소야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야우가 꿍얼거렸다.
아라의 시녀가 2층에서 떨어진 일은 벌어진 그 날 바로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절대로 소야에게 전하지 말라는 이야의 분부가 있었으니, 당연히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감히 아라를 괴롭혀?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테다!”
묵칠이 펄펄 뛰며 화를 냈다.
“꼭 괴롭히는 거라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영 칠야가 매우 잘생기셨는걸요.”
신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요 며칠 영 칠야를 몇 번 만난 적 있는데, 4품 시위복을 입은 영 칠야는 정말로 멋졌다.
여인들은 잘생긴 사내를 좋아하잖아. 비록 우리 소야도 나쁘지는 않지만, 영 칠야와 비교하면 늠름함도 없고 사내다움도 없지.
아라 소저, 어쩌면 영 칠야에게 반했는지도 몰라. 아이고, 정말 그렇다면 우리 소야가 너무 불쌍한데!
“청첩은? 청첩은! 가지고 와라!”
한참 버럭거리던 묵칠은 결국 가 보기로 했다. 영원이 초대해서가 아니라, 그가 사모하는 아라 소저 때문이었다.
묵칠은 영원만 생각하면 오싹해져서 일단 안원후부에 가서 죽어도 같이 가야 한다고 소자람을 끌고 나왔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또 계가로 갔다. 계소영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묵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원의 청첩을 흔들면서 반드시 갈 거라고 했다. 묵칠은 크게 기뻐하며 작별을 고하고 나와서 여염에게 사람을 보냈다. 그런 다음 말에 올라 주유민도 불러야 할지 고민했다.
그날 주유민이 가장 심하게 맞았는데 부르자니 마음이 안 좋았고, 그렇다고 부르지 않는 건 아니지 않나?
묵칠은 한참 주저하다가 야우를 불러 분부했다.
“주 육소야에게 가서 전해라. 영칠이 연회를 연다고. 나와 외사촌 형님, 여염은 가서 구경하기로 했다고. 그날 만약 육소야가…… 그러면 그날은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고.”
“예!”
야우는 말머리를 돌려 주 육소야가 알아들을지 못 알아들을지 모를 완곡한 초대를 전하러 수국공부로 달려갔다.
묵칠 무리뿐만 아니라, 경성에서 작위가 있는 가문은 거의 영원의 청첩을 받았다. 수녕백부 강환장도 청첩을 받았다. 다만 강환장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앞으로 관외의 도적 두목이 될 사람을 상대할 겨를이 어디 있나. 지금 수중에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있다면 지금 바로 도적 두목을 죽여 버리는 게 좋지……만, 어차피 조정에 맞선 적도 없으니 내버려 두기로 했다.
세 황자도 영원의 청첩을 받았다.
영원이 자신에게도 청첩을 보냈다는 말에, 대황자는 기발하다고 생각하며 얼른 청첩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뒤적뒤적 끝까지 읽었다.
“초청한 사람이 누구누구냐?”
“듣자 하니 묵신과 주유민, 소자람 세 사람에게 사과하기 위한 자리라고 합니다. 여염, 계소영도 그날 그 자리에 있었고요. 이들 말고는, 순녕왕부 주 대소야, 경상왕부 운 사야, 영안백부 조 삼소야…….”
사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황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참으로…… 걸출한 인물을 잘도 골라 모았구나!”
대황자는 청첩을 내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거리다가 분부했다.
“사람 하나 보내서 전해라. 마음은 잘 받았다고. 나는 공무가 너무 바쁘다고……. 아, 궁에서 얼마 전에 하사한 복숭아를 가져다주고 접대에 쓰라고 해라.”
청첩을 받은 한량들의 기대 속에, 영원이 연회를 여는 날이 드디어 다가왔다.
아라는 위봉낭이 정한 시각보다 일각 일찍 반가 화원 중문 앞에 마차를 세웠다.
위봉낭은 하얀 웃옷에 쪽빛 치마, 시녀 차림을 하고서 중문 앞에 서서 아라를 바라보면서 빙긋이 웃었다. 그러더니 한 움큼 쥔 대나무 꼬챙이 중에 하나를 골라 옆에 있는 작은 소쿠리에 넣었다.
아라를 부축하고 돌아서던 다다는 위봉낭을 보고는 놀라서 주저앉을 뻔했다.
위봉낭은 다다의 아계(丫髻: 머리카락을 좌우로 갈라 양쪽을 위로 붙잡아 매어 만든 머리)를 톡 튕기면서 말했다.
“겁먹을 것 없다. 너희 소저가 말을 잘 들으면 이 언니가 나중에 은자를 줄 테니 당이나 사 먹어라.”
다다는 겁에 질려 고개를 돌리고 싶어도 위봉낭의 기분을 거스를까 봐 돌리지 못하고 위봉낭이 뭐라고 하든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라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위봉낭을 주시하자, 위봉낭이 아라의 얼굴을 슬쩍 꼬집었다.
“꼬맹아, 이렇게 꽃처럼 아름다운 것 좀 보게. 난 정말로 널 아끼지만, 다시 한번 말하마. 우리 칠야는 성격이 좋은 사람이 아니다. 하라는 대로 반드시 해야 해. 아니면…… 이것 보렴, 이렇게 예쁜데, 너무 아깝지 않으냐.”
그 말에 아라는 혼비백산했고, 다다는 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칠야라는 분, 대체 얼마나 포악하고 사납길래 그래?
묵칠은 우선 안원후부에서 소자람을 만나 함께 반가 화원으로 향하다가, 그곳에 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유일한 길 입구에 이르러 갑자기 말을 세웠다.
“그러지 말고, 여염과 계소영을 기다렸다가 같이 갈까?”
소자람은 묵칠을 흘겨봤다.
네가 겁먹어서 그러는 걸 알지만, 그래, 기다리지, 뭐.
영원의 꼴을 생각하면 그 역시 골치가 아팠다.
두 사람이 말을 몰고 길가에 가서 멈춰 섰을 때, 주 육소야가 번쩍거리는 푸른 옷으로 온몸을 치장하고 길모퉁이를 돌아 나왔다. 그리고 묵칠과 소자람을 보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말을 달렸다.
“거기 두 사람! 하하,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묵칠은 반가 화원 쪽으로 입을 비죽 내밀었다.
“저 앞이 바로 반가 화원이다. 나랑 형님은 여기서 여 대랑과 계 대랑을 기다리려고. 너는 왜…….”
“안 그래도 묵칠이 너를 불러야 하나 이야기하던 참이다. 우린 같이 왔거든. 넌 진작 나간 줄 알았지.”
묵칠이 ‘왜 왔냐’고 물어서 주 육소야가 어색해하기 전에 소자람이 재빨리 묵칠의 말을 잘랐다.
“응? 아! 그래, 맞다, 맞아!”
묵칠도 그렇게까지 아둔하지 않아서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이 시각에 이곳에 나타난 걸 보면 주 육소야도 구경 온 것이 분명하지 않나. 어제는 분명 오지 않겠다고 하더니. 무슨 일이 있어도 영원의 체면을 세워줄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서.
“묵칠, 의리도 없지. 네가 제일 의리 없다. 좋은 일이 있으면 번번이 나를 빼놓는구나!”
주 육소야가 채찍으로 묵칠을 쿡쿡 찔렀다.
세 사람이 몇 마디 하기도 전에 여염과 계소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퉁이를 돌아 나타났다. 다 모인 일행은 다 함께 반가 화원으로 향했다.
반가 화원 대문과 조금 떨어진 곳에 한 장(丈: 약 3미터) 높이의 공문(拱門: 아치)이 세워져 있었다. 공문과 대문 사이에 갖가지 색 월계화가 잔뜩 피어 있는데,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이 시선을 끌고 향기가 사방에 퍼졌다.
“응? 진짜 꽃이야 가짜 꽃이야? 조화겠지?”
묵칠이 가장 성실해서 후다닥 다가가 월계화 몇 송이를 꺾었다.
“아이고, 진짜네! 손이 찔렸어!”
여염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월계화를 바라봤다. 이것이야말로 돈을 물 뿌리듯 쓰는 것이로군!
일행이 말에서 내리자, 수려하게 생긴 사환들이 살짝 허리를 숙이며 맞이해서 안으로 안내했다.
대문에서 회랑 양쪽에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초사가 드리워졌다. 회랑 안엔 난초와 신선한 꽃이 들쑥날쑥 운치 있게 놓여 있고, 수려한 얼굴의 시녀들이 열 걸음 간격으로 공손하게 서 있었다.
회랑 밖엔 푸르른 나무가 유난히 푸르게 우뚝 서 있고, 활짝 핀 꽃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묵칠이 혀를 내둘렀다.
“이 기품 좀 보게! 다음에 우리도 연회를 열 땐 이렇게 해야겠어. 저기를 좀 보라고. 백조 좀 봐! 정말 절묘하군! 사슴도 있어! 참 예쁜 사슴인데? 음, 좋아, 좋아.”
계소영은 쥘부채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신경이 온통 길 안내하는 사환과 회랑에 공손하게 서 있는 시녀들을 향해 있었다.
사환은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조용히 있었지만, 지극히 눈썰미가 좋았다. 회랑 장식 중에 작고 정교한 곡도가 있길래 일부러 몇 번 더 힐끔거렸더니, 사환이 냉큼 곡도를 꺼내 바쳤다. 시녀들도 그랬다. 시선을 어디로 돌리든, 하나같이 살짝 무릎을 구부리며 예를 갖췄다.
집안을 이렇게까지 다스리는 것이 전부 아랫사람의 공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환은 후원의 호숫가까지 사람들을 안내했다. 그곳이 주 연회장인 듯했다.
이미 많은 사람이 호숫가에 있었다. 묵칠 일행이 다가가자 우르르 몰려가 인사하느라 호숫가가 순간 떠들썩해졌다.
콧대 높은 주 육소야는 몇몇 제 마음에 드는 가문 자제와 한담을 나눴고, 다른 사람들은 못 본 체하며 고개를 비틀고 이리저리 영원을 찾았다.
손님이 다 모였는데, 주인은? 어째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 이게 무슨 짓이야?
호수 가운데 작은 배에 탄 기녀를 본 묵칠은 더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마음이 없어졌다. 그는 모두를 향해 두루뭉술 공수하면서 사랑하는 아라가 어디에 있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다.
영원이 감히 아라를 배에 태워 둥둥거리며 호수 위에서 햇볕을 쬐게 한다면 절대로 가만 두지 않겠어!
소자람은 할 말을 잃고 묵칠을 바라봤다. 할 수 없이 묵칠 뒤에서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예를 갖추고 인사치레하며 묵칠 대신 안부에 대답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항상 묵칠 뒤를 쫓아다니며, 그 똥을 닦아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