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묻다 三
이동은 아무런 말 없이 만 어멈이 하는 말을 들었다. 돌아오기 몇 년 전, 강환장은 자등 산장을 매우 좋아했다. 그땐 이미 능소 별원이라고 이름도 바꿨고. 그때 황상이 정치에 싫증이 나서 조회를 거의 열지 않았던 터라, 강환장은 자주 고 이낭을 데리고 여기에서 묵었다.
그에게 이곳은 자신의 능소 별원이고, 자기와 자기가 은애하는 고씨의 별원이었다.
“미친 게 맞다면 큰일도 아닐세. 나중에 이야기하지. 동동이 종일 힘들었을 거야.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장 태태가 만 어멈의 말을 자르고 수련에게 분부했다.
“낭자를 모시고 돌아가라. 아동, 별일 아니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라.”
“응. 알아요. 어머니, 걱정하지 말아요.”
이동은 어머니에게 인사하고 등화원으로 돌아갔다.
이동이 멀어지는 걸 지켜본 장 태태의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만 어멈, 이동이 아까 말한 대로 하게. 마침 잘 되었지. 대요, 조경도 다 돌아오라고 하게.”
대요와 조경은 이동과 강환장이 정혼한 후, 수녕백 강화원이 다시는 상고 휘묵 같은 걸 사느라 저택을 저당 잡히는 일 없도록 장 태태가 심부름꾼, 식객 신분으로 몰래 들여보낸 사람이었다.
만 어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럼 조 대장궤더러 다시 한 바퀴 돌라고 할까요?”
정혼한 다음, 장 태태는 주변에 잘 알고 지내는 대장궤들에게 조 대장궤를 보내서 앞으로 수녕백부는 이가 사돈이 되니까 잘 돌봐달라고 인사했었다.
장 태태가 만 어멈을 흘겨봤다.
“자넨 어째 나이 들수록 생각이 짧아지는가. 전에 노태태가 자주 한 말 잊었나? 사람은 여지를 남겨야 한다고 하셨네. 하물며,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강가와 아직 사돈일세. 동동은 아직 강가 며느리고. 자네 말대로 조 대장궤를 다시 보내면, 다들 뭐라고 생각하겠나? 없는 일도 다 만들어 낼 걸세. 굳이 그런 사달을 일으킬 필요 있겠나? 앞으로 강가에 작은 일만 생겨도 우리를 연상할 텐데?”
만 어멈의 얼굴이 붉어졌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렇지요. 낭자가…….”
“화가 날수록 진정해야지.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되네. 그리고 조 대장궤더러 한번 다녀가라고 하게. 그리고 자네 영감도.”
장 태태가 하는 말에 만 어멈의 눈이 또 휘둥그레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녀 지아비 주 대장궤는 이가의 경성, 그리고 부근 몇 현의 점포를 통괄했다. 보아하니 태태가 낭자를 대신해서 돈 흐름과 이윤을 싹 거둘 생각인 듯했다.
이신은 매우 늦게 술 냄새를 풍기며 돌아왔다. 진작 해장탕을 준비해둔 장 태태는 이신이 탕을 마시는 걸 보다가, 술 냄새는 심하지만 많이 마신 것 같진 않아서 안심하고 일찍 가서 쉬라고 했다.
이신이 자죽원으로 돌아갔을 때, 문 이야가 상방 문 앞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신은 서둘러 목욕하고 나와서 반쯤 마른 머리를 늘어뜨린 채 문 이야 곁에 앉았다. 사환 청평이 맑은 차를 내려 이신에게 건넸다.
“대대로 부귀한 집안이라 역시 다르군. 이런 걸 다 누리다니, 쉽지 않아.”
문 이야가 꼰 다리를 달달 떨면서 차를 음미하며 감탄했다.
이신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회랑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게 대대로 부잣집 운운까지 할 일인가?
문 이야가 삐딱하게 이신을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차를 홀짝였다. 그렇게 차 한 잔을 다 홀짝이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자네가 이런 쪽으로는 우둔한 걸 깜빡했군!”
“켁!”
이신은 문 이야의 그 말에 목이 막혔다.
그래, 누리고 즐기는 면으로는 우둔한 게 맞지.
장 태태가 그를 보살피며 키울 때, 글선생을 모시거나 글공부하는 면에서는 대범하고 호탕했지만, 일상 의식주에서는 매우 검소했다. 자신을 위해서라는 걸 잘 알았다. 관리의 녹봉은 집안을 먹여 살리기엔 충분하지만, 사치를 부리기엔, 그것도 이가 같은 호사를 누리는 건 목을 내놓을 준비를 하고 관리 노릇을 한다고 해도 반드시 그럴 수 있으리란 법도 없었다. 이가가 평생 먹여살려 줄 것도 아니고, 사치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지면 안 되니까.
“지금 몇 월인가? 이 뜨락 안을 좀 보게.”
문 이야는 무성하게 자란 화초를 가리켰다.
“지금 벌써 늦봄, 초여름일세. 화초가 이렇게 무성하게 피었으니, 모기가 왕성한 때이지. 이렇게 회랑에 앉아 있는데, 모기가 있는가?”
“아, 제가 너무 무심했군요.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모를 뻔했습니다. 화초가 달라서인가요?”
문 이야는 얼떨떨해져서 한참 흘겨보다가 하늘을 향해 천천히 손가락질했다.
“천붕(天棚: 차양)이라는 물건이 있네, 들어 봤는가?”
“천붕이요? ”
영리한 이신은 천붕이란 말에 금세 알아들었다.
“이 마당에 천붕을 쳤단 말입니까? 왜 몰랐지? 어쩐지, 들어올 때 보니 그물 문이 있더라니. 안 그래도 마당에 그물 문이 왜 있는지 이상해했습니다. 내일 제대로 살펴봐야겠습니다. 회양(淮陽)에 있을 때 천붕을 한 번 본 적 있는데, 그땐 매우 작은 마당이었습니다. 자죽원은 이렇게나 넓은데…….”
“한동안은 더 쳐둬야 할 테니, 볼 시간은 얼마든지 있지. 후우.”
문 이야는 흡족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살면서 크게 바라는 게 있다면 모기 없는 여름을 바랐는데, 보게나, 이렇게 소원을 이루지 않았는가. 앞으로 아내를 구할 때, 잘 생각하고 골라야 할 걸세.”
“혼인은 어머니가 하라는 대로 따를 겁니다.”
이신은 아예 겉에 걸친 옷을 벗고 얇은 사의(絲衣)만 입은 채 등받이에 기대서 편안하게 손발에 힘을 풀었다. 문 이야가 이야기하기 전엔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모기가 없다니, 정말로 편안하고 느긋했다.
“오늘 문회, 이야기해보게. 어땠나?”
문 이야는 영해를 불러들이고 사환들을 물린 다음 이신에게 물었다.
“종일 떠들면서 별별 이야기를 다 나눴는데, 문장을 짓고 학문을 논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신이 자세를 바로 하며 하는 말에 문 이야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거라고 생각했네. 자세히 말해 보게.”
“음. 문회는 여 공자와 계 공자가 열었고,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다들 경성 대갓집, 관리 자제였고요.”
이신은 누가 참석했는지부터 이야기하고, 그들에 대한 느낌, 판단, 그리고 문회가 진행된 과정을 이야기하다가 쓴웃음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 영 칠야 이야기가 가장 많았습니다.”
“음, 인지상정이지.”
문 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명을 받고 사과한 일에 대해서는 별소리가 다 나왔습니다. 영 칠야가 뭘 모르고 허튼짓을 한다고 다들 생각하더라고요. 다음 날 이른 아침에 황상이 영 칠야를 궁으로 불러서 호되게 혼냈답니다. 대전 문 앞에 반 시진 동안 무릎 꿇리고 벌 세운 다음에는 전전사(殿前司: 주대周代와 송대宋代에 궁정 호위를 담당한 관서)에 인사하라고 보냈답니다. 계 공자 말이, 황상이 직접 꺼낸 말이고, 영 칠야가 전전사에 도착한 후에 이부와 병부에서 뒤늦게 황명을 받고 부전은 나중에 첨부했답니다. 여 공자가 그러는데, 황상께서 영원을 자기 곁에 단단히 붙들어 놓고 지켜봐야겠다고 했답니다.”
문 이야는 매우 열심히 들었고, 눈을 찌푸렸지만 말을 자르진 않았다.
“궁에서 나온 다음에 영원은 아라부터 시작해서 경성에서 유명한 기녀를 하나씩 다 만났답니다. 들어갔다가 금방 나왔고요. 오늘까지 해서 거의 한 번씩 다 만났답니다.”
이신이 쓴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영원이 씀씀이가 크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정북후부 구매 담당이 동서 시장을 헤집고 다녔답니다. 경성에 백향과라는 게 매우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영 칠야가 먹겠다고 해서요. 백향과는 이제 막 열매가 열릴 시기라 손톱만 한 크기인데, 어디 있어야 말이지요. 참, 별일 다 봅니다.”
“음.”
문 이야가 가타부타 없이 영해를 바라봤다.
“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느냐? 상세히 말해 보아라.”
영해가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소인 생각엔, 법도가 중한 곳이니 공자들의 사환이 있어도 굳이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주루 일꾼들에게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을 뿐입니다. 주루 일꾼들 말이, 영 칠야는 요 며칠 장소를 고르느라 바쁘답니다. 연회를 연다고요. 어제 반가 화원을 점찍었고, 그 후로 반가 화원은 문을 걸어 잠그고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 칠야의 연회 준비를 한다고요. 그리고 큰 주루의 당두들을 불렀습니다. 큰 주루뿐만 아니라, 경성에서 조금이라도 이름난 요리사는 다 불려갔답니다. 그리고 각 주루의 유명한 기녀도 싹 다 불렀답니다.”
이신은 쓴웃음 지으며 고개를 저었고, 문 이야는 지극히 담담하게 들었다.
“요리사를 불렀다기에, 제가 사람을 보내서 주루를 한 바퀴 돌며 알아봤습니다. 맞더라고요. 들어가자마자 은자를 내놓았는데, 큰돈이었답니다. 그리고 그날 오지 않거나, 시중이 미흡하면 손을 잘라 버리겠다고 했답니다.”
“그게 무슨 짓이야.”
이신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자, 문 이야가 손을 저으며 영해에게 계속하라고 했다.
“예. 기녀 일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더라고요. 심 대가 말이, 다른 사람은 그래도 괜찮았는데, 아라가 크게 성질을 냈답니다. 영 칠야 같은 사람이 제일 싫다고. 그날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요.”
“아라는 기녀가 되자마자 순조롭게 유명해졌지. 이번에 된통 혼나겠군.”
문 이야는 한마디하고는 계속하라고 영해를 바라봤다. 영해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충 이렇습니다. 이야도 아시다시피, 반가 화원은 반씨 가문이 너무 궁핍해서 입에 풀칠하려고 화원 반을 점포로 내놓고 장사합니다. 장사는 그것 하나만 하고, 다른 건 알려진 것이 없어서 그곳은 수소문하기 어려웠습니다.”
“거긴 알아볼 것 없다.”
문 이야가 이신을 바라봤다.
“이것 보게, 파락호 흉내를 톡톡히 내는구먼.”
“정말로 집안 말아먹을 한량인지도 모르지요.”
이신은 문 이야처럼 확신이 없었다.
“한 건, 한 건 이야기해 보자고. 첫 번째, 가장 중요한 점이기도 하지. 황상이 친히 그를 전전사로 보냈네. 전전사가 어떤 곳인가? 황상을 가장 가깝게 모시는 시위네. 그를 전전사로 보냈다는 건, 적어도 믿는다는 것이지.”
문 이야가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그리고 곁에 단단히 묶어둬야겠다고 했다는 그 말도 그래. 곰곰이 곱씹어 보게. 곁에 단단히 묶어둬야 할 사람이 누구겠나? 자네라면,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하겠나? 자기 사람이네! 친지라고! 안 그런가? 그리고 황상의 성격이 어떤지, 우리 전에 이야기했었지? 이렇게 한 번 곁에 두면, 많은 일을 맡길걸세.”
문 이야의 목소리에 짙은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신은 들을수록 동요했다. 이렇게 분석해 보니, 일거수일투족이 다 큰일이었다.
영해는 매우 숭배하는 얼굴로 문 이야를 올려다봤다. 어쩌면 이렇게 속셈이 깊을 수가 있을까.
“경성에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황상의 큰 총애를 받았네. 가치 있는 싸움이었지. 이번 연회도 그래. 아주 잘한 일이야. 첫째, 경성 모두에게 큰 인상을 남기게 됐네. 사고만 치고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고뭉치라는 인상. 둘째, 누굴 초대하겠나. 분명 묵칠 일행이겠지. 망나니들끼리 모여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누가 돈을 제일 잘 뿌리는지 이야기하겠지. 이런 기세로 연회를 열었으니, 경성 망나니 사이에서 당당하게 자리 잡을 걸세. 경성 사고뭉치들을 만만하게 보지 말게. 그런 사고뭉치는 다 집에서 편애하고 끼고돌고, 하고 싶은 대로 풀어놓는다네. 안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있는가?”
이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응석받이에 하고 싶은 대로 다 풀어주니 사고를 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아직 연회를 열기도 전에 영 칠야의 이름을 온 경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지? 참으로 특별한 전술이야. 희한하고 쉽지 않고, 허점을 마구 찌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