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88화 (88/463)

88화: 이런저런 소문

“국본이 둘이라니! 하!”

영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코웃음 쳤다.

“음, 그건 알았고, 계속해.”

“둘 다 국본으로 자랐고, 어머니가 같으니 중간에…… 아무래도…….”

최신이 두 손가락을 부딪쳤다.

“성격은, 겉으로 보기엔 대황자 양왕은 대범하고 너그럽고 아랫사람을 예의 바르고 어질게 대하는 것이, 현명한 군주가 될 자질이 있지요. 사실은 몹시 성격이 급하고 포악합니다. 조정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양왕부는 작년 한 해에 시녀 일고여덟이 횡사했습니다. 다 대황자의 측근 시녀였지요.”

영원이 눈썹을 까딱했다.

“일곱여덟이라……. 그럼 그전에는?”

“그전에도 있었지요. 대황자는 일찍 혼인해서 왕부도 일찍 받았습니다. 올해로 다섯 해째인데 첫해엔 어수선해서 조사하지 못했고요, 다음 해엔 대황자 측근 시녀 둘이 죽었는데, 대황자비 측근은 넷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중 셋이 같은 날 발병해서 죽었고요. 셋 다 황자비가 혼인할 때 데리고 간 배방입니다. 그 후에 황자비는 병에 걸려 한 달 넘게 앓다가 겨우 나았고요.”

최신이 한숨을 살며시 내쉬었다.

“그다음 해가 제일 적습니다. 하나뿐이거든요. 대황자 시녀였습니다. 같은 해 측비 조씨를 들였습니다. 조씨의 시녀 수씨를 첩으로 들였고요. 그다음 해엔 셋이 죽었지요. 수씨가 유산했고, 수씨 시녀 넷이 급환으로 죽었습니다. 나머지는 서남 은광 노비로 팔려 갔고요.”

“그 수씨는 지금 어떻게 됐지?”

“유산하고 석 달이 흐른 다음 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은광으로 팔려 간 사람들을 본 적 있는데, 다들 혀를 자르고 두 눈을 파냈습니다.”

영원은 살며시 숨을 들이마셨다. 본인도 악랄하다고 생각하는데, 대황자와 비교하면 자비로운 편이었다.

“그리고 작년엔 일곱이 횡사했습니다. 궁에서 소식이 퍼진 게 바로 이번 때문이었습니다. 황상이 대황자를 훈계했다고 하는데, 진위를 알 수 없습니다.”

“알았어. 사황자 이야기해 봐.”

영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가 다시 펴졌다.

“예! 사황자는 기가 세고 오만합니다. 지극히 자부심이 높은 사람이고요. 황상은 사황자가 솔직한 성격이라고, 그게 좋다고 한답니다.”

최신의 얼굴에 미소가 드러났다.

“사황자는 말을 할 때도 남보다 한마디라도 더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아무튼, 모두 양보해야 합니다. 이 두 분은 성격을 따지면 똑같습니다. 포악하고 오만하고 저 잘난 줄 알고. 돌진할 줄만 알고 둘러 갈 줄 모르지요. 소인 생각엔 맹호 두 마리라서 언젠간 발톱을 드러내고 할퀼 겁니다. 그때가 오면…… 양쪽이 다 파멸하면 우리에겐 좋은 일이겠지요.”

“음, 올해 금명지 연무 때 왜 갑자기 싸움이 일어난 거지? 쓸 만한 소식 알아냈나?”

“있습니다!”

최신의 눈이 반짝였다.

“그날 너무 갑작스럽게 싸움이 일어나서 유심히 주시했지요. 날이 저물었을 때, 소인이 직접 잠수해서 두 사람이 당시에 탔던 배들을 조사했습니다. 대황자의 배를 조사하자마자, 누군가 오더니 사황자의 배를 끌고 가더군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황자의 배도 끌고 갔습니다. 대황자의 배를 끌고 간 건 대황자 쪽 사람이고, 사황자의 배를 끌고 간 건 사황자 쪽 사람이었습니다.”

“배에 문제 있었나?”

“예. 대황자의 배는 바닥에 인위적으로 잘라낸 길이 한 자, 너비 반 자 구멍이 있었습니다. 가장자리가 가지런한 걸 보아 날카로운 물건으로 자른 것입니다. 제가 봤을 때, 구멍을 기름천으로 대충 막아 두었었습니다.”

“그런 방법으로 황자를 해치려고 하다니, 그것도 연무하는 그런 상황에서. 어리석어도 너무 어리석군. 음, 물에 수귀(水鬼: 잠수부) 몇 사람 숨겨 놨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겠군.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가능성 있으니까.”

턱을 문지르는 영원의 한쪽 입꼬리가 높이 올라갔다.

“그래도 어리석긴 해. 그래서, 그 배 문제는 대황자가 덮었고?”

“예. 사후에도 주시했는데, 조정 안팎으로 아무런 소문이 없었습니다. 소인 생각엔 사황자의 배에도 문제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최신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음! 계속 말해 봐. 재미있네.”

“소인 생각엔, 이 일에서 가장 재미있는 건,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이 사건을 덮었다는 겁니다.”

최신은 불타는 눈빛으로 영원을 바라봤다.

“어째서 약속한 듯이 덮었을까요? 두 사람 모두 나쁜 마음을 품고 손을 써서가 아닐까요? 상대를 폭로하면 자기도 폭로될 테니까요. 그렇다면 상대를 덮어주고 자기 일도 덮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겠지요.”

영원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며 양손으로 무릎을 잡고 뒤로 넘어가더니, 화항 위를 데굴데굴 구르다가 다시 바로 앉았다.

“정말 끝내주게 재미있네!”

“칠야!”

최신은 말문이 막혀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영원을 바라봤다. 칠야, 어릴 때처럼 기분 좋으면 뒹구시는군요.

“최숙, 수하가 부족하지 않아? 내가 데리고 온 사람들이 좀 있어. 유월을 데리고 가서 골라. 그리고 양왕부와 연왕부에 우리 사람은 얼마나 있지? 인정받고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이 있나? 이번 일은 은자 걱정할 것 없어. 천 일 동안 키운 병사를 쓰는 건 한순간이라고 했어. 지금은 병사를 쓸 때니까, 사람을 다 조달해야 해. 은자는 필요한 만큼 써서, 첫째, 양왕부와 연왕부에 틈을 만들어야 해!”

영원은 흥분해서 눈썹을 휘날리며 즐거워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칠야. 두 왕부 다 그렇게 철통은 아닙니다.”

최신의 얼굴에 자신이 넘쳤다.

“그럼 됐어. 그리고 사람을 보내서……. 아, 됐다. 최숙을 이런 작은 일에 쓸 순 없지. 나중에 봉낭하고 유월을 시키면 돼. 그리고 작은 일이 하나 있어. 작은 일이지만, 할 사람이 최숙밖에 없어. 상원현 문도라는 사람을 좀 알아봐. 전에 원 대장군 밑에 있었던 문 선생의 손자야.”

“문 선생이요? 예! 무얼 알아보면 됩니까?”

최신이 놀라서 묻자, 영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 문도가 지금 수녕백부 세자 부인 이씨 집안에서 막 양자로 들인 이신의 막료야. 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뭐랄까……. 나도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데 뭐가 있을 것 같아. 의심 가는 것 없는지 일단 조사해 봐.”

“예. 오늘 일은…….”

공손하게 대답한 최신은 잠시 말을 멎었다가 다시 이었다.

“칠야, 요 며칠 조심하십시오. 주 육소야가 사황자와 매우 친분이 깊습니다. 사황자를 움직여서 칠야를 귀찮게 할 수도 있어요. 사황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악랄한 짓을 합니다.”

“알았어.”

영원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얼른 돌아가, 최숙. 앞으로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최대한 만나지 말자고.”

“예!”

최신은 일어서서 한쪽 무릎을 숙이고 군인의 예를 갖춘 후 물러갔다.

영원은 양손을 머릿밑에 받치고 뒤로 드러누웠다. 꼰 다리를 흔들어대면서 정교하고 아름답게 조각된 천장을 바라보며 최신이 한 말을 곰곰이 곱씹었다.

주유민이 사황자를 움직인다면……. 사 황자는 어리석은 물건이니까 분명 흔들면 바로 움직이겠지. 사황자가 나를 귀찮게 한다면…… 그건 정말 귀찮아지는데.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겠어.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서둘러야겠군.

태양이 뜨기 전 여명의 옅은 안개가 감도는 청산, 그 청산의 푸르른 숲에 감춰진 황가 별원의 측문이 안에서 열렸다. 연청 치마를 입은 복안 장공주가 측문으로 나왔고, 푸른 상의에 하얀 치마를 입은 녹운이 대나무 광주리를 끼고 뒤를 따랐다.

복안 공주는 느긋한 걸음으로 나와서 깊이 공기를 들이마셨다.

“산에 사는 건 역시 산에 사는 즐거움이 있어.”

“궁은 답답하다고 싫어하셨잖아요.”

녹운이 빠르게 걸어가 복안 장공주와 살짝 떨어진 곳에서 걸었다.

“성 밖이 싫다고 한 것도 아니잖아! 또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복안 장공주가 녹운의 말을 가르자, 녹운이 그녀를 흘깃 보며 입을 다물었다.

“어제 누가 찾아온 거니?”

복안 장공주가 주변에 낀 안개를 헤치며 손수건을 휘둘렀다.

“정림이요. 점심 먹은 지 한 시진 정도 되었을 때, 수국공부에서 적명 사태(師太: 이름 높은 여자 승려)를 모셔갔대요. 정림이 오기 전에 암자로 돌아오셨는데, 표정을 보니 기분 좋아 보이더래요.”

녹운의 목소리가 어쩐지 낙담하고 걱정하는 듯했다.

“몇 번째지?”

복안 공주는 여전히 유유히 손수건을 휘둘렀다.

“네 번째예요.”

“정말로 나를 산송장으로 아는 건가? 하!”

복안 장공주가 손수건을 세게 휘둘렀다.

“두 번, 세 번은 몰라도 네 번은 아니지! 조배영에게 사람을 보내. 성안 복영암(福榮庵) 주지 사태가 몸져누운 지 반년 넘었지? 적명을 복영암 주지로 보내라고 해.”

“그럼 보림암은요? 정림에게 맡겨요?”

“정림은 소인배야. 소인배도 쓸 수는 있지만, 중용하면 안 돼. 감사(監寺: 절의 사무를 맡는 사람)로 보내. 보림암 새 주지는, 대상국사 청공 큰스님에게 추천 좀 받아오라고 조배영에게 전해.”

복안 장공주가 매우 빠르게 대답했다. 녹운은 “예.” 하고 대답하고는 한참 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거면 뭐 하러 출가하셨어요? 주 귀비가 아직도 물고 늘어지잖아요. 정말 모르겠어요. 대체 공주 전하가 뭘 잘못해서요? 왜 이렇게까지 원수로 여길까요?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된대요?”

“원한이 왜 없어. 내가 아니었다면 황상한테 적장자가 있었겠어?”

“그게 왜 전하 탓이에요. 게다가 그 두 분은…… 산송장 같은데…….”

“그런 분별이 있고 주제를 안다면 주 귀비가 아니지.”

복안 장공주가 갑자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태의원에서 잠시도 방심하면 안 돼. 황상의 대행(大行: 황제나 황후가 서거한 후 시호를 올리는 일) 반년이나 1년 전엔 난 반드시 머리 깎고 출가해야 해. 휴. 오늘은 황상을 위해서 ‘지장경(地藏經)’을 좀 읽어야겠다. 황상의 장수 다복을 빌어야지.”

“정말 그런 때가 온다면, 그 두 분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녹운의 걱정에 연민이 느껴졌다. 복안 장공주가 그런 그녀를 힐끔 바라봤다.

“뭘 그런 것까지 상관해. 우리 걱정하기도 바빠. 게다가 영가에서 사람이 왔잖아.”

“다음 달에 오가아의 생신이 있어요.”

녹운이 귀띔해주자, 복안 장공주는 고민인 듯 손수건을 휘저었다.

“적명 문제를 서두르라고 조배영한테 말해. 이삼일 안에 보내야 해. 안심하고 숨어서 지낼 곳은 있어야지!”

“그분도 참. 공주께서 한 번도 오가아를 만나주지 않는데, 해마다 보내시잖아요.”

녹운은 눈빛이 맑고 준수하고 귀여운 오황자를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 부모 마음이 다 그렇지. 별궁을 제외하고 오황자를 보낼 만한 곳도 여기밖에 없겠지. 어린애가 감옥 살 듯이, 1년에 딱 한 번밖에 바람을 못 쐬니. 태어나지 말아야 할 아이였어!”

황상이 세상을 떠나면, 황위에 첫째가 오르든 넷째가 오르든 그 아이를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영 황후는, 설령 두 사람이 살려둔대도 주 귀비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고.

황상이 세상을 떠나면, 나는 내 앞가림하기만 해도 괜찮은 거야. 내가 누굴 돕겠어. 아무도 못 도와. 다 불쌍한 사람들이지.

“네, 맞아요. 공주께서 만나주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아요. 해마다 아침 일찍 와서 굳이 우리 장원에서 종일 신나게 놀다가 가잖아요.”

“됐어, 됐어. 그 이야기 그만해.”

복안 장공주가 짜증 나는 듯 손을 휘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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