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진료 비용
청서와 오 어멈이 양쪽에서 진 부인을 부축하고 봉운이 뒤따라 들어왔을 때, 세 사람은 여전히 욕설을 퍼붓고 발악하고 있었다.
“입을 다물어요! 체통 없이 무슨 짓입니까!”
진 부인이 분부하기 전에 오 어멈이 먼저 호통쳤다.
추미와 춘연은 문을 마주하고 있어서 휘장이 흔들리는 걸 미리 봤고, 오 어멈이 호통치기 전에 재빨리 입을 다물고 고 이낭이 마지막으로 욕할 기회를 상당히 겸허하게 내주었다.
진 부인은 들어올 때부터 아들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들이 눈을 뜨고 있는데 초점 없이 멍한 걸 보고 순간 혼비백산해서 울부짖으며 달려갔다.
“내 아들……. 내 아들아! 아이고, 내 팔자야…….”
“세자!”
오 어멈 역시 비명을 지르며 진 부인을 바짝 뒤쫓아 달려갔다.
“왜 이러세요! 아침엔 분명 훨씬 나았다고 했잖습니까! 도대체 나리를 어찌 모신 겁니까? 왜 부인께 바로 알리지 않은 겁니까? 의원은 모셨나요? 멍하니 뭐 합니까! 얼른 의원을 부르세요!”
“이미 불렀어. 처방도 내렸고. 고약도 받았어. 하지만 전 이낭이 붙들고 늘어져서 약을 지을 수가 없었어. 오라버니를 해치려는 거야. 자네가 전에 불렀던 황 의원을 내가 모셔왔어. 우리 가문에서 자주 부르는 의원이라고 했잖아. 황 의원 말고 다른 사람은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어.”
고 이낭이 살짝 쉰 목소리로 조마조마하며 말했다.
“내가 불렀던 의원이요? 내가 언제 황 의원만 불러야 한다고 하던가요? 이낭, 우리 말을 할 땐 양심에 손을 얹고 합시다. 이렇게 양심 없는 말을 하면 안 되지요!”
오 어멈은 다급해졌다.
“그날은 세자야가 밤에 넘어져서 머리를 다쳤고, 호 의원을 비롯한 의원 모두 나이가 든 분이라 밤엔 진료하지 않아요. 규칙이 그래요. 아예 부르지 않은 것도 아니고, 불렀는데 오지 않으니 다른 의원이라도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세자야가 그날 얼마나 심하게 다쳤습니까? 지체할 상황이었나요? 이낭이 속수무책으로 있어서,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지요. 황 의원이 돌아간 다음에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날이 밝으면 다시 사람을 보내 호 의원을 부르라고 했지요? 세자야의 일입니다! 세자야가 다쳤다고요!”
오 어멈은 말을 할수록 화가 났다. 이 고씨가 저택에 들어온 이래 연달아 재수 없는 일만 일어나는 거 아니냐고!
“원래라면, 안살림은 이낭이 맡고 있으니 내가 끼어들 것이 없지요. 내가 나이가 많아서 말이 많았군요! 나도 세자의 체면, 부인의 체면을 생각해서 이낭에게 당부한 것입니다. 내가 분명 이야기했었지요? 날이 밝으면 호 의원과 조 의원을 불러서 세자야를 보이라고요. 세자야의 일입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그 일이 어째서 내가 황 의원을 부르라고 한 게 된 겁니까? 어째서 황 의원만 불러야 하는 것으로 된 거냐고요? 어느 망할 놈이 함부로 입을 놀린 겁니까?”
진 부인의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통곡 소리와 어우러진 오 어멈의 질타는 유난히 당당하게 느껴졌다.
“그래요, 이낭. 책임은 하나도 지고 싶지 않겠지요. 나도 압니다. 좋은 일은 어떻게든 가로채려고 하지만, 책임질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빨리 목을 움츠리지요. 하지만 지금은 이낭이 안주인입니다. 어디로 숨으려고요? 어디로 더 숨으려고요?”
그동안 울분이 쌓일 대로 쌓인 오 어멈은 모처럼 터트릴 기회가 생기자 숨도 쉴 틈 없이 퍼부었다.
“고씨가 막 살림을 이어받아서…… 소홀한 면이 있네. 어멈, 앞으로 잘 알려주게.”
강환장은 창백한 얼굴로 일단 그 말부터 했다. 오 어멈은 헛웃음 쳤다.
“그야 물론이지요. 지금도 이낭에게 잘 알려주려고 하는 말 아닙니까. 세자, 걱정하지 마세요. 이낭, 세자께서 이토록 이낭에게 진심 가득한 걸 봐서라도 제발, 집안일에 마음 좀 쓰세요. 친정이 아무리 좋아도, 강가 문을 넘은 이상, 이낭은 강가 사람입니다. 강가가 이낭 집이라고요. 친정 챙길 생각만 하느라 허구한 날 친정에 물건 보낼 궁리만 하지 말고요!”
“친정으로 물건을 보내다니? 내 물건 가지고 오라고 보낸 거야!”
고 이낭은 순간 다급해져서 수시로 강환장을 힐끔 보면서 변명했다. 옥묵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라고 사람을 보냈을 뿐, 정말로 집으로 물건을 보내지 않았다.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보내요? 아, 은표요?”
오 어멈은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는 더는 상대하지 않고 진 부인을 부축하며 봉운에게 분부했다.
“얼른 젖은 수건을 짜서 부인 얼굴 닦아 드려라. 청서 이낭은요? 어서 가서 호 의원, 그리고 조 의원을 불러오세요. 어째서 다친 곳이 더 심해졌냐고요.”
“제가 갈게요, 제가! 제가 호 의원을 부를 사람을 보내겠어요.”
추미가 다급하게 나서자 오 어멈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서가 눈짓하자, 추미도 눈을 찡긋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고 이낭을 지나치다가 어깨를 슬쩍 밀치고는 쪼르륵 달려나가서 대요 댁을 찾으러 곧장 문간방으로 달려갔다.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호 의원과 조 의원을 불러와야만 했다.
대요가 직접 가서 금세 호 의원과 조 의원을 모시고 돌아왔다. 호 의원은 상처를 살피고 약을 발라주었고, 조 의원은 맥을 짚고 처방을 내렸다. 대요는 두 의원을 모시고 나갔고, 대요 처는 고 이낭을 찾아갔다.
“이낭, 두 의원께 진료비를 아직 안 드렸다면서요?”
이런 일까지 직접 와서 달라고 해야 하남?
대요 처는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아서 말투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고 이낭은 멈칫했다. 다 추미 그 망할 년 때문이었다. 한바탕 싸우고 났더니 머리가 다 어질거렸다.
“진작 생각하고 있었어. 안 그래도 어째서 가지러 오지 않나 했지. 난 또 자네가 잊은 줄 알았지. 영란, 가서 동전 1천 전씩…….”
“이낭, 지금 거지 적선하세요?”
고 이낭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요 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1천 전이라니, 그런 선례는 없습니다. 이낭이 직접 그 돈을 들고 가서 드리세요! 난 면목 없어서 그렇게는 못 합니다!”
대요 처가 손을 휘두르며 사라지자, 고 이낭은 화가 나서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하나같이 이런 태도였다. 이러니 안주인 노릇이 힘들 수밖에! 대체 언제쯤이면 나를 대우해줄 거냐고!
“돌아와! 돌아오라고! 그럼 얼마를 줘야 하는데? 얼마인지 말하지도 않았잖아! 조금 전에 부른 황 의원은 5백 전을 줬단 말이야!”
고 이낭은 화를 참고는 대요 처의 뒤를 쫓아가며 물었다.
대요 처는 상대도 하지 않고 휘장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침상에 기대앉은 채 청서의 손을 붙들고 맑은 죽을 마시는 강환장과 침상 머리맡에 앉은 진 부인을 향해 무릎을 구부리며 예를 갖췄다.
“아룁니다, 부인, 세자. 두 의원의 진료비를 아직 안 드렸습니다. 소인이 고 이낭에게 달라고 했더니, 아까 그 황 의원에겐 5백 전을 주었다고 하면서, 그 두 분에게 1천 전만 주려고 하세요. 부인과 세자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
“1천 전이 부족하단 말이냐?”
진 부인이 놀란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동전 1천 전이잖아! 적지 않은 금액인데?
물론 진 부인은 원래 금전 감각이 없었다. 1천 전은 많다고 생각하면서, 은자 백만 냥은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 그녀였다.
“평소에는 어찌 줬는가? 전에 대내내가 의원들을 모실 땐 얼마를 주었지?”
오 어멈은 얼굴을 구긴 강환장과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대요 처를 따라서 들어온 고 이낭을 힐끔 보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호 의원과 조 의원은 우리 경성에서 손꼽히는 명의라서 진료비가 정해져 있습니다. 의관에 가서 진료할 땐 인당 은자 다섯 냥, 지금처럼 저택에 모실 때는 최소 스무 냥입니다. 대내내가 두 분을 모실 때는 30냥 드린 적도 있고, 50냥 드린 적도 있고요. 급한 병이었는지 아닌지도 따졌고, 그뿐만 아니라 연말이나 명절엔 후한 선물도 드렸습니다.
이번은 급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안 급한 것도 아니라서 적어도 30냥은 드려야 합니다. 그것보다 적으면, 체면은 둘째치고 다음에 모시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몇 번은 더 진료받아야 좋아질 상처 아닙니까. 세자야가 다치신 일은 큰일이잖습니까.”
오 어멈이 나직이 하는 말에 진 부인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네. 나도 그렇게 생각했네. 가아의 상처가 가장 중요하지. 다른 건…… 기껏 은자 몇 냥 아닌가. 조금 적고 많은 게 뭐 대수라고. 이런 아도물로 골치 썩는 게 제일 싫다네. 뭐 길게 말할 게 있나. 줄 만큼 주면 되지. 고 이낭은? 대체 살림을 어찌 하는 것이냐. 이런 작은 일을 나와 세자 앞까지 끌고 오다니, 적은 돈 가지고, 이런 걸로 다 따져서야 원. 창피하지도 않으냐? 하긴, 그런 염치없는 짓도 했는데, 창피한 게 대수겠느냐. 어차피 얼굴에 먹칠은 다 했는데.”
“이건 수녕백부의 체면이 달린 일입니다. 게다가 종복에게 각박한 거면 몰라도, 세자 일에 각박하면 안 되지요.”
오 어멈이 싸늘하게 말을 받자, 진 부인은 순간 더 화가 났다.
“고얀 것, 나쁜 마음 품었을 줄 알았다! 잘 들어라…….”
“됐습니다!”
피로하고 질린 강환장이 짜증을 내며 진 부인의 말을 잘랐다.
“얼른 치료비를 보내세요. 계속 기다리게 해서 되겠습니까?”
머리가 너무나 아팠다. 조용히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조 의원이 방금 말하고 돌아갔거늘.
고 이낭은 억울한 얼굴로 눈이 그렁그렁해져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가자마자 걱정됐다. 천 냥짜리 은표 두 장밖에 없는데, 60냥을 어디서 구하나. 얼른 사람을 보내 은표를 바꿔와야 하는데, 전장이 닫힌 이 시간에 어디에 가서 바꿔야 하나.
대요가 호 의원과 조 의원을 배웅하고 돌아왔을 때까지 고 이낭은 60냥 은자를 바꾸지 못했다.
강환장은 청서에게 진 부인을 배웅하라고 하고, 다른 사람을 모두 내보낸 다음에 눈물 자국이 가득한 고 이낭을 향해 가까이 오라고 눈짓했다. 청서에게 질타당하고, 추미와 욕하고 싸우는 장면을 강환장에게 들키고, 오 어멈, 진 부인에게 또 질타당하고, 지금은 아직 은표를 바꾸지 못해서 진료비를 보내지 못했고, 고 이낭은 지금 마음이 쪼그라들어서 간담이 다 떨렸다.
그런 때 강환장이 부르자, 그녀는 주저주저하며 침상 앞 각답에 겨우 가서 앉았다. 강환장은 쭈뼛대며 각답에 앉아서 잔뜩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고 자길 바라보는 고 이낭을 얼이 빠진 채 바라봤다.
젊을 때 이런 모습이었나? 아니다, 아니야.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다. 그녀는 줄곧 우아하고 고상했다. 그녀의 등, 긴 목덜미, 머리는 항상 빳빳하게 치켜들고 있었다. 한때 유란도(幽蘭圖)를 무수하게 그녀에게 선물했었다.
(※유란도: 명대 두대수杜大綬가 창시한 화풍. 벼랑에 독특한 자태로 핀 난꽃을 그린 그림. 유란: 겨울에 피는 난초)
그녀가 바로 겉보기엔 연약해도, 아무리 큰 눈이 내려도 굳건한 겨울 난초 같은 사람이었다. 이씨가 아무리 억압하고 괴롭혀도,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왜 이러는 걸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강환장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오라버니.”
강환장이 넋이 나간 눈빛으로 빤히 바라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고 이낭은 갈수록 불안해졌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