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각자 생각을 품고
문 이야는 정자에서 빠른 걸음으로 서성였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왜 그렇게 한 건지를 알려면 일단 생각 정리부터 하고 대국부터 살펴야 하네!”
문 이야는 쥘부채를 두드렸고, 이신의 두 눈썹이 함께 치켜 올라갔다. 문 이야, 들떠도 너무 들떴는데? 이렇게까지 큰일은 설령 내일 바로 진사가 되어 조정에 들어간다고 해도 나와는 너무나 먼일이거늘!
“지금 국면은, 의외의 상황이 없는 한 대황자와 사황자의 쟁탈이네.”
문 이야는 부채를 들고 한 곳을 찍고는 옆을 찍었다.
“하지만 그 두 분은 생모가 같으니 외가가 같고 뿌리가 같지. 조력자와 적이 지나치게 같아. 누가 즉위하든 주 귀비는 상관없을 테고, 수국공부도 상관없겠지. 두 분의 주변 사람은 상관있겠지만, 다른 사람은 아마도 다 상관없을걸? 바로 그런 이유로 조정 관리 모두 함부로 줄을 서려 하지 않는 걸세. 굳이 그럴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럴 여유가 있으면 차라리 주 귀비, 아니면 수국공부에 공을 들이는 게 낫지. 적어도 헛물켜진 않을 것 아닌가!”
이신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두 사람은 뿌리가 같아서 조력자가 거의 비슷하다.
나라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지 싶었다. 그보다 굳이 그 흙탕물에 끼어들 이유가 전혀 없고.
“하필 주 귀비가 지나치게 천진난만하여 그 중간의 위기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네. 그리고 황상은, 하!”
문 이야가 냉소했다.
“선황은 성격이 급하고 충동적이었지만, 안목은 매우 뛰어났지. 장점과 단점이 명확한 분이셨네. 지금 우리 황상은 딱 두 글자네. 평범! 너무나 평범해! 아마 주 귀비와 비슷할 걸세. 아니면 좋은 것만 보려 들고 나쁜 쪽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거나. 주씨 가문은 더 말할 것도 없지. 온 집안에 영리한 사람이 하나도 없어. 파국을 중재할 사람이 없지. 위기를 알아챌 사람이 없으니 당연히 나설 사람이 없는 게지. 그럼, 이 국면을 누가 부수겠나?”
“자기끼리 파국을 불러온다면요? 아니면 양쪽이 다 다치거나.”
한참 침묵하던 이신이 갑자기 한마디 하자, 문 이야가 껄껄 웃었다.
“영웅은 견해가 상동하더니!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이 국면은 중간에 중재하는 사람이 없으면 두 쪽 다 다치고 끝나기에 십상이네! 대황자와 사황자, 성격과 품성이 매우 비슷해. 둘 다 지나칠 정도로 강경해서 부러지기 쉬운 성격이지. 우리 눈에도 보이고, 이렇게 짐작도 하는 것을 그 정북후가 모를까?”
“정북후의 용병술은 지극히 신중하고 침착하면서도 희한한 전술을 많이 쓴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바로 그것이네! 희한한 전술! 영원이 바로 그 희한한 전술이겠지. 오늘 한 행동만 봐도, 분명 사달을 일으키는 데 능한 걸세. 위험한 국면을 어지러운 국면으로 바꾼 다음에 대황자와 사황자가 둘 다 파멸해 버리면…….”
문 이야가 실실 웃으며 기대 가득한 눈빛을 이글이글 빛냈다.
“경성에 바람이 불겠구나! 정말이지 기대되는군!”
“흔들리는 건 좋은 일이 아닙니다.”
이신이 눈살을 찌푸리며 가차 없이 문 이야의 상상을 잘랐다. 하지만 문 이야는 전혀 영향받지 않았다.
“꼭 나쁜 일이라고만 볼 순 없네! 고여서 썩은 물이 무슨 의미가 있나! 게다가, 대황자든 사황자든 그 자리에 오르면 폭군이 될 걸세. 그리고 그 진왕은…… 자네 매부 같은 사람을 쓰는 것만 봐도 영리한 사람은 아닌 게지. 그럼 오황자는…….”
문 이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영리한 사람 같네. 자식은 어미를 닮는다지. 영 황후를 보게. 입궁하고, 대례를 치르고, 무사히 아이를 낳고, 그리고 별궁으로 옮기기까지 모든 걸음이 병법일세. 낭자 시절엔 실제로 무기를 들고 전장에 나간 적도 있다고 들었네. 그런 사람 밑에서 자랐으니, 오황자도 비슷할 걸세.”
“하지만 영 칠야의 행사는 적절해 보이지 않는걸요.”
이신은 한 번 더 문 이야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왜 이렇게까지 흥분하는지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상관이 있다고.
문 이야는 더 신이 나서 눈썹을 까딱였다.
“이 일은……. 음, 처지를 바꿔서, 영원의 위치에 서서 곰곰이 생각해 보게. 자네가 영원이라면, 경성이 자네에겐 어떤 곳이겠나? 호랑이 굴 아니겠나? 그렇지? 혈혈단신으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할 땐, 무엇부터 고려하겠나? 첫 번째, 목숨을 부지하는 걸세. 안 그런가? 목숨을 부지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나라면 적부터 안심시키겠지! 분명 그런 걸세!”
문 이야의 쥘부채가 파닥파닥 시끄럽게 울렸다. 들떠서 어쩔 줄 모르는 그 모습을 보니 하늘을 향해 통쾌하게 웃고 싶은 듯 보였다.
이신은 눈살을 찌푸리고 어이없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라면 어떨까? 나라도 그렇게 할까? 아니, 그렇지 않아. 나라면 할 수 있는 한 조용히, 할 수 있는 한 몸을 감추고 있겠지. 영원처럼 이빨과 발톱을 다 드러내는 건, 횡포지……. 그래, 적을 안심시킬 순 있겠지. 하지만 이런 방식은 난 싫다.
“성에 들어오기 전에 묵 승상을 건드렸어요. 적을 안심시키긴 했겠지만, 제 앞날도 끊어놓은 겁니다. 앞으로는 어쩌려고? 만사 앞을 내다봐야 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잠시 생각하던 이신이 매우 동의하지 않는 듯 나지막이 말했다.
“앞으로라……. 모르지.”
문 이야는 몹시 무책임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앞으로는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겠지. 영가는 백년 세도가 집안이라 저력이 비범하네. 어떤 저력이 있는지 모르는데 다음에 어떻게 나올지 우리가 어찌 알겠나. 다음에 어떻게 나오는지 우리는 지켜봐야 하네. 어떤 수를 놓는지 따라가며 지켜볼 수밖에. 어쩌면 아직 계획은 없고 시기를 보며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고.”
“황상은 진왕을 품고 양빈을 품으면서, 어째서 영 황후와 오황자는 품지 못하는 걸까요?”
영원을 생각하다가 오황자를 떠올린 이신은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문 이야가 또 헛웃음 쳤다.
“하하! 황상이 품지 못하는 게 아니라, 주 귀비가 품지 못하는 거지. 양빈이 뭐라고. 주 귀비 눈에 양빈은 일개 노비일 뿐이지만, 영 황후는 다르네. 정식으로 혼인한 정궁 황후 아닌가. 자기보다 신분이 고귀한 사람이 궁에 있는 걸 어찌 보아 넘기겠나. 만나면 허리를 숙여야 하는 사람을 어찌 용납하겠냔 말이야. 오황자도 그렇지. 오황자는 적자일세. 눈엣가시로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별궁에 있으니 다행이지, 경성에서 자랐으면 진작 죽어 없어졌을 걸세.”
“하아!”
이신은 한참 만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방을 돌며 단련할 때 각지의 재인과 문회를 통해 교류하면서 황상의 깊은 정을 찬탄하는 걸 종종 들었었다. 황상과 주 귀비의 다정함이 얼마나 아름답냐며 그들의 깊은 정을 시를 지어 찬양했었다. 그땐 별생각 없었는데, 인제 와서 떠올려보니 왜 이리 마음이 아픈지. 황상과 주 귀비가 마음이 맞고 다정하여 끈끈한 정이 깊다면, 영 황후는? 영 황후는 무엇이란 말인가. 계 황후는? 계 황후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비슷한 처지의 아동이 생각났다. 강환장과 외사촌 누이가 끈끈하다면, 아동 누이는? 아동 누이는 무엇인가? 어째야 하나.
“모레 있을 문회엔 난 따라갈 수 없으니 영해와 함께 가게. 이따 내가 영해에게 몇 마디 당부해두겠네. 괜찮은 아이일세. 이가에서 태어난 아이이기도 하고, 앞으로 의지해도 될 사람이네.”
문 이야는 푸른 호수를 바라보며 깊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다가 돌연 돌아보며 이신을 빤히 봤다. 흥분해서 오관이 다 날아갈 것 같은 얼굴로 이신을 향해 힘껏 양손을 흔들어댔다.
“기회를 만난 걸세! 이건 기회일세!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건 기회야! 세상없는 기회! 태평한 세월에 이런 기회를 만나다니……! 나는 정말이지……. 정말 너무 기대되네!”
이신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문 이야를 바라봤다. 지금, 제정신인 거 맞습니까?
강환장은 어질어질한 기분으로 수녕백부로 돌아왔다. 멀리서 온 영원이 묵칠과 주 육소야 일행을 팼다는 큰일도 어렴풋이 들은 듯 만 듯,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문 밖에서 말에서 내린 강환장이 막 중문을 지나가는데 대교가 마구를 짊어지고 중문 안에서 나왔다.
강환장은 멍하니 대교를 바라보다가 별안간 목소리 높여 그를 불렀다.
“대교!”
“세자.”
대교는 육중한 마구를 짊어진지라 고개만 까닥이며 예를 갖췄다.
“영해라는 자, 들어 봤느냐?”
강환장은 복잡하고 착잡한 얼굴로 대교를 살피며 물었다.
“영해요? 영해가 누굽니까? 우리 저택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저택 사람이 아닙니까?”
대교가 조금 망연해 보이자, 강환장은 묘하게 마음이 놓여서 곧바로 덧붙였다.
“이가 말이다. 이가엔 있느냐? 영해라는 자가 있느냐?”
“이가요? 잠시만요.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영씨는 몇 명 있는데 영해는……. 아! 맞습니다. 영 대조봉의 아들이 영해입니다. 영 대조봉 밑에서 일을 배웠었지요. 그 집은 조봉 자리에 대대로 있었는데, 영해가 그다지 실력이 없어서 영 대조봉이 여러 번 호되게 때렸다고 들었습니다……. 물으시는 게 그 영해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대교의 말 돌보는 솜씨가 이가에서 손에 꼽힐 정도라서 영해가 거마 일로 그에게 몇 번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다.
“네가 말한 그 영해, 매우 기민하고 영리하지? 눈썹, 이 부분이 없지?”
강환장은 자기 눈썹을 가리키며 묻고는 긴장한 모습으로 대교를 바라봤다. 대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눈썹 그 부분이 비었습니다. 꽤 티가 납니다. 어릴 때 물고기 잡다가 나뭇가지에 긁혔다고 하더라고요. 찾으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 영씨 가문, 이가의 조봉인가? 내 말은, 이가에서 고용한 사람인가, 아니면 이가의 종복인가? 영해도 배방 종복으로 우리 가문에 왔는가?”
강환장의 목소리가 어쩐지 음험했다. 대교는 의아한 듯 강환장을 바라보며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영가는 예전에, 그러니까…… 이가의 가노는 아닌데 가노라고 봐도 됩니다. 영가는 원래 노태태의 배방이었고, 나중에 태태와 함께 이가에 갔습니다. 맨 처음엔 노태태의 노태태가 혼인할 때 데리고 왔다고 들었습니다. 영가는 대대로 대조봉이었는데, 대내내가 혼인할 땐 같이 오지 않았습니다. 영 대조봉이 관리하는 점포는 예전엔 노태태의 재산이었고, 지금은 태태 손에 있습니다.”
대교는 강환장을 살펴보면서 이야기했다. 세자가 오늘 어쩐지 이상했다.
나중에 기회를 봐서 아무래도 직접 성 밖에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군. 청국에게 오늘 일을 직접 이야기해야겠어. 청국이 성 밖으로 나간 다음 한 번도 못 만났잖아.
“알았다. 가 보아라.”
강환장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어깨도 덩달아 축 처져서는 손을 흔들어 보이고 터덜터덜 중문으로 들어갔다.
잡초가 무성한 청석 길을 따라 멍하니 안으로 들어가서 곧장 후원으로 향했다. 길 끝엔 호수가 있었다. 긴 세월 관리하지 않아서 호수에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완강하게 살아남은 새 연잎이 수면에 고개를 치켜든 것이 유난히 가련해 보였다.
강환장은 멍하니 호수를 바라봤다. 이끼가 낀 더러운 호수를 보는 게 아니었다. 그의 눈엔 수녕왕부 후원의 호수가 보였다. 푸르르고 진귀한 연꽃으로 유명했던 그 호수.
그날, 연잎은 푸르고 영롱하게 빛났고, 연꽃이 한창 아름답게 피었었다.
강환장의 시선이 호수에서 주변으로 돌아갔다. 이곳은 온통 계수나무였다. 계수나무 아래 갖가지 색 동백꽃이 피어 있었다. 청석 길가엔 각양각색, 아름답기 짝이 없는 화초가 자태를 뽐내며 활짝 피어 있었다.
봄기운이 완연한 때였다.
바로 여기, 바로 이 정자, 사방에 하얀 유리창이 있는 이 정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