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황명을 받고 하는 사죄 二
묵 이야는 뒤를 따르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으면서 쉴 새 없이 영원을 살펴봤다.
이 물건, 정말로 어리석은 건가 아니면 어리석은 척하는 건가.
묵 승상은 영원과 함께 묵칠의 거처로 들어갔다. 상방에는 쓸데없는 사람은 이미 다 내쫓았고, 의원들도 곁채로 옮겨가서 처방을 상의하고 있었다. 전 노부인은 묵칠의 침상 곁에 앉아서 이제 막 씻고 퉁퉁 붓고 멍든 얼굴을 드러낸 보배 손자를 마음 아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온 여염과 계소영은 괜찮은지부터 물었다. 이번엔 정말로 억울한 일을 겪은 묵칠이 하필 말이 많아서 여염이 어렵게 빈틈을 찾아 이만 돌아가겠다고 말하는데,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묵 승상이 영원을 데리고, 뒤를 따르는 묵 이야와 함께 상방 안으로 들어왔다. 여염과 계소영은 할 수 없이 한쪽으로 비켜섰다. 지금은 돌아간다고 인사할 때가 아니었다.
묵칠은 영원이 들어오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온몸에 힘을 주고 두 주먹을 꼭 쥔 채 영원을 노려봤다.
“뭐 하러 온 거냐? 감히 집까지 쳐들어와? 잘 들어라, 너…….”
영원은 잔뜩 당긴 활시위 같은 묵칠을 바라보며 눈이 휘어라 웃었다.
“사과하러 온 것이다!”
영원은 이상할 정도로 시원스럽게 말하며 깊이 장읍했다.
“아까는 묵 칠소야인 줄도 모르고, 내가 실례했다. 별것 아니지만 특별히 선물을 가지고 묵칠 형에게 사과하러 왔지.”
여염은 지극히 익숙하고 노련한 자세로 사과하는 영원과 딱 봐도 무슨 일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는 묵칠을 번갈아 봤다. 어째서인지, 갑자기 폭소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영원, 어리석은 건 어리석은 것이고, 만만한 상대는 아닌 것 같군.
“어린 애들끼리 싸우고 다툰 것에 잘잘못이 어디 있나. 사과는 무슨. 원가아, 이럴 것 없다.”
묵칠은 얼이 나갔고, 곁에 앉은 전 노부인이 냉큼 말을 받아 손자 대신 대답했다.
“날 때렸습니다! 때렸다고요!”
묵칠은 억울한 듯 몸을 내밀며 영원을 가리켰다. 그는 울먹이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전 노부인에게 항의했다.
“억지만 쓰는 놈이라고요!”
영원도 불만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노부인의 말씀이 옳아. 이런 일엔 잘잘못이 없다고 하시니 그런 것으로 해야지. 사실 내 탓도 아니고!”
영원은 주변을 둘러보며 의자를 끌고 와서 거꾸로 걸터앉더니 양팔을 등받이에 걸친 채 묵칠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물어보자. 내가 먼저 복음각에 예약했는데, 네가 뭔데 자리를 가로챈 거냐? 일단 그건 접어두고, 그 꿩도 그래. 분명 내가 싹 다 예약했고 은자도 다 냈는데, 네 앞에 있던 꿩 탕은 웬 거냐? 그리고 꿩 구이는? 한 마리도 아니었잖아. 웬 건지 대답해 봐라. 내가 예약한 곳을 가로채고, 꿩을 빼앗았는데, 맞을 짓을 한 건 너 아니냐?”
전 노부인은 영원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사과하러 온 것이냐, 시비 걸러 온 것이냐?
막 화를 내려는데, 묵 승상이 눈짓하는 게 곁눈에 보였다. 노부인은 하려던 말을 다시 삼켰다.
여염과 계소영은 얼굴을 마주 봤다. 싸움이 난 이유가 다 있었군. 이번엔 호되게 당했을 뿐, 묵칠이 항상 하던 짓이긴 했다.
아내에게 눈짓한 묵 승상은 화가 나서 침상을 내리치는 손자를 바라봤다. 이 녀석이 영원 같은 사람을 몇 번 더 마주치고 몇 번 더 얻어맞으면 저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별안간 들었다.
묵 이야는 할 말을 완전히 잃고 영원을 바라봤다. 어쩐지 황명을 받고 온 것이라 하더라니. 황명이 아니었다면 분명 두들겨 패서 내던졌을 것을!
“네가 예약했다고 하면, 네가 예약한 것이냐? 예약한 거면 또 어떻고? 네가 예약한 것인지 누가 알아? 설사, 네가 예약한 것이라고 해도 그걸 누가 아냐고? 제대로 말을 하면 될 것 아니냐? 제대로 말했으면 양보했겠지. 어찌 됐든 설명은 제대로 하고 손을 써야 할 것 아니냐? 어째서 제대로 말하지 않았지?”
묵칠은 이제 영원이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화가 나면 머리가 멍해진다. 물론 화가 나지 않았을 때도 싸움은 못 한다. 지금도 목을 빳빳이 세우고 횡설수설 고함칠 뿐이었다.
“잉? 말하는 것 좀 보게! 첫째, 예약한 사람이 있는 건 너도 알았지? 그렇지? 내가 예약한 건지 몰랐다는 그 말은 무엇이냐?”
영원은 자기를 가리키며 ‘이 몸이!’라고 크게 말했다.
“이 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예약한 거라면, 위세를 부리며 빼앗을 거라는 말로 들리는데? 아이고! 이런 걸…… 이런 걸 뭐라고 하더라? 어쨌든 잘 들어라, 이건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다. 아느냐? 아이고, 정말 이상하네. 막무가내로 남의 물건을 빼앗겠다는 말을 잘도 나불대는구나! 네 부친께서 가만히 두느냐? 그럼 네 조부님은? 네 조부님도 가만히 두느냐?”
묵칠은 머리가 어질거려서 눈을 쉴 새 없이 깜빡이며 입을 뻐금거렸다. 실내에 있는 모두가 영원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맞는 말이었다. 한마디, 한마디, 모두 일리 있고 의로운 말이었다.
묵칠은 위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는 악당이 되었고, 영원은 의롭게 나서서 악당을 손봐준 협객이 되었다.
“뭘 노려봐! 내 말이 틀렸나? 어디가 틀렸는지 말해 봐라! 누군가 꿩을 다 예약한 걸 몰랐다고 할 셈이냐? 네가 남의 것을 가로채려고 한 게 아니라고 할 셈이냐? 할 말이 한마디라도 있느냐? 한마디라도 할 수 있으면 이 자리에서 무릎 꿇고 머리를 세 번 조아리마!”
영원은 묵칠을 손가락질하며 기세등등하게 외쳤다.
전 노부인은 묵 승상을 바라봤고, 묵 승상은 영원을 노려봤다. 묵 이야는 화가 나서 눈물을 터트리는 아들을 바라보며 기가 차서 침을 꼴깍 삼켰다. 어쩌냐, 영원은 황명을 들고 왔는걸!
여염의 두 눈썹이 이마 중간까지 치켜 올라갔고, 계소영은 두 눈을 반짝이며 흥분한 얼굴로 영원을 바라봤다.
“저기…… 그때 영 칠야가 꿩 이야기를 물었었나? 자네는 뭐라고 대답했나?”
여염은 분을 못 이기고 마른 눈물을 흘리는 묵칠을 보고 딱해서 저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영원이 고개를 돌리고 여염을 흘겨봤다.
“들어오자마자……. 그래, 들어와서 꿩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어! 들어오자마자 때렸다고! 대게처럼 휘적거리며 들어와서는, 꿩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잖아!”
묵칠도 어리석은 건 아니라서, 여염이 귀띔하자 금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됐다, 됐어!”
영원이 껄껄 웃으며 양손을 같이 흔들었다.
“사과하러 온 거지, 싸우고 이치를 따지러 온 게 아니다. 됐다. 네 말대로 하자. 어차피 내 자형도 다 내 탓이라고 하셨다. 됐지?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고, 얼굴이나 좀 보자. 음, 괜찮네. 얼굴이 망가질 일은 없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이런 일은 내가 경험이 많다. 특별히 금창약을 많이 가지고 왔다. 나중에도 써라.”
묵칠은 부르르 진저리치며 필요 없다고 고함쳤다.
금창약을 앞으로도 쓰라니, 무슨 뜻이냐!
계소영이 갑자기 말을 받았다.
“정북후부의 금창약은 세상에서 제일 으뜸이라고 하더군. 소칠, 체면 차리지 말고 받게. 외상약은 영 칠야의 약이 태의의 것보다 훨씬 좋을 걸세. 행여 흉이라도 지면 큰일 아닌가.”
“둘이 옥신각신하는 걸 보니, 꼭 일곱 살짜리들이 싸우는 것 같구나.”
전 노부인은 묵 승상이 왜 눈짓했는지 모르지만, 긴 세월 함께한 만큼 마음이 통해서 지금은 난장판을 수습할 때라는 걸 알고 웃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그러게 말이오. 어리지도 않는 녀석들이 말이지. 정혼할 나이가 다 되어서는, 이것 좀 보라지! 일곱 살짜리보다 못하지 않아! 휴, 당신이 소칠을 오냐오냐해서 그렇소. 원가아도 응석받이로 컸고. 아들과 손자는 나이 들어도 애라더니, 그 말이 맞군!”
묵 승상은 평범한 집안의 영감처럼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얼른 대충 마무리하고 이 당당한 놈을 내쫓고 보자.
“영 칠야는 솔직한 성격 같군요. 말은 거칠지만 나쁜 뜻은 없어요. 싸우고 가까워진다지 않습니까.”
분위기 푸는 데 능한 여염도 묵 승상과 전 노부인의 의중을 읽고 웃으며 말을 받았다. 영원이 그런 여염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말 한번 잘하는군! 나는 다른 장점은 없고, 성격 솔직한 거 하나지! 그렇게 말해 주니, 칠소야가 나으면 따로 술자리를 마련해서 다시 사과하지. 사람을 많이 불러서 즐겁게 마셔 보자고!”
계소영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단순한 사람이 아니군. 꿍꿍이를 알 수 없는 자야.
“됐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합시다. 들를 곳이 두 곳이나 있으니, 난 이만 가보렵니다. 오늘 사과하러 온 건…… 우리끼리 일어난 일은 나중에 술자리를 마련해서 사과하지! 청첩을 보내겠다! 거기 두 분도 함께 오라고!”
영원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시원스럽게 말하고는 펄쩍 일어나 한 바퀴 주르륵 공수하고 돌아섰다.
“자네는 경성이 처음이라 낯설고 아는 사람도 없을 테니, 수국공부와 안원후부에 같이 갈 사람을 보내주겠네.”
영원은 흠차로 온 것이고, 또 만만한 상대가 아님을 직접 본 묵 승상은 꼬투리 잡힐 일은 단 하나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묵 이야와 함께 영원을 몸소 대문까지 배웅하고는 적당한 관사를 불러 ‘황명을 받들어 사죄’하러 가는 영원과 함께 수국공부와 안원후부에 직접 다녀오라고 분부했다.
영원이 말에 올라 멀어지는 걸 본 묵 이야와 묵 승상은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며 안으로 들어갔다.
“저 영원이라는 놈, 어떤 것 같으냐.”
“모르겠습니다. 소칠하고 이야기할 때 보면 영리한 것 같았습니다. 그걸 감추려 들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어떤 인물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정말로 사고뭉치에 일을 망치는 망할 놈이라면 정북후가 뭐 하러 경성에 보냈겠습니까. 경성에 보내서 고생 좀 하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걸 깨닫게 하고 싶다는 정북후의 말이 사실일까요? 아버님이라면 말 안 듣는 아들을 그리 가르치시겠습니까? 가르치지는 못하고 오히려 가문에 큰 화를 초래할 텐데요?”
“지금 상황으로는 영가엔 기회가 전혀 없다. 하지만 영진산은 영리한 사람이지. 시기를 보고 일을 꾸미는 데 가장 능한 사람이다. 후, 무엇이 진실인지 누가 알겠느냐. 소칠에게는 이런 이야기하지 말아라. 철없는 아이라 뭘 감추지 못한다. 네가 마음 써서 지켜보는 게 좋겠다.”
묵 승상이 기분이 아주 안 좋아 보이자, 묵 이야는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부자는 아무런 말 없이 입을 다문 채 안으로 돌아갔다.
문 이야는 자등 산장으로 돌아간 다음 이신을 데리고 후원에 있는 작은 정자로 직행했다. 산장의 후원에 있는 호수는 족히 두어 묘 크기였고, 그 호수 중간에 있는 정자는 주변이 푸른 호수가 넘실대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이야기 나누기 좋은 장소였다.
“오늘 일, 자네가 먼저 이야기해 보게.”
안 그래도 교활하게 빛나는 문 이야의 눈빛이 지금은 더 밝게 반짝였다. 몹시 들뜬 듯했다.
“경성에 들어오기도 전에 묵 승상가 칠소야를 패고, 단숨에 세 가문 눈 밖에 날 짓을 했어요. 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이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하는 말에 문 이야가 손뼉을 쳤다.
“좋은 질문이네! 대체 무슨 생각일까?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그래! 그런 걸 궁금해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