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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79화 (79/463)

79화: 황상의 생각 一

영원은 내시를 따라서 시선도 돌리지 않고 여러 궁을 지나서 황상이 평소에 공무를 처리하는 자극전(紫極殿)으로 들어갔다.

내시가 휘장을 들어 올리는 사이, 영원은 재빨리 대전 안을 훑어보았다. 자극전은 그리 넓은 편이 아니었고, 배치도 일상적이었다. 황상은 대전 문 방향에서 몸을 비틀고 남쪽 창 아래 큰 화항 위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상주서를 읽고 있었다.

영원은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인 채 내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무릎을 꿇었다.

“4품 어전 시위, 신(臣) 영원, 명을 받고 황상을 알현합니다! 황상, 만복금안(萬福金安) 하소서!”

영원은 규칙대로 이름을 고하고 고개를 쿵쿵 소리 나게 조아렸다.

“멀리서 오느라 수고 많았다.”

황상은 상주서를 든 채 싸늘한 눈빛으로 영원을 바라봤다. 지극히 날카로운 말투였다.

“아룁니다, 황상. 확실히 고생했습니다.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자지도 못하고. 오는 내내 제대로 된 음식은 먹지도 못했습니다!”

영원은 고분고분한 모습으로 금빛 바닥에 납작 엎드렸지만 원망스러운 말투였다. 영원이 이렇게 대답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황상은 멍하니 상주서를 들고서 그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직 완전히 깨닫지도 못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구석에 서 있던 상(常) 태감이 저도 모르게 영원을 힐끔거렸다. 영 칠야가 어디가 좀 모자란 것 같은데?

“하북서로 유 안무사 후원에서 기르는 사슴도 잡아먹어 놓고, 잘 먹지 못했다고?”

잠시 넋을 놓았던 황상은 정신을 차리고 상주서를 두드리며 물었다.

영원은 양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고개를 들어 억울한 표정으로 황상을 바라봤다.

“아룁니다, 황상. 맛이 전혀 없었습니다. 다 비계였습니다. 살은 물컹하고 팅팅 불었고요. 좋은 사슴을 그렇게 길러놓았다고, 제가 유 안무사에게도 이야기했습니다. 다음 사슴을 기를 때는 사람을 시켜 매일 사슴을 몰고 달리라고 말했습니다. 절대로 그냥 두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사슴 고기가 맛이 전혀 없습니다.”

영원의 엄숙하고 진지한 대답에 황상은 더 멍해졌다. 그는 한참 만에 상주서를 내려놓고 일어서서 영원에게 다가갔다.

“고개를 들어라. 얼굴 좀 봐야겠다.”

영원이 후다닥 고개를 들고 황상의 눈을 마주 보며 봄꽃이 핀 듯이 찬란하게 웃어 보였다.

“웃긴 뭘 웃어! 웃음이 나오느냐?”

황상은 그 웃음에 울지도 웃지도 못할 기분이었다.

이 물건, 멍청한 건가, 아니면 멍청한 건가.

“황상을 뵙게 되어 기쁜걸요!”

영원은 정말로 기뻐 보였다. 진짜로 억울해 보였고.

“드디어 경성에 왔습니다. 드디어 황상을 뵙습니다!”

“그럼 네 말은, 오는 내내 매우 고생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억울하단 말이지?”

황상은 어느새 기분이 바뀌었다. 그는 뒷짐 진 채 살짝 허리를 숙이고 영원을 바라보며 힘을 주어 ‘매우 고생’, ‘매우 억울’이라고 말했고, 영원은 마늘 찧는 것보다 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 영명하십니다! 정말로 고생했습니다! 정말로 억울했고요! 황상이 영명하신 분이라는 걸, 소신은 알고 있었습니다!”

황상은 허리를 세우고 영원을 손가락질했다. 몇 번이나 손가락질할 동안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아서 아예 돌아서 버렸다. 그렇게 몇 발자국 떼다가, 다시 돌아서서 할 말이 없는 듯 기둥을 바라봤다.

상상한 것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구나!

영진산이 막내아들 영원을 경성으로 보내 어전 시위 임무를 진짜로 맡겠다고 상주서를 보낸 이래 속으로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의외, 분노, 경멸, 복잡한 기분이 뒤섞였다. 그러나 끝내 영진산의 상주서를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 구구절절 사정을 호소한 상주여서이기도 하고, 영진산이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릴 생각인지 똑똑히 볼 생각이었다. 영가에 자손을 남겨둬도 좋을지 아닐지, 똑똑히 보고 싶었다.

그런데 영진산이 경성으로 보낸 아들 영원이 이런 물건, 이런 꼴일 줄은 정말로 조금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여봐라, 상주서를 들고 와서 보여주어라.”

화항으로 돌아가서 앉은 황상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데 화는 가라앉은 듯했다.

두 내시가 높이 한 자(尺: 한 척, 30cm), 너비 두 자 정도 되는 작은 대나무 광주리를 들고 와서 영원 앞에 두었다. 영원은 목을 빼고 광주리를 보고는 망연한 얼굴로 황상을 바라봤다.

“하나 꺼내서 읽어 보아라.”

황상이 영원을 가리켰다. 영원은 고분고분 맨 위에 있는 상주서를 꺼내서 펼치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소리를 내지 않고 입만 뻐끔뻐끔하며 읽었다. 그렇게 한참 만에 그 얇은 상주서를 겨우 다 읽었다.

“다 읽었습니다. 소신이 교만하고 난폭하고 무례하며, 도를 모르고 사치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상주서를 다 읽은 영원은 매우 착실한 태도로 황상을 올려다봤다.

영원이 상주서를 읽는 동안, 황상은 그를 빤히 바라봤다.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과 쉴 새 없이 달싹이는 입술을 잠시 바라보다가 모래시계를 바라봤다. 자기는 힐끔 보고 다 읽은 그 상주서를 영원은 족히 열 배는 걸려 읽었다.

“그래, 알아는 보는구나. 제법이다.”

황상은 이마를 문질렀다. 눈앞에 있는 영원은 자기가 상상한 것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흑과 백 수준으로 달랐다.

“그럼 이제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해명해 보아라. 제대로, 똑똑히 말해라!”

“벌을 내려주십시오.”

영원은 한마디 변명도 없이 연달아 고개를 조아리며 시원스럽게 죄를 인정했다. 황상은 다시 넋이 나가서 눈을 깜빡였다.

“해명하라고 했더니……. 지금 그냥 인정하는 것이냐? 상주서를 제대로 보았느냐?”

“소신은 똑똑히 봤다고 생각합니다. 소신, 어찌 감히 황상을 기만하겠습니까. 소신 실로 성격이 좋지 않습니다. 돈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소신의 아비에게 몇 번이나 모질게 맞았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도저히 고치지 못했습니다. 벌을 내려주십시오, 황상.”

황상은 이마를 힘껏 문질렀다. 이놈은 바보, 그야말로 무지렁이다! 이런 물건을, 영진산이 감히 밖으로 내보내? 이 무지렁이를 경성으로 보내고 짐의 시위로 들이밀어? 영진산, 무슨 생각이냐? 무슨 짓이냐?

“일단 그건 넘어가자.”

황상은 처음부터 이 상주서로 영원을 벌 줄 생각이 아예 없었다. 그가 생각한 정상적인 상황은, 영원이 변명을 하고, 자신은 훈계하고, 그렇게 넘기려고 했다. 군신 사이에 응당히 있어야 할 정상적인 법도였다. 그런데 이 물건이!

이 물건 스스로 혼내 달라고 하고 자기는 혼내지 않겠다고 하다니.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됐다. 일단 넘어가자. 잠시 내버려 두자.

지금 골치가 조금 아파서 이 멍텅구리 바보 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잠시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쪽으로는 전혀 경험이 없었다.

“말해 보아라, 네 얼굴……. 듣자 하니 네가 묵 승상 가문 일곱째를 때렸다고?”

황상은 말을 바꿔서 물었다. 완곡하게 묻지 말자. 이 무지렁이는 조금이라도 완곡하면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묵 승상 댁 일곱째요?”

영원은 망연한 얼굴이었다.

“아룁니다, 황상. 소신 경성으로 들어오기 전에 싸움을 하긴 했습니다. 황상의 말씀은……. 아! 그것이 묵 승상의 아들이었습니까? 황상, 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놈은 망할 겁쟁이입니다. 매를 전혀 견디지 못했…….”

“닥쳐라! 묵 승상의 손자다!”

황상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다시 벌떡 일어났다. 경성에 들어오기 전에 경성에 누가 누가 있는지 전혀 알아보지도 않았단 말인가?

묵 승상은 그의 수석 승상인데, 그런 묵 승상에게 아들이 몇인지, 손자는 몇인지도 모른단 말인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감히 경성에 마구 들어와서 아무나 손을 댔단 말인가.

이놈은 멍청한 물건이다. 영진산도 같이 미친 건가?

황상은 몇 걸음 만에 영원 앞으로 달려갔다. 못 버틸 것 같았다. 무고하고 얼떨떨해 보이는 영원을 걷어 차버리고 싶었다.

“네가 시비를 걸었다던데? 말해 보아라, 왜 때린 것이냐?”

황상은 영원의 이마에 대고 삿대질했다.

“그 뭐냐……. 그…….”

영원은 뜨끔한 듯, 말을 돌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듯 눈알을 마구 굴렸다.

“황상, 아시다시피, 소신이……. 소인이 아무리 그래도 국구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황실의 외척이잖습니까. 오는 내내 너무 배가 고팠는데, 보림사 뒷산에 꿩이 그렇게 맛이 좋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황상도 아시다시피, 소신 오는 내내 정말로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단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양보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황상, 소신 아무리 그래도 국구입니다. 그렇지요? 소신의 체면은 상관없지만, 소신 뒤엔 황상이 계시는걸요! 황상,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양보하지 않길래, 소신, 그냥 때렸습니다.”

황상은 기가 차서 허리를 숙이고 영원을 똑바로 바라봤다.

“아! 그래? 국구 나리의 위세를 부린 게로구나? 그렇다면, 짐이 네 그 자신감을 주었고, 너는 내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 그런 것이로구나?”

“체면을 세워드린 것까지는 아니고…….”

영원은 황상의 의중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듯 뜨끔해 보였다. 그러면서 말은 또 재빨리 이었다.

“하지만 황상의 체면을 깎을 짓은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소신의 자형이 바로 황상 아니십니까. 이 온 천하에, 그 뭐냐…….”

“그건 됐다.”

황상은 얼굴을 연신 문질렀다.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 자형, 처남 이야기는 왜 나오는 것이야.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 무지렁이와 길게 이야기해선 안 되겠다. 말해도 이놈은 알아듣지 못 한다!

“물어보자, 경성에 무얼 하러 온 것이냐? 임무? 이런 네가, 네가 무슨 임무를 맡는단 말이냐? 네 아비, 대체 무슨 생각으로 너를 경성으로 보낸 것이냐? 네게 뭐라고 하더냐?”

황상이 그 이야기를 꺼내자, 영원은 슬프고 마음 아픈 얼굴을 지으며 어깨를 움츠렸다.

“아룁니다, 황상. 소신의 아비가 소신은 황상의 시위니까, 아비는 도저히 상관할 수 없다고, 바로 경성으로 들어가 황상 밑에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하면 안 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고요. 그리고 경성에 가서 제대로 배우라고 했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산 위에 산 있는 걸 깨달아보라고요. 경성엔 뛰어난 인물이 많이 있다고, 경성에 오면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거라고도 했습니다.”

황상은 할 말을 잊고 영원을 노려봤다. 엉망진창,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지!

영진산이 아들을 경성으로 보낸 이유가, 내가 대신 아들을 단속하고 관리하길 바라서란 말인가?

영원은 눈을 들고 조심스럽게 황상을 힐끔 보며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솔직히, 경성이 뭐 대단하다고 말입니다. 황상은 소신의 자형이신데…….”

“닥치지 못할까!”

황상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상주서를 집어 들어 영원에게 집어던졌다. 머리가 더 아파졌다. 영진산이 경성으로 보낸 것이 이런 물건일 줄은 정말로 몰랐다. 전에 했던 생각, 전에 마련해둔 계획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 물건을 어떻게 처리하고 안치할지, 잘 생각해 봐야만 했다.

“너! 일단 가서 집집마다 사과해라! 일단 묵 승상부부터 가라! 그리고 수국공부, 또…….”

황상이 상 태감을 바라봤다. 또 한 집은 누구더라? 이 물건 때문에 기가 차서 잘 생각도 나지 않잖아!

“안원후 세자 소자람입니다.”

상 태감이 다급하게 귀띔했다.

“그래, 안원후부도! 집집마다 사과해라! 지금 바로 가라!”

황상이 또 상주서를 집어던져 영원의 얼굴을 맞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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