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변수
“아이고!”
복백은 허벅지를 내리치며 한숨을 쉬고 또 쉬었다. 한숨 소리가 열몇 번은 들렸다.
“칠야는 참으로 언제나 남다르십니다. 경성에 조용히 들어오면 안 된다고, 반드시 소문내며 들어와야 한다고 하시더니, 알리는 것도 좋은데, 칠야, 오는 내내 그 움직임이……. 우리가 들어오면서 모은 탄핵 상주서만 해도 경성에 들어가기 전인데 한 광주리는 되겠습니다. 오는 내내 눈 밖에 나도 될 사람, 나면 안 될 사람 할 것 없이 싹 건드렸다고요. 어렵게 성 밖에 와서는 또 단숨에 묵 승상과 여 승상을 건드리다니요. 문무백관을 반 이상은 싹 다 건드렸다고요. 아이고! 정말 노야는 무슨 생각이신지.”
복백은 정말로 근심이 가득했다. 칠야의 재주는 모두 사고 치는 재주인데, 노야가 이런 칠야를 경성에 보내다니. 정말로 대낭자가 다치게 되면 영가 전체가 다칠지도 모르는데.
“이번 싸움, 여인네 싸움 같았던 거랑 이 몸의 체면이 상한 것 말고, 다 잘 되었는데, 왜?”
영원은 복백을 흘겨보며 잔소리가 끝나자 느긋하게 물었다.
“떠들썩하게 성에 들어가야만 하는데, 싸움 한판 없이 어떻게 떠들썩하게 들어가? 쇄납(嗩吶: 날나리, 태평소) 불고 북 치는 사람을 잔뜩 불러서 야단을 피워? 흥!”
영원은 철썩 소리를 내며 채찍을 높이 휘둘렀다.
“수국공 주가까지 때렸든 말든 무슨 차이가 있어? 안원후는 묵 승상네 개야. 다들 묵 승상을 성실한 신하라고 하지. 성실한 신하라고 불린다는 건, 그만큼 능글맞고 교활하단 뜻이야. 상황이 확실해지기 전엔 태도를 드러내지 않지. 태도를 드러내지 않는 한, 우리 조력자가 되지 않을 것이고, 조력자가 되지 않을 사람인데 좀 치면 어때서? 내가 시건방지고 발호하다고 보여주는 동시에 조금은 조심하도록 경고하는 것이지.”
영원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보물덩어리를 내가 두들겨 팼는데, 어떻게 나오는지 한 번 두고 보자. 내가 발호하다고 탄핵한다면, 사적인 일로 공적인 복수를 하는 거니까, 나도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다!”
“묵 승상은 덕이 높고 명망이 두터운 분이라서, 설사 칠야를 탄핵해도 아무도 사적인 복수라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복백이 그렇지 않다는 듯이 하는 말에 영원이 헛웃음 쳤다.
“명망이 두터운 건 맞지만, 덕이 높다? 하하하. 주유민이 알아서 말려들다니, 운이 좋았지. 그놈을 때렸으니…….”
영원이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분명 오늘 바로 황상을 만나게 되겠지. 성으로 들어가자마자 입궁해야 할지도 몰라. 일단 황상이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겠어. 반드시 내 눈으로 봐야 할 일이야.”
“황후 두 글자와 연관된 건, 주 귀비가 치를 떨고 미워한다지 않습니까. 주 귀비가 미워하는 건 황상도 싫어하고요.”
복백의 얼굴이 수심으로 가득 찼다. 그와 칠야가 깨부수며 온 이 형국, 볼수록 방법이 없었다.
“누님이 한 말이니까, 틀림없겠지. 하지만 직접 봐야겠어. 얼마나 싫어하는지, 어떻게 싫어하는지. 내가 경성에서 자리 잡으려면 그 첫걸음이 바로 황상이야.”
영원의 안색도 별로 좋지 않았다. 복백은 한숨을 내쉴 뿐 더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는 영원처럼 낙관적이지 않았다. 자리를 잡기는! 그가 생각하는 첫걸음은 경성에 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황상이 얼굴을 보자마자 돌아가라고 명을 내리면 어쩌나…….
“그물을 던진 두 여인이 이씨 모녀라고?”
영원이 위봉낭을 돌아보며 물었다.
“예. 수녕백 세자 부인 이동과 모친 장 태태입니다. 나중에 온 사내가 장 태태가 얼마 전에 양자로 들인 이신이고요. 이신 옆에 있던 절름발이가 이가에서 새로 들인 막료입니다. 상원현의 문도. 이신을 모신 지 며칠 안 되어서, 지난번에 조사할 때 놓쳤습니다.”
위봉낭이 영원을 바라보며 계속 소개했다.
“복음각 주인 진빈과 이가는 가문끼리 교류하는 사이입니다. 칠야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뒤쪽에서 사환이 나왔습니다. 이가 사환인데, 보림사에 소식을 전하러 가다가 이신을 만났고, 이신이 여 승상 적장손 여염에게 종복을 보냈습니다. 이신과 여염이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이미 조사할 사람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나오자마자, 여 승상 적장손 여염과 계천관 적장자 계소영이 도착했습니다. 일각 뒤엔 전 노부인 일행도 도착했고요.”
“문도? 전에 원 대장군 밑에 문씨 막료가 있었는데. 어디 사람이었지?”
“그 문 선생도 상원현 사람이었습니다. 원 대장군 군중의 전량을 통괄하는, 원 대장군의 오른팔이었습니다.”
복백은 문 선생을 매우 존경하는 모습이었다.
“재미있군. 조사해 봐!”
영원은 위봉낭에게 명령하고 위봉낭이 명령을 전하는 걸 바라보며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로 채찍을 흔들었다.
“정말 이상하지! 이씨는 상인 출신이라 가문이 좀 떨어지는 것 말고 다른 건…… 다 괜찮은 편이던데! 얼마나 아름다워! 기품이며 배포며, 왕부 낭자도 따라잡지 못하겠더구먼! 강환장은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고작 수녕백부 주제에? 벌써 몇 대나 임무도 받지 못했고, 그 지경으로 궁핍하면서. 뭐 때문에 이씨를 무시하는 거야? 재미있어! 참, 진왕도 오늘 보림사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예. 줄곧 사찰에서 독경을 들었습니다. 강환장도 있었고요.”
위봉낭은 영원이 묻지 않은 것까지 덧붙여 고했다.
“음, 재미있어!”
영원은 철썩 소리를 내며 채찍을 휘둘렀다.
“경성이라……. 이왕 왔는데 이 경성을 떠들썩하게 휘저어 놓지 못하면 ‘영’자에 미안하지!”
이동과 장 태태는 같은 마차에 타고, 이신과 문 이야, 영해는 말을 타고 마차를 따랐다. 마차와 말 모두 지극히 빨리 달렸고, 단숨에 보림사와 5리 정도 떨어진 곳에 도착한 후에야 이신은 속도를 늦추라고 채찍을 들었다. 말 탄 사람은 상관없지만, 마차에 탄 사람은 덜컹거려서 힘든 속도였다.
괜찮은지 두 사람에게 물으려는데, 휘장이 젖혀지더니 장 태태가 머리를 내밀었다.
“신가아, 나와 아동은 괜찮다. 오늘 일, 아무래도 평범한 일이 아니다. 영해를 경성으로 보내서 좀 알아봐라.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지.”
“예!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신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하고는 영해를 향해 손짓했다. 영해는 말을 타고 돌아서서 성 쪽으로 향했다. 문 이야는 조금 뒤처져서 따라가면서, 이신과 이야기하는 장 태태를 감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호주 재물신이라고 불리는 만큼 배포, 식견, 정확한 안목, 세심한 생각. 역시 남달랐다.
그런데 어쩌다가 강환장 같은 사위를 골랐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야 생각엔, 그 사람은 아마도 영 황후의 친아우, 정북후의 막내아들일 거라고 합니다. 가문에서 일곱째인 영 칠소야 영원이요. 영원은 4품 어전 시위인데 얼마 전부터 경성에 일하러 온다고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신은 문 이야가 짐작한 내용을 장 태태에게 말해주었다.
이동은 마차 안에서 그 말을 듣고 순간 얼떨떨해졌다.
영원? 영 황후에게 영원이라는 아우가 있는 건 맞아. 그런데 영원이 경성에 들어왔었던가? 어째서 그런 기억이 없지?
이동은 눈살을 찌푸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전생에, 강환장이 진왕부 장사가 된 이래 그녀는 황자들을 주의깊게 살피기 시작했다. 진왕이 등극할 때까지 영 황후와 오황자는 줄곧 경성 밖 별궁에 살고 경성으로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건 절대로 잘못 기억할 리가 없었다.
영가 사람이 경성으로 들어왔던 걸 내가 몰랐던 걸까? 아니, 그건 불가능해.
이동은 한 건, 한 건, 꼼꼼하게 옛일을 떠올렸다. 전생에 영가에서 경성에 온 사람이 없음을 확신했다. 영원은 더더욱 경성에 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영원이 왜 경성에 왔을까? 게다가 시위 임무를 맡으러 오다니.
이동은 두렵고 당혹스러웠다.
변하는 건가? 어째서? 이 일이 변하면, 다른 건?
영원이 하는 짓을 보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런 그가 경성에 들어와서 시위 임무를 맡는다?
이 변수가 다른 변수를 불러오진 않을까? 갈수록 달라지진 않을까?
이동은 손수건을 꾹 쥐었다. 너무 두렵고 조마조마하면서도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를 기대도 가득 차올랐다.
밤에 조용해질 때마다 과거의 모든 것을 몇 번이나 되짚어봤는지 모른다. 하나씩, 하나씩 생각하고,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렸다. 그 진실한 느낌, 실제적인 감각이 꿈일 리가 없었다. 허구로 상상해낸 이야기일 리는 더더욱 없었다. 그렇게 진실한 느낌을 꿈꾸거나 실제적인 감각을 상상해 낼 리가 없었다.
진짜로 겪은 일생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왜 바뀌었을까? 앞으로도 바뀔까? 돌아온 이번 세간은 지난 세간과 다른 것일까? 불가에서 삼천대천 세계가 있어서 무수한 인과 갈등이 있다고 말하지 않나…….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이동은 이 영원이라는 자가 변수라는 걸 확신했다.
“동동! 동동!”
장 태태가 살며시 두드리자, 이동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괜찮아요! 어머니, 난 그저…….”
이동은 혼란과 불안을 억누르며 가까스로 웃어 보였다.
“영 황후는 성격이 참 좋은 분인데, 아우는 왜 그런지 생각하고 있었어요.”
“영 황후가 성격이 좋다고?”
장 태태는 생각이 많은 눈빛으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그러니까 당당한 황후가 줄곧 별궁에 숨어서 황후라는 존재가 없는 듯이 살겠죠.”
이동은 정신을 차리고는, 영 황후를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구나. 적어도 생각 있는 분이지. 예전에 계 황후가 계실 땐 궁이 얼마나 시끄러웠느냐. 계 황후가 세상을 떠난 후 경성의 밀보(密報) 점포가 많이 무너졌지. 휴, 황상도…… 참.”
마지막 말은 목소리가 작아서 이동은 거의 듣지 못했다.
계 황후가 살아 있을 때, 궁엔 툭하면 일이 생겼다. 한 번은 주 귀비가 친정으로 돌아갔고, 황상이 몇 번이나 찾아간 후에야 겨우 궁으로 돌아왔다고 들었다.
계 황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영 황후가 궁에 들어온 후로 궁 안은 평화롭고 조용해졌다.
경성을 뒤흔들며 입성한다는 계획은 성공을 거뒀고, 그 효과는 예상한 것보다 좋았다.
영원이 경성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그의 성격이 난폭하고 막무가내라는 것과 시비를 걸어 묵칠을 두들겨 패고 그 김에 주 육소야와 소 세자까지 때린 소식이 중서성, 궁궐, 양왕부, 연왕부, 수국공부, 안원후부 등등 각처에 퍼졌다. 소식은 다시 재빠르게 밖으로 퍼졌고, 각 밀보 점포에서는 가장 먼저 소식을 팔려고 서둘러 수기와 인쇄로 이 내용을 퍼트렸다.
드디어 제대로 떠들썩해졌구나!
영원이 멍든 얼굴로 말을 타고 기세등등하게 성문을 지날 때, 성문을 지키는 나이 든 병졸까지도 이 떠들썩한 소식을 다 알게 되었다.
역관에서는 위아래 모두가 조마조마하며 영원을 맞이하는데, 영원이 얼마 전에 쥐어팬 묵칠보다 그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을 지경이었다. 경성으로 들어오는 내내 영원에 대한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영원이 말에서 막 내리자마자, 궁에서 온 내시가 쪼르르 달려와서 황상의 전언을 전했다. 당장 궁으로 들어와 알현하라는 전언이었다.
복백은 서둘러 영원을 관복으로 갈아입히고 착실하고 본분을 지키는 사환과 종복을 골라서 직접 그들을 거느리고 영원을 따라 궁으로 향했다. 영원이 내시를 따라 궁문 안으로 들어가는 걸 간절하게 바라보는 동안 조마조마한 마음이 도저히 가라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