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76화 (76/463)

76화: 아수라장 一

영원은 당두를 뿌리치고 알아서 그물에서 빠져나온 다음 그물 구멍을 막고 서더니, 삐딱한 눈으로 장 태태와 이동을 바라봤다. 장 태태는 그런 시선을 모르는 체했고, 이동은 시선을 내리고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

영원은 이번엔 이신과 문 이야를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한 두 사람이 공수하자, 영원은 콧방귀를 뀌며 바닥에 피를 뱉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변함없이 포악하고 무지막지한 모습으로 어깨를 흔들며 휘적휘적 밖으로 나갔다.

영원이 문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묵칠이 별안간 튀어 올라 뒷모습을 가리키며 고함쳤다.

“사내라면 도망가지 말아야지!”

영원이 걸음을 멈추고 휙 돌아보자, 묵칠은 기겁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쫄았냐? 못난 꼴 좀 보라지. 그러고도 사내냐? 그래, 좋다. 경성에 들어가서 두고 보자. 경성에 들어가면 다 죽여 버릴 거다!”

영원은 모진 다짐을 남기고 다시 침을 뱉고는 돌아서서 말에 올라타더니 채찍으로 묵칠을 가리키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 세상에서 감히 이 몸에게 대드는 놈이 다 있다니! 눈이 삐어도 단단히 삔 머저리구나!”

묵칠은 기겁하고 바닥에 앉아 있다가, 말발굽 소리가 멀어져서 들리지 않자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털썩 바닥에 누워버렸다.

소자람은 기운 없이 묵칠을 끌어당겨 일으키고는, 아직 서 있을 기운이 남은 사환을 불렀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보고 오너라.”

사환은 달려나갔다가 금세 돌아와 고했다.

“경성 방향입니다.”

여염과 계소영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단숨에 산문을 박차고 내려왔을 때, 영원은 어느새 말을 타고 저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경성이 떠들썩해지겠구나.”

말발굽 소리가 멀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문 이야가 이신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누군지 아셨습니까?”

이신이 눈치 빠르게 묻자, 문 이야가 가볍게 대답하고는 목소리를 더 낮추었다.

“북부 말씨에 이렇게까지 거들먹거리고, 싸움도 잘하는 사람이네. 아마도 영가 일곱째 소야일 것이야. 경성에 들어와 일하게 될 거라고 얼마 전에 들었거든. 4품 어전 시위. 도착할 때가 되었지.”

“영, 영 황후요?”

이신은 가슴이 철렁했다. 영 황후의 아우? 영씨 가문 사람이 이런 때 왜 경성으로 들어와? 경성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런 사달을 내다니. 무얼 하려는 것이야?

“쉿!”

문 이야가 쉿 소리를 내고는 무심결에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서 할 이야기가 아닐세. 돌아가서 이야기하세. 여 공자가 왔으니 얼른 인사하고 우리는 서둘러 돌아가세. 조금 있으면 전 노부인도 오실 거네. 오래 있을 곳이 아닐세.”

이신은 서둘러 여염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 형, 빨리 왔군요! 그 때린 사람은…… 조금 전에 갔습니다. 경성 쪽으로 갔는데, 소생이 막지는 못했습니다. 다행히 묵 칠소야, 그리고 주 육소야도 크게 다치진 않고 겉만 다쳤고요. 유 장궤가 기민하게 대응해서 그물을 던진 덕에 큰 변은 막은 것 같습니다.”

장 태태와 이동은 여염이 오기 전에 벌써 측문으로 나가서 마차에 올랐다. 장 태태는 나가기 전에 자기와 이동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이신도 같은 생각이었다. 어찌 됐든 장 태태는 진가를 도운 것이고, 그 도움이 선의가 될지 화근이 될지 몰라도 그건 진가의 문제였다.

여염은 이신의 말을 반은 듣고 반은 듣지도 못했다. 대당 안의 혼란스러운 상황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졌다. 넋이 나갔다.

묵칠은 양다리를 벌린 채 바닥에 앉아 있는데, 마침 시퍼렇게 부은 한쪽 얼굴이 보였다. 피멍이 든 얼굴 아래 번들번들하게 부은 입술이 보란 듯이 툭 튀어나와 있었다. 여염은 사실 그게 묵칠인 걸 알아보지 못했다. 묵 이야가 있어도 몰라볼 얼굴이었다.

주 육소야는 묵칠보다 더 엉망인 꼴로 앉아 있었다. 묵칠은 제힘으로 앉아 있기나 했지, 주 육소야는 바닥에 주저앉은 일꾼의 품에 완전히 널브러진 채 안겨 있었다. 주 육소야가 수시로 무기력하게 울지 않았다면, 얼굴에 피가 철철 흐르는 걸 보고 하마터면 이미 맞아 죽은 줄 알 뻔했다.

소자람은 한쪽 발에만 족의를 걸치고 다른 발은 맨발로 머리엔 채소잎을 걸치고 주 육소야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폭풍우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손을 덜덜 떨면서 수건을 물에 적셔 주 육소야의 얼굴을 닦고, 다시 물에 적셔서 닦아주고 있었다.

여염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그제야 소자람이 직접 주 육소야 얼굴의 피를 닦아 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럴 만도 했다. 세 사람 중에 주 육소야에게 무슨 사달이라도 나면……. 주 귀비는 원래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고 남 탓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누구였는지 제대로 봤나? 여기는 경성이다! 경성에서……. 미친놈이다! 분명 미친놈을 마주친 것이야!”

싸움이 났다고 들었지만, 이런 꼴일 줄은 몰랐다. 두려움 섞인 놀라움, 분노에 몸이 덜덜 떨렸다.

문 이야가 눈짓하자, 이신은 눈을 내리깔고 여염과 마찬가지로 눈이 휘둥그레진 계소영을 바라봤다.

“스물 남짓한 키가 큰 사내였습니다. 매우 잘생기고 북부 말씨였습니다. 상대 혼자…… 싸웠습니다.”

그자 혼자 묵칠과 두 사람, 그리고 종복과 사환 등 서른여 명을 때렸다.

“그자도 종복을 꽤 데리고 왔는데, 그자들은 밖에서 들어오지도 않더군요. 말도 많고 사람도 많고. 말은 지극히 건장한 것이 군마(軍馬) 같았습니다. 대홍색 옷을 입었는데, 비단 무늬를 보니 진상품 같았고요.”

북부 말씨였다는 말을 들은 여염이 눈을 빛내며 재빨리 계소영을 바라봤다. 계소영도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신의 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누가 때렸는지 깨달은 표정이었다.

문 이야는 칭찬하는 눈빛으로 이신을 바라봤다. 말은 참 잘하지만, 사실은 전하되 자기 생각은 넣지 않았다. 세심하고 주도면밀하면서도 지극히 본분을 지키는 말이었다. 이렇게만 이야기해도, 여염과 계소영에게 상대의 신분을 명백하게 말한 셈이었다.

“이 형, 고맙소!”

여염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와 계소영은 일이 벌어질 때 보림사에 있었지만, 후환을 피해 갈 수 없었다. 묵칠과 주 육소야가 심하게 두들겨 맞지 않았나. 묵 이야는 그나마 괜찮았다. 자식을 감싸긴 하지만 그래도 억지는 부리지 않으니까. 그러나 주 귀비는……. 하필 친정 조카 중에 주 귀비가 가장 총애하는 사람이 육소야였다.

때린 사람을 못 찾게 되면, 주 귀비가 뭐라고 생각하게 될지 어찌 알까. 자기와 계소영이 사람을 시켜 주 육소야를 때린 거라고 말한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런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지금은 누가 때린 건지 이미 알고 있으니……. 그분, 주 귀비가 적어도 자신들 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계소영도 칭찬하는 눈빛으로 이신을 바라봤다.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다니, 대단했다.

“여 형, 계 형. 소생은 이만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아까 모친과 누이도 이 복음각에서 쉬고 있었는데, 지금쯤 많이 놀랐을 겁니다. 누이가 마침 몸도 안 좋거든요. 난 두 사람에게 가봐야겠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영수암 밖 자등 산장으로 날 찾아오면 됩니다.”

“편하게 하시오, 이 형. 고맙소.”

여염은 이신과 공수하며 작별을 고했고, 이신과 문 이야는 서둘러 밖으로 나가서 장 태태, 이동과 합류했다. 그들은 복음각 후문으로 나가서 마차에 올라 곧장 자등 산장으로 돌아갔다.

대당 안에 있던 일꾼들은 어디에 쓰는 약인지 상관하지 않고 몽땅 가지고 나왔다. 유 장궤가 한 손에 약상자를 들고서 다른 손으로 이 거리에서 유일한 의원을 붙들고 대문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마침 이곳에서 유일한 이 의원은 타박상 전문이었다. 대당 안의 상황을 본 그는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유 장궤가 재촉하기도 전에 일단 주 육소야에게 달려가서 양손으로 발목부터 잡았다. 이리저리 비틀어 보고 또 위아래로 당겨 보고는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뼈는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벌써 다가와 의원 옆에 서 있던 여염은 뼈가 멀쩡하단 소리에 안도했다. 유 장궤도 안도했다. 계소영은 느직느직 주 육소야 곁으로 가서 눈을 가늘게 뜨고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소자람이 깨끗이 닦아준 한쪽 얼굴엔 피멍이 들어 성한 곳이 하나 없었다. 묵칠 얼굴보다 훨씬 심했다.

계소영은 주 육소야를 보다가 소자람을 보고, 또 묵칠을 바라봤다. 볼수록 재미있어졌다. 보아하니 그자가 마구잡이로 때린 게 아닌 듯했다. 대부분 주 육소야를 때리고, 묵칠은 조금 때렸다. 소자람은……. 계소영은 다시 소자람을 살폈다. 머리에 채소잎을 뒤집어쓴 것 말고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

계소영은 눈을 가늘게 떴다가 풀었다가, 다시 가늘게 떴다.

음, 멋져. 내가 예상한 것보다 멋져. 영가 소야……. 멋진걸?

“내가 하겠네. 자넨 가서 좀 씻게. 다친 곳은 없나 보고.”

계소영이 갑자기 쭈그리고 소자람 손에서 수건을 가져가면서 그 김에 그의 머리통 위의 가장 눈에 띄는 채소잎을 떼어냈다.

“어.”

소자람은 눈을 찌푸리고 잠시 보다가 계소영인 걸 보고 안심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계소영은 일꾼 둘을 불러 소자람을 일으켜서 닦아주고 보살피라고 했다.

전 노부인은 가마를 타고 내려왔고, 백 노부인의 작은 대나무 가마가 그 뒤를 따랐다. 당장 가마를 더 구할 수가 없어서, 소자람의 모친 묵 부인은 건장한 어멈 둘이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달랑 들고 내려왔다. 여염의 모친 원 부인은 장군 가문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무술을 연마한지라, 건장한 어멈을 붙잡고서 빠르게 내려왔다. 자기 발로 산에서 내려온 셈이었다.

복안 장공주는 녹운을 비롯한 사람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다들 승복을 입고 사뿐사뿐 가벼운 걸음으로 맨 뒤에서 왔다. 그동안 할 일 없고 심심하면 산을 오르내리면서 걸음이 가벼워진 덕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복음각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의원은 이미 세 사람의 진료를 마쳤고, 유 장궤는 사람들을 지휘해서 세 사람을 의자에 앉힌 다음 씻기고 닦이고, 말끔히 정리해 주었다.

정말로 다쳤든 가짜로 다쳤든 종복들은 서로를 돌보면서 묵칠과 두 사람보다 더 빨리 수습하고 치운 뒤였다.

일꾼들은 벌써 의원의 약방에 있는 모든 고약을 가지고 왔고, 계소영은 주 육소야 맞은편에 앉아서 손수 얼굴에 시커먼 고약을 붙여주고 있었다.

전 노부인은 한눈에 묵칠부터 바라봤다. 묵칠은 여염 맞은편에 앉아서 눈가와 입술에 시커먼 고약을 두껍게 붙여주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다가 기척을 듣고 눈알을 굴려 전 노부인을 바라봤다. 전 노부인은 다리에 힘이 빠져 비틀거렸다. 울지도 웃지도 못할 기분이었다.

저렇게 동그랗게 다 붙여 놓았다니, 얼마나 고생했을꼬.

주 육소야도 돌아봤다. 계소영이 온 얼굴에 검은 고약을 붙여 놓아 얼굴 전체가 새카맸고, 검은 얼굴에 두 흰자위만 더할 나위 없이 두드러지게 반짝였다.

소자람은 괜찮은 편이었다. 얼굴은 괜찮고 목을 묵칠에게 물리고 마구 휘두른 양팔 권법에 맞았을 뿐이다. 드러낸 한쪽 어깨에 유 장궤가 허리를 숙인 채 묵칠이 남긴 이 자국에 오소리 기름을 한 겹, 한 겹 바르고 있었다. 얼마나 발랐는지, 어깨가 반질반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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