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풍파 二
“나랑 소칠은 어른을 모시고 온 것이니 오고 가는 길에만 신경 쓰면 되지. 게다가 복안 장공주도 뵈었고, 절도 올렸으니 법회를 안 듣는다고 예법에 어긋날 것 없어. 하지만 너는 할머님 대신 왔잖아? 수국공부에선 너 혼자 온 것인데, 산에도 올라가지 않아? 그건 아니지. 내 보기에, 너는 역시 한 번 올라갔다 오는 게 나을 것 같다. 복안 장공주에게 절 올리고, 법회는 뭐, 듣고 싶으면 잠깐 들으면 제일 좋고, 듣기 싫으면 복안 장공주에게 절을 올렸으니 겉치레는 한 것이니 적어도 예법에 어긋나진 않지. 그러니까 얼른 다녀와라. 어차피 꿩탕이 고아지려면 한참 걸린다.”
묵칠의 외사촌 형, 안원후 세자 소자람(蘇子嵐)은 다들 자리 잡고 앉기 전에 다시 한번 수국공부 육소야 주유민(周渝民)을 설득했다. 주 육소야는 전혀 개의치 않은 얼굴로 손을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산에 올라가는 게 얼마나 힘든데! 산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있는지 없는지 누가 알아. 게다가 불조 공양하는 일 아니냐. 마음이 있으면 신도 안다고, 네가 지난번에 그러지 않았어. 경성에서 이 멀리까지 온 것만으로 이미 마음은 충분하다. 됐다, 됐어. 유 영감은? 꿩 구울 때 함부로 재료 넣지 말라고 당두에게 전해라. 재료를 많이 넣으면 꿩의 담백한 맛이 사라진다!”
묵칠이 쥘부채로 주 육소야를 쿡쿡 찔렀다.
“그냥 다녀오지? 지난번에 도중에 달아난 일로 할머님께 벌 받지 않았어? 이번에도 분명 혼날걸!”
“지난번엔 고자질한 놈이 있어서 그랬지! 이번엔 우리끼리고, 그럴 소인배가 없는데 할머님이 어찌 아시겠어!”
주 육소야는 태산보다 더 굳건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벌이라고 해 봐야 두 달 월전을 깎인 것이라, 궁에 들어가 고모님을 붙들고 우는소리를 했더니, 천 냥이나 주셨다고!”
주 육소야는 손바닥을 내밀고 빙 돌리면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귀비 마마네, 통이 크시다니까!”
묵칠이 엄지를 치켜들며 칭찬하자, 주 육소야는 순간 눈썹을 꿈틀거리며 득의만만해했고, 소자람은 못 말린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 세자는 그래도 철이 들었구나. 다른 두 사람은…….”
작은 소리로 평가한 장 태태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는 바보 나름의 복이 있다잖아요.”
이동이 나지막이 말을 받았다.
진왕이 즉위한 다음, 저기 주 육소야가 가장 먼저 양절 일대의 부유한 현의 지현으로 낙점되었다. 그곳으로 간 지 몇 달 안 되어서 생활이 고되네, 함께 놀 사람이 없네, 타박하면서 경성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난리를 부렸다. 그렇게 반년 넘게 난리를 부리다가, 끝내 아무런 소리도 없이 몰래 돌아왔다. 진왕도 그를 질타하지 않고 1, 2년 놀리다가 묵칠이 호부에 들어갔을 때 같이 배우라고 호부에 집어넣었다.
하루는 경성 외곽의 상평창을 순시하다가, 술을 많이 마시고 신이 난 나머지 상평창 반을 태워 먹었다. 그래도 배상하느라 은자를 조금 잃었을 뿐이고, 나중엔 예부에 들어갔다. 그녀가 죽을 때쯤, 그는 벌써 예부시랑 자리에 있었는데 의장 절차에 관해 뭘 물어도 모른다고 하여 예부 부지랑(不知郞: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었었다.
그야말로 바보는 바보 나름의 복이 있다고 할 수밖에.
두 사람은 다시 앉아서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눴다.
“주가는 정말 복도 많지. 지금으로서는 적어도 삼대가 부귀하게 지낼 것은 확실한 사실 아니냐. 삼대뿐만 아니지, 주 태후 전으로 두 대를 거슬러 올라가도 주씨 가문은 떵떵거리는 명문이었는걸. 다만 그때는 진짜 실력이 있었지.”
장 태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응. 주가 조상 중에 대단한 공덕을 쌓은 사람이 있나 봐요.”
이동은 더 깊이 탄식했다. 강환장은 나중에 조 귀비와 육황자의 줄을 잡았다. 주가는 조 귀비의 외가였고, 조 귀비가 입궁한 그 날부터 주가는 조 귀비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었다. 또 한 세대로 부귀영화가 이어진 것이다.
아래층, 유 장궤가 난처한 얼굴로 식은땀을 송골송골 흘리며 주방에서 나왔다.
“나리들, 칠소야, 육소야, 세자, 실로 송구합니다. 오늘 저희가 꿩을 잡긴 잡았는데, 수량이 너무 적습니다. 나리들도 아시겠지만, 꿩 새끼가 아직 덜 자란 시기라 많이 잡을 수가 없습니다. 사찰에는 덜 자란 꿩, 아직 어미 품에 있는 꿩은 건들면 안 된다는 법도가 있습니다. 아무리 솜씨 있는 사냥꾼도 몇 마리밖에 못 잡아서 안 그래도 수량이 적을 시기인데, 하필 오늘 이른 아침부터 문 열자마자 다 예약한 손님이 있으신데…… 싹 다 예약하면서 돈도 다 내셔서, 지금은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부족하진 않을 겁니다! 소인 당두에게 가장 큰 놈으로 두 마리 고르라고 했습니다. 나리들 어차피 입맛을 바꿔 신선한 걸 드시려고 하는 것이니, 이러면 어떻겠습니까, 한 마리는 굽고, 한 마리는 탕으로 고고. 이 두 마리도 이가 태태가 양해해주시고 양보하겠다고 조금 전에 말씀 주셔서 나온 것입니다.”
“두 마리로는 턱도 없지!”
묵칠이 순간 두 눈을 부릅떴다. 벌써 세 사람이고, 여염과 계소영도 부르라고 보냈거늘! 다섯 장정이 작은 꿩 두 마리라니, 입맛만 다시다 말라는 소리지! 나 묵칠이 이렇게 궁상스럽게 음식 대접을 한 적이 없다!
“누가 예약한 것이냐? 물러라! 두 배로도 안 되면 세 배! 은자를 돌려주고, 있는 꿩은 싹 여기로 내오거라!”
“어떤 객인데? 이 경성에서 우리 형제보다 중요한 객이 있단 말인가?”
주 소야도 언짢은 듯 눈을 흘겼다. 다만 그의 관심 방향은 조금 달랐다.
“잘 들어라. 예약이니, 돈이니 이야기할 것 없다. 이 경성에서 황자 몇 명을 제외하고 난 아무도 거리낄 게 없다! 꿩을 있는 대로 몽땅 구워라! 잔소리하면 점포를 부숴버릴 테다!”
2층에서 아래 상황을 듣던 장 태태는 고개를 저었다. 주가는 근래 십여 년 동안 갈수록 오만방자해졌다.
묵 칠소야의 씀씀이, 주 육소야의 위세를 다 겪어 본 유 장궤는 긴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연신 공수하며 허리를 숙인 채 물러났다. 그 길로 쪼르륵 주방으로 물러가 다른 점포에 꿩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기만 하면 은자를 얼마나 들여서라도 몽땅 사 오라고 분부했다.
일꾼은 재빨리 알아보고 되돌아왔다. 다들 아예 없거나, 있어도 한두 마리뿐인데 그것마저 진작 예약되어 나눌 것이 정말로 없다고 했다.
여기 보림사 뒷산 전체에 산잣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산에서 자란 꿩은 새끼 때부터 잣과 솔잎을 먹고 자라서 고기에 특유의 청향이 났다. 경성 식객들이 그 청향에 빠졌으나 안타깝게도 보림사의 뒷산은 큰 편이 아니고 꿩의 양도 제한되었다. 사냥꾼이 너무 많이 잡아대서 꿩이 자취를 감출까 봐, 보림사에서 뒷산을 관리하기 시작했고 달마다 번호표를 나눠주고 사냥꾼은 번호표 순서대로 들어가 꿩사냥을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이곳의 꿩은 쉽게 맛볼 수 없는 미식이 되었다.
묵칠은 사실 고기의 청향을 느끼지도 못했다. 이곳의 꿩을 먹어 봐도 집에서 기르는 닭과 비슷한 맛이었다. 이 산의 꿩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저 희소하고 귀해서 말도 안 될 정도로 비싸서였다. 그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비싼 거라면 그게 뭐든 매우 좋아했다.
유 장궤는 울상을 하고 어쩌면 좋을지 당두와 상의했다. 당두는 꿩을 잡으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아침에 온 그 객이 모두 달라고 했을 때, 몇 마리인지 이야기하지 않았잖습니까. 값도 퉁 쳐서 말했지, 마리 당 얼마라고 한 것도 아니고요. 내 말대로 해요. 각각 반으로 나눠서 내놓읍시다.”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그 객이 묻지 않았고, 나도 대답하지 않았지만, 장사는 신용으로 해야 하네. 우리 동가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거늘.”
유 장궤는 갈등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알아서 하시고요. 주 육소야가 점포를 부숴버린다고 했다면서요. 그럼 부수라고 하세요. 부수고 나면 우리는 울면서 정리해야 할 것이고, 동가는 누군가에게 부탁까지 해서 주가에 선물을 보내고 사과해야겠지요!”
당두가 칼로 도마를 쾅쾅 내리쳤다.
“나도 그게 무서워서 그러지! 그것만 아니면……. 아이고!”
유 장궤는 손바닥을 비비며 서성거리다가 발을 쾅쾅 굴렀다.
“아이고! 뭘 어쩔 수가 있겠나! 할 수 없지! 그래, 그래! 반반씩 하자고, 해! 자네, 신경 써서 만들라고. 양이 적으니까 맛으로 겨뤄야 해!”
“내가 만든 음식이 언제 별로인 적 있었습니까? 그리고 맛으로 겨룬다니, 내 보기엔 맛있을수록 많이 먹을 것이고, 그럴수록 적다고 느낄 텐데요?”
당두가 삐딱하게 보며 하는 말에, 유 장궤가 걸음을 멈추고 마찬가지로 삐딱하게 바라봤다.
탁 트인 곳을 좋아하는 묵칠은 원래 별실이니 하는 것을 싫어했고, 오늘 마침 사람도 적고 자리는 비었으니 아래층 전체를 차지하고 모두를 지휘해서 탁자를 배치했다.
유 장궤가 직접 일꾼들을 지휘하며 중간에 놓인 큰 탁자 가득 다과와 찬을 채웠다. 해미송자(蟹味松子), 금사당매(金絲党梅), 교조(膠棗), 가경자(嘉慶子), 감람(橄欖) 등등을 가득 올린 다음 홍니로를 들고 와서 구석에서 차를 끓였다.
이동과 장 태태는 유 장궤가 주방에서 나와 아뢰는 걸 잠시 서서 바라보다가, 다들 앉아서 차와 다과를 즐기는 걸 보고 자리로 돌아가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신과 문 이야는 계속해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보림사 밖으로 나왔다.
“괜한 신경 쓰이게 했습니다, 이야.”
산문 밖으로 나온 이신은 한숨 돌리고는 문 이야를 향해 사과했다. 문 이야가 헛웃음 쳤다.
“자네 매부 조금…… 희한하군. 자기가 입만 열면 내가 분명 아무런 반대 없이 그를 따라갈 것처럼 구는데, 그 점이 실로 재미있군.”
이신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야를 모시러 간 건 누이의 뜻이었습니다. 누군가가 강환장에게 이야를 추천하는 걸 의도치 않게 들었고, 그래서 이야를 모시러 간 거라고 그러더군요. 강환장이 몹시 이야를 존경한답니다.”
“아?”
문 이야는 몹시 놀라는 것 같더니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계 공자도 얼굴을 보자마자 자신의 배경과 내력을 바로 알아보지 않았나. 계 공자가 자신의 숙부, 심지어 부친도 알고 있었으니 다른 사람도 당연히 알 것이고, 숙부와 부친을 통해서 자신의 일을 알아내는 건 손바닥 뒤집기처럼 쉬운 일이었으리라.
아무래도 부친에게 전수하여 형명과 전량에 정통한 데다가 어디에 묶인 몸이 아닌 막료는 확실히 얻기 어려운 존재였다.
“문가는 원래 서생 집안인데, 아래로 내려올수록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고, 입에 풀칠하려고 막료가 되었지. 그러다가 어쩌다 보니 그 길을 쭉 가게 되었고, 증조부가 운이 좋아서 황군(皇軍) 문충공 문하에 막료로 있었고, 조부는 원 대장군을 보좌한 적이 있지.”
문 이야가 나지막하게 자기 가문을 소개했다.
“싸워서 진 적이 없다는 원 대장군 말입니까?”
이신이 놀라서 물었다.
“음. 부친과 숙부 모두 수재가 된 후로 주인을 찾아 나섰는데, 안타깝게도 숙부와 부친 모두 시운이 좋지 않아 상관이 지은 죄로 두 분 모두 앞뒤로 연루되었네. 난 본디 막료가 될 생각이 없었는데…….”
문 이야가 헛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뜻이 통하는 걸 어쩌겠나. 물론, 자네 집안의 모처럼 맛볼 수 없는 맛난 양고기 덕이기도 하지. 그보다 더 귀한 건 소유 낭자고. 음식 솜씨가 실로 뛰어나다네. 아침에 주방에서 여기 보림사 뒷산의 꿩을 몇 마리 샀는데, 절대로 굽지 말라고 소유 낭자에게 말해 두었네. 그건 보물을 낭비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맑은 찜으로 두 마리 요리하고, 한 마리는 솥에 고아 탕을 우리는 걸세. 샘물로 고는 거지…….”
먹는 이야기가 나오자, 문 이야는 순간 주제를 잊고 신이 나서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이신은 어이없는 얼굴로 그를 빤히 봤다. 보아하니, 양고기 한 끼에 남기로 했다는 그 말이 헛말은 아닌 듯했다.
“조금 더 둘러보다가 내려가지요.”
몇 걸음 가다가, 이신이 걸음을 멈추고 제안했다.
“이대로 내려가면 어머니와 누이가 무슨 일인지 물을 겁니다.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야기하기엔…….”
이신이 쓴웃음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했다가, 어머니와 누이가 얼마나 속이 터질까!
“음! 일리 있군. 그럼 사찰 밖에서 한 바퀴 돌고 내려가세. 내려가면 마침 점심시간에 맞추겠네. 복음각의 당두가 절묘하게 만드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고 하네. 아까 그 일은 신경 쓰지 말게. 자네 매부는 내가 잘못 보지 않은 이상, 자네가 벼슬길에 오른 후엔 길어야 3년이면 고개도 못 들게 누를 수 있을 걸세. 그때가 오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어. 조심하고 말 것도 없고. 자네가 휘어잡고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을 걸세.”
이신은 그런 듯 아닌 듯 알겠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