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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72화 (72/463)

72화: 풍파 一

복안 장공주는 전 노부인과 백 노부인을 보느라 여념이 없는 강환장을 삐딱하게 바라보다가 덤덤하게 진왕과 몇 마디 나누고는 손을 저어 내보내 버렸다.

그녀는 능력에 한계가 있고, 확실히 짚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조카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사실 확실히 짚어줘도, 딱히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선후를 분간할 능력이 별로 없는 이 조카는 간단하게 말하면 매우 어리석었고, 그녀는 어리석은 인간을 제일 싫어했다. 돌봐 준 것도 그저 그의 처지가 딱해서였다.

오히려 강환장은 꽤 영리한 자인지, 명분상으로 온갖 총애를 받는 장공주가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라는 걸 아는 듯했다. 건성으로라도 예의를 차리기는커녕 전 노부인과 백 노부인이야말로 잘 보여야 할 사람이라는 듯 주시했다.

영리하긴 하나, 안타깝게도 시커먼 속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진왕을 뒤따라 나온 강환장은 쉴 새 없이 곳곳을 힐끔거렸다. 전 노부인이 있으니 묵칠도 분명 왔을 것이다. 혹시 마주치게 된다면 어떻게든 황상과 길게 이야기하지 못 하게 막아야 했다. 그뿐 아니라 황상의 눈엣가시로 만들어야 했다. 그 가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하지만 강환장은 묵칠을 보기 전에 한눈에 이신을 알아봤다. 그리고 이신과 나란히 서 있는 문 이야도.

그는 너무 놀라서 평상심을 잃을 뻔했다.

문 이야! 잘못 본 게 아니야. 매일매일 찾아다니고, 곳곳을 찾아다녔다. 금세 백발이 될 문 이야를 찾으려고. 그랬던 문 이야가 지금 바로 눈앞에 있지 않은가. 그의 가장 중요한 오른팔, 가장 의지하던 지혜 주머니. 드디어 그를 찾아냈다!

강환장은 눈을 부릅뜨고 문 이야를 바라봤다. 너무 들뜬 바람에 이성을 잃었는지, 그 들뜬 마음이 이가 갈리도록 이신을 미워하는 마음을 넘어섰다.

“왕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옛사람을 만났습니다!”

곧바로 달려가려던 강환장은 서둘러 되돌아와서 허둥지둥 진왕을 향해 몇 마디 남기고는 장삼 자락을 들고 긴 회랑을 따라 문 이야 쪽으로 달려갔다.

진왕은 평상심을 잃은 것이 명백해 보이는 강환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어안이 벙벙해서 주변을 둘러봤다.

강환장 눈엔 문 이야밖에 보이지 않았다. 문 이야 곁으로 달려간 그는 놀라움, 기쁨과 억제하지 못한 들뜬 표정으로 눈빛을 이글이글 불태우며 문 이야를 직시했다. 그는 몇 번이나 심호흡하느라 온 힘을 다 쓰고서,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들뜸과 기쁨을 겨우 억제했다. 그러고 또 한 번 깊이 숨을 들이마신 다음에야 겨우 말이 나왔다.

“그…… 저기…… 실례지만, 귀하가 혹시 문 이야입니까?”

갑자기 강환장이 들이닥치자, 문 이야는 뒤로 반 발짝 물러났다. 더 물러나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물러날 곳이 없었다.

문 이야와 이신 일행은 현저하게 이상해 보이는 강환장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바라봤다. 이동이 한 말을 떠올리고 살짝 긴장했던 이신은 강환장과 문 이야를 번갈아 보며 금방 마음을 놓았다. 며칠 동안 문 이야와 함께 지내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는 깨달았다.

강환장의 불타는 눈빛, 그리고 들떠서 어쩔 줄 모르는 그 질문에 문 이야는 문득 부르르 진저리를 쳤다. 진저리를 치고 또 치고, 몇 번이나 진저리를 쳤다. 순간 자기가 자태가 매우 아름답고 교태 가득한 미인이 된 느낌이랄까.

지랄 같은 느낌이군!

“세자!”

문 이야는 손을 들어 반읍하면서 하핫 헛웃음 쳤다. 무심결에 뒷걸음치다가 누군지도 모를 사람을 밟았고, 이신이 얼른 손을 내밀어 그를 부축했다.

“나를 압니까?”

강환장은 너무 놀라서 비명이라도 지를 듯 물었다.

문 이야는 더 어이없어져서 눈을 치켜뜨며 헛웃음치고는 곁에 있는 이신, 그리고 사환, 종복을 가리켰다.

“세자, 이분은 영곤(令閫: 타인의 아내를 높이는 말)의 오라비입니다.”

“이자도 압니까? 이자를 어떻게 압니까?”

강환장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이 휙 돌아서서 이신을 노려봤다. 그 표정과 눈빛이 얼마나 악랄한지, 이 자리에서 이신을 집어삼키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세자, 혹시 술 드셨습니까?”

문 이야는 이제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이가 고야가 머리가 좀 이상한 거 아닌가? 정신이 나갔다든지?

강환장의 악랄한 눈빛을 마주한 이신은 분노가 울컥울컥 치밀었다. 어머니처럼 그토록 현명한 분이, 어떻게 이런 자를 사위로 점찍은 걸까? 이게 어디 인간인가? 이놈은 짐승이다! 늑대다!

아동, 아이고 가련해라.

“환장, 혹시 술이 과했으면 어서 돌아가서 쉬시게.”

말은 무례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속 분노를 억누르며 온화한 목소리였다.

남들도 있는 공개된 장소였고, 강환장이 어떻게 나오든 자신은 추태를 보이거나 예에 어긋나게 행동할 순 없었다. 다른 사람도 볼 테니까.

“서로 아는 사이입니까?”

강환장은 숨을 들이마신 다음 무심결에 뒤로 물러섰다. 문 이야를 보자마자 너무 흥분한 상태에서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이신을 빤히 보며 최대한 태연해 보이려고 애쓰며 물었다.

“환장, 문 이야를 아는가? 어떻게 자네가 문 이야를 알지?”

이신은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아까 강환장이 문 이야를 보고 흥분하던 모습이 실로 너무 과해서, 너무 많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문 이야는 부채를 흔들면서 눈앞의 이 매부와 처남을 흥미진진하게 바라봤다. 예상하지 못한 이 첫 만남에서 두 사람의 수준과 능력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지 않은가!

“소생 강환장, 수녕백 세자입니다. 지금은 진왕부에서 말단 장사 직을 맡고 있습니다. 문 이야의 성함을 듣고 소생 지극히 경모하여 이야가 계신 곳을 수소문했었는데, 오늘 이 자리에서 우연히 만날 줄 몰랐습니다. 소생, 문 이야의 문하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문 이야, 이야께서 못난 소생을 받아주신다면 사부의 예로 이야를 모시고 싶습니다.”

강환장은 이신을 상대하지 않고 살짝 몸을 틀어 문 이야를 향해 공수하며 매우 공손하게 부탁했다.

문 이야는 멈칫하며 부채를 거두고 웃음을 터트렸다.

“세자께서 이리 높이 사주시니, 문 아무개 실로 영광입니다. 지극한 영광입니다만, 소생은 이미 영곤 댁에서 밥을 빌어먹고 있으니 세자께 폐 끼치지 않겠습니다.”

“여긴 향냄새가 너무 짙습니다. 밖에 나가 바람 좀 쐬시지요.”

이신이 문 이야에게 눈짓했다. 강환장을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오통신이 붙은 것 같다고 만 어멈이 그러더니, 맞는 말인 듯했다.

“잠깐!”

강환장의 눈빛이 매서워지고 얼굴이 퍼렇게 떠서는 팔을 내밀어 이신의 앞을 가로막고 물었다.

“대답해라! 문 이야를 어떻게 찾아낸 것이냐? 우연히? 아니면 모시러 가서? 누가 모시러 간 거지? 네가? 문 이야와 언제 알게 된 거지?”

“세자, 지금 도적을 심문하는가?”

이신은 이제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아서 안 그래도 겨우 웃음 짓고 있던 얼굴을 거뒀다. 강환장의 악랄한 눈빛을 마주하며 무심결에 등을 꼿꼿이 세웠고, 목소리도 매서워졌다.

“아니면 문 이야가 무슨 짓을 했는가? 상부의 명으로 도적을 잡으러 온 건가? 아니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내가 경솔했습니다.”

강환장은 순간 무언가 깨달은 사람처럼 안색이 변해서 뒷걸음질 쳤다. 태도도 확 변했다.

“내가 마음이 너무 급했습니다. 이 형, 어떻게 문 이야를 찾았는지 알려주십시오. 우연입니까, 아니면 모시러 갔습니까? 문 이야라는 분을 누가 알려줬습니까?”

이신이 대답하기 전에 문 이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연이라고 봐야겠지. 내가 이신을 찾아낸 셈이니까.

이신의 집을 지나가다가 양고기 냄새를 맡고 밥 한 끼 얻어먹은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뜻이 맞아서 주인과 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소생을 중시하시다니, 연유라도 있습니까?”

강환장은 한시름 놓은 듯했다.

“소생, 이야를 경모한 지 오래입니다. 사람들이 이야의 가문과 이야의 인품, 학식을 언급하는 걸 여러 번 듣고 매우 경모하게 되었습니다. 이야, 괜찮으시면 제가 모실 테니 함께 능운루에 가서 술을 기울이며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면 어떻겠습니까.”

“세자,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이리도 아껴주시니, 소생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모시다니요. 그리 마음 쓰실 것 없습니다.”

문 이야는 허허 얼버무리면서 이가의 사위가 살짝 문제 있다고 속으로 확신했다.

“문 이야, 요즘 어디에서 머무르십니까? 자등 산장입니까? 내일 제가 친히 모시러 가겠습니다.”

강환장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문 이야는 자신의 지혜 주머니이며, 오로지 자신의 것이어야만 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세자,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소생은 이미 이 대야와 주객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게다가 소생 같은 절름발이가 먹는 것 말고 무슨 장점이 있다고 이러십니까. 실로 세자께 이런 후한 대우를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이만.”

문 이야는 문제 있는 이가 사위와 왈가왈부하기 싫어져서 공수하고 강환장을 지나쳐 가려 했다. 강환장이 손을 내밀려고 하자, 영해가 스윽 앞으로 나서더니 티 나지 않게 문 이야를 밀어주고 자기가 강환장 앞을 막고 섰다. 고개를 돌리다가 영해를 본 강환장은 벼락 맞은 기분이었다.

“너는? 영해!”

“고야를 뵙습니다.”

영해는 공손하게 미소 지으며 ‘고야’라고 부르는 사이, 벌써 문 이야와 이신 모두 밀어서 저쪽으로 보냈다. 그러고는 살짝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빠르게 밖으로 나가는 이신과 문 이야를 뒤쫓아 갔다.

그렇게 휘적휘적 멀어지는 세 사람의 뒷모습에 강환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핏기가 가셨다.

문 이야와 영해는 내 사람이다. 내 왼팔, 오른팔인데, 어떻게 이신 같은 필부 곁에 있을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이씨!

강환장의 머릿속에 벼락이 번쩍이더니 천둥이 치는 듯했다.

이씨!

그래, 자꾸 그녀가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줄곧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도 무수한 시시비비를 일으켰는데, 설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강환장은 두려운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말도 안 돼! 이게 말이 돼?

복음각으로 돌아간 이동과 장 태태가 자리에 앉아서 간식이 채 올라오기도 전에 아래층이 소란스러워졌다.

“유 영감! 유 영감은? 오늘 꿩이 몇 마리나 있는가? 내가 다 사겠네! 당두는? 실한 놈으로 두 마리 골라서 굽고, 탕도 고고, 한 마리는 맵게 볶으라고 당두에게 전해라. 오늘 입맛이 없으니, 좋은 게 있으면 싹 내와라. 당두에게 묵 칠소야가 왔다고 말하고, 솜씨를 발휘하라 해라. 내가 먹을 음식은 직접 만들라고 해라!”

묵칠이구나.

묵칠을 떠올린 이동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묵칠은 평생 애 한 번 태우지 않고 평생 행운이 따르는 사람이었다. 복 받은 팔자만 따지자면 최고로 꼽힐 사람이었다.

“저 칠소야, 꽥꽥 고함치는 꼴 좀 봐라. 어딜 봐서 승상댁 공자 같으냐.”

장 태태가 웃음을 터트렸다.

“손 어멈, 가서 우릴 신경 쓰지 말고 꿩을 모두 묵 칠소야에게 주라고 유 장궤에게 살짝 이야기하고 오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집에 있는걸. 당두의 솜씨 한 번 보려고 한 것이니, 나중에 와도 그만이지.”

손 어멈도 따라 웃었다.

“예. 대단한 것도 아니지요. 우리 큰 주방에 네댓 마리는 있는걸요.”

손 어멈은 기회를 봐서 이야기를 전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이동과 장 태태는 일어서서 대당이 보이는 창가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산 위 보림사에서 한창 법회가 진행 중인 때라 사찰 밖은 복음각을 비롯한 다관과 찬관(餐館) 모두 사람이 별로 없었고, 복음각 1층은 묵칠 일행이 다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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