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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70화 (70/463)

70화: 우연한 만남 一

“아침에 일찍 나오느라 차를 못 마셨으니 여기서 드시지요. 간식으로 배부터 좀 채우고 사찰에 들어가서 경독을 들으십시오. 대야, 이야, 발치 조심하십시오. 오늘은 경을 들으러 온 것이고 사찰은 청정한 곳이니, 소인, 세마포와 청화 자기 같은 소박한 것으로 골랐습니다. 차는 백차, 향편, 철관음, 이렇게 몇 가지 챙겨 왔습니다.”

영해가 꼼꼼히 설명하는 말에 이미 정자 입구로 향하던 문 이야가 웃음 지었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나는 화로, 화로 위의 정교한 적동 주전자를 바라봤다. 세마포를 깐 석탁과 의자, 그리고 탁자에 놓인 소박하고 우아한 다구와 공들인 간식을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하러 힘들게 글공부하는지 아는가? 바로 이런 걸 누리기 위해서이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요.”

이신은 들어가서 앉으라고 문 이야에게 손짓했다. 겨우 며칠 같이 지냈지만, 벌써 이 엉뚱한 선생이 마음에 들었다. 고기를 아귀아귀 먹고, 술도 진탕 마시고, 솔직한 말만 떵떵하는 이 선생이.

“음, 즐거운 것만 보고, 태평하게 지낼 수 있기까지 하다면야 당연히 더 좋지.”

문 이야는 정자에 앉아서 산초 소금을 뿌린 소병(酥餠: 밀가루에 우유와 꿀을 섞어서 번철에 구워낸 간식)를 베어 물었다.

“백성이 즐거운 것만 보고 태평하도록 모든 관리가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면 천하가 태평하지 않겠습니까.”

이신도 따라 앉으면서 복음각의 간식을 집어 올렸다.

“맞는 말이네.”

문 이야는 금세 간식을 다 먹고 쥘부채를 흔들면서 칭찬했다.

“그뿐만 아니라, 저는 앞으로 괴롭힘당하는 약자를 돕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신이 눈을 살짝 내리깔고 하는 말에, 문 이야는 부채를 흔들던 손을 멈칫하고 이신을 힐끔 바라봤다. 이신은 그런 시선에 빙긋이 웃었다.

“예전에 어머니가 절 도와준 것처럼요.”

“자네 모친과 누이가 바로 그 약자가 아닌가?”

문 이야의 그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했다.

이신이 문 이야를 돌아보며 탄식하듯 물었다.

“이야가 보시기에는요? 어머니와 누이가 단지 여인이라서 약자라면, 저는 사내이니 강자인가요? 저는 그저 사내라서 세간의 법도의 이점을 얻은 것일 뿐입니다. 그것을 제외하면, 저와 어머니, 누이 중에 누가 존귀하고, 누가 강자이며 약자일까요? 어찌 생각하십니까, 이야.”

문 이야는 아무런 말 없이 다시 부채를 흔들었고, 이신은 정자 구석에서 끓기 시작한 적동 주전자를 바라봤다.

“무슨 말씀인지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어머니가 저를 양자로 들인 것은 저를 미끼로 도움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어머니가 제게 큰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합니다.”

문 이야의 눈썹이 높이 치켜 올라갔다. 이신은 촉촉해진 눈빛으로 영해를 가리키고는 또 문 이야를 가리켰다.

“모두 어머니가 제게 준 보물입니다. 어머니와 누이가 아니었다면, 이야처럼 세상을 구할 인재가 저에게 왔겠습니까?”

“나는…….”

문 이야는 말을 꺼내자마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분이 이신을 잘 알아보라고 한 것이 어쩌면 그가 이가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분이 자신의 손을 빌려 보호하고 밀어주고 싶은 사람이 대체 누군지, 정확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신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신이 장 태태의 양자가 되었기에 자신이 이신을 보호하고 감싸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

영해는 주전자를 들고 집중해서 차 두 잔을 따랐다.

“나리, 드셔 보세요. 소인의 이 차 내리는 재주, 심(沈) 대가의 가르침을 받은 것입니다.”

“네가 심 대가를 안단 말이냐?”

문 이야는 매우 의외인 모습이었고, 이신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막 경성에 와서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예!”

영해는 우선 대답부터 하고 이신을 향해 설명을 덧붙였다.

“심 대가는 우리 경성에서 가장 유명한 명창입니다. 열다섯이 되던 해에 출사해서 곧바로 소창(小唱)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주 태후가 명창 중에 그녀의 창을 가장 좋아하셨지요. 주 태후가 살아계실 때는 한 달, 보름마다 심 대가를 궁으로 불러 창을 들었습니다. 주 태후가 별세한 1년 뒤, 어느 날 심 대가가 수국공부에 불려가 노래를 불렀는데, 주 귀비가 사람을 보내 호통쳤습니다. 주 태후 생전에 그렇게 심 대가를 총애했는데, 삼년상이 끝나기도 전에, 복안 장공주가 성 밖에서 상을 지키는 중에, 그렇게 춤을 추고 노래할 수 있냐고요. 지극히 무정하고 의리 없는 짓이라고 말입니다.”

이신은 눈살을 찌푸렸고, 문 이야는 만끽하는 얼굴로 차를 홀짝였다. 심 대가의 가르침을 받은 차라니, 확실히 맛이 남달랐다.

“그 후로 심 대가는 목이 상했다고 다시는 창을 하지 않고 집에서 후배를 지도했습니다. 지금 경성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녀 운수를 가르친 사람이 바로 심 대가입니다.”

영해는 심 대가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이신의 궁금증을 풀어준 후 문 이야를 바라보며 이어서 말했다.

“심 대가는 무현(婺縣) 사람인데, 무현은 저희 호주와 가까운 곳이라서 같은 호주 사람이라고 가깝게 지냈습니다. 근래 심 대가가 귀한 물건들을 꽤 받았는데, 대부분 은밀히 저희 점포에 가지고 와서 가치를 평가하고 맡겨 두었습니다. 소문이 나면 좋지 않을 일이라, 소인이 직접 물건과 은자를 운반하며 자주 들르다 보니 심 대가와 가까워졌지요. 가끔 심 대가 심부름도 하고 일 처리도 해주다가 친분이 생겼고, 차 내리는 재주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더니 세심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심 대가의 차 내리는 재주가 노래하는 재주보다 훨씬 훌륭하구나. 네가 내린 차에서도 심 대가의 분위기가 난다. 한잔 더 다오.”

어느새 차를 비운 문 이야는 아주 흡족한 듯 만끽하며 눈썹을 까닥였다.

영해는 다시 차를 따랐고, 이신이 더 물어보려고 말을 꺼내는데 즐거움이 느껴지는 청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음, 차향이 매우 좋군. 어느 고상한 분인지 모르겠네. 계 형, 우리 가서 차 한 잔 얻어 마시자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푸르른 숲 쪽에서 한 무리 사람들이 내려왔다.

맨 앞에 있는 스물 남짓한 사내는 황록색 장삼을 입고 미소를 머금은 채 우아하면서도 지극히 편안하고 온화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반걸음 정도 떨어져서 따라오는 사내도 비슷한 나이에 황록색 장삼 사내보다 조금 큰 키에 월백색 장삼을 입고 늘씬한 모습이었다. 풍채가 늠름하고 당당한 것이 딱 봐도 쉽게 가까이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황록색 옷을 입은 사내를 본 문 이야의 눈썹이 꿈틀대더니 서서히 가라앉았다.

이신은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자 입구까지 나가서 미소 지으며 공수했다. 황록색 장삼의 사내가 걸음을 서둘러 다가오더니 미소 가득한 얼굴로 공수하며 인사했다.

“공자, 우리가 외람되게 방해하였소. 차향이 너무 좋아서 이끌려서 온 것이오.”

“과찬이십니다. 괜찮으면 들어와서 함께 하시지요.”

이신은 살짝 허리를 숙이며 두 사람을 정자 안으로 안내했다. 문 이야는 조용히 정자 가장자리로 물러났다.

“바라던 바요!”

황록색 장삼 사내는 활짝 웃으며 월백색 장삼 사내를 잡아끌어 함께 정자 안으로 들어와서 이신과 문 이야를 향해 공수했다.

“소생 여가, 외자 염이오. 이분은 계 형이오.”

“만나서 반갑소.”

이신은 놀라운 눈빛을 감추고 곧바로 장읍했고, 문 이야는 흡족한 듯 이신을 바라봤다. 역시 영리한 아이로군.

“소생 이신입니다. 이분은 소생의 선생, 문 이야입니다. 두 분, 앉으세요. 영해, 두 분 공자에게 차를 올려라. 신경 써서 내려라.”

여염은 온통 이신에게 신경이 쏠린 채 문 이야를 향해 대충 공수하고 자리에 앉아서 영해가 차를 내리는 걸 보면서 이신과 한담을 나눴다.

“이 형의 말씨를 들으니, 이곳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소생 본적은 호주고, 어머니와 누이가 십여 년 전부터 경성에 기거했습니다. 과거 시험 준비도 있고, 어머니의 명을 따라 사방을 돌아다니다가 올해에 겨우 경성으로 왔습니다.”

이신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동안 각지를 떠돌며 공부한 바 있어서 식견이 넓은 편이었고, 유능하고 뜻있는 서생을 많이 만났었다. 그는 앞에 있는 여염과 계 형이 상공부 공자와 천관의 아들인 걸 알면서도 변함없이 담담하고 태연하게 평범한 가문 자제를 대하듯 두 사람을 대하고 있었다.

“많은 곳을 경험했다고? 정말 부럽군! 난 작년에 항성에 한 번 다녀온 적 있는데…….”

여염은 이신과 의기투합한 듯이 흥미진진하게 대화를 나눴다.

계소영은 이신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얼굴로, 차 내리는 것만 유심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차를 홀짝이며 잠시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감상하다가 문 이야를 빤히 바라봤다.

문 이야 역시 찻잔을 들고 천천히 홀짝이고 있었다. 아무런 관심 없는 얼굴이지만, 사실은 조마조마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이신과 여염이 한담을 나누는 걸 듣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듣던 그는 두 사람이 갈수록 의기투합하는 모습에 마음을 내려놓고 곁눈으로 계 형이라는 사람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염과 형 아우 하는 계씨 가문이라면 계 황후의 친정밖에 없고, 여기 있는 계 형이란 계 황후의 친조카, 계 천관의 적자 계소영이 아닐 수가 없지. 마음속에 품은 뜻을 삭이지 못한 늠름함과 비범함이 겉으로 드러나는군.

흠. 계 천관의 적장자, 뛰어나긴 한데 아비를 뛰어넘진 못해.

문 이야가 자기를 살피는 걸 알아챘는지, 계소영이 별안간 문 이야를 바라봤다.

“문 선생도 호주 사람입니까?”

“소생은 상원현 사람입니다.”

문 이야는 그와 한담을 나눌 생각이 없지만, 너무 직설적으로 물어오니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계소영의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전혀 감출 생각 없는 듯이 대놓고 문 이야를 탐색했다. 문 이야의 다리에 시선이 잠시 멈추더니, 냉담하고 소원한 말투로 물었다.

“도수감 심리의 관아에 문국도라는 사야(師爺: 지방 관아 장관의 개인적인 고문. 막료)가 있었는데, 선생의 부친이오? 아니면 숙부나 백부뻘?”

문 이야는 화들짝 고개를 들어 놀란 얼굴로 계소영을 바라봤다.

“소생의 숙부입니다.”

“아.”

계소영의 표정은 대답을 진작 예상이라도 한 듯 변함없이 담담했다.

“문국도의 재화(財貨)를 다스리는 재능은 보기 드물게 귀한데, 안타깝게도 의탁할 사람을 잘못 골랐지.”

계소영은 차를 홀짝이고는 여염과 한창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신을 바라봤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기피해야 할 것이 의탁할 사람을 잘못 고르는 것이거늘.”

“계 공자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문 이야는 등에 소름이 바짝 돋는 느낌이었다. 계소영,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 적어도 예리함과 소문에 밝은 면에서는 계 천관보다 뛰어난지도 모르겠군.

“소생도 한마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문 이야는 계소영을 바라보며 말로 옮길 수 없는 어떤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사람은 사람마다 운명이 있습니다. 불가에서 말하는 인과가 그렇지요.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현재의 결과에 너무 집착하면 헛수고만 할 수도 있습니다.”

계소영의 눈빛이 매서워지더니 싸늘하게 문 이야를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들어 차를 마시고는 지극히 냉랭한 목소리로 고맙다고 대답했다.

보림사에서 맑은 종소리가 들리자, 계소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염도 허둥지둥 일어나 이신을 향해 공수하며 작별을 고했다.

“오늘은 공교롭게도 소생과 계 형 모두 어른을 모시고 왔습니다. 법회가 곧 시작해서 소생과 계 형 모두 돌아가야겠습니다. 이 형, 모레 있을 문회에 조금 일찍 와서 이야기합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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