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영해의 한담 三
“묵 이야는 성격이 괴팍하지만 재능이 있네. 호부에서 주판알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지. 사람도 지극히 영리하네. 묵 이야는 올해 막 마흔이 되었고, 내 추측인데, 아마 묵 승상은 그를 계상의 자리로 올릴 뜻이 있을 것이네. 마땅히 오를 만한 사람이고. 그 묵칠은, 아마 자네와는 성격이 맞지 않을 걸세. 가까이 지낼 필요도 없고, 가까이 지낼 수도 없을 걸세. 다만, 절대로 눈 밖에 나서는 안 되네. 묵칠을 거스르면, 묵 이야를 거스르는 것이고, 묵 이야를 거스르는 것은 온 묵가를 거스르는 것이네. 그럴 필요 없어!”
“예, 명심하겠습니다.”
이신이 신중하게 대답했다.
“나머지 가문은, 안원후 부인 묵씨가 바로 묵 승상의 장녀네. 소(蘇) 노후야가 줄을 잘못 선 데다가 주씨 가문 눈 밖에 난 일이 있어서, 황상이 막 즉위했을 때, 하마터면 안원후부가 통째로 날아갈 뻔했는데, 다행히 묵 승상과 여 승상이 함께 나서주어서 그 위기를 넘겼네. 노 안원후가 계실 땐 소가 가풍이 그저 그랬고, 후원에 미인이 줄 지었었지. 이번 대가 되어서야 기강이 그럭저럭 잡혔고, 안원후와 묵 부인도 부부의 정이 깊어 시첩이 하나도 없어. 아마도 묵가에 감사하는 마음도 있어서겠지.”
저 멀리 보림사의 선명한 유리 기와가 보이자, 문 이야는 영해를 더 시험하지 않고 직접 이신에게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소 노후야의 친누이가 여 승상과 혼인했지.”
“그럼 이건…… 묵 승상과 여 승상도 인척인 셈이군요.”
이신이 궁금증을 못 참고 물었다. 묵 승상과 여 승상이 몇십 년 동안 날카롭게 대립하고, 양측의 진영이 몇 번이나 맞섰는지 모른다. 그런 두 사람이 이런 인척 관계가 있을 줄이야.
“이것도 인척으로 친다면, 경성은 줄줄이 인척으로 묶였을 것일세. 여 승상 댁은…….”
문 이야가 가차 없이 이신의 말을 막더니 문득 잠시 말을 멈췄다.
“이건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고, 일단 계씨 가문부터 이야기하지.”
계씨 가문 이야기가 나오자, 문 이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계가는 강남의 학자 가문이네. 계가 노 승상대에 문중에 인재가 속출해서 그야말로 하늘의 별처럼 빛났지. 바로 그런 이유로, 주 태후가 계씨를 며느리고 고른 것이네. 그런데 그 계 황후로 인해서 온 계씨 일족이 지금은 침체하였네. 아마도 주 귀비가 죽고 세월이 조금 더 흐른 후에야 판세를 뒤집을 기회가 있겠지.”
이신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남에서 공부할 때, 계씨 가문에서 잠시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서 계씨 일가를 꽤 좋게 보고 있었다.
“계 천관은 장원 출신인데, 이부 천관 자리에 7년째 있네. 아무래도 천관 자리에 뼈를 묻을 것 같아.”
잠시 말을 멈춘 문 이야가 음험하게 미소 지었다.
“주가에서 어떻게든 계 천관을 천관 자리에서 끌어내려고 애를 쓰는데, 안타깝게도 주씨 일가는 하나같이 어리석은 것들이라 아무리 움직여도 계 천관은 꿈쩍도 하지 않지. 앞으로 벼슬길에 오르면, 계 천관 같은 나이 든 대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히 살펴보고, 자세히 연마해서 열심히 배우게. 계 천관은 내가 몹시 존경하는 분이네!
계 천관의 장자는 계소영(疏影)이라고 하는데, 뛰어난 문인이네. 수완도 꽤 있는 편인데, 수재가 된 후엔 다시 과거를 보지 않았네. 아무래도 당장은 벼슬길에 오를 생각이 없는 듯하네. 그런 걸 보면 조금은 영리한 것이지. 다만 계 천관하고 비교하면 차이가 너무 나지. 휴, 계 천관은 정말로 아까운 사람이네. 분명 수상이 될 재능을 갖췄는데, 주 귀비가 아니었다면 계가에 부자 수상이 나왔을 것을. 얼마나 멋진 이야기인가!”
“계 공자가 쓴 문장을 몇 편 읽은 적 있습니다. 용어가 우아하고, 논리가 심오했습니다. 감탄이 나오는 문장이었어요.”
이신은 조금 허탈해졌다. 세상사란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았다.
문 이야가 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계씨 가문, 하, 안타깝지! 황상은 한창때이고, 주 귀비는…… 더욱 앞날이 창창하지. 현재로서는 우리는 일단 계가와 우호적인 친분만 유지하면 되네.”
“예.”
이신은 한참 만에 무겁게 대답했다.
영해는 숭배하는 얼굴로 문 이야를 바라봤다. 대야의 선생, 대체 어디서 찾아온 사람이야. 너무 대단하잖아!
이신 일행이 보림사 산문에서 뒷산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간 잠시 후, 한 사내가 말을 몰고 성문 앞까지 질주했다. 사내는 여염과 모친 원 부인을 마주치자 곧장 그쪽으로 달려갔다.
“대소야, 삼각 전에 자등 산장에서 나왔습니다. 소인이 보림사 산문까지 내내 쫓아가서 지켜봤는데 말을 복음각에 맡기고 걸어서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종복이 다가와 나직이 고하는 말에 여염의 눈썹이 순간 치켜 올라갔다.
정말 공교롭군. 보림사엔 왜? 축원? 경문 들으러? 하지만 보림사엔 그렇게 덕 높은 큰스님이 없는걸. 경치를 보러? 보림사 경치는 경성 외곽만도 못한걸.
바라는 바가 있어서? 보림사 법회가 복안 장공주의 발원으로 시작했다는 것이야 쉽게 알아낼 수 있지.
권세에 빌붙을 생각으로 가는 건가? 그렇다면 이자의 인품이며 심사며 그렇게 좋진 않겠군.
여염은 생각할수록 눈살이 찌푸려졌다.
“다시 가서 어디로 가는지 지켜봐라. 절대로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예! 안심하십시오.”
여염의 분부에 종복은 말을 몰고 다시 보림사로 향했다.
이날, 인시 정각에 일어나는 습관이 진작 몸에 밴 강환장은 아직은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데도 평소처럼 일찍 일어났다.
고 이낭도 같이 일어나서 그의 소세와 환복을 도왔다. 제비집 죽을 받은 강환장은 한 입 마시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내려다봤다. 결국 마실 수가 없어서 남은 죽을 그릇째 고 이낭에게 건넸다.
“이 제비집, 별로구나. 쉰내가 난다. 돌려보내고 좋은 것으로 다시 보내라고 해라. 어느 집이냐? 다시 가져오는 것도 좋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바꿔라!”
“응, 알겠어요.”
고 이낭은 새로 들인 시녀 영란에게 그릇을 건네주면서 고분고분 대답했다.
“당당해져라.”
강 환장은 고 이낭의 순종적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 느긋하고 대범한 아인데…….
아, 내가 또 급해졌구나. 겨우 열몇 살이고 이제 막 강가로 돌아왔지. 서두르지 말자. 천천히 해야 해.
강환장은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잘 들어라. 이 저택에서, 우리 가문에서, 너는 안살림을 맡은 안주인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네가 바로 안주인이다! 이씨는 나간 이상,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너는 스스로 낮추지 말아라.”
“알겠어요.”
고 이낭은 감동해서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강환장을 올려다봤다.
오라버니, 정말, 너무너무 잘해줘. 어떻게 보답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잘해줘.
“우리 가문은, 아버지는 원래 집안일에 관여하지 않으신다. 어머니는.”
강환장은 말을 멈췄다. 은근슬쩍 치민 짜증이 미간에 맺혀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머니의 흐리멍덩한 성격, 정말로 짜증이 났다.
“넌 그냥 경원하면 된다. 그리고 아완과 아녕은 상관 말아라. 혼수 어쩌고 했던 건 분명 이씨의 간계다. 그 애들은 나이도 어리고, 원래 생각 없는 성격이라 지금은 깨닫지 못해서 그러는 것일 뿐이다. 너도 연연하지 말고 일단 상대하지 말아라.”
“응. 알겠어요. 아완이랑 아녕은 원래 천진난만한 아이들이에요. 탓하지 않아요. 그냥, 그냥 난 속으로 줄곧 두 사람을 친 여동생처럼 대했는데, 그 애들이 이렇게…… 이렇게…….”
고 이낭은 매우 괴로운 듯 가슴을 부여잡았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
“생각할 것 없다.”
강환장은 마음이 아파서 고 이낭을 품에 안고 더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말 들어라. 다 사소한 일이다. 괜히 신경 쓸 것 없어. 당장 앞에 닥친 큰일이 많다. 첫째, 바로 이 집안이다. 이 집안은 법도를 엄정하고 명확히 세워야 한다. 명령에 따라 엄격하게 행사하게 해야 해. 집안일은 밖으로 퍼지지 않고, 바깥일을 끌고 오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엄격하게 직무를 다해야 한다. 우리 수녕백부는 다른 경성 가문과 비교할 수 없어. 설사 수국공부라고 해도 뒤처지면 안 된다. 이런 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너도 다 아는 것들이다. 너는 그 방면으로 공을 들여야 한다. 일단 집안부터 정리해라. 간교하고 말 듣지 않는 것들이 있거든 혼쭐을 내주면 된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다. 알겠느냐?”
고 이낭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리둥절해졌다.
수국공부? 수국공부와 비교할 수 있는 가문이 어디에 있다고. 집안일은 밖으로 퍼지지 않고, 바깥일을 끌고 오지 않아? 집안일, 바깥일이 뭐가 있어서. 이 집안, 이만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 계속 괜찮았잖아. 이보다 어떻게 더 좋아져?
그녀가 태어났을 때부터 고가는 벌써 궁핍하고 몰락했다. 이 나이 먹기까지 왕래하며 봐 온 것은 자기 집 아니면 수녕백부였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수녕백부는 그녀에겐 그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곳이었다.
아, 영안백부도 있지. 이모님이랑 함께 갔었을 때, 정말 부러웠어. 여기저기 화려하고 부귀한 것이. 어딜 봐도 눈부셨지. 부귀하고 화려하면서도 청아한 멋이 있었어. 곳곳이 다 멋졌지. 영안백부처럼 하라는 건가? 그러려면 은자가 얼마나 필요한데.
“두 번째. 우리 가문 점포, 장원도 곧바로 착수해서 관리해야 한다. 넌 전에는 서무를 돌본 적이 없지. 하지만 지극히 쉬운 것들이다. 넌 영리한 아이 아니냐. 장궤와 장두를 불러들여서 몇 번만 물어보면 그 중간의 도리를 깨달을 것이다. 명심해라. 반드시 우리 점포와 장원을 꼼꼼히 다스려야 한다. 신경을 많이 써야 해. 걱정할 것 없다. 지금 우리 가문은…….
어찌 됐든, 넌 이것만 명심하면 된다. 앞으로 우리는 은자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 은자가 물처럼 흘러들어올 것이야. 점포, 장원에서 끝도 없이 들어온다. 넌 그저 그 은자가 들어올 곳이 막히지 않도록 잘 단속하기만 하면 된다. 은자만 있으면 모든 게 쉬워진다.”
“네.”
고 이낭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당장 해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녀는 서책을 많이 읽었고, 그중에 재화에 관련된 책이 가장 좋았다. 은자가 많아지는 것이 소원이었다. 다 쓰지 못할 은자에 둘러싸여서 사치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것!
강가 서재에 있는 책 중 재화에 관한 책은 모두 꼼꼼히 읽었잖아! 오라버니 말대로 난 모든 것에 정통해. 다만 직접 나설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이제 시도할 기회가 드디어 눈앞에 왔잖아.
그 재물신이라는 장 태태는 분명 나보다 글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을 거야! 반드시 그 재물신보다 백 배는 나은 재물신이 될 거야!
은자가 생기면 옷감 전체를 금으로 수놓은 옷을 지어서 입을 거야. 매일 제비집 죽 한 그릇씩 먹을 거야. 최고로 좋은 제비집으로!
“세 번째, 어머니 생신이 다음 달 초하루다. 크게 치러야 할 생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마련해야 한다. 어머니 기분도 풀어드리고, 그 김에 너도 안살림을 다스리는 연습을 하면 된다. 또 너도 이 기회에 앞으로 왕래할 사람들을 사귀어야지.”
고 이낭의 눈이 더 반짝였다. 그녀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오라버니가 정말로 잘해준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너무너무 잘해줘!
“됐다. 난 이만 나가야 한다. 너도 집안일 처리해야지. 저녁에 기다릴 것 없다.”
강환장은 오늘 진왕과 함께 보림사에 갈 예정이었다.
“오라버니, 다쳤는데…….”
고 이낭은 아쉬운 듯 강환장을 잡아당겼다. 강환장이 나가는 게 싫었다. 오라버니가 나가고 나면 의지할 곳이 사라진다. 게다가 오라버니의 이마에 상처가 다 낫지도 않았다. 복두(幞頭: 남자가 쓰던 두건의 일종)을 쓰고 가렸을 뿐.
“난 괜찮다.”
고 이낭이 상처를 언급하자, 강환장은 복두에 눌린 상처가 더 쑤시는 듯했다. 그러나 쉴 수 없었다. 더 쉬다간 묵칠에게 또다시 기선을 빼앗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