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영해의 한담 二
“아니었나요?”
“당연히 아니지. 옛정이 깊은 게 아니라, 습관이다! 정치를 게을리하는 것일세!”
문 이야는 턱을 치켜들고 드문드문 난 수염을 흡족한 얼굴로 쓰다듬었다.
“나는 말일세, 사람을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네. 잘 듣게. 황상은 변하고 움직이는 걸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네. 곁에 있는 사람, 습관 된 일을 바꾸고 움직이기 매우 어렵지. 보게, 다른 건 접어두고, 상평창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상평창은 문드러질 대로 문드러진 낡은 정책이네. 그런데 보게, 개혁 논의를 10여 년 동안 해 왔는데, 바뀐 것이 있는가? 없네! 바꾸지 않을 것이네!”
영해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그 말씀이 나와서 말인데, 궁에 내시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황상께선 신양에서 진공한 우전(雨前: 항저우 산 녹차)차만 드신답니다. 십 년을 하루처럼 주야장천.”
“우전? 재미있군.”
문 이야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음 지었다.
“왕부에 있을 때 기껏해야 우전차를 마실 형편밖에 되지 않았겠지. 들었지? 작은 일로 인성을 볼 수 있네. 명심하게, 내 좁은 식견으로 보기엔 말일세, 이 나라 조정에서 황상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누굴까? 여 승상이네!”
“여 승상은 벌써 20년 넘게 승상 자리에 있었지요?”
그동안 이신은 조정과 조정 대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오늘처럼 심도 있는 이야기는 딱히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19년하고 반년이지!”
문 이야가 눈을 가늘게 떴다.
“번백도를 양강으로 보낸 것도 여 승상의 의견이었지. 황상 곁에 계속 있으면, 황상은 그가 곁에 있는 것에 익숙하니까, 번백도가 반역이라고 일으키지 않는 한 그를 건드리기 너무 어렵지. 하지만 일단 번백도를 황상 곁에서 떼어놓고, 번백도가 없는 생활에 익숙하게 하면 번백도는 다른 지방 관리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지는 것이지. 옛정? 개뿔! 물론, 이건 내 추측이니까 그냥 흘려듣게. 상황이 어떤지, 속으로 짐작만 하고, 나머지는 자네 눈으로 직접 보아야 하네. 아,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갔군. 도착했네!”
이야기하는 사이, 세 사람은 어느새 복음각 앞에 도착했다. 입구에 있던 일꾼이 영해를 보자마자 다급하게 장궤를 불렀다.
“이가 나리가 오셨습니다!”
장궤는 일꾼 몇을 데리고 다급하게 달려 나왔고, 영해는 서둘러 앞으로 다가 반읍하면서 자연스럽게 은과(銀錁: 화폐로 쓰이던 은 덩어리. 쇄은보다 크고 은괴보다 작은 것)를 장궤 손에 찔러주었다.
“우리 나리께서 차라도 드시라고 여러분께 드리는 겁니다. 우린 산에 올라가야 해서 오늘은 들어가지 않으렵니다. 말 좀 잘 돌봐 주십시오. 혹시 점심때 식사하러 오게 되면 사람을 보내 미리 알리겠습니다.”
“예, 예. 이렇게 신경 써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대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분 나리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 간식 좀 담았습니다. 받으세요, 영 나리. 대당두(鐺頭: 조리를 장관하는 요리사)가 직접 만든 겁니다. 막 솥에서 꺼냈지요. 법회는 적어도 두 시진은 걸립니다. 출출할 때 간단히 때우기 괜찮습니다.”
은과를 받은 장궤는 간식 찬합을 영해에게 내밀었고, 영해는 받아들고 공수하며 감사했다.
문 이야는 이신 곁에 서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영해와 장궤가 친밀하게 이야기 나누는 걸 보며 살포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집안 양자로 들어오다니, 큰 복을 받았군.”
“목숨도 어머니에게 받은 것을요.”
이신도 나지막이 대답했다.
문 이야가 힐끔 그를 바라보다가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가세, 산에 올라가세. 아직 시간도 많고, 뒷산에 가서 경치나 보고 이야기도 나누세.”
영해는 찬합을 사환에게 건네고 뒤떨어져서 따라오라고 눈짓한 다음 자기는 재빨리 이신과 문 이야를 따라갔다.
“영해야, 오늘 축원 법회에 어느 가문에서 오는지 그것부터 말해 보아라.”
문 이야는 영해를 힐끔 보며 분부했다. 영해를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조정 일은 소인은 모릅니다.”
문 이야가 자길 시험할 생각이라는 걸 곧바로 깨달은 영해는 재빨리 이신의 눈치를 살폈다. 이신이 웃으며 묵인하자 서둘러 대답하는데 말투가 확실히 신중해졌다.
“보림사에서 법회가 열린 것도 오랜만입니다. 해마다 법회가 열릴 때는, 묵 승상 부인, 여 승상 부인, 그리고 계 천관(天官)의 모친 백 노부인, 안원후 부인 묵씨는 반드시 참석했습니다. 수국공 주씨 가문에서도 매번 사람이 오긴 하는데, 그때마다 다른 사람이 옵니다.”
“음!”
문 이야는 매우 흡족한 듯이 다시 영해를 위아래로 살폈다.
“너는 이가 가노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영해가 이신을 바라봤지만 이신은 말없이 열심히 들을 뿐이었다. 이 두 사람, 아는 게 정말 많구나, 하면서.
“소인 일가는 노태태의 배방이라서 처음엔 장가에 갔다가 나중에 이가로 왔습니다. 소인 부친이 태태를 모시는 대조봉이고, 소인의 조부도 전대 대조봉이었습니다. 증조부도 대조봉이었고요. 그런데 소인은, 사람은 그래도 좀 보는데, 물건은 좀처럼 못 봅니다. 줄곧 점포에 있긴 했으나, 심부름꾼처럼 밖을 돌았지요. 며칠 전에 태태께서 소인을 부르시더니, 소인이 경성에서 그래도 이래저래 아는 게 많다고 대야를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영해가 매우 자세히 설명했다. 문 이야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자, 이신에게 속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너희 태태는 정말로 사람을 잘 보고 적절하게 쓰시는구나!”
문 이야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너희 대야를 잘 모셔라. 앞으로 너는 분명 네 아비, 할아비보다 더 잘될 것이다.”
“덕담 감사합니다!”
영해가 다급하게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했다.
“법회에 자주 온다는 가문 이야기를 해 보아라. 묵 승상 가문부터 해 보자.”
문 이야는 뒷짐을 진 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영해에게 분부했다.
“예. 대야, 이야, 소인이 드리는 말씀은 모두 시정에서 오가는 말들이라, 진짜도 있고 거짓도 있습니다. 두 분께서 그냥 우스갯소리로 들어 넘기십시오.”
영해가 그렇게 말문을 열자, 이신이 헛웃음 지었다.
“이야기꾼 같구나. 얼른 이야기해라.”
“예. 그럼 우선 묵 승상 댁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묵 승상과 전 노부인은 결발(結髮) 부부로 함께 어려움을 견딘 정 깊은 부부입니다. 묵 승상은 혼인한 이래 통방조차 들이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묵 승상 댁에 아드님이 둘, 따님이 셋인데 모두 전 노부인 소생이고, 묵 승상의 장자는…….”
(※결발 부부: 서로 초혼인 부부. 혼인할 때 신랑, 신부의 머리카락을 조금씩 잘라 묶는 것. 첫 혼인 때만 그렇게 하는 것으로 결발 처는 정실부인을 뜻한다. 첩은 물론 후처도 결발처가 아니다.)
“그런 건 됐다. 온 세상이 다 아는 이야기 아니냐. 꼭 해야 할 이야기나 해라.”
문 이야가 영해의 말을 잘랐다.
“예. 다들 묵 승상이 공처가라고 합니다. 묵 승상은 술을 드실 때도 석 잔을 넘기지 않으신답니다. 아내의 당부가 있어서 거역하지 못한다고요. 여 승상 부인이 아직 계실 때는, 아내를 두려워하는 데는 여 승상이 묵 승상보다 더했답니다. 전 노부인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 바로 묵가 이야의 외아들, 묵 칠소야라고 합니다.
전 노부인은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칠소야를 아끼신답니다. 다들 전 노부인이 매우 현명하고 예지로운 분이라고 합니다. 묵 승상이 대소사를 막론하고 전 노부인과 상의한다고 들었습니다. 묵 승상이 전 노부인의 안목, 식견은 본인도 못 미친다고, 대단히 탄복하며 이야기한 적도 있답니다. 그런 전 노부인이 칠소야 일에서는 논리가 없어진답니다. 칠소야가 아무리 황당한 일을 벌여도, 울기만 하면 전 노부인이 그게 무슨 일이든 다 막아주신답니다.”
“그렇게 총애하면 오히려 안 좋을 텐데.”
이신이 실소하며 툭 하는 말에 가장 앞서가던 문 이야가 이신을 돌아봤다.
“묵칠은 그저 큰 그릇이 아닐 뿐이지, 마음은 선하고 간도 작다. 온 묵씨 가문에서 가장 어리석은 놈인데, 나쁘다고 해도 그렇게 나쁜 녀석은 아니다.”
“이야의 말씀이 맞습니다. 이 묵 칠소야는 말입니다, 전 노부인이 지극히 총애하는 손자일 뿐만 아니라 부친인 묵 시랑도 말 못 할 정도로 총애하는 아들입니다. 거기엔 까닭이 있고요.”
“간단하게 말해 보아라.”
“예. 묵 이야가 태어나서 삼 개월쯤 됐을 때, 묵 승상은 그때 막 과거에 급제하여 촉중 지현으로 부임하여 가게 됐습니다. 당시에 묵 이야가 병이 났는데, 묵 승상 부부가 멀리 부임하게 되었으니, 묵 이야를 전 노부인의 친동생에게 맡겼답니다. 친동생은 현지에 호씨 가문의 차자와 혼인한 전 이태태고요.
호가 장자도 진사 출신인데, 그때 벌써 지부가 되었습니다. 장자의 아내는 그렇게 현명한 사람이 아니고, 모친도 그렇게 사리에 밝진 않아서 전 이태태가 묵 이야를 거둔 일로 적잖게 한 소리 들었답니다. 한겨울에 시모에게 불려가 무릎 꿇고 벌서느라 골병이 들었고요. 이런 골병 때문에 전 이태태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떴답니다.
전 이태태가 세상을 떠났을 때, 묵 이야는 울다가 몇 번이나 혼절했고, 이런 일로 묵 승상 부부는 전 이태태와 묵 이야에게 몹시 가책을 느꼈다고 합니다. 묵 이야가 호가에서 학당을 다닐 때, 거상의 아들인 도두재(陶斗才)라는 자와 알게 되었는데, 도두재의 누이 도씨에게 첫눈에 반했답니다. 묵 이야는 스물하나에 진사가 된 소년 천재였고, 그때 묵 승상은 이미 이부상서였으니, 상인 가문인 도가에서는 원래 묵 이야 같은 인품에 가문을 지닌 사람을 감히 넘볼 수가 없는데, 묵 이야가 말을 꺼내니 묵 승상 부부는 안 된다고 말도 못 했답니다. 그렇게 묵 이야는 도가와 혼인을 맺었고요.
도가는 어마어마한 부자인데, 도 이내내가 묵가에 들어갔을 때, 도가에서 거의 재산 반을 혼수로 내놓았답니다. 혼수가 십 리까지 이어졌다고 할 정도니까요. 도 이내내는 혼인한 다음 해에 바로 묵 칠소야를 낳았는데, 웬걸, 아이를 낳을 때 난산을 겪고, 묵 칠소야가 만월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도 이내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묵 이야도 하마터면 같이 갈 뻔했다더라고요.
묵가와 도가가 여기저기 관을 고르러 다녔는데, 마침 우리 점포에 최고급 장례 재료가 있었습니다. 제 아비가 손수 물건을 보냈지요. 그때 묵 이야를 잠깐 뵀는데, 산송장이 따로 없었다고 합니다. 묵 칠소야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머리 박고 죽었을 거라고, 묵 이야가 종종 말씀하신답니다.”
이신은 못 견디게 마음이 시렸다. 이 세상에 이런 역경과 고초를 겪은 사람이 또 있었다니.
“묵 칠소야는 전 노부인 곁에서 자랐습니다. 묵 이야는 후실을 들이지 않고 묵 칠소야를 지켰지요. 묵 칠소야가 묵 이야의 목숨줄이라는 걸 온 경성이 파다하게 압니다. 도씨가 가지고 온 혼수는, 도씨가 세상을 떠난 후로 묵 칠소야의 외숙, 도가 대야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도가 대야는 글공부는 변변찮은데, 장사 수원은 매우 좋습니다. 우리 태태도 그분 이야기가 나오면 칭찬이 자자합니다. 도씨의 혼수가 그동안 몇 배로 불어났는지 모릅니다. 그 은자는 묵가에서 묵 칠소야말고 아무도 함부로 건들지 않습니다. 묵 칠소야는 경성에서 통 크기로 유명하지만, 묵가 자체는 그럭저럭일 뿐입니다.”
“음, 잘 들었다.”
문 이야는 일단 영해부터 칭찬하고 이신을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