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영해의 한담 一
선황은 그 당시에 현 황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 복안 장공주가 태어나기 전에는 현 황제의 이복아우인 삼황자를 매우 아꼈고, 거의 황위를 넘겨줄 생각이었다.
복안 장공주가 태어나고 성장할수록, 선황은 삼황자와 현 황상 중에 갈등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현 황상이야말로 복안 장공주의 동복 오라비이니 말이다. 선황은 수시로 대신들에게 복안이 사내였다면 분명 천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제왕이 되었을 거라고 칭찬했다.
몸져누운 선황은 현 황상에게 황위를 물려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단지 복안 장공주의 어미가 같은 친 오라비라는 이유였다. 현 황상이 황위에 오르면 분명 복안을 누구보다 잘 보살필 테니까.
선황은 눈을 감기 전에 현 황상의 손을 꼭 잡고, 반드시 복안을 평생 지켜주고 평생 마음 편하게 살게 해주겠다는 맹세를 받아냈다.
안 그래도 유일한 동복 혈육을 매우 아끼던 황상은 이 일로 아끼는 마음에 감사한 마음도 생겼다.
황상은 주 귀비를 매우 총애했고, 주 귀비가 누구와 틀어지든 반드시 상대를 질책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상대가 복안일 때는 누구의 잘못이든 막론하고 주 귀비를 질책하고 반드시 사과하게 했다.
다행히 복안은 이런 크나큰 총애를 받으면서도 지극히 현명하고 영특하게 처신했다. 선황이 세상을 떠난 후로, 특히 요즘은 갈수록 몸을 낮추고 조용히 지냈다. 황상이 떠받드는 주 귀비에게 항상 양보할 뿐만 아니라, 황자와 공주에게도 모두 양보했다.
그런 이유로 황상은 갈수록 그녀를 아끼고 예뻐했다.
주 태후는 복안이 열일곱이 되던 해부터 온 천하에서 부마감을 찾았다. 그러나 고르고 골라도, 이놈은 이게 나쁘고 저놈은 저게 안 맞았다. 복안이 열아홉이 되던 해, 태후가 풍한으로 쓰러진 후로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2년 넘게 시름시름 앓았다.
그 2년 동안 복안은 태후궁으로 거처를 옮겨서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어머니를 돌봤다. 혼사는 당연히 저쪽으로 밀려났다. 2년 후, 태후가 눈을 감자, 복안 장공주는 몇 번이나 혼절할 정도로 슬피 울었다. 태후를 황릉으로 모신 후, 반드시 삼년상을 치르겠다고 하고는 태후가 자주 갔던 보림암에 자리 잡고 다시는 경성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복안은 성격이 유순해도 결심한 일이 있으면 아무도 뜻을 꺾지 못했다. 태후가 살아 있을 때는 태후도 마찬가지였다. 누이를 아끼는 황상은 보림암 근처에 있는 황가 별원을 확장 건설해서 복안 장공주가 기거토록 했다.
삼년상을 마친 복안 장공주는 상복을 벗더니 승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길 윤허해달라고 황상에게 주청을 올렸다. 선황과 태후, 그리고 황상 오라버니를 위해 수행하며 복을 기원하겠다고.
황상이 주청을 되돌려 보내면 복안은 다시 올렸다. 그렇게 몇 번 오간 끝에, 황상은 할 수 없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수행은 허락하지만 머리는 깎으면 안 된다고 했다. 무명옷도 안 된다고, 기름기 없는 채식도 안 되고, 일상 기거는 황가 장공주의 규정을 따르고 모든 대우도 예전과 다름없어야 한다고 했다.
복안 장공주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고, 그렇게 보림암 곁 별원에 머물게 되었다. 평소에 보림암에 가서 불경을 듣고 수행하는 것 말고 가끔 보림사에서 축원 법회를 열어 황상 오라버니와 만민을 위해 기원했다.
닷새 후 보림사 축원 법회가 바로 복안 장공주가 여는 법회였다.
조금 흐릿해졌지만, 이동은 아직도 복안 장공주의 모습을 기억했다. 진왕이 즉위한 그다음 해, 정월이 되자마자 복안 장공주는 세상을 떠났다.
그해 봄은 어수선했다. 11월에 황상이 붕어하고, 정월에 막 태후가 된 영 황후가 급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정월이 막 지나자마자 복안 장공주도 세상을 떠났다.
올해 복안 장공주가 아마도…… 스물일곱이리라.
나중에, 양 태후는 복안 장공주가 수행한다고 혼사를 마다한 일이 얼마나 불효였는지, 몇 번이고 이동에게 말했다. 양 태후가 복안 장공주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유일한 화제가 바로 혼사였다. 주 태후가 얼마나 장공주의 혼사를 걱정했는지, 주 태후의 유일한 근심이 장공주의 혼사였다며, 나중엔 주 태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이유도 서서히 장공주의 혼사가 성사되지 않은 탓이었다고. 주 태후가 그 일로 마음이 울적해서 병이 난 거라고. 물론 장공주의 혼사와 수행으로 가장 슬퍼하고 큰 상처를 입은 건 물론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선황이라고 했다. 그녀가 수행하는 일로 선황이 얼마나 슬퍼했는지, 그녀가 혼인하지 않아서 선황이 또 얼마나 슬퍼했는지…….
하도 듣다 보니, 얼떨결에 양 태후야말로 선황이 평생 총애한 사람처럼 느끼게 되었다. 단 한 번 성은을 입은 후 철저히 잊힌 여인이 아니라.
나중에,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야 양 태후가 영 태후를 독주로 독살했다는 사실, 복안 장공주가 금을 삼키고 자진했다는 사실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알게 되었다. 복안 장공주가 자진한 이유는 바로 양 태후가 억지로 부마를 골라서 출가할 날까지 정했기 때문이고.
그녀는 복안 장공주를 그저 멀리서 몇 번 봤을 뿐이고 이야기를 주고받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혼인을 거부하느라 자진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 날밤, 어째서인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양 태후의 상판이 참으로 가증스럽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바로 보림사 축원 법회에서 복안 장공주를 처음 봤었다. 진왕이 막 태자로 책봉된 그해였고, 진왕부 출신인 강환장이 한순간 유명해진 때였다. 수녕백부와 그녀까지 경성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그때 안원후 부인 묵씨가 그녀를 초대해서 함께 보림사 축원 법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법회에서 그녀는 묵 부인의 모친, 묵 승상 부인인 전(錢)씨, 선 황후 계(季)씨의 모친인 백(白) 노부인과 여 승상 큰 며느리 원(袁) 부인을 알게 되었다.
그 법회 이후로 그녀는 정식으로 경성 세도가 가문의 여인들과 어울렸고, 그 후로 몇십 년 동안 그녀들과 교제하며 그중 몇몇과는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닷새 후의 보림사 축원 법회라. 그녀도 가 보고 싶어졌다.
보림사 축원 법회는 이른 시간에 시작되는지라, 문 이야는 해가 밝기도 전에 이신을 재촉했다. 이신은 이틀 전에 겨우 곁에서 그를 모시게 된 영해, 그리고 어릴 때부터 곁에 있었던 사환 청평, 수희를 데리고 문 이야와 함께 말을 타고 보림사로 향했다.
이동과 장 태태는 그들보다 이각 정도 늦게 출발해서 마차를 타고 느긋하게 보림사로 향했다.
보림사는 자등 산장과 그리 멀지 않아서 말을 탄 이신과 문 이야 일행도 금세 보림사 산문(山門)에 도착했다.
보림사는 경치가 아름답고 고요한 작은 산허리에 숨어 있었다. 절의 대문 앞은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떠들썩한 거리로, 영해는 보림사 대문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소박하고 커다란 석목 2층 건물을 소개했다.
“저곳이 복음각(福音閣)입니다. 경성에 있는 능운루와 마찬가지로 진씨 가문의 자산으로 지었지요.”
영해는 힐끔 이신을 살폈다. 진가의 자산이라는 말에도 이신이 별 반응 없자, 서둘러 설명을 덧붙였다.
“광덕(廣德) 진가 말입니다. 처음엔 차밭으로 가문을 일으켰지요. 우리는 노태야 때부터 진가와 왕래하며 장사했습니다. 지금 진가의 가주는 진빈(陳斌)이라는 자로, 우리 태태와 비슷한 나이입니다.”
문 이야는 위아래로 영해를 살폈다. 이신 곁엔 종복과 관사가 많았고, 이런 건 다 사소한 일이라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인제 보니 이 영해라는 자, 조금 남달라 보였다.
“전에 호주에 있었을 때 진가와 자주 왕래했습니다. 진빈은 우리 노태태를 양어머니로 모셨습니다.”
이가에서 노태태라고 부르는 건 장 태태의 생모, 세상을 떠난 엄 노태태였다. 당시 장 태태가 온 이가를 상대로 목숨을 건 재산 분쟁 송사를 했을 때, 엄 노태태가 보따리를 싸서 딸 집으로 들어가 딸을 진정시키고 다독였다. 나중에 장 태태가 이동을 데리고 경성으로 옮겼을 때, 엄 노태태도 당연히 따라서 경성으로 옮겼다.
“호주에서 경성에 온 일은 자세히 이야기할 것도 없이 대야가 가장 잘 아시겠지요. 그때 한동안 장사가 힘들었습니다. 진가가 이때다 싶어 우리를 괴롭혔습니다. 항주에 있는 우리 가문의 차밭을 집어삼키려고요. 그때 스물 남짓하던 진빈이 그 일로 제 아비와 크게 싸웠습니다.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노태태와 태태는 그 마음을 기억하고 계시고요.”
문 이야의 눈썹이 높이 올라갔다. 영해가 또 한 번 달리 보였다. 몇십 년 전에 진가 가주와 아들이 싸운 일도 다 알다니. 어떻게 알았지? 분명 연줄이 꽤 있는 것이다!
“12년 전, 진빈의 아비가 어쩌다가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려서 밖에서 횡사했습니다. 진가 방계들이 이때다 싶어 난리를 피웠는데, 노태태와 태태가 나서서 진 나리를 도와 진가를 지켰습니다. 그렇게 진빈이 가주 자리에 올랐지요. 그래서 진빈은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아도 매우 고마워합니다. 성에 있는 능운루, 그리고 이 복음각도 우리는 제집처럼 다녀도 됩니다. 진 나리 본인이 가는 것보다 우리 체면을 더 세워주거든요.”
“진가에서 거스른 게 누구길래?”
문 이야가 묻자, 영해가 후다닥 돌아보며 대답했다.
“당시 양강(兩江: 예전 강남성, 강서성을 통틀어 부르는 말) 안무사 번백도(樊伯韜), 백 수사(帥司)입니다.”
“음. 번가엔 지금 누가 있고?”
“특출난 자손이 없습니다. 경성의 저택도 진작 팔았고요.”
문 이야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영해란 아이, 꽤 총명하군.
“개국한 이래, 1품 관리 중에 번백도처럼 운이 좋고 어리석은 자는 많지 않지.”
문 이야는 이신에게 말하면서 따라오며 들으라고 영해에게 손짓했다.
“번백도는 황상이 왕부로 나갔을 때, 지명받고 왕부로 들어간 호위였네. 복안 장공주가 태어나기 몇 년 전엔 황상은 처지가 매우 어려웠지. 그래서 그때 연줄을 조금이라도 댈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연줄을 대서 왕부에서 나갔어. 번백도는 연줄도 없고, 아둔해서 고분고분 왕부에 남을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황상이 황상이 될 줄이야. 번백도는 운이 트였지. 경성 관아 부윤(府尹)이 되었다가 전전도지휘사(殿前都指揮使)가 되었네. 번백도 이자는 원래 능력도 없이 성깔만 있고, 탐욕스러웠다네. 작은 일도 반드시 복수하는 사람이라고, 부윤 시절에 이미 명성이 매우 안 좋았는데 나중에 전전도지휘사가 된 후로는 더 악명이 자자해졌네. 조정에도 뜻 맞는 관리가 거의 없었어. 대부분 그자를 없애고 싶어했는데, 그럴수록 번백도는 태산처럼 굳건히 자리에 있었네.”
“황상이 그렇게 옛정을 챙깁니까?”
이신은 이 놀라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그는 고리타분하기보다는 오히려 세상일을 대할 때 융통성 있는 사람이었다. 벼슬길에 나가기 전에 이렇게 은밀한 내막을 알게 되는 게 얼마나 귀중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문 이야는 하, 하고 웃었다.
“옛정을 챙겨? 나중에 여 상공이 번백도를 강남동로 겸 강남서로 안무사로 임명하라고 제안했을 때 황상이 허락하지 않았네. 그런데 번백도가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있나. 황상에게 청해서 결국 양강으로 부임했네. 하지만 1년도 안 되어서 그가 사고 쳤을 때 황상은 그 길로 심문하고 참수했네. 그런데도 황상이 옛정을 그리는 사람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