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첫 만남 二
문 이야의 웃음소리와 함께, 월백색 소주 장삼을 입고 허리에 옥 허리띠를 두른 이신이 마당 정문으로 들어섰다.
문 이야는 이신이 눈앞에 올 때까지 빤히 바라봤다.
요 몇 년 할 일 없고 답답해서, 현학당 앞에서 손금을 보고 관상을 보는 영감 옆에 쭈그리고 앉아 관상술을 연마했었다.
걸을 때 자세가 바르고 발걸음이 가벼우면서도 묵직하니 탄탄하군. 나이가 어린데 눈빛은 이미 그윽하니 깊어.
다듬지 않은 옥석이군! 보기 드문 귀한 옥석이야! 십 년 정도 잘 연마하고, 가문에서 뒷받침해줄 수 있다면…….
문 이야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중서성은 물론이고 수상(首相: 수석 승상)도 될 수 있겠어!
“아침 문안드립니다. 학생, 어젯밤에 귀가가 늦었는데 선생께서 곤히 잠드셨길래 깨우지 못했습니다.”
이신은 어느새 문 이야 앞에 서서 공손하게 장읍하며 예를 갖췄다. 솔직히 공손하게 대할 용모가 아니고 다리도 절지만, 무시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견문을 넓히러 세상을 떠돌던 동안, 전혀 눈에 띄지 않게 생겼는데 놀라운 큰 인물을 적잖게 만났었다. 골탕도 꽤 먹었고.
“음!”
문 이야는 몇 가닥밖에 없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공손한 이신의 모습이 매우 흡족했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는군. 좋아!
“언제 일어났는가?”
문 이야는 한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 손은 뒷짐 진 채 꽤 선생 같은 모습으로 물었다.
“인시 말입니다.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힌 습관입니다.”
이신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릴 때 처참한 일을 겪었기에 자신에게 엄격했다. 아이가 너무 일찍 일어나면 키가 자라지 않고 근골이 상한다고, 정 어멈이 매일 잔소리해도 인시 말엔 꼭 일어났다.
문 이야가 얼굴을 구긴 채 이신을 흘겨봤다.
“늦네! 인시 말이라니! 조정의 논의가 벌써 시작한 시간이네! 내일부터는 늦어도 인시 정각에 일어나게!”
이신은 그동안 연마해 오면서 태산처럼 끄떡없는 경지엔 이르지 못해도 그 비슷하게 침착하다고 여겼었는데, 문 이야의 그 말에 다리가 삐끗했다.
문 이야가 불만인 듯 삐딱하게 그를 바라봤다.
“내년 춘시에 혹시 급제하면, 서길사(庶吉士: 한림원 관명. 진사 가운에 문학에 뛰어난 사람을 뽑아 임명함) 시험은 봐야 하지 않겠는가. 거기서 뽑히면 황상을 곁에서 모시게 되네. 그러면 당연히 매일 조회에 참석해야지! 황상을 모신다는 건, 맹호와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네.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지. 조정 대신들의 암투는 말할 것도 없네. 언제든 닥칠 일인데,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 하려고? 닥친 다음에야 비몽사몽 조회에 나가려고? 죽고 싶은 것인가?”
이신은 문 이야가 욕하는 소리에 기분이 묘해졌다. 아동이 날 위해 찾아준 선생이…… 정말이지……. 이건 정말…….
“선생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이신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묘하고, 피를 토하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지만 반응은 꽤 빨랐다.
“선생께서 하신 말씀을 정말로 한 번도 고려한 적이 없습니다. 춘시는 매우 어렵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저는 나이도 어리고 처음으로 참가하는 것이라, 한 번에 붙으리라고 감히 생각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라도 얼른 생각하게. 가까스로나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네. 내일부터 인시 정각에 일어나게. 자넨 아직 젊으니, 삼탕을 먹지 말고, 제비집 죽이면 되네. 제비집 죽 한 그릇이면 충분해. 속이 비어야 머리가 맑아지네! 인시 일각에 내가 자네와 함께 화원을 돌면서 그 전날 조정 대사를 알려주겠네. 그런 다음 인시 말에 서재로 들어가서 책론(策論)을 한 편 쓸 것이네. 그건 나는 잘 모르는 것이니, 자네가 알아서 쓰면 되네. 묘시 이각에 아침을 먹고…….”
문 이야는 두어 마디 만에 이신이 아침에 할 일을 정해주었다. 이신은 내년 춘시에 붙을지 걱정인 모양이지만,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급제할 놈이 아니라면 그분이 뭐 하러 자기를 여기에 보냈겠나. 자기는 개똥 같은 문장은 쓰지도 못하는데.
아, 그렇지. 이신을 잘 살펴보라고도 하셨지.
이신은 문 이야와 함께 화원을 거닐고 아침을 먹은 다음 잠시 틈이 나자 서둘러 장 태태를 찾아갔다.
이동은 아침 일찍 건너와 어머니와 함께 아침을 먹었고, 마침 어머니와 함께 조마조마하며 오라버니가 문 이야를 처음 만난 상황이 어땠는지 알려주러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문 이야는 괴팍한 사람이었다. 전에 그가 강환장에게 욕을 퍼붓는 것도 적잖게 봤었다. 그러나 욕을 하긴 해도, 강환장에게 몹시 마음 쓰는 것을 똑똑히 봤었다. 조금도 소홀하지 않았었다. 그는 강환장 곁에서 20여 년 동안, 그녀와 마찬가지로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그 20년 동안 수많은 이가 그를 모셔가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는 강환장을 위해 문 이야를 붙잡으려고 애쓰며 온 세상의 유명한 요리사를 찾아다녔다…….
그가 강환장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심지어 경멸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내 이해할 수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 어째서 그렇게 최선을 다해 강환장을 보좌했을까. 처음 따른 사람은 끝까지 따르려는 마음에? 아니면 그와 강환장 사이에 그녀가 모르는 다른 연유가 있는 걸까. 첫 번째이길 바랐다. 오라버니와 문 이야가 첫눈에 서로 마음에 들었길 간절히 바랐다.
설령 두 번째라고 해도, 문 이야와 오라버니가 뜻이 맞는다면, 그가 오라버니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나중에 강환장의 휘하에 들어가더라도 오라버니와 이런 친분이 있었으니 나중에, 혹시 나중에 일이 생기더라도 봐주지 않을까.
이신이 죽을상을 하고 들어오자, 이동은 순간 가슴이 철렁 가라앉아서, 어떻게 됐는지 먼저 물을 수가 없었다.
“이 문 이야…… 선생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시는군. 이 문 이야, 뭐랄까…….”
이신은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고는 이야기를 했다. 거처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이야기부터 듣던 이동은 문 이야가 인시에 일어나서 제비집 죽을 마시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한시름 놓았다. 등이 흠뻑 젖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강환장도 인시에 일어나서 제비집 죽부터 먹었다. 나중엔 삼탕으로 바꿨고, 인시 정각에 문 이야와 함께 마차를 타고 나갔다. 그 마차에서, 지금 오라버니와 화원을 거닐었던 것처럼, 조정에서 의논할 만한 사안을 강환장과 정리했다. 황상이 물을지 모르는 사안, 그리고 가끔은 강환장이 나서서 시비를 걸어야 하는 사안들을 알려주었다. 인시 말에 마차가 정확하게 선덕문 앞에 멈추면 문 이야는 마차에서 기다리고 강환장은 조회에 나갔다.
“역시 생각이 면밀하신 분이구나. 우리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장 태태가 유심히 듣다가 웃음 지으며 하는 말에 이신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어머니도 제가…….”
이신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춘시는 재능이 4할, 운이 6할이라고 합니다. 이건…….”
이동이 이신의 말을 잘랐다.
“오라버니는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하세요. 나랑 어머니는 일단 좋은 쪽으로 생각할 거예요. 우린 상관 말아요, 오라버니. 나는 오라버니가 장원이 될 거로 생각하는걸요. 생각만 하고 지금까지 말을 꺼내진 못했지만요.”
장 태태가 웃음을 터트렸다.
“간도 크구나! 나는 장원까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일갑(一甲)엔 들겠지 했지.”
이신은 두 사람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일갑은 어디 쉽고요? 장원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아동을 나무랄 일인가요?
이신은 이어서 문 이야 이야기를 했다.
“문 이야는 정무에 매우 정통했습니다. 지난해 춘시에서 상평창(常平倉: 물가 조절을 위해 곡식을 조절해서 비축하는 일, 그런 일을 하는 기관) 문제가 나왔습니다. 작년에 견문을 넓히러 돌아다닐 때 일부러 상평창 몇 곳을 둘러보면서 우리 점포 장궤들에게 세세히 가르침을 청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문 이야와 몇 마디 나눠보니, 식은땀이 줄줄 나지 뭡니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춘시는 책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더구나. 책론이란 글만 잘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정무를 꿰뚫고 그에 대한 견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네 글 짓는 솜씨야 입댈 것 없고, 문제는 실무지. 우리가 선생을 제대로 모셨구나!”
장 태태는 지극히 영리한 사람이었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서서 이동을 향해 장읍했다.
“누이, 날 위해 마음 써줘서 고맙다. 앞으로 반드시…….”
“오라버니, 우린 가족이에요. 오라버니가 잘되어야 나와 어머니가 잘 지낼 수 있어요. 우린 오라버니에게 의지해야 하는걸요.”
이동이 이신의 말을 잘랐다. 그녀는 이신에게 말로 다 못 할 고마움과 미안함이 있었다.
“동동의 말이 맞다. 넌 선생에게 잘 배워라. 공부만 하면 된다. 다른 건, 어미와 네 누이가 있으니 넌 하나도 신경 쓸 것 없다.”
장 태태가 하는 말에 이신은 웃어 보였다.
“참, 한 가지 더. 닷새 뒤에 보림사에 축원 법회가 있답니다. 이야가 그러는데, 보림사 축원 법회엔 귀한 분들이 왕림한답니다. 그때 둘러보러 데리고 가주시겠답니다.”
“보림사 축원 법회? 음, 전에 들어본 것 같구나. 선생이 데리고 가주신다니, 당연히 가야지. 귀한 분들이 없더라도 많은 곳을 둘러봐야 한다. 걱정할 것 없다. 내가 준비하마.”
장 태태는 곧바로 승낙했지만 이동은 가슴이 철렁했다. 보림사 축원 법회가 무언지 알고 있었다. 복안(福安) 장공주(長公主)가 시작한 법회였다.
복안 장공주 임염진(林念眞)은 주 태후의 늦둥이 딸이자 선황의 막내로 황상보다 열여덟 살이나 어렸다.
복안 장공주가 태어나기 몇 달 전부터 세상에 큰 가뭄이 들었다. 성격이 충동적인 선황은 비를 바라는 조급증에 욱해서 비가 올 때까지 곡기를 끊겠다고 하늘에 맹세했다.
그렇게 내리 사흘을 굶었는데 하늘은 맑디맑아 구름 한 점 없었다. 황제가 곡기를 끊고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데, 문무백관 중에 누가 감히 식사를 하랴. 다들 따라서 곡기를 끊어 눈앞이 핑핑 돌았다.
사흘째 저녁, 다급해서 방방 뛰던 주 태후, 그때는 아직 황후였던 그녀는 너무 조바심을 낸 나머지 격렬한 복통이 왔고, 보름 뒤에나 태어날 복안 장공주가 세상에 나오려 했다.
주 태후가 격렬한 복통을 느끼고 출산 준비를 하는 바로 그때, 하늘이 뒤흔들리더니 먹구름이 몰려왔고, 복안 장공주가 태어나는 순간 땅을 흔드는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 큰비는 꼬박 하루를 내려 큰 가뭄을 해소했다.
황제뿐만 아니라 문무백관들도 이 어린 공주가 복덩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와 함께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대신 중에 굶어 죽은 사람 하나둘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기연으로, 선황은 이 어린 딸을 매우 남다르게 대했다.
게다가 복안 장공주는 발랄하고 귀엽고 남다르게 영특했다. 처음엔 남다르게만 생각하던 선황은 갈수록 애지중지했고 나중엔 떠받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선황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복안 장공주의 음식, 기거 모두 몸소 살피고 신경 썼다. 선황을 모셨던 나이 든 대신들은 예전에 선황이 대신들과 함께 정사를 논의하면서 복안 장공주에게 밥을 먹이거나 토닥토닥 잠을 재우던 모습을 지금도 기억했다.
복안 장공주가 여덟 살이 되던 해, 선황은 몸져누운 이래로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눈 감기 전에 유일하게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 국가 대업이 아니라 바로 이 막내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