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대접
“가서 녹매에게 말해. 문 이야를 잘 대접하라고.”
이동은 잠시 바라보다가 문죽에게 분부하고 곧바로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문 이야의 재주가 어떤지, 그녀는 사실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전(錢) 노부인과 능구렁이 같은 백(白) 노부인이 몇 번이고 칭찬하는 걸 들었었다.
다리를 저는 저자가 진정한 조정의 부승상이라고. 저 절름발이가 없으면 강 승상과 수녕왕부가 있을 수 없다고.
어제는 혹시 모를 희망을 품고 시도해 본 것이었다. 어느 집안에서 모시는 건지 말하라는 소리도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상인 집안과 백부는 세상 사람 눈엔 하늘과 땅 차이로 보일 테니까.
그런데 그가 정말로 올 줄이야.
정말로 내가 사람을 보내서 온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안 그래도 대접을 소홀히 할 수 없던 녹매는 문죽의 말을 듣고 더 세심하게 마음을 썼다. 문 이야가 단숨에 고기 두어 근을 먹어 치운 걸 보고, 혹시 배 터져서 죽으면 어쩌나 하고 달달 떨었다.
“이야, 천천히 드세요. 양고기는 얼마든지 있답니다. 후원에 갈양을 기르는걸요. 하나같이 지금 드신 것보다 좋은 놈이랍니다. 다음에 또 먹어요. 이야, 모르시겠지만, 우리 소유 언니가 굽는 양고기, 그거야말로 맛있답니다. 이야, 그만 드세요. 좀 쉬었다가 저녁에 구이로 드시는 건 어때요? 이야, 그만 드세요. 혹시 체하면……. 이야, 다음에도 드셔야죠. 아직 열몇 마리는 남았어요. 모자라면, 관사를 시켜 더 사면 돼요. 얼마든지 드실 수 있어요. 이야, 그만 드세요. 우리 집엔 양고기가 얼마든지 있답니다. 이야…….”
녹매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먹기 바쁜 문 이야를 맴돌며 끊임없이 말했다. 문 이야가 덥석덥석 먹을 때마다 간이 떨렸다. 세상에, 이러다가 배 터져 죽으면 어째!
주방 어멈들도 몰려오진 않았을 뿐, 미친 듯이 먹어대는 문 이야를 다들 일거리를 내려놓고 바라보다가 녹매와 마찬가지로 파르르 떨었다. 저 절름발이, 정말 잘도 먹네!
“꺼억!”
문 이야는 목을 길게 빼고 쩌렁쩌렁하게 트림하고는 드디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이미 식어가는 탕을 들고 고개를 젖히고 꿀꺽꿀꺽 마시고는 소매로 입을 닦으며 불룩 나온 배를 두드렸다.
“후련하다! 맛있다! 참 잘 삶았어! 됐다. 이런 양고기가 있다니, 그럼 며칠 아이를 가르쳐 볼까?”
“이야, 괜찮으세요? 대산사환(大山楂丸: 소화제)를 가지고 오라고 했어요. 잠시 기다리세요.”
녹매가 조심스럽게 문 이야의 팔을 부축했다. 벌떡 일어서자마자 쓰러질까 걱정이었다.
“걱정할 것 없다. 얘야. 난 괜찮다. 많이 먹은 것도 아니야. 얼마나 먹었다고. 많긴 뭐가 많아. 난 원래 비범해서 한 끼에 고기를 네댓 근 먹어도 그냥 좀 배가 부르구나 싶은 정도다. 오늘은 많이 먹지도 못했어. 앞으로…….”
문 이야기는 일어서서 뒷짐 진 채 마당을 천천히 돌며 목을 빼고 주변을 살폈다.
“음, 괜찮군. 주방이 꽤 크고 갖출 걸 다 갖췄어. 꽤 부유한 저택인가 보군. 좋아, 좋아. 아주 좋아! 앞으로 나는 고기만 먹을 거라고 주방에 말해놓아라. 다른 건 필요 없다. 고기, 고기만 있으면 된다! 양고기가 제일 좋다. 좋은 과일이나 대추 같은 게 있으면 조금 가지고 오고. 많을수록 좋다. 그리고 차는, 잘 들어라, 나는 명전(明前: 청명절 전에 딴 부드러운 잎 녹차)만 마신다. 그해 새로 나온 명전만. 거처는…….”
이미 주방에서 나간 문 이야는 한 바퀴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 화원은 화초도 좋구나. 내 거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의식주 중에 먹는 것 말고 다른 건 까다롭지 않다. 따지지 않아! 너희 대야가 돌아오려면 얼마나 걸리느냐? 아직 좀 걸린다면 일단 좀 자고 싶구나. 아침 일찍부터 오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새벽에 붙들려 일어난 후로 다시 잠들지 못했는데, 고기와 탕으로 배를 채우고 보니 노곤해졌다.
“저녁때나 되어야 돌아오신댔어요. 일단 객청으로 모실게요. 거처는 일단 낭자께 고하고 바로 정리할게요.”
녹매는 서둘러 문 이야를 모시고 객청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간 문 이야는 하품을 크게 하며 침상에 벌렁 누웠다.
“그리고 나는 저녁에 술 한 잔씩 하는 걸 좋아한다. 많이는 필요 없지만, 반드시 좋은 술이어야 한다. 음……. 옥 당행, 벽광, 경광, 천일취 같은 거면 되겠구나. 기억했느냐? 음, 이 녀석, 꽤 재빠르구나. 이만 가 보아라. 대야가 돌아오면 와서 깨우고…….”
문 이야는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웅얼거리더니 드르렁거리며 잠들었다.
안 죽었네! 배 터져 죽는 줄 알았더니.
녹매는 땀을 훔치며 어멈과 시녀를 불러 문밖에 세워두고 재빨리 보고하러 갔다.
아이고, 낭자. 선생을 모신 거예요, 걸신을 모신 거예요!
이동은 이미 수련과 아이들을 거느리고 이신이 기거하는 자죽원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문 이야가 묵을 곳으로 청아한 작은 마당을 따로 정해주었지만, 문 이야는 거의 한 번도 그곳에 가지 않고 대부분 강환장의 서재가 있는 마당에 묵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유심히 관찰하다가 나중에야 겨우 방향이 잡혀서 강환장의 거처 서쪽의 세 칸짜리 곁채를 모두 텄다. 사방을 책장으로 채우고, 매우 큰 화리목 탁자를 방 중앙에 두고 구석엔 작은 침상을 두었다. 문 이야는 매우 좋아하면서, 그길로 그 드넓은 곁채에서 십수 년을 머물렀다.
자죽원은 2진 구조이고, 2진의 크기가 거의 비슷했다. 이신은 안쪽 마당에서 묵었고, 이동은 바깥쪽 마당을 둘러보고는 감을 잡고서 돌아갔다.
오라버니의 거처라서 건드리려면 오라버니가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허락받고 해야 한다. 큰 예법도 틀리면 안 되지만, 사소한 일에도 더욱 세심히 마음 써야 했다.
이동을 찾은 녹매는 문 이야의 일거수일투족에서 표정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고하고는 쓴웃음 지으며 말했다.
“낭자, 무슨 선생이 이래요? 육(肉) 선생인가요?”
“대야가 돌아와도 바로 알릴 것 없어. 오라버니에겐 내가 말할게. 선생이 깨시면 오라버니가 만나러 가면 돼.”
이동은 설명도 없이 분부했다. 설명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경성까지 이삼일 걸리는 거리에 있는 현 역참은 그동안 지나온 모든 역참과 마찬가지로 정북후부 호위들이 깔끔하게 안을 비워두었다. 역승까지 저 멀리 쫓겨났고, 역참 밖엔 호위들이 열 걸음마다 하나씩 장창을 곁에 들고 대쪽처럼 곧게 서 있었다.
위풍낭은 역참 정원 상방 앞에서 회랑 기둥에 기댄 채 무료한 듯 하늘 가득한 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영원은 방 안에서 백주 홑옷만 입고 탑상에 다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탑상 앞에 유월이 공손히 서서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
“마마가 칠야를 일찍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얼른 오시랍니다.”
“오가아 이야기 좀 해 봐.”
영원의 안색이 서늘했다. 누님이 왜 서둘러 오라고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위를 떠난 화살이 다시 돌아보지는 않는 법.
“예! 오왕야는 매우 좋아 보였습니다. 혈색도 좋고, 활기 넘쳤습니다.”
“그래.”
영원은 길게 숨을 내쉬며 어깨를 풀었다. 안색도 서서히 누그러졌다. 오가아의 몸이 어떤지가 제일 걱정이었었다. 오가아가 병약한 것이 다 누님이 적의 눈을 가리려는 계책인 건 그와 아버지 모두 눈치챘지만, 확신이 없었다. 어찌 됐든 누님이 오가아를 품었을 때 약을 썼었으니까. 게다가 누님이 오가아를 가진 그해에 고민이 너무 많아서 누님의 심신이 편하지 않았었다.
유월을 보낸 것도 누님이 아니라 오가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만일 오가아가 정말로 소문대로 폭죽 소리에도 기겁할 정도로 병약하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써서 누님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어서 궁에서 빼낼 생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누님과 함께 지낼 생각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그길로 북으로 가서 풀을 이불 삼아 살려고 했다. 적어도 자유로울 테니까.
그런데 오가아가 활기차고 건강하다니, 하늘이 영가를 보우한 것이다.
“다른 건?”
영원이 다시 물었다.
“자다가 불려 나오셨는지, 졸려 보였습니다. 하지만 눈동자가 또렷하고 눈빛이 매우 밝았습니다. 검은 눈동자가 먹처럼 까만 것이, 두 눈이 칠야와 매우 닮았습니다.”
유월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잠깐 봤을 뿐이지만, 오왕야가 매우 좋았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 우리 영가 핏줄답군! 흥!”
영원은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한순간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오가아가 건강할 뿐만 아니라 매우 영리한 모양이었다. 만사가 다 갖춰졌으니, 이제 자기가 좋은 수만 내면 되리라.
“경성 소식 이야기해 봐.”
“예. 최야가 소인이 때를 잘 맞췄다고 했습니다. 칠야께서 알아보라고 한 일, 사소한 게 너무 많아서 서신으로는 다 쓸 수 없어 얼굴 보고 말하는 게 좋다고요.”
유월은 간결하고 명료하게 경성 각 가문의 사소한 일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진왕은 외숙 양설곤을 매우 세심하게 돌본답니다. 양설곤은 별명이 와우(蝸牛)로…….”
“뭐라고? 와우? 와우라니?”
영원이 말을 끊자, 유월이 헛웃음 치며 벽을 가리켰다.
“바닥에 기어 다니는 그 와우, 달팽이요. 양 구야의 이름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데, 별명은 사람과 참 잘 어울린다고, 최야가 그러시더군요.”
영원은 쥘부채를 차르륵 펴며 두 눈썹을 하나씩 치켜올렸다.
“경성, 꽤 재미있군. 계속 해봐.”
“예! 진왕의 생모 양빈의 부친은 원래 육부 말단 관리인데, 병에 걸려서 그대로 세상을 떠났답니다. 안 그래도 빈곤한 양가는 설상가상이 된 거지요. 양와우는 유복자인데, 양빈이 자청해서 궁인이 된 이유가 바로 아우의 병 고칠 돈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양빈은 아우를 지극히 아끼는데, 진왕이 출궁하여 왕부를 꾸린 후로는, 많을 때는 하루에 네 번이나 사람을 보내 외숙을 잘 돌봐야 한다고 진왕에게 당부한답니다. 진왕 역시 외숙을 특별하게 돌보고 있고요. 진왕이 궁에서 나와 왕부에 기거한 이래, 양 구야는 크고 작은 사건을 꽤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진왕이 나서서 해결해 주었고요.”
“어떤 일들이지? 한 건, 한 건 세세히 말해.”
지금 살아 있는 황자는 오가아를 포함해서 모두 넷으로, 다른 셋을 반드시 철저히 감시해야 했다. 저택에 떨어지는 나뭇가지 하나도 모두 다 큰일이었다.
“예.”
유월은 양 구야가 저지른 사고들을 세세히 이야기했다.
“최야가 그러는데, 이 양 구야는 구제 불능이랍니다. 게으르고 식탐 많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어찌나 작은 이득을 밝히는지 얄미울 정도랍니다. 그런 작은 이득을 밝히는 심보가 사달을 내는 화근이랍니다.”
“음. 알아들었어. 얼마 전에 벌어진 4만 은자 그 건도 묵 승상 댁 묵칠 소야에게 빌린 다음에 다음 날 진왕부 장사, 수녕백 세자 강환장이 은표를 들고 가서 묵칠에게 갚았다고?”
“예.”
“재미있네. 진왕과 그 새로 임명한 장사가 매우 가까운 모양이지. 그 강환장에 관해서 이야기해 봐.”
“예!”
유월은 강환장의 부친, 수녕백 강화원 이야기부터 했다. 강화원이 대대로 내려온 저택을 저당 잡힌 이유가 상고 휘묵을 사기 위해서였다는 대목을 들은 영원은 껄껄 웃으며 쥘부채로 탁자를 내리쳤다.
“최신에게 전해. 그…… 먹을 판 사람을 찾아서 내 앞에 데리고 오라고. 이런 거 좋다! 상고 휘묵이라니. 그런 걸 다 생각해 내다니, 정말 묘한 놈일세.”
“예.”
유월도 어이없는 듯 웃다가 영원이 웃음을 멈추자 이어서 말했다.
“소인이 돌아왔을 때, 이씨는 벌써 영수암 밖에 있는 이가의 별원에 묵고 있었습니다. 지금 강환장은 이낭 고씨의 뒷배가 되어 수녕백부 안살림을 그녀에게 맡겼답니다. 최야가 알아낸 소식으로는, 고씨가 수녕백부에서 매우 힘들게 지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