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62화 (62/463)

62화: 이야가 오다

이동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문 이야가 괴짜인 건 알았지만, 사람이 모시러 갔는데 제대로 듣지도 않고, 여지도 없이 쫓아내더니 오늘은 또 별안간 찾아왔다고?

게다가 어디에서 사는지 어떻게 알고 여기로 찾아왔을까.

“대문 앞에 가 봐. 누가 대야를 찾는다고 문지기가…….”

이동이 퍼뜩 입을 다물었다.

“너, 대야의 이름을 말했었니? 잘 생각해 봐, 이야기했었어?”

“아니요! 대야의 성함은커녕 성도 꺼내지 못했는걸요!”

녹매가 매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럼 대야가 이신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이동은 더 의아해졌다. 아무래도 녹매 때문에 오늘 문 이야가 찾아온 게 아닌 듯했다. 오라버니의 선생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왜 온 걸까?

“문지기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문 이야가 맞는데. 네가 가 보렴. 문 이야가 맞으면…….”

이동이 말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렸다. 문 이야가 얼마나 영명한 사람인지, 그녀야말로 너무나 잘 안다. 게다가 문 이야는 글공부한 다른 사람과 달랐다. 아니, 글공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는 소위 도덕이라는 것을 경멸하고, 성인(聖人)이야말로 진정한 화근이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도덕은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에서 수신이란 속셈과 악랄함을 키우는 것이지 도덕과는 눈곱만큼도 상관없는 일이라고 했었다.

예전에 그녀에게는 그녀가 수신제가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말도 했었다.

“문 이야 맞아. 바로 모시고 들어와. 그분이 말하지 않은 건 아무것도 묻지 마. 오라버니가 돌아온 다음에 이야기하자. 들어오려고 하지 않으면, 길게 말하지 말고 그냥 돌아오고.”

녹매가 다급하게 마당 밖으로 나갔다. 이동은 녹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주저하다가 일어서서 뒤를 따랐다.

“수련, 나랑 같이 가자.”

단숨에 대문 앞으로 달려간 녹매는 문턱을 넘어 나갔다. 역시나, 말도 못 꺼내게 하던 문 이야가 맞았다. 고개를 들던 문 이야도 녹매를 보고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펄쩍 뛸 뻔했다.

“네가 어째서 여기 있는 게냐?”

“어머, 정말로 어르신이셨네요. 제가 여기 사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가리키며 똑같이 고함쳤다. 문 이야는 눈동자를 굴리며 녹매를 힐끗 보고는 입을 다물고 녹매가 말하길 기다렸다.

“문 이야, 뒤따라오신 건가요? 음……. 우리 대야에 관한 일을 수소문 하셨어요? 우리 이씨 가문도요? 정말 세심하시네요. 바람이 많이 불어요. 들어가세요. 대야가 금방 돌아오실 거예요.”

문 이야는 얼굴을 굳힌 채 고개만 끄덕이고는 나귀를 문지기에게 내주었다.

“매우 귀한 나귀일세. 일단 깨끗하게 씻기고, 검은콩을 섞어서 여물을 주게.”

“예, 어르신, 마음 푹 놓으십시오.”

문지기가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고, 문 이야는 문지기의 그 미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를 흘겨봤다. 한참 동안 흘겨보다가 앞장서라는 듯 녹매에게 눈짓하며 뒷짐을 졌다.

녹매는 불퉁스러운 얼굴로 문지기를 흘겨보는 다시 문 이야를 바라봤다.

올해 서른 남짓이라고 낭자가 그랬는데, 문지기가 어르신이라고 부르니 화가 난 거지. 하지만 생김새를 봐. 예순이라고 해도 믿겠네. 문지기 탓이 아니지!

중문으로 들어간 뒤 몇 걸음 가지 않아 문 이야가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치켜들고 킁킁거렸다.

“음? 이게 무슨 냄새냐? 양고기?”

“냄새가 나요? 저는 모르겠는데요.”

녹매도 따라 냄새를 맡았다. 무슨 냄새가 난다고 그래. 큰 주방이 얼마나 먼데.

“정말로 양고기 냄새를 맡으셨어요? 코가 예민하시네요. 두 해 된 갈양(羯羊: 거세한 양)을 잡았거든요. 대야가 얼마 전에 호주 고향 집에서 오셔서…….”

“두 해짜리 갈양! 어쩐지. 그래 그렇지. 음! 바로 이 냄새다. 이 냄새……. 음, 향기롭다! 좋은 양이군. 어디서 고는 거냐? 내가 가서 봐야겠다! 두 해짜리 양이라니, 여간 좋은 놈이 아니다. 주방에서 아무렇게나 고아서 그 좋은 걸 낭비하면 안 된다! 얼른 가자! 앞장서라! 주방에 제대로 훈수해 줘야겠다!”

문 이야는 코를 벌름거리며 뒷짐 진 채 앞으로 달려갔다. 녹매가 길 안내할 것도 없이 냄새를 찾아서 곧장 주방을 향해 달려갔다. 문 이야를 따라 잰걸음으로 달리는 녹매는 달리느라 숨이 다 거칠어졌다. 문 이야는 어느새 냄새를 따라 정확하게 큰 주방을 찾아내고서 곧장 주방이 있는 마당으로 달려 들어갔다.

대뜸 주방으로 뛰어 들어간 문 이야는 냄새를 따라 큰 솥에서 끓고 있는 양고기를 향해 갔다. 주방에서 바삐 움직이던 어멈들이 깜짝 놀라 호통쳐서 내쫓으려는데 녹매가 따라 들어갔다. 녹매는 문틀을 잡고 헉헉대면서 모두를 향해 손사래 쳤다.

“그러지 마세요! 제가…… 제가 모시고 온 거예요. 저예요……. 괜찮아요.”

“새로 들인 요리사야 뭐야? 들어오자마자 주방으로 온 거야?”

긴 대나무 대를 들고 양고기가 잘 고아졌는지 살피던 소유가 문 이야를 힐끔 살피고는 녹매를 돌아보며 물었다. 녹매는 가슴을 치며 겨우 숨을 골랐다.

“아니에요. 대야 선생으로 모신 분이에요. 선생…… 선생이신데…….”

냄새를 맡더니 앞뒤 가리지 않고 이곳으로 달려왔어요!

“다 되었다! 벌써 다 되었어! 딱 좋을 때야, 지금이 딱 좋아! 어서, 어서! 불을 꺼! 얼른 꺼!”

문 이야는 벌써 양고기 솥을 빙빙 맴돌고 있었다. 소유가 막고 있자, 돌아서서 다시 돌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을 향해 손짓해댔다. 당장 제 손으로 고기를 건지고 싶은 듯한 모습이었다.

근래 너무나 빈곤했고, 최근 1, 2년은 가련할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상할 정도로 양고기가 비쌌다. 거들떠보지도 않는 늙은 양마저 도저히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그래서 벌써 2년 동안 양고기를 맛보지도 못했다. 그 2년 동안 가끔 돼지머리를 먹으면서 식욕을 다스려야 했고. 돼지머리 역시 좋기는 하지만, 양고기하고 비교하면…….

그런데 지금 이렇게 최고로 좋은 양고기가 펄펄 끓는 솥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이 냄새, 큼직큼직한 고깃덩이, 이 향긋한 양탕……. 2년 동안 쌓인 문 이야의 식충이 모두 몰려왔다. 눈이 다 벌게질 정도로 침이 고여서 솥 안에 양고기와 탕 말고 다른 건……. 다른 것도 있으려나?

“누가 이런 사람을 대야의 선생으로 모신 거야. 꼴이 이런 사람이 선생이야?”

소유는 침이 고여 입맛을 다시는 문 이야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손을 내밀었다가 거뒀다가 하는 문 이야를 젓가락으로 내리치며 막았다.

“선생이라고? 아귀가 아니고?”

“아이고!”

녹매가 헛웃음 쳤다. 상상 초월한 행실이지 않은가. 식견을 뒤엎은 행실이기도 하고. 문 이야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이지만, 자기가 데리고 온 사람이니, 소유가 그렇게 말하기 전에 이미 얼굴이 화끈화끈해졌다.

아이고, 낭자, 잘못 아신 것 아니에요? 이렇게 창피한 사람이 무슨 선생이에요.

“잘 들어! 이 양고기, 바로 지금이 딱 좋을 때다! 얼른 불 끄고 한 덩이 건져서 맛보여 주게. 얼른! 저거, 저거로! 비계와 살이 딱 어우러진 저 덩어리로! 저런 게 제일 맛있다. 저거로 주게! 얼른 건져!”

문 이야 눈엔 펄펄 끓는 양고기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 덩이 건져 드려요.”

녹매는 도저히 눈을 뜨고 봐줄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게걸스러운 꼴이라니. 작년부터 굶었나 봐.

소유는 녹매를 힐끔 보고는 문 이야를 잠시 흘겨보다가 혀를 차며 어멈에게 눈짓했다. 어멈이 실실 웃으면서 꽤 큼직한 접시를 꺼내 왔다. 소유는 문 이야가 가리키는 양고기를 젓가락으로 건진 다음 그것보다 더 큰, 껍질이 붙고 비계와 살이 함께 있는 덩어리도 함께 건졌다.

문 이야가 접시를 덥석 받아서는 바로 손을 내밀자, 소유가 들고 있던 긴 젓가락으로 문 이야의 손가락을 탁 내리쳤다.

“뜨겁다고요! 연한 탕으로 우린 고기를 이대로 어떻게 먹어요! 추 어멈, 다져둔 부추장(醬) 한 그릇 퍼다 줘요.”

주방 어멈들 모두 손을 멈추고는 이 희한한 문 이야를 바라봤다. 녹매가 가난한 친척 누구를 데리고 온 줄로만 여겼다. 추 어멈이 일어서서 부추장을 잔뜩 펐고, 다른 두 어멈도 따라 일어나서 한 어멈은 작은 의자를 내주고 낮은 탁상을 꺼내 와서 젓가락을 건넸다. 다른 어멈은 노릇노릇하게 익은 천층병(千層餠: 얇게 여러 겹 기름에 부친 병)을 한 접시 담고 또 들여다보다가 양고기 잡탕을 한 그릇 가득 퍼서 향채를 뿌린 다음 앞에 놓아주었다.

“여기 이분, 누님, 전문가군요. 맑은 갈양육엔 역시 다친 부추장이 최고지! 그럼 사양 않고 먹겠소!”

문 이야는 목을 내밀고 장을 기다리는 와중에 체면을 차려 인사까지 하고는 장이 도착하자 한 손으로 장 접시를 들고 다른 손으로 젓가락을 들더니 양고기를 장에 찍어서 입에 넣었다. 뜨거운지 혀를 굴리면서도 재빠르게 먹어댔다.

소유는 문 이야를 노려보며 손에 든 긴 대나무 젓가락으로 가리키다가 한참 만에 겨우 목소리를 냈다.

“녹매, 대체 어디에서 데리고 온 걸신이냐?”

“그게 아니라, 이분은…….”

녹매도 문 이야가 먹는 꼴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낭자가 대야의 선생으로 모신 사람이라고 말하면…….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가 없잖아! 선생은 다들 예의를 따지는 법인데, 이런 선생이 어디에 있어!

“더 주시오…….”

문 이야는 뜨겁지도 않은지 눈 몇 번 깜빡하는 사이에 커다란 양고기 덩어리를 거의 다 먹고서는 신이 나서 씹으면서 소유에게 말을 걸었다.

“……더…… 주시오. 두 덩어리. 큰 거로……. 큰 거로 주시오. 잘 들어요……. 더 오래 두면, 씹는 맛이 덜해져! 얼른! 두 덩이…… 더 주시오! 제일 큰놈으로!”

소유는 긴 젓가락을 든 채 넋이 나가 있었다.

“소유 언니, 어차피 많잖아요. 몇 덩이 더 건져 줘요. 모자라면, 양이 아직 많잖아요. 더 잡으면 되지. 추 아주머니, 미안하지만 이…… 나리에게 부추장도 더 담아 줘요. 차도 좀 내어드리고.”

녹매는 속이 답답한 건 답답한 거고, 낭자가 모신 손님이니 제대로 대접하긴 해야 했다.

“녀석, 착하구나!”

문 이야가 고맙다는 듯 녹매를 바라봤다.

“차는…… 되었다. 탕을 다오! 고기탕! 저 솥에 있는 탕!”

추 어멈은 다시 그릇을 가지고 가서 부추장을 가득 담다가 참지 못하고 웃고 말았다. 그러다가 잠시 바라보고는 큰 그릇을 꺼내 향채 다진 걸 한 움큼 잡아서 뿌리고 솥에 든 양고기 탕을 부어서 문 이야에게 내어주었다.

이동은 수련, 문죽을 데리고 어멈이 알려준 대로 큰 주방 측문으로 들어가서 그 옆에 서서는 마당 안을 바라봤다.

문 이야가 마당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신이 나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이동은 멀리서 그런 그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예전에 그를 자주 만난 건 아니었다. 처음으로 정식으로 만났을 때가 바로 그의 누님이 중병에 들었을 때였다. 일부러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그가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제가(齊家)가 무언지 전혀 모른다.’고 말했다. 사실 그때 그녀도 어렴풋이 그걸 깨닫고 있었다. 물론 이미 늦었었지만.

두 번째로 만난 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태자가 죽은 그날 저녁에 그가 그녀를 찾아왔다.

‘달아나세요. 지금 바로요. 멀리멀리 달아나세요. 강가와 함께 죽을 것 없습니다. 그럴 가치가 없는 곳입니다.’

그녀는 달아나지 않았다. 전생의 그땐 이미 혈혈단신으로 외로운 신세였는데 달아날 의미가 뭐가 있었을까. 죽는 게 두렵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틀 후, 고 이낭의 고명이 내려왔고 그녀는 몸져누운 후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땐…….

두 사람은 바로 얼마 전에 만난 사이였다. 다만, 그녀는 그 사실을 알지만, 그는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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