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전 어멈
“잘못 본 거 아니야? 은자 10만? 10만이라고? 정말로……. 10만? 다들 가짜라고 하던데?”
“내가 직접 들고 와서, 직접 세었어! 나도 잘못 본 거면 좋겠네!”
전 어멈이 이렇게까지 놀라자, 오 어멈은 오히려 침착해졌다.
“내가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한 장, 한 장 꺼내서 세는 걸. 빳빳한 새 은표, 천 냥짜리 모두 백 장! 나뿐만 아니라 만 어멈도 있었잖아. 대내내의 거처에서 전청까지, 나랑 만 어멈이 같이 들고 갔다고. 대내내 앞에서 똑똑히 세었고, 전청에서 또 한 번 세어서 고사현과 고 노야에게 주었고, 우리 세자야는 옆에서 보고 있었어. 그 많은 사람이 봤는데, 잘못 볼 리가 있어? 10만 냥이었어. 은표 10만 냥! 한 장도 빠지지 않았다고!”
전 어멈은 가슴을 두드리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강가 세자야에게 오통신이 씐 게 아니라, 그냥 오통신 그 자체로구나!
“그렇게 쉽게 은자를 손에 넣더니, 다음 날 고가 그 도적놈들이 우르르 쳐들어온 거야. 고가 그 천것이 제 아비와 오라비하고 내통한 게 아니라면 내 머리통을 당장 베어서 내놓을 거야!”
전 어멈은 드디어 놀라움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 그건 또 모르지. 이미 강가 대문을 넘었으니 세자야의 사람인데, 바보도 아니고, 강가를 해치는 일을 해서 자기에게 득 될 게 뭐가 있어서.”
“득 될 게 없어?”
오 어멈이 싸늘하게 웃었다.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거야. 그 천것이 아비와 오라비를 끌어들여서 강가에 쳐들어온 게 저한테 무슨 장점이 있겠나 싶어서. 나중엔 드디어 알았지.”
오 어멈은 손뼉을 짝 치고는 전 어멈에게 바짝 다가갔다.
“생각해 봐, 아비와 오라비하고 짜고 훔친 물건이 누구 거야? 대내내 거라고! 다 대내내의 혼수야! 대대내의 물건을 고가로 가로채 가는 건데, 아비와 오라비가 아무것도 안 주겠어? 고가는 말이야, 이번 일로 물건에, 은자에, 어림잡아도 2, 30만 냥은 챙겼어!”
“세상에나, 그렇게나 많이?”
전 어멈은 놀라서 목소리가 확 커졌다. 고가, 완전히 대박 났구나!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어제는 사람을 보내 곳간 열쇠를 달라지 뭐야? 대내내의 남은 혼수를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해 봐, 그 손을 거치면 남는 게 있었어? 풀 하나도 남지 않을걸?”
“아이고야, 내 심장! 심장! 어쩌면 이렇게 탐욕스러운 인간이 있지?”
전 어멈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정말로 가슴이 아픈 것 같았다. 이렇게 큰 재물을, 이렇게 쉽게 얻는 사람이 있다니!
오 어멈이 코웃음 치며 말을 이었다.
“이젠 알겠지? 이게 첫 번째 이득이고, 두 번째 이득은 더 크지!
우리 대내내는 안 그래도 다쳐서, 의원들이 반드시 정양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던 참이었어. 절대로 속을 끓이면 안 된다고. 네가 말해 봐. 혼인한 지 두어 달 만에, 첩년 일가가 도적처럼 쳐들어와서 혼수를 싹 다 훔쳐 갔는데, 말 좀 해 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평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뭐? 대내내를 화병으로 죽일 생각이었다는 거야? 악랄한 것들!”
전 어멈은 이미 답을 얻었지만, 놀란 얼굴로 고함쳤다.
“바로 그걸 노린 거라니까. 아이고, 참. 따지고 보면 대내내, 참 배짱도 있고 참을성도 있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병이 너무 심해서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네. 저택에서 나갈 때도 실려 나갔는걸. 그걸 보고도, 우리 나리는 대내내가 꾀병이래. 제대로 미친 거 아니야? 안사돈 태태가 결단 있어서 다행이지. 그날 밤에 바로 대내내를 친정으로 데리고 갔어. 휴, 이 지경이 됐는데도, 안사돈 태태가 세자야 체면을 생각해주더라고. 대내내가 병이 깊어 정양해야 해서 성 밖으로 데리고 가는 거라고. 불법 듣기 편하다고 말이야.”
“아이고머니나!”
전 어멈이 양손을 짝짝 두드렸다.
“그 고 이낭, 완전히 땡잡았네. 대내내의 혼수를 다 가로채고, 대내내를 저택에서 내쫓기까지 했잖아. 앞으로 그 집 나리랑 정실 부부처럼 살겠네? 부인은 그걸 못 본 체하시는 거야? 전혀 상관하지 않고?”
“부인 성격을 몰라? 백야의 황당한 행동도 한마디도 안 하는걸. 내가 이야기하면 오히려 화를 내셔. 세자야가 틀릴 리가 있냐고. 세자야는 두어 살부터 말문이 트이고 유창하게 말을 시작한 이래로 잘못한 적이 없다고. 세자야가 뭘 잘못하면, 팔자가 사납다고 울어. 세자야가 잘못한 게 아니라, 자기 팔자가 사나운 거래. 다른 건 몰라도, 그 점은 신선이 내려와도 못 말려.”
부인 이야기가 나오자, 오 어멈은 더더욱 속이 터졌다.
전 어멈은 슬슬 오 어멈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남이 아니니까, 언니, 거슬리는 말 한마디 할게. 전에 진가에 있을 때부터, 진가 종복으로 사는 게 참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강가는, 내가 보기에 진가보다 더 못해.”
“맞는 말이지! 다른 건 몰라도 인심을 생각해 봐. 나 말이야, 열몇 살부터 부인을 모셨잖니. 부인을 따라 강가에 왔고. 지금까지 내가 부인한테 얼마나 충성스러웠는지 몰라. 충성했다고 자신 있게 말해도 되는 거 아니야? 이번에 벌어진 일로, 어깨부터 허리까지 여기저기 멍들어서 꼴이 말이 아니다. 심하게 다쳤어. 우린 다 나이 들어서, 이렇게 다친 데다가 속까지 끓였는데 멀쩡할 수가 있겠냐고. 바로 병이 났지.”
“병이 난 것도 모르고 있었네. 지금은 괜찮아?”
전 어멈이 냉큼 걱정하며 물었다.
“그냥 여기저기 멍들었지. 천천히 나을 거야. 그건 됐고, 들어 봐. 성심을 다해서 긴 세월 동안 부인을 모셨잖아. 내가 팔을 다쳐서 병 든 걸 모를 리가 없잖니. 그런데 한 번도 사람을 보내 어떤지 묻지 않으시더라. 그래, 그것도 그렇다 치자. 어찌 됐든 주인이니까. 그런데 오늘 꼭두새벽부터 사람을 보내서 굳이 오래서 갔더니, 얼굴 보고도 괜찮은지, 좀 나았는지도 묻지 않더라고!”
오 어멈은 잔뜩 상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것도 묻지 않을 수 있어. 주인이니까. 그런데 방 안 가득 사람을 세워두고 날 훈계하잖아. 자기가 아픈데, 내가 그날 일을 핑계로 집에 처박혀서 쉬고 있다지 뭐야? 평소에 그렇게 잘해줬는데, 배은망덕하다면서. 세상에, 배은망덕하대. 배은망덕. 내가 화가 나서…… 정말이지…….”
오 어멈은 목 놓아 울고 싶은 심정으로 가슴을 부여잡았다.
“부인한테 그런 걸 다 바랐어? 아이고! 괜히 쓸데없이 제 속 들볶는구먼! 부인이 어떤 사람인지, 그걸 아직 몰라서? 전에 내가 그랬지? 부인한테 종복은 사람이 아니라고. 사람이 아닐뿐더러, 개 고양이만도 못하다고. 개나 고양이를 기를 땐 쓰다듬어주고 칭찬도 하잖아!”
오 어멈은 더 풀이 죽었다.
“그러니까. 얘, 솔직히 말해서, 강부에서 돌아올 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 참, 재미없다고. 이제 나이도 들었고, 이렇게 속 태우기 싫더라고. 이렇게 고생할 게 무어야. 넌 모르겠지만, 지금 강가는…….”
오 어멈은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다. 세자야가 수녕백부를 고가 천것에게 넘겨주었는데, 그 아래서 일하는 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부인을 위해서 마음 졸이고 노심초사하며 긴 세월 보냈는데, 대내내가 안살림을 맡는다면 또 몰라. 진짜 주인이니까. 우리가 뭐 할 말이 있겠어. 대내내가 당연히 맡아야지! 그런데 지금은, 세자야가 대뜸, 집안을 고가 손에 넘기겠다잖아! 고가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는 둘째치고, 네가 말해 봐, 몇십 년 동안 고생한 나는 뭐야? 공은 없어도 수고한 보람도 없다고! 너한테 솔직히 말하는 건데,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내일 바로 그만둔다고 할까 봐. 더 하고 싶지 않아. 무슨 재미가 있어서? 몇십 년 동안 헛수고했지!”
논 2백 묘 딸린 작은 장원을 떠올린 오 어멈은 눈물을 훔쳤다. 정말로 상심했고, 정말로 정이 다 떨어졌다.
때가 무르익은 걸 깨달은 전 어멈이 냉큼 속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생각할 일이 아니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적당하지 않은 예를 하나 들어볼게. 지금 상황은, 긴 세월 시어머니 밑에서 버틴 며느리 같은 처지야. 좋은 때라고.”
“참 희한한 말을 한다.”
오 어멈은 한순간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서 놀란 얼굴로 전 어멈을 바라봤다.
“잘 들어 봐. 며느리랑 시어머니가 다른 점이 뭐야? 며느리는 일하는 사람이고, 시어머니는 트집 잡는 사람이잖아. 시어머니 노릇은 쉽고, 며느리 노릇은 힘들지! 언니가 그 수녕백부를 긴 세월 관리했잖아. 온 집안사람이 언니 사람인데, 누가 안살림을 맡든 무슨 상관이야. 언니가 마음만 먹으면 못 알아낼 일이 있겠어? 그게 살림이 언니 손에 있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어? 굳이 차이가 있다면, 드디어 언니 대신 잡다한 일을 신경 쓸 사람이 생긴 거지. 직접 나설 필요가 없어졌는데, 안 좋을 게 뭐야? 그냥 부인 곁에 서서, 고 이낭이 일하는 걸 지켜보기만 하면 돼. 잘하는지, 못하는지 똑똑히 보고, 언니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잖아. 무슨 문제야?”
전 어멈이 완곡하게 말했지만, 오 어멈은 바로 알아들었다. 오 어멈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다가 천천히 깨달았다.
“그 말은…… 그렇지! 대내내라면 당당한 명분이 있지만, 지금은 당당한 백부를 이낭 손에 넘긴 거잖아? 그런데 하필 그 이낭이 양심이 없고 손버릇도 나빠서…….”
“그러니까 얼마나 좋냐고. 대내내가 안살림을 맡았다면, 진짜 주인이니까 설령 잘못하는 게 있어서 한마디 하고 싶어도 잘 생각하고 해야 하잖아. 어쩌면 잘 생각한 끝에 그냥 입 다물 수도 있고. 그런데 지금 얼마나 잘 됐어. 상대는 비첩이야. 언니가 예를 올리는 것만 해도 체면을 세워주는 셈인데, 잘못하는 게 있으면 대놓고 말하면 그만 아니야?”
전 어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 어멈은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네 그 말은……. 역시, 네가 식견이 넓구나. 역시 나보다 보고 들은 게 많아. 그렇지, 맞는 말이지. 노심초사할 필요가 뭐가 있어. 차라리 한발 물러나서 편하게 쉬는 게 낫지. 귀띔해줘서 고마워. 잘 생각해 봐야 할 일이야.”
“언니, 한마디 더 할게.”
전 어멈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가늠했다. 정말이지 몇십 년 친분을 생각해서 성심성의껏 귀띔해 주는 말이었다.
“언니, 이제 우리는 젊지 않아. 일을 얼마나 오래 할 수 있겠어. 나도 매파 노릇을 몇 년이나 더 하겠냐고. 슬슬 뒷일을 생각할 때야. 나는 일단 됐고, 언니는 강가에 있으니까 지금부터 잘 생각해야 해. 이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말이야. 그 저택에서 누굴 믿어야 하고, 누굴 믿으면 안 되는지 잘 생각해.”
오 어멈의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아들이 둘인데, 큰아들은 어린 손자를 남기고 작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은아들은 여덟 살부터 세자야 시중을 들었는데, 어느 해 초봄에 세자야 대신 나무에서 연을 꺼내다가 넘어져서 폐를 다쳤다. 그 고질병이 아직 남아서 매일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고 산다. 며느리는 집에서 아이 키우랴, 환자 돌보랴 이미 정신이 없고.
그녀 지아비는 장두로 일하는데, 막 혼인했을 때는 상황이 괜찮았지만 갈수록 상황이 나빠졌다. 장원을 하나하나 팔았고, 지아비가 맡은 장원도 팔았는데 지아비까지 팔려 가는 걸 그녀가 겨우겨우 막았다. 지아비는 농사짓는 재주밖에 없는데 장원이 없어졌으니, 지금까지 상방에서 허드렛일하며 풀칠했다. 작년에 이가에서 강가 장원 두 곳을 다시 사 왔을 때, 그 장원을 달라고 부인에게 빌었다. 그런데 이가에서 장원을 넘겨줄 때 장 태태가 이미 장두를 다 결정해 두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 일로 화가 나서 보름 넘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결국 염치 불고하고 장 태태에게 부탁해서 장원에서 잡일을 하게 되었다.
그녀 일가는 긴 세월 동안 오로지 그녀만 바라보고 살았다.
그것만 아니라면 누가 안살림을 맡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으로는, 전 어멈이 말할 것도 없이 안살림이 대내내에게 가든, 세자야가 고 이낭에게 넘겨주든 자기가 관여할 일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