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53화 (53/463)

53화: 주거니 받거니

“소인이 쓸데없는 말씀을 올렸습니다.”

송 대장궤는 곧바로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방법을 생각해 오게. 무슨 일이 있어도, 미시 정각까지는 4만, 4만은 절대로 구해야 하네. 한 푼도 적으면 안 돼!”

강환장은 똥줄이 탔다. 30여 년 동안 쌓아온 소중한 경험은 모두 조당의 쟁론, 정무 같은 큰일이었다. 은자 같은 아도물, 이런 하찮은 일로 마음 졸였던 적이 있어야 말이지. 은자를 쓸 땐 입만 열면 그만이었거늘.

“비단 점포라면 2만에서 2만 5천 냥에 저당 잡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약방도 있습니다. 두 점포를 저당 잡히면 4만을 구할 수 있습니다. 팔면 더 많이 받을 것이고요.”

송 대장궤의 말이 거침없어졌다.

일개 장궤에게 동가가 이런 말을 하다니. 그야말로 생트집이지!

“자네!”

강환장은 탁자를 힘껏 내리치며 송 대장궤를 노려봤다. 알을 얻자고 암탉 배를 가르는 짝 아닌가. 점포를 팔아버리면, 강가의 재운까지 파는 것인데!

이 사람이 예전에 흐르는 강물처럼 재물을 불리며 장사하던 송 대장궤가 맞는가?

예전엔 송 대장궤와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필묵을 직접 고르는 걸 좋아하고, 고씨 대신 지필 색깔을 고르는 걸 좋아해서 매번 점포에 가서 필묵을 고를 때마다 항상 송 대장궤가 맞이했다. 언제나 공손하고 주도면밀하고, 그의 앞에서 허리조차 제대로 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줄곧 매우 좋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어리석게 배 째라는 태도로 나오는 인간일 줄은 몰랐다.

“일단 저당 잡히고, 배 두 척이 돌아오면 은자가 생기잖아요.”

고 이낭이 주눅이 들어 말을 꺼내자, 송 대장궤는 흘깃 그녀를 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강환장은 탁자를 내리쳤다. 아무리 조바심이 나고 화가 나도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예전의 그는 은자 일로 고민한 적이 없으니까. 아도물, 구리 냄새 풍기는 것들을 혐오하는 사람이니까.

예전 이 시기에 내가 이렇게 은자로 고생했었던가? 그래서 그때 묵칠 그놈이 4만 은자로 혜택을 입었구나. 예전에 내가…… 이랬구나…….

“고씨의 말이 맞네. 4만 냥을 급하게 써야 하니, 일단 저당 잡히고, 선박이 돌아오면 다시 돌려받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송 대장궤는 한마디도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공손히 알겠다고 대답했고, 강환장은 짜증스러운 듯 손을 휘저었다.

“어서 가게! 뭘 꾸물거리는 게야. 미시 정각 전에, 반드시 은자를 가지고 오게!”

수녕백부를 나온 송 대장궤는 뒷짐울 지고 고개를 숙인 채 어정어정 골목 입구까지 가서 모퉁이를 돌아 곧장 성 밖으로 달려갔다. 점포를 저당 잡히는 큰일은 고야의 한마디만 따를 수가 없었다. 직접 성 밖에 가서, 대내내 아니면 태태의 분부를 받아야 했다.

이 점포들, 진지하게 따지면 아직은 온전히 강가의 것이 된 게 아니거늘!

만 어멈은 자죽원에 가까워졌을 때 드디어 어쩌면 좋을지 가닥이 잡혔다. 돌아서서 지나가던 시녀를 불렀다.

“얘야, 심부름 하나 해주련. 자죽원으로 가서 대야가 쉬고 계시는지 자초에게 물어보고 오렴. 그리고 정 어멈이 어디 계시는지도 물어보고 오렴. 내 여기서 기다리마.”

대답하고 달려간 어린 시녀는 오래 걸리지 않아 뛰어 돌아왔다.

“대야는 아직 목욕 중이시래요. 목욕 시중은 들지 말라고 하셔서 언제 끝날지 모른대요. 정 어멈은 막 자죽원에 도착해서 대야가 가지고 온 서책을 정리 중이시래요. 대야가 준비를 마치면 함께 태태를 뵈러 간대요.”

“착하구나! 진주에게 가서 내가 주라고 했다고, 와사당(窩絲糖: 꿀타래) 한 상자 달라고 해서 먹어라.”

만 어멈이 웃으며 시녀 아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정 어멈이 마침 자죽원에 있다니, 너무 잘 되었다.

“전 은사강당(銀絲姜糖: 생강타래) 좋아해요!”

시녀 아이가 매우 천진난만하게 하는 말에 만 어멈은 웃음 지었다.

“그럼 진주에게 은사강당을 달라고 하렴. 얼른 가 보아라.”

어린 시녀는 폴짝폴짝 달려갔고, 만 어멈은 자죽원으로 들어갔다.

정 어멈은 사람들이 이신의 서재를 꾸미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유모, 좀 쉬어요. 호주에서 먼 길을 오셨잖아요. 배를 타고 왔다고 해도, 출렁거리는 곳이 집에서 쉬는 것과 같나요. 이러다 몸져누우면 신가아뿐만 아니라 태태까지 마음 아파하실 거예요.”

만 어멈의 모습이 보이기 전에 소리부터 들렸다.

“멀쩡하네. 난 뱃멀미도 하지 않는걸. 오는 내내 대장궤가 잘 보살펴 줘서 경치 구경하면서 잘 왔지. 배가 멈출 때마다 맛있는 것도 먹고, 정말 호강하며 왔다니까. 자네는 무슨 일인가? 태태가 재촉하시던가?”

정 어멈은 깡마르긴 했지만 매우 기운 차 보였다.

“유모를 뵈러 왔어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정 어멈이 장 태태의 유모라서 만 어멈을 비롯한 어멈들도 어릴 때 정 어멈 밑에서 배웠다. 정 어멈은 성격도 좋고 마음씨는 더 고와서 다들 매우 친근하게 따랐다.

“그럼 안쪽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세.”

정 어멈도 똑똑한 사람이었다. 이동의 모습을 보고 이미 생각이 많았는데 만 어멈이 이렇게 말하자 얼른 서재에서 나와서 상방으로 안내했다.

“방에 들어갈 것 없어요. 괜히 답답하지, 뭐. 날씨도 좋은데 회랑에 앉아서 이야기해요.”

“뜰을 보고 있으면 편안하지. 그럼 회랑에서 이야기하세.”

만 어멈이 제안하자 정 어멈도 찬성했다. 정 어멈이 찬성하자 만 어멈은 자초를 불러 낮은 의자를 회랑에 놓았다. 자초는 작은 의자 몇 개를 더 가지고 와서 차를 끓이고 간식 몇 개 곁들어 주고 물러갔다.

“낭자는 어찌 된 건가? 2월에 혼인하지 않았나. 어째서 이런 때에 여기로 와서 묵는 게야? 무슨 일이야? 그리고 낭자 이마는 왜 그렇게 부은 건가?”

정 어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까 이동이 머리에 하얀 면사를 두른 걸 봤을 때부터 묻고 싶었다. 장 태태를 친딸처럼 여겼으니, 이동 역시 친손녀처럼 여겼다.

만 어멈이 길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이고! 바로 그 일 때문에 온 거 아닙니까! 듣고 화내지 마세요. 뭐, 나는 화가 나서 미치겠지만요!”

만 어멈은 강가 두 낭자가 이동을 민 일부터, 보름 동안 일어난 크고 작은 일을 다 이야기했다. 강환장이 어쨌는지, 진 부인은 또 어쨌는지, 저택의 종복들은 어떤지, 그리고 고 이낭, 청서 이낭 어쩌고저쩌고, 빠짐없이 자세히 이야기했다.

정 어멈과 만 어멈이 회랑에 자리 잡았을 때, 이신은 정방에서 씻고 나와서 옷을 갈아입고 바깥채로 나오다가 마침 이동이 강가에서 겪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신은 휘장 안에 서서 잠시 듣다가, 조용히 화항 가로 가서 걸터앉은 채 집중해서 들었다.

“어휴. 유모,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말씀 좀 해 보세요.”

만 어멈은 오늘 아침에 들어온 소식까지 다 이야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환장이 고 이낭에게 안살림을 맡기고 뒤에서 전력으로 지지해준 이야기, 그리고 강환장이 진왕부 장사 직책을 받은 이야기였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강가,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정 어멈은 씩씩대며 팔걸이를 연신 내리쳤다.

“진정하세요. 화내지 마세요. 낭자는……. 휴. 낭자가 정말 하룻밤 만에 철이 들었습니다. 예전엔, 유모도 아시잖아요. 태태가 낭자를 떠받들고 키워서 세상 사람이 다 착한 줄로 알고, 마음도 여려서 잘 참지를 못하고 언짢은 건 곧바로 얼굴에 드러납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르신! 전 가끔 낭자가 태태보다 더 나이 들어 보일 때가 있어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만 어멈이 허벅지를 탁탁 내리쳤다.

“이러고 어찌 사나. 잘 듣게, 강가에서는 분명 우리 낭자를 죽일 생각인 걸세! 사람 마음이란 원래 고약한 법이야! 사람 마음이 제일 악독하지! 태태는 어찌하실 생각이라던가? 그런 집안을……. 아이고, 태태가 얼마나 가슴 아플까!”

정 어멈은 장 태태가 가슴 아플 게 가슴 아팠다.

“뭘 어쩌겠어요. 혼인도 다 한 마당에. 게다가 그런 집안이잖아요. 작위가 없다면 화리를 하도록 생각이나 해 보겠지만, 지금은……. 아이고. 제가 보기엔 태태도 뾰족한 수가 없지 싶어요. 오히려 낭자가요, 이왕 나온 이상, 고야가 정신 차리기 전엔 재산을 나누고 별거하며 지내겠답니다. 보시라고요, 이제 대체 무슨 일이랍니까? 아직 혼인한 지 반년도 안 되었습니다.”

만 어멈과 정 어멈은 번갈아 가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어르신, 강환장이 언제 정신을 차릴까요? 제 생각엔 정신을 차리기 전에 더 어리석은 짓을 할 것 같습니다. 만약…… 나쁜 생각이라도 품으면, 낭자와 태태, 외로운 모녀의 뒷배가 되어줄 사람이 누가 있어요. 태태 팔자가 사납더니, 어째서 낭자까지 이렇게 팔자가 사나울까요.”

“노태태도 이런 팔자였지! 이건 정말!”

정 어멈은 눈물을 훔치고 또 훔쳤다. 정말이지, 별 뾰족한 수가 당장 나오지 않는 일이었다.

“만 어멈, 왔는가.”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은 이신이 휘장을 열고 나가자, 만 어멈이 다급하게 일어서서 예를 갖췄다.

“오랜만에 만났더니, 키가 훌쩍 크셨네요.”

“그러니까. 요 몇 년은 금방 눈에 띄게 큰다네. 태태가 옷을 보내주시면, 받아서 보기만 해도 벌써 작아 보여. 좋은 옷을 몇 벌이나 버렸는지 모른다네.”

정 어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태가 얼마나 신경 쓰시는데요. 낭자에게 옷 만들어주는 걸 좋아하시는데, 낭자 옷 만들 때마다 신가아를 떠올리십니다. 이 색을 입으면 분명 멋질 거다, 저 무늬가 얼마나 예쁘냐, 길한 색상이다, 신가아에게 만들어줘야겠다 하신다니까요. 신아가는 둘째치고, 낭자도 키가 한창 크던 해엔 옷을 다 짓자마자 작아서 못 입었어요. 아이들 옷은 다 그러니까, 버린 건 아니지요.”

만 어멈은 위아래로 이신을 살폈다. 맑은 눈빛이 침착하고 대범한 것이 딱 봐도 큰 인물이 될 모습이었다. 만 어멈은 보면 볼수록 좋았다. 낭자에게 이런 오라비가 있으면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겠나.

“신가아, 준비되었으면 이제 가세요. 슬슬 시간이 되었어요. 얼른 점심 먹고, 어르신도 그만 움직이고 돌아가서 낮잠 주무셔야지요.”

만 어멈은 다가가 정 어멈을 부축했고, 이신은 살짝 허리를 숙이고 두 사람을 앞장세우고 뒤를 따랐다.

뜰에서 나간 만 어멈은 정 어멈을 잡은 손을 놓고 살며시 이신을 잡아당겨서 뒤로 쳐지면서 나직이 말했다.

“신가아, 낭자의 이마를 봐도 못 본 체하고 아무 말씀도 하지 마세요.”

이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만 어멈을 바라보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말문을 연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또 하나, 이건 그냥 듣고 흘리세요. 요즘 집안이…… 이래저래 힘들답니다. 태태가 긴 세월 집안을 지탱해 왔는데, 인제 나이도 많고 낭자는 혼인했잖아요. 전에 태태가 앞으로 이 집안을 맡을 사람이 없다고 은근히 걱정하는 걸 들었어요. 하지만 어쩝니까. 특히 낭자는, 휴. 집안에 사람이 없다는 건 낭자에게 친정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태태 말씀을 들어보니, 양자를 들일 생각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알아만 두세요.”

이신이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고개를 숙이니 새로 지은 청회색 장삼 자락과 발에 딱 맞아 편안한 진청회색에 푸른 무늬를 댄 신발이 보였다.

네 살이 되던 해부터 지금까지 이런 생활을 해왔다. 모든 것이 알맞게 갖춰진 생활이었다. 이 깊은 은혜를 모두 느끼고 기억하고 있었다.

만 어멈이 아까 한 말들은 모두 자신더러 들으라고 한 말일 것이고, 듣다 보니 만 어멈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휴, 아동이 그렇게 고된 삶을 살 줄이야. 그런 고얀 놈과 혼인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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