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51화 (51/463)

51화: 가르침

밖에서 처참한 고함과 함께 혼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눈시울을 문지르던 손이 떨려서 눈을 찌를 뻔했다. 강환장은 화를 내며 손수건을 집어 던지고 정방에서 나갔다. 그 순간 정신없이 울부짖는 고 이낭과 딱 마주쳤다.

“뭐가 이리 소란스러우냐?”

강 환장은 고 이낭을 지나쳐 몇 걸음 만에 달려 나가 휘장을 젖히고 고 이낭 뒤에 따라붙은 한 무리의 꼬리를 향해 버럭 고함쳤다.

극도로 분노했다. 잠시도 조용히 지낼 순 없는 거냐!

“오라버니? 괜찮은 거예요?”

고 이낭은 뛰느라 비녀가 비뚤어지고 머리카락도 흐트러졌다. 그녀는 휘장을 젖히고 나간 강환장 뒤에서 눈물을 철철 흘리며 딱 달라붙어서 강환장을 쓰다듬어 보고는 넋이 나갔다.

“독산이, 오라버니가 위험하다고 했어요. 독산이에요. 독산이 그랬어요. 오라버니가 위험하댔어요! 그러니까, 오라버니가 그럴 리가 있나…….”

고 이낭은 무슨 일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잘못을 깨달았다. 울며불며 달려온 것은 체통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잘못을 감지한 고 이낭은 더 큰 본능으로 얼른 책임을 떠넘겼다. 내 탓이 아니야. 다 독산 잘못이야!

강환장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청서가 치맛자락을 든 채 수화문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청서 뒤엔 잔뜩 들뜬 표정인 추미와 불안함에 떠는 춘연이 있고, 그 뒤엔 어멈과 시녀들이 줄줄이 따랐다.

하지만 강환장이 멀쩡히 상방 문 앞에 서 있는 걸 본 종복들은 밀물보다 더 빨리 사라졌다. 강환장이 벼락같이 화내기 전에 싹 사라지고 없었다.

강환장은 어수선한 눈앞의 모습에 다시 신물이 올라왔다. 본보기를 보였는데도 부족하단 말인가. 아직도 이렇게 법도 없이 호들갑을 떤단 말인가.

“세자야가 어떻게 된 건가요? 무슨 일이에요?”

봉운이 치맛자락을 들고 바람처럼 수화문 안으로 들어오다가 강환장이 멀쩡히 서 있는 걸 보고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세자야, 아무 일도 없으시군요. 고 이낭이 세자야가 죽었다고 울면서 달려가더라고, 소복이 그래서 부인이 기절하셨어요……. 세자야는 멀쩡하시네요. 얼른 의원을! 어서요! 부인의 얼굴이 다 시퍼레졌어요.”

봉운이 일어나려고 낑낑대며 기둥을 붙잡자, 청서가 후다닥 달려가서 부축했다. 봉운은 다른 사람은 상대할 겨를도 없이 강환장만 바라보는데, 다급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세자야, 어서 가 보세요.”

강환장은 질겁해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렀다. 어머니가 지금 세상을 떠나버리면, 3년 상을 치러야 한다. 3년 동안 갇혔다가 나가면, 그땐 모든 게 다 늦는다!

“어서 의원을 모셔라! 대교! 어서 가라! 어서 가서 모셔와라!”

강환장은 미친 듯이 고함치며 뛰쳐나갔다. 다른 건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만큼 빠르게 뛰어서 정원을 향해 질주했다.

봉운은 강환장 뒤에서 울며불며 따라갔다. 청서는 고 이낭을 흘겨보며 콧방귀를 뀌고는 손수건으로 후려치며 추미와 춘연에게 눈짓했다.

“우리도 가 보자. 이러다가 저 천것 때문에 부인이 조만간 화병으로 돌아가시겠네!”

고 이낭은 문에 기대섰다. 화도 나고 두렵기도 했다.

이게 왜 내 탓이야? 독산이야! 독산이 세자야가 위험하댔어. 그게 왜 내 탓이야?

단숨에 정원까지 달려간 강환장은 두 시녀의 부축을 받고 통곡하며 나오는 진 부인과 마주쳤다.

“아이고, 내 팔자야. 팔자가 사납기도 하지! 내 아들아……. 내 팔자야…….”

진 부인이 멀쩡히 살아있는 걸 본 강환장은 크게 안도하면서도 다리에 힘이 풀려 달달 떨렸다.

그는 진 부인을 안으로 모신 다음 화를 꾹 누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곧 의원이 당도했고, 의원이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걸 보고 의원을 배웅하고 나니 맥이 탁 풀렸다. 회랑으로 나가서 기둥을 붙잡는데, 신물이 가득 넘어왔다. 화도 났지만, 누굴 향해 화를 내야 할지 몰라서 온몸이 쑤시고 기운이 빠졌다.

강환장은 애써 몸을 일으켜 힘없이 수화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목소리 높여 이리 오라고 고함치자, 허드렛일하는 어멈이 대답하며 다가왔다.

“오 어멈에게 지금 바로 다녀와라. 부인이 편찮으시다고, 곧바로 와서 시중들라 해라. 반 시진 준다고 해. 반 시진 안에 오지 못하면 앞으로 다시는 올 것 없다고 하고!”

강환장은 어멈이 대답하기도 전에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소매를 휘두르며 정원 밖으로 성큼성큼 나갔다.

이런 건 다 사소한 일이지. 더 급하고 중요한 큰일이 있으니까. 4만 은자,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묵칠에게 돌려주어야 해.

정원 입구에는 머리가 산발인 채 매무새가 흐트러진 고 이낭이 한쪽에 웅크리고 있고, 다른 편엔 청서, 추미와 춘연이 서 있었다.

넷 다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강환장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바들바들 떠는 고 이낭을 얼이 빠진 채 바라봤다. 고씨의 대범하고 청아한 분위기, 느긋하고 담담한 자태를 평생 보아왔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이, 그 고씨인가?

고 이낭은 강환장의 시선에 살이 떨렸다.

“오, 오라버니, 독산 때문이에요. 독산이…….”

“독산은 세자야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고, 슬퍼서 울고 계신다고 가서 말려 보라고 했잖아. 자네들한테도 그렇게 말했지? 설마, 독산이 자네한텐 다르게 말했나?”

청서가 말을 받아서 물었다.

이럴 때 한 방 먹여야지, 내가 바보야?

강환장은 청서가 일을 키우는 것은 상대도 하지 않고 청서 등에게는 돌아가라고 분부하고 고 이낭을 돌아봤다.

“돌아가서 깔끔하게 단장하고 옷 갈아입은 다음에 의사청으로 오너라. 할 말이 있다.”

청서는 시원스럽게 대답하고는 머뭇거리는 추미, 춘연을 데리고 돌아갔다. 강환장의 분부를 들은 청서와 추미는 눈짓하며 각자 엿들을 사람을 의사청으로 보냈다.

고 이낭은 두려워졌다. 정방 안에서 이리저리 생각하면 할수록 오라버니가 할 말이라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정방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 머뭇머뭇했다.

강환장이 사람을 보내 서너 번 재촉한 끝에 가까스로 정방에서 나온 고 이낭은 집에서 가지고 온 헌 옷을 들고 훌쩍훌쩍 울었다.

분명 오라버니가 위험하다고 독산이 말했잖아. 위험하다는 말이 다른 의미가 또 있어? 오라버니와 정이 그리 깊은데,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

다 독산의 잘못이지, 이게 왜 내 탓이야!

옷을 갈아입고 오라니. 입을 만한 옷이라곤 지금 입은 옷 한 벌뿐인 걸 오라버니는 모르는 거지. 대내내는 상자 가득, 옷궤 가득, 옷이 많지만, 난 겨우 한 벌이라 빨면 입을 옷도 없는데.

“이낭, 세자야가 곧 출타해야 한다고 어서 오시랍니다. 벌써 화가 나셨어요!”

어멈 하나가 기별도 없이 휘장을 젖혔다. 쌀쌀맞은 말투에 태도는 더욱 예의 없었다.

“이제 나가!”

고 이낭은 겁에 질려 얼른 눈물을 훔치고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으라고 했지만……. 사실 이틀밖에 안 입은 새 옷이라 더럽지도 않은데…….

강환장은 조바심을 내며 의사청 안을 서성거렸다. 아니, 서성이는 게 아니라 화급하게 저 끝으로 달려갔다가 다시 달려서 돌아오는 모양새였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서 크게 화를 내려는데, 고 이낭이 빛이 바래서 원래 색을 알아볼 수 없는 옷을 입고 어깨를 움츠린 채 거의 벽에 붙어서 들어왔다. 그 모습에 화를 내는 것도 잊고 또 한 번 얼떨떨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오, 오라버니.”

강환장의 시선에 고 이낭은 더 쭈그러들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하며 무릎을 숙여 예를 갖추다가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강환장은 멍하니 고 이낭을 바라보면서 비틀비틀 뒷걸음쳐 의자에 털썩 앉았다.

고씨가 맞나? 진흙에서 자란 연꽃처럼 청아하고 아름답고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그 고씨가 맞아? 견해가 독특하고 재능이 탁월한 그 고씨가 맞아?

아니, 내가 또 조바심을 내는구나!

강환장은 이마를 힘껏 문질렀다. 또 조바심을 냈다. 그녀는 자기와 다르다. 지금 겨우 열일고여덟 살 어린 여인일 뿐이고, 이제 막 그의 곁으로 돌아온지라 아직은 시야도 견해도 다 좁을 수밖에 없다. 겁은 더 많고, 줄곧 아리땁고 나약한 아이니까.

이건 저 아이 탓이 아니야!

“자, 이리 와서 앉아라.”

강환장은 최대한 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를 썼다. 고 이낭은 그런 강환장의 말투에 두근거리던 마음을 달래고 정신도 돌아왔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강환장을 향해 무릎을 구부리고 또 구부리고는 기쁜 마음과 그것보다 조금 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강환장이 가리킨 팔걸이의자에 앉아 그를 마주 봤다.

“널 나무라는 것이 아니니, 들어라.”

강환장은 우선 그것부터 강조했다. 고씨는 겁이 많으니까.

“이야기했었지? 지금은 네가 바로 강부의 안살림을 맡은 안주인이다. 안주인은 첫째, 침착해야 한다. 큰일일수록 침착해야 해. 명심해라. 네가 흐트러지면 온 저택이 흐트러진다. 아까…….”

“잘못했어요, 오라버니.”

고 이낭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얼른 잘못했다고 말했다. 잘못을 빠르게 인정할수록 덜 혼난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실천으로 얻어낸, 틀린 적이 없는 진리였다.

“너!”

지나칠 정도로 시원스럽게 잘못했다는 말이 나오자 강환장은 목이 메고 말문이 막혔다.

“널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고 했잖으냐. 잘못했다고 할 필요 없다. 내 말 들어라. 내가 하는 말, 잘 들으란 말이다!”

“네.”

강환장은 인내심이 바닥 나는 기분이었고, 고 이낭은 겁에 질려 어깨가 다시 움츠러들었다.

“너…….”

돌아온 이래, 강환장이 가장 꼴 보기 싫고 못 견디는 것이 바로 이렇게 어깨를 움츠리고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고씨는 겁이 많으니까.

“무서워할 것 없다. 내 말 들어라. 너는 우리 강부의 안주인이다. 안주인의 기개와 배포가 있어야 해! 아무리 큰일이라도, 설령 온 집안이 멸문…….”

강환장은 진저리쳤다. 내가 왜 이런 말을!

“어쨌든, 무슨 일이 있어도 침착해야 한다. 아까처럼, 만일의 경우, 내가 기절했거나 병으로 쓰러졌더라도, 그렇게 되면 네가 나 대신 이 가문을 지켜야 한다. 더욱 침착해져야 해. 네가 침착해야 이 저택 모두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다. 예전에…….”

강환장의 말이 뚝 그쳤다. 예전에 그가 개돼지만도 못한 이신 그놈에게 탄핵당해 심신이 무너질 것 같았을 때, 이씨는 꼿꼿이, 태연자약하게 서 있었다. 그가 영흥군로에 있었던 몇 해 동안 밤마다 두려움으로 편히 자지 못하다가 저택으로 돌아온 그날은 머리가 닿자마자 꼬박 하루를 꿈도 꾸지 않고 잠을 잤다. 큰일을 태연하게 마주하는 것, 이 점은 이씨가 제법 잘 해냈다.

“넌 아직 어리다…….”

그러고 보니 태산이 무너져도 끄덕하지 않던 그 담담함을 이씨는 언제 단련해낸 걸까? 지금껏 신경 한 번 쓴 적이 없었다.

“서두를 것 없다. 천천히 익히면 된다. 하지만 네가 이 저택의 안살림을 맡은 안주인이라는 건 기억해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넌 흐트러지면 안 된다. 오늘 같은 일도……. 기억해라. 네가 흐트러지면, 이 저택, 이 가문이 무너진다. 알았느냐?”

강환장은 성질을 억누르며 다정하게 나긋나긋 가르쳤다. 고 이낭은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가 잘못한 걸 안다. 이미 안다. 이런 이치를 몰라서가 아니라, 그냥 너무 놀라서 그랬다. 침착하지 않은 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나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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