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7화 (47/463)

47화: 깨달음

이동은 아침을 먹고 손과 얼굴을 닦고 장 태태와 함께 밖으로 나가서 정원을 한참 거닐다가 자등나무 아래 앉았다. 수련과 시녀들이 차를 내오자, 장 태태는 본론에 돌입했다.

“만 어멈이 그러는데, 재산을 나누고 분가할 생각으로 이 난리를 부렸다면서?”

이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제가 넘어진 후로 벌어진 모든 일, 어머니도 보셨잖아요. 수녕백, 진 부인, 그리고 그의 누이 둘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 다 알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그들은 안중에 두지 않았어요. 마음 쓰지도 않았고요. 하지만 강환장은…….”

이동은 장 태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 보세요. 강환장이 아직도 우리와 정혼했을 때 그 사람이던가요?”

장 태태는 눈살을 단단히 찌푸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눈이 멀었고, 어머니도 반밖에 꿰뚫어 보지 못했어요. 그 사람은…….”

이동의 말이 끝나기 전에 만 어멈이 꽃길을 따라 허둥지둥 뛰어 들어왔다.

만 어멈이 다가오자, 장 태태가 눈살을 찌푸리며 먼저 꾸짖었다.

“쯧쯧, 나이도 먹은 사람이, 어째 젊을 때처럼 허구한 날 덤벙대는 것이야.”

만 어멈과 손 어멈 모두 장 태태를 어릴 때부터 모신 시녀들로, 만 어멈은 젊었을 때 성격이 불같아서 장 태태에게 가장 많이 혼났었다.

“태태! 제 말 좀 들어보시면 아세요……. 휴, 정말이지 이게 다 웬일인지 모르겠어요.”

만 어멈은 욕설이라도 내뱉고 싶은 얼굴이었지만, 이내 욕설을 재빨리 삼켰다.

“아까 대요가 왔어요. 얼마나 달려왔는지, 말까지 흠뻑 젖어서 왔더라고요. 낭자가 떠난 후에 고야가 난리가 났었답니다. 그야 마땅히 그래야지요. 어제 그런 일이 생겼는데, 당연히 제대로 혼을 내야지요.

그런데 고야가 어제저녁에 다 보는 앞에서, 앞으로 고 이낭이 강가의 안살림을 맡는다고 선포했답니다. 오늘 묘시에 고야가 직접 고 이낭을 데리고 점호하고 집안일을 배정했다지 뭡니까. 게다가 다 보는 앞에서, 앞으로 감히 고 이낭을 업신여기고 거역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기를 멸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모질게 말했대요. 온 가족 다리를 부러뜨리고 멀리 팔아 버린다고요!”

이 모든 것을 진작 예상한 이동은 흘려들을 뿐 담담한 표정이었다.

역시나, 이번 생에는 예전에 유감스러웠던 모든 걸 만회할 생각인가 보네. 삼매육빙 절차를 거쳐 정식으로 고 이낭을 들이진 못해도, 실질적인 정실로 떠받들려는 것이고. 그 사람의 눈엔, 그 사람의 마음엔, 자기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오로지 고 이낭뿐이니까.

장 태태는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놈, 돌았다더냐? 아동이…… 그 많은 일이 일어났는데……. 고가, 그리고 그 계집애가 어떤 물건인지 아직 제대로 보지 못했단 말이야? 고씨가 어떤 물건인지……. 대체 그놈, 눈이 삐었다더냐?”

만 어멈이 허허 냉소했다.

“그러니까요! 눈이 삐었지요! 어제는 전 관사를 걷어차고 오 어멈 체면을 짓밟더니, 오늘 날이 밝기도 전에 거간꾼을 불러들였대요. 전 관사와 어제 문지기 둘, 그리고 어제 물건을 훔치고도 먼저 내놓지 않은 시녀, 어멈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다 팔았답니다. 그리고 거간꾼에게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해서 고 이낭더러 고르라고 했대요. 제대로 고른 다음에 그 사람들을 잘 부리고, 은혜를 베풀어 주라고 했대요. 고 이낭더러 그 사람들을 다 심복처럼 부리라고. 그뿐이 아니에요. 집안일을 다스리려면 오른팔, 왼팔이 없으면 안 된다고, 심복이 있으면 앞으로 일 처리가 쉬워질 거라고 했답니다.”

장 태태의 눈빛은 매서운데 표정은 오히려 아까보다 화가 풀린 듯했다.

“전 관사는…….”

이동이 눈살을 찌푸리며 만 어멈을 바라봤다.

“걱정하지 마세요. 벌써 사람을 시켜 그 일가를 다 사들였습니다. 성에서 가장 가까운 장원으로 보냈어요. 호일첩의 큰아들도 보내서 뼈를 맞추고 상처 치료하게 했고요.”

만 어멈은 대답한 다음에 한숨을 푹 쉬고 또 쉬었다. 전 관사가 이번에 큰 공을 세울 줄 알았더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팔아 버린 어멈 중에 오 어멈의 사촌 동생 오씨도 있었습니다. 오 어멈이 진 부인에게 부탁해서 부인이 나섰는데도 말리지 못했답니다. 오 어멈은 분통이 터져서 세자야에게 오통신이 붙은 모양이라고 대놓고 말했대요.”

“맞는 말이군! 오통신이 붙은 게 아니고 무엇이야!”

장 태태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는데 오히려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추미와 춘연, 두 아이는?”

“별일 없답니다. 추미가 대요를 통해 전해왔어요. 춘연도 별일 없고요. 다만 추미가 어제 오후에 강 대낭자와 이낭자 눈 밖에 났다고, 며칠 누워있어야겠답니다. 그리고 청서, 청서도 쓰러졌답니다. 정말인지 진짜인지 몰라서 춘연이 다녀왔는데, 정말이라고 하네요.”

만 어멈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상황이 되리라고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제 그런 일을 겪었으니, 세자가 당장 고 이낭을 버리진 못해도 분명 예전처럼 대하진 못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역시 낭자의 말이 맞았다.

“청서가 은자를 가지고 있으니까 괜찮아.”

이동은 어머니에게 차를 따라주고 한 잔 더 따라서 만 어멈에게 건넸다.

“어멈, 차 마셔. 청서는 강부의 가복이고, 이번 일에 가족은 끼지 않았어. 게다가 청서도 고 이낭처럼 강환장이 깊이 총애해. 또 봉운과 관계도 매우 좋고. 오 어멈이 분명 감싸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청서가 별 탈 없으면, 추미와 춘연도 큰일은 없을 거고.

추미에게 소식을 전해. 병 난 척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지금 병이 나면, 고 이낭에게 골치 아픈 일을 보태는 거야. 강완과 강녕 눈 밖에 나는 건 대수롭지 않은데, 지금 상황에 고 이낭을 골치 아프게 하면 큰일 나. 고 이낭이야말로 강환장이 떠받드는 사람이니까. 두 누이는 전혀 안중에 없어. 다들 한동안 신중하고 조심히 움직이라고 모두에게 전해.”

만 어멈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고, 장 태태는 얼떨떨한 듯 이동을 바라봤다.

“강환장이 악질 종복을 팔고 새로 들여온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고 이낭을 도와준다고 해도 큰 효과는 없을 거야. 강가의 진정한 화근은 몇십 년 동안 몸에 밴 게으름, 나태함, 교활함, 악함, 이런 못된 버릇이니까. 이미 뼛속까지 파고들었는데, 고치기가 그렇게 쉽나. 게다가, 오 어멈, 청서, 봉운, 왕 어멈, 이런 사람들은 불붙이고 일 키우기 선수야. 없는 일도 만들고, 흑백을 전도하고, 모든 능력을 그런 나쁜 일에만 쓰는걸. 이 사람들이 아니라도 강완, 강녕, 그리고 진 부인도 있어. 다들 제대로 하는 건 하나 없으면서 망치는 건 잘하지. 새로 사 온 종복들?”

이동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강가의 가풍이 그러한데,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제대로 배우겠어? 잘 배우는 건 어렵지만, 나쁜 물은 금방 들거든. 고 이낭이 강부를 강환장 마음에 들도록 다스린다라…….”

이동은 말을 멈추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달걀에서 뼈를 찾는 강환장의 트집 잡는 능력이야말로 그녀가 가장 잘 아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자신을 상대로 그런 것이고, 고 이낭은 아마 뭐든 품어 주겠지.

“강환장이 만족할 정도는 말할 것도 없고, 대체로 깔끔하게 정리하기도 쉽지 않아. 당분간은 강환장과 고 이낭, 둘 다 추미하고 다른 아이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거야.”

이동의 말투에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를 우울함이 배어 있었다.

“강완하고 강녕의 눈 밖에 난 일은, 나중에 오 어멈에게 뭘 좀 보내라고 해. 말 좀 잘해달라고 하면 그만이야.”

“오 어멈도 병이 들었답니다. 정말인지, 꾀병인지 몰라도요.”

만 어멈은 이동을 바라봤다. 어쩐지 이동이 자기보다 훨씬 어른스럽게 느껴졌다.

“둘 다겠지. 어멈, 전 관사에게 물어봐. 전 관사와 오 어멈 모두 부인이 친정에서 데리고 온 배가 종복이고, 모두 진씨 가문의 가복이야. 믿을 만한 사람 없는지, 오 어멈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는지 알아보고, 있으면 그 사람을 보내서 계속 누워있어도 소용없다고 달래보라고 해.”

전 관사의 사촌 동생 중에 예전에 은혜를 입고 혼인해서 나간 사람이 있다. 혼인한 지 몇 년 안 되어서 관가 매파인 시어머니 밑에서 일을 배웠고, 나중엔 시어머니 신분을 이어받았다.

예전에 전 매파를 만났을 때, 전 매파는 이미 경성에서 손꼽히는 관가 매파였다. 강완과 강녕 모두 전 매파가 혼처를 찾아주었고, 그녀의 뜻을 따라 둘 다 멀리 보냈다.

어릴 때부터 친분이 있었던 전 매파와 오 어멈은 친분이 깊으면서도 평생 시샘한 사이였다.

“알겠습니다.”

만 어멈은 조금 얼떨떨했다. 강부의 위아래를 샅샅이 알아봤는데, 오 어멈에게 말을 넣을 만한 사람을 전 관사가 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낭자는 예전과 좀 달라서, 자기가 모르는 것도 아는 듯했다. 어떻게 아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순 없지만.

이동이 또 세세히 몇 가지 당부하고 만 어멈이 서둘러 밖으로 나간 다음, 장 태태가 이동을 빤히 바라보다가 문득 물었다.

“아동,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미에게 솔직히 말해 보렴.”

내 딸아이, 사람이 완전히 변한 것 같구나.

“어머니.”

장 태태의 눈빛을 마주한 이동은 금세 시선을 피했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무서울 정도로 괴이한 이 일을 어떻게 어머니에게 이야기해야 할지 매일매일 궁리했다. 하지만 많이 생각하면 할수록,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갈수록 두려워졌다.

지난 생에 그녀는 괴상한 일을 너무나 많이 직접 겪었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서 대상국사 후원에서 이틀 동안 무릎을 꿇은 적이 있었다. 그 후원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몹시 여윈 이름 모를 승려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이야기 몇 마디 하고 싶으니 법사를 열어달라고 승려에게 빌었었다.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 알고 싶었다. 어머니가 대체 어떻게 죽은 건지,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이틀 무릎을 꿇은 끝에, 드디어 승려가 문을 열고 나왔다. 하지만 승려가 말하길, 어머니가 윤회의 길에 오르지 않아서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또 말하길, 그 승려가 그녀에게 빚진 게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무릎을 꿇고 있으니 승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승낙하고는 하지 말아야 할 말, 해선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고.

그녀가 뻔히 보는 앞에서 그 승려는 백골이 되었고, 결국 허연 재가 되어 바람이 불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괴이한 일을 어떻게 어머니에게 이야기할지 고민한 며칠 동안, 눈만 감으면 그 승려가 눈앞에서 백골이 되었다가 재가 되어 사라진 모습이 꿈에 보였다.

그 승려의 경고일까? 이 괴이한 일은 승려가 그녀에게 말했던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할 말, 해선 안 될 말이 아닐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맞으면? 경고하는 것이라면?

“어머니, 불가에 돈오(頓悟), 별안간 깨닫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지금 저는 그 깨달음이 무언지 알게 되었어요.”

이동은 이마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넘어져서 이렇게 다치고 보니, 깨달음을 얻게 되더라고요. 혼절했다가 일어나 보니 꿈을 꾼 것 같았어요. 무지몽매한 꿈을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계속했다.

“악몽을 꾼 것처럼요. 어머니, 예전에 대체 강환장의 어느 점이 좋았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저 잘생겨서? 강환장에게 오통신이 붙은 것 같다고 하셨죠? 저는 그 오통신이, 제 몸에서 떨어져서 그에게 붙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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