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6화 (46/463)

46화: 꼴 같은 미인

“방택, 내 이야기를 들어라. 듣기만 하면 된다. 난 이미 진왕에게 의탁했다. 진왕께서 날 아주 좋게 보시고 이미 진왕부 장사 자리를 맡기셨다. 앞으로 우리 가문, 너와 나는 반드시…….”

강환장은 혀를 깨물고는 뒷말을 삼켰다.

“내 말은, 우린 반드시 좋아질 거란 말이다. 이씨는 정양하러 성 밖으로 옮겼다. 흐름을 잘 알고 처신한 게지. 이왕 나간 이상, 걱정하지 말아라. 다시는 집으로 들이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이 저택엔 너와 나뿐이다. 네가 바로 우리 강가의 안주인, 나 강환장의 처다.”

고 이낭은 놀라서 침을 꼴깍 삼켰다.

오라버니, 분명 귀신 들린 거야! 귀신 들렸으면…… 들린 거지. 평생 다시 깨어나지 말아라!

고 이낭이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짓자, 강환장이 빙긋 웃었다.

“방택, 너도 참. 왜 그러는 것이야? 요 녀석, 놀라기는.

네 능력을 안다. 아주 잘 알지. 지금 백부를 다스리고, 또 앞으로도 우리 강가를 다스리는 일은 너에겐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내가 안다. 내 말 들어라, 어머니 성정을 너도 알지 않으냐. 긴 세월 동안 오로지 너그럽고 자비롭기만 하셨다. 지금 우리 수녕백부는 반드시 제대로 정리하여 다스려야 한다. 네가 마음껏 능력을 보여라. 우리 백부의 기상을 일으켜라. 아무 걱정하지 말고 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있다. 우리 백부에서 네가 거리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잘 알아들었겠지?”

고 이낭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혼란스럽기만 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제대로 정리해 봐야겠어. 제대로 생각해 봐야겠어…….

저녁이 되어 불이 켜지기 시작한 회남동로(淮南東路) 숙주성(宿州城).

숙주성에서 으뜸가는 주루, 영풍루 2층.

2층 전체 북쪽 한구석에만 거대한 탁자가 놓여 있고, 탁자 위에 산해진미가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 영원은 북쪽을 등진 채 팔걸이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한 다리는 탁자 위에 올리고 다른 다리는 의자 팔걸이에 올리고서는, 탁자 맞은편에서 온 힘을 다해 연주하고 노래하는 기녀들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손엔 젓가락을 들고 흔들흔들 탁자 가장자리를 치며 박자를 맞췄다. 가끔 박자를 멈추고 접시를 가리키면 왼쪽, 오른쪽에 서 있는 사환이 즉시 정확하기 짝이 없게 그가 가리킨 요리를 집어서 입에 넣어주었다.

노관사 복백이 울상을 지으며 계단을 올라왔다. 득의양양한 꼴로 앉은 망나니 영원을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며 다가가 설득했다.

“칠야, 날이 완전히 저물었습니다. 역참으로 돌아가셔야지요. 내일 아침 일찍 서둘러 길 떠나야 한다고 하셨잖습니까. 이러다가 일어나지 못하면…….”

“일어나지 못하면 천천히 가면 되지, 그게 뭐 대수라고.”

영원이 복백을 흘겨보고는 젓가락을 휙 내리쳤다.

“거기, 너 말이다! 또 음정이 틀렸다! 이 어리석은 것들을 봤나! 이 정도 곡도 음정을 틀리나? 회남동로는 번화한 곳이라더니, 개뿔! 쓸 만한 미인도 하나 없잖아! 보긴 뭘 봐! 내 말이 틀렸나? 설마 거울도 안 비춰 본 거냐? 하나같이 쥐어 터진 얼굴인 거 모르냐고.”

복백은 눈을 까뒤집고 천정을 올려다봤다. 그 쥐어 터진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던 게 누굽니까?

“꼴 같은 미인이 하나도 없어서야, 원! 이 긴긴밤을 혼자 어찌 보내라는 거냐? 제길, 김샜다! 가자!”

영원이 탁자를 걷어차자, 탁자 가득한 접시가 시끄럽게 쨍그랑거렸다. 영원은 벌떡 일어서서 노기등등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숙주성을 벗어난 뒤, 영원은 말 위에서 기지개를 켰다.

“제길. 곧 경성인데, 지금까지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니. 도적도 하나 못 만났잖아. 무슨 세상이 이래!”

“칠야께서 계시니, 악당들도 다 피해서 가는 것이지요.”

복백이 허허 웃었다. 근래, 북삼로(北三路) 전체에서 영 칠야가 온다는 소문만 나면 도적들도 보따리 사서 피난을 갔다. 악당들도 다 피해서 간다는 말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칠야, 이제 곧 경성인데, 슬슬…… 계획을 세우셔야 하는 게 아닐지요? 영 사노야의 서신을 막 받았는데, 동서로 동(董) 안무사(安撫使: 재해나 병란이 일어난 지역에 민심을 무마하고 백성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정에서 임시로 파견하던 관리)가 칠야를 탄핵하는 상주서가 어제 아침에 도착했답니다. 곧바로 위로 올라갔고요. 제주(濟州) 지부(知府) 향소의 탄핵 상주서와 함께요. 칠야, 오는 내내……. 휴. 경성에 도착할 때쯤엔, 상주서가 한 광주리는 아니라더라도 반 광주리는 될 겁니다.”

“탄핵 상주서에서 뭐라고 하는데? 한도 끝도 없이 사치하다고? 교만, 포악하고 무례하다고?”

“이번엔 하나 더 늘었습니다. 서생을 모욕했답니다.”

“서생?”

영원은 멈칫하다가 금세 혀를 찼다.

“그 고리타분한 백면서생들을 내쫓은 그거? 개뿔, 무슨 대수라고.”

“칠야, 칠야가 경성에 들어가기도 전에 상주서부터 산더미처럼 도착했잖습니까. 칠야, 그게…….”

복백이 앓는 소리를 냈다.

“나야 유명한 화근에 망나니 아닌가. 오는 길에 태평하고 안온하게 아무 일도 없으면, 화근, 망나니라는 내 명성에 미안하잖아. 바로 그걸 노린 거니까, 안심해. 내가 사고 치지 않으면 오히려 언짢아할 사람이 있는걸.”

복백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하지만 칠야가 이러시면…….”

칠야가 사고뭉치란 인상만 남기면, 황후마마의 큰일은 어쩝니까.

복백은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최숙의 서신은 왔나?”

영원이 복백을 흘겨봤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아들었지만,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왔습니다.”

“그럼 서두르자고!”

영원은 채찍을 내리치며 말을 빠르게 몰았다.

숙주성 역참 안팎이 모두 정북후부 사람이었다. 영원은 성큼성큼 곧장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복백은 종종걸음으로 뒤를 따라 정원으로 들어갔다. 상방 문 앞에 위봉낭(衛鳳娘)이 이미 마중 나와 있었다.

“서신은?”

영원이 단걸음에 문을 넘어가며 묻자, 위봉낭이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품에서 가늘고 긴 납관(蠟管: 밀랍으로 봉해진 긴 통)을 건넸다.

영원은 손톱으로 밀랍을 튕겨서 열고 돌돌 말린 종이를 펼쳤다. 내용을 꼼꼼하게 읽은 다음, 다시 한번 읽고서 촛불에 종이를 태우고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두 손가락을 번갈아 가며 탁자 모서리를 두드리다가, 잠시 후 위봉낭을 콕 찍어 분부했다.

“그 강환장을 제대로 조사해 보라고 답신을 보내라. 어떻게 진왕과 결탁했는지, 가문, 과거, 자세히 조사해!”

“예.”

위봉낭이 딱 한마디로 깔끔하게 대답했다.

“유월에겐 요 며칠 서신이 없고?”

“없습니다.”

영원은 한참 만에야 겨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어서서 몇 걸음 서성거리다가 다시 털썩 앉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흐음. 곧 경성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 몸이 아직…….”

아무런 계획이 없다는 다음 말은 민망해서 나오지 않았다. 고슴도치를 물려는 개처럼, 경성은 그가 손댈 길이 없었다. 혹은 여기저기 다 눈이 있다고 해야 할까. 눈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착수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가 벌이려는 이 큰일은 정의를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용감하게 나아가야 하는 일인 만큼 조심하고 신중해야 했다.

해가 완전히 밝기 전, 강환장은 살금살금 일어나 고 이낭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대교를 불러들여서 굳은 얼굴로 분부했다.

“나가서 수단을 가리지 말고 수소문 해올 것이 있다. 첫째, 진왕의 외숙 양설곤 그 일, 어제 해결했는지 아닌지 알아 오너라. 은자를 주었는지, 아닌지, 주었으면 얼마를 줬는지. 누가 해결하러 간 것인지. 아무튼, 상세할수록 좋다. 둘째, 은자를 주었다면, 그 은자의 출처를 밝힐 수 있는지 알아보아라.

그리고…….

됐다, 이건 독산을 보내마. 네가 가서 독산에게 진왕부에 다녀오라고 해라. 내가 언제 진왕부에 가면 좋을지 여쭙더라고 전하라고 해라. 그리고 반드시 그 시간에 진왕부에 도착하겠다고 했다고 전하라고 해라.”

강환장이 한마디 분부할 때마다 대교가 꼬박꼬박 대답했다. 분부를 마친 강환장이 휘장을 내리다가, 대교가 막 돌아서자 휘장을 다시 젖히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서둘러야 한다. 빠를수록 좋아.”

“예.”

대교는 다시 대답하고 휘장이 닫히는 걸 보고 잠시 더 기다리다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틀어 왼쪽을 보고 다시 오른쪽을 봤다.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

낭자가 어젯밤에 그런 식으로 강부에서 나간 것은 낭자와 고야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음을 대놓고 드러낸 것이다.

그러면, 난 낭자의 배방 종복인데, 당연히 경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째서 이런 걸 수소문 해오라고 여전히 내게 분부하는 거지?

이 세자야, 정말로 귀신 들린 것 같은데?

잘 자고 일어난 이동은 눈을 감은 채 밖에 새들이 즐겁게 지저귀는 소리를 듣다가 서서히 눈을 떴다. 담록색 얇은 휘장에 푸른 풀이 흔들리고, 비취색, 진녹색, 흑록색 메뚜기가 곳곳에 뛰어놀고 있었다.

이동은 손가락을 내밀어 메뚜기를 콕콕 찍어 보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른 기쁨이 서서히 퍼져나갔다.

돌아왔어. 도망쳐 나왔어. 살아났어!

“낭자, 일어나셨어요?”

수련이 겹겹의 휘장을 올려서 걸면서 말을 이었다.

“진주 언니가 그러는데, 밤새 한 번도 깨지 않고 푹 주무셨대요. 머리를 다친 이후로 이렇게 푹 주무신 건 처음이에요.”

수련은 온몸 가득 기쁜 기색이었다. 일단 잠을 잘 자야 한다고 의원이 그랬다. 잠만 푹 자면 서서히 나을 거라고.

“집에 돌아왔으니 당연히 푹 자야지. 어머니는?”

이동이 몸을 일으켰다.

“일찍 일어나셔서 후원에서 꽃 심는 거 보고 계세요. 진주 언니가 모시러 갔어요.”

문죽이 입 헹굴 소금물을 가지고 들어오고, 시녀들도 시중들기 위해 들어왔다. 이동이 막 소세를 마쳤을 때 장 태태가 휘장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니!”

이동은 감격에 겨워 어머니를 불렀다. 감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몇십 년 동안 밤낮없이 그리워하던 어머니여서, 자꾸만 몇십 년 만에 만나는 기분이었다.

“너도 참. 세 살짜리 아이처럼 어미만 보면 안기려고 하고.”

장 태태는 감격해하는 이동의 모습에 씁쓸하기만 했다.

휴, 그동안 얼마나 서러웠으면. 아니라면 이럴 리가 없지.

금이야 옥이야 십여 년 동안 떠받들고 키운 딸이 혼인하자마자, 두어 달 만에 세월의 시름을 다 겪은 것처럼 변했다니. 강가, 강환장,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장 태태는 깊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졌다.

“어머니, 식사하셨어요? 더 드실래요? 냉이 증교(蒸餃: 찐 교자), 향이 아주 좋아요. 어머니도 드셔 보세요.”

아침상이 올라오자, 이동은 증교를 한 입 깨물어 먹고서 어머니에게도 권했다.

“어미는 먹었다. 천천히 먹어라. 정말 많이 좋아진 모양이구나.”

장 태태는 증교를 맛있게 먹는 이동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물론이죠. 강가에서 나오니 살 것 같아요.”

이동이 증교를 깨물며 웅얼웅얼 대답했다. 원래 어머니 앞에선 법도를 지키지 않았다.

장 태태의 눈가에 걱정스러움이 짙게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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