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4화 (44/463)

44화: 다스리다 二

종복은 갈수록 많이 모여들었고, 서로 흘깃흘깃 눈빛을 주고받았다. 법불책중(法不責衆), 다수가 법을 거슬렀을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려움은 차츰 사그라들었고, 저마다 꿍꿍이가 생겼다.

그 자리에 있었던 자들은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궁리 중이었다.

소란을 피운 건 고가잖아! 고가를 막고, 대내내의 혼수를 지킨 게 무슨 잘못이야? 물건을 가져가긴 했지. 하지만 본 사람 있어? 본 사람은 있지만, 누구는 안 가져갔나? 아무도 입을 열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어차피, 물건은 고가 도적놈들이 몽땅 가지고 간 거니까!

아까 그 자리에 없었던 자들은 아까워하고 후회하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고소해하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인의 것을 쓱싹하는 게 어디 그리 쉬울까!

세자가 화를 크게 내면 낼수록 좋겠다! 이 자리에서 몇몇은 당장 때려죽이면 더 좋고! 사람이 죽으면…….

심보 고약한 자들은 더 나중일까지 속으로 셈했다.

누군가 이 일로 재수 없게 맞아 죽는다면,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전 관사는 들것에 실려 왔다. 다리가 부러졌는데, 악으로 버티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지금은 아파서 처참한 고함이 절로 나왔다. 은표를 지키려다가 다친 것이니, 당당하게 고함칠 수 있었다.

오 어멈은 팔을 다쳤는데 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총괄 어멈인 그녀로서는 체면에 단단히 먹칠한 일이었다. 그녀는 얼굴이 다 푸르죽죽해져서는 팔을 감싸 안고 여자 종복 대열 맨 앞에 서 있었다. 생으로 잡아먹지 못해 한스러운 얼굴로 고 이낭을 수시로 흘겨보면서.

청서, 추미, 춘연 세 사람이 꼭 붙어서 여자 종복 대열 첫 줄에 서 있고, 고 이낭은 외롭게 뒤에 서 있었다. 고개를 떨구고 손은 늘어트린 채, 풀이 잔뜩 죽어있었다.

다 같이 손잡고 나를 해치려고 해! 이번엔, 난 죽었어!

독산은 뛰어다니느라 흠뻑 젖은 모습으로 양손으로 명부를 높이 치켜들었다.

“세자야, 모두 왔습니다.”

“읽어라!”

강환장은 독산은 쳐다보지도 않고, 매서운 눈으로 계단 앞에 선 모두를 하나씩 훑어보았다. 이 어리석은 것들을 잘근잘근 짓밟아주지 못함이 한스러웠다.

독산이 침을 꿀컥 삼키고는 목을 가다듬으려 힘을 주었다. 그런데 소리가 나지 않자, 할 수 없이 다시 침을 삼켰다. 그리고 다시 목을 가다듬으려고 해도 소리가 나지 않자, 입을 벌려 목소리를 냈다. 그제야 바짝 쉰 목소리가 나왔다.

얇은 명부를 다 읽었을 때, 독산은 긴장으로 등이 흠뻑 다 젖어 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이 안에 처음 들어온 자는 이쪽으로 서라.”

강환장이 모두를 훑어보며 계단 왼쪽을 가리켰다. 사내 종복 대열에서 절반이 기쁜 걸음으로 달려갔고, 여자 종복 대열에서는 겨우 네 사람이 옮겨갔다.

오늘 고 낭자가 저택에 들어와 이낭이 되는 축하연이 열렸다. 청서가 매우 열심히 연회를 주최했고, 연회에 오지 않으면 그녀와 추미, 춘연 그리고 고 이낭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 거라고 했다. 연회는 원래 나쁜 자리도 아니고, 청서의 말까지 있어서 저택의 여자 종복들은 거의 참석했다. 이 네 사람 중 두 명은 병이 났고, 다른 두 명은 자식이 병이 나서 참석하지 못했다.

“오늘 문간방 당직이 누구냐? 앞으로 나와라!”

강환장이 어두운 눈빛으로 사내 종복 쪽을 훑어봤다. 요즘, 오늘, 가장 이 갈리는 게 바로 문지기였다. 문지기는 왕부…… 백부의 얼굴인 것을, 그런 그들이 그의 체면을 짓밟았다.

문지기 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딱히 무서운 것이 없었다. 중문 밖에 멀리 서서 구경했을 뿐, 안으로 들어가지도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으니까.

“중문 당직은?”

강환장의 시선이 여러 줄로 선 여자 종복 쪽을 훑었다.

“아룁니다. 저택에 일꾼이 부족해서 중문엔 몇 년 전부터 당직이 없었습니다.”

오 어멈이 살짝 앞으로 나와서 고했다.

중문 당직 같은 소리 하시네. 궁핍한 생활을 한 지 십여 년이라, 부인이 중문 당직을 없앤 게 몇 년인데. 모르십니까? 중문에 당직이 있었다면, 고가 천것이 나리 품으로 뛰어들 수 있었겠습니까? 허세는!

“고유덕과 고사현은 어떻게 들어온 것이냐? 대문으로 들어온 것이냐? 말해 보아라, 저택을 대체 어찌 지키는 것이냐?”

강환장은 계단에서 내려와 문지기 앞에 서서 이를 갈며 물었다.

고 이낭은 강환장이 아비와 오라비의 이름을 부르는 걸 듣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절망이 몰려왔다.

그만큼 미운 거야. 이번엔, 못 넘어가겠구나.

왼쪽에 나이가 조금 더 많은 문지기가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룁니다, 세자야. 문간방 당직은 소인 둘뿐입니다. 고 대야와 고 노야가 서른 명 가까이 장정을 끌고 왔고 모두 몽둥이를 들고 있어서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개소리!”

강환장이 문지기를 향해 혀를 찼다.

“네가 대문에서 죽었다면, 막을 수 없었던 것이 맞겠지! 살아 있으면서, 어디 감히 막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냐? 입씨름하지 않겠다. 부인은 성품이 너그러워서 너희 같은 천것들과 옥신각신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수녕백부 상전을 능멸해도 되는 줄 알았더냐? 형방(刑房) 사람은 어디 있느냐?”

오 어멈은 넋이 나가서 멍하니 강환장을 바라봤다. 아까는 중문 당직을 묻더니, 이젠 형방을 묻다니. 이 저택에 형방이 어디 있다고. 세자야가 왜 저렇게 이상하지?

오 어멈이 대답하기 전에, 강환장 스스로 정신을 차렸다. 형방은 이씨가 부리던 사람인 듯했다. 고씨도 여러 번 상기시켰었다. 우리 같은 가문은 덕으로 아랫사람을 다스려야 한다고…….

“부인이 자비로워 형방을 없앴더니, 이렇게 방종하구나!”

강환장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오 어멈은 더 어안이 벙벙해졌다.

부인이 없애? 부인이 혼인해서 들어왔을 때부터 강가에 형방이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인데?

“그럼 무릎을 꿇어라! 지금 당장 여기에서 꿇어라! 제대로 꿇어!”

강환장은 두 문지기를 가리키며 고함쳤다.

형방은 있어야 한다. 반드시 있어야 해! 지금이 바로 장을 치는 소리가 울리고 피를 봐야 하는 때다! 그래야 일벌백계할 수 있어!

강환장은 전 관사 앞으로 가서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자네, 말해 보게. 장방을 관리하는 사람이, 장방에 있지 않고 은자를 품에 안고 수운간엔 왜 간 것이지? 의도가 무엇이야? 말하게!”

전 관사는 가슴 가득한 울분이 죄다 터져 나올 것 같아서 강환장의 시선을 그대로 받으며 크게 말했다.

“소인이 가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닙니다! 만 어멈과 함께 청휘원으로 가서 대내내가 직접 세어서 주신 은표 2백 장을 들고나왔습니다. 나오는 길에, 고가 부자가 쳐들어왔습니다. 어째서 장방에 있지 않았냐 물으셨습니까? 소인도 장방으로 돌아가 몸을 피하고 싶었지요. 하지만 소인의 이 다리, 고 대야가 몽둥이로 두들겨 부러뜨린 것입니다. 은표도 고 대야가 빼앗아 갔고요. 소인의 의도요? 예, 소인은 장방에 숨어서 갑자기 날아온 흉화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전 관사는 이야기할수록 화가 치밀어서 들것을 힘껏 내리치며 분연히 목소리를 높였다.

“세자야, 고가 집구석 강도를 잡아가라고 관아에 고발하지 않으시고, 안에서 내통한 도적을 잡지 않으시고, 오히려 문을 걸어 잠그고 소인들을 다스리시다니요! 이 재난, 이 약탈, 분명 세자야가 애지중지하는 저 미인이 일으킨 일인데, 범인을 잡지 않고 소인들을 잡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전 관사는 화가 나서 죽을 것 같았다.

“이 망할 놈이!”

강환장은 화가 나서 핏줄이 다 튀어나왔다. 천한 노비 놈이, 감히 다 보는 앞에서 대들어? 저택의 기강이 언제 이렇게까지 무너진 것이냐!

강환장은 노여움에 핏발 선 눈으로 전 관사의 가슴을 걷어찼다. 걷어차고, 걷어차고 또 걷어차고. 전 관사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다가 옷자락에 피 묻은 침을 왈칵 뱉고는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세자야가 미쳤구나!

강환장의 발길질이 갈수록 모질어지자, 오 어멈이 달려가 강환장의 다리를 붙잡았다.

“세자야! 전 관사가 아니었다면 고가 놈들이 은표를 싹 다 강도질해갔을 겁니다! 전 관사가 곳간 문을 지켜서 그렇지…….”

“꺼져라!”

강환장이 오 어멈도 걷어찼다.

“여봐라! 어서 와서 주인이 안중에도 없고, 법도도 없는 망할 것들을 끌어내라. 거간꾼을 불러와서, 일가를, 이 천것의 일가를 싹 다 북쪽으로 팔아버려라!”

안 그래도 팔을 다친 오 어멈은 강환장에게 걷어차여 나뒹굴다가 어깨가 짓눌려 눈물이 찔끔 나왔다. 강환장의 발길질에 마음이 다 식어서 멍하니 바닥에 엎드린 채 눈물을 줄줄 흘렸다. 움직이고 싶지도 않고, 일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강환장은 오늘 저택에 있었던 종복들 앞에 서서 고함쳤다.

“다들 잘 들어라! 열 셀 동안 시간을 주겠다. 열이다! 훔친 물건을 몽땅 내놓아라! 하나, 둘…….”

강환장은 바닥에 엎어진 오 어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뒷짐 진 채 수를 세면서 종복들 앞을 걸어가며 매서운 눈빛으로 훑었다.

오늘 이 화려한 도적질에 참여한 사람 중에 한두 개 얻은 다음에 욕심을 억누르고 곧장 집으로 달려가 숨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의 모든 이가 하나를 얻고 하나를 더 바랐다. 두 개를 얻으면 세 개를 바랐다. 행여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더 많이 가질까, 아무도 그 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간 사람이 없었다.

열에 여덟아홉은 수운간 일대에서 지금까지 줍고 뒤지고 다녔다. 개중에는 심지어 호숫가에서 은표를 건져내 아직도 품에, 소매에, 하물며 치마에, 족의에 품고 있었다.

간이 작은 사람들은 덜덜 떨면서 물건을 강환장이 가리키는 쪽으로 던졌다. 그러나 어찌 됐든 강부 종복 중엔 간이 큰 사람이 많아서, 다들 고개를 숙이고 손을 늘어뜨린 채 죽어라 버텼다. 어차피 누가 주웠는지, 안 주웠는지 아무도 모르고,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안 가져간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데도 내놓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법불책중이라 했으니까.

물건을 내놓은 사람은 강환장에게 불려 나와 한쪽에 따로 섰다. 열을 다 센 강환장은 반쯤 고개를 숙인 채 꿈쩍도 하지 않는 여자 종복들을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다가 코웃음 몇 번 치고는 분명하게 분부했다.

“옷을 벗어라! 벗을 때마다 옷을 털어라. 다 벗을 때까지 벗어라!”

청서, 추미와 춘연은 경악해서 강환장을 바라봤다.

여기서? 벌건 대낮에, 다 보는 앞에서, 사내 여인 할 것 없이 싹 다 벗으라고?

고 이낭은 겁에 질려 간담이 떨려서 비틀거렸다.

화가 많이 났어. 이따 나를 어떻게 할지 몰라. 이번엔 분명 죽었어. 난 죽었어…….

천천히 일어난 오 어멈은 싸늘한 눈으로 강환장을 흘겨볼 뿐 끽소리도 하지 않았다. 벗기고 싶으면 벗기라지. 체면에 먹칠하는 건 내가 아니라 세자야니까!

죽어라 버티며 물건을 내놓지 않은 여자 종복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진짜 벗더라도 누군가 먼저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벗지!

강환장은 헛웃음 몇 번 치고는 이미 물건을 내놓은 어멈 여남은 명을 손짓해 부르고는 아무나 한 사람 찍었다.

“너희들, 저것을 끌고 나와라. 끌고 나와서 옷을 싹 다 벗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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