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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42화 (42/463)

42화: 저택에서 나가다

청서는 강환장이 나타나자 흥분해서 눈물을 다 쏟았다. 그녀는 고 이낭자를 끌어당기고 고 이낭자의 등허리를 밟고서, 울며 호소하려고 했다. 그런데 걸음을 내딛자마자, 울음을 터트리기도 전에 강환장이 이미 스치고 지나갔다.

청서는 순간 전 관사와 막상막하로 넋을 놓았다. 고 이낭자는 그 틈에 버둥거리며 벗어나더니 미친 듯이 달아났다. 그 와중에 넋을 잃고 얼어붙은 청서의 손에서 적금 비녀를 가볍게 빼앗아서.

고 이낭은 한 손으로 계단을 잡고 버티면서 정신을 차릴 준비를 하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러다 미친 듯이 달려가는 강환장의 뒷모습을 보고는 동그랗게 뜬 눈빛이 흐려졌다. 넋이 나갔다. 버티고 일어나려던 양손도 그대로 굳었다.

인제 어쩌지? 계속 기절한 척 있어? 아니면 지금 일어나야 하나?

강환장은 단숨에 청휘원으로 들어가 수화문으로 뛰쳐 들어갔다.

수화문부터 회랑, 뜰 안에 시녀, 어멈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하나같이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으면서. 가끔 들리는 훌쩍이는 소리만이 마당 안의 숙연함을 깨뜨릴 뿐이었다.

강환장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동시에 강렬한 기대감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모두가 그를 힐끔거리며 길을 내주었다. 강환장은 마당을 지나 곧장 상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상방 안, 조 의원과 손 태의 둘 다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얼굴을 단단히 찌푸린 채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것이 열심히 생각 중인 듯했다.

“이씨는? 이씨가 어떻게 되었나?”

강환장은 무심결에 손에 든 은표를 등 뒤로 감췄다.

“아이고!”

손 태의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조 의원은 강환장을 흘겨보며 짙은 분노가 느껴지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세자, 대내내의 몸이 어떤지, 나와 손 태의 모두 신신당부하지 않았습니까! 반드시 정양해야 한다고요! 기를 잘 다루셔야 한다고요! 기를!”

강환장은 얼굴을 굳힌 채 조 의원을 외면하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실내에 가득한 시녀 중에서 만 어멈을 바라보며 물었다.

“대내내는 어떤가? 깨어 있나?”

만 어멈은 강환장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며 대충 예를 갖췄다.

“마침 고할 일이 있어서 고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택에 이런 소동이 일어난 일로 저희 태태가 벌써 사람을 서너 번 보냈습니다. 고야께 말씀 전하라고 하시더군요. 우리 낭자의 상처가 심한지 아닌지, 병이 심한지 아닌지, 고야께서 너무나 잘 아실 거라고요. 우리 낭자는 반드시 정양하셔야 합니다. 쓸데없는 일로 신경 쓰시면 안 됩니다. 화를 내시면 더더욱 안 되고요. 고야가 더 잘 아시다시피 말입니다.”

만 어멈의 말투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강환장은 모두 물러가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실내 가득한 시녀, 어멈은 못 들은 듯이 공손히 서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 의원과 손 태의가 시선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이 입을 열기 전에 만 어멈이 무릎을 구부리며 말을 꺼냈다.

“두 분 의원, 잠시만 차를 드시면서 기다려 주세요. 소인, 우리 태태의 말씀 몇 마디만 전하고 바로 출발하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두 분이 함께 가주셔야 합니다. 안 그랬다가, 혹시 가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강환장의 안색이 변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고야, 고야는 아내가 죽으면 장례 한 번 치르고 새로 들이면 그만이지만, 우리 태태에겐 낭자 하나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목숨줄이라고요.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낭자가 멀쩡히 화병으로 수녕백부에서 죽도록 보고만 있을 순 없다고 하셨어요. 그러니 고야가 돌아오시면 말씀 올리고 곧바로 출발하라 하셨습니다. 우리 낭자를 영수암 밖 자등(紫藤) 산장으로 모실 겁니다.”

강환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매서운 눈빛으로 만 어멈을 노려봤다. 만 어멈은 그런 그의 시선을 태연자약하게 마주했다.

“그리고 이 말씀도 전하라고 하시더군요. 낭자가 이렇게 화가 나는 일을 당했으니, 날개를 꽂고 날아오고 싶다고요.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이 수녕백부에 올 엄두가 나지 않으신답니다. 제대로 말이 안 나올까 봐요. 고야가 오해할까 더 무섭고요. 우리 태태는 이미 자등 산장으로 출발하셨습니다. 우리 낭자는 태태께서 잘 돌볼 테니 안심하시랍니다.”

“자네 태태, 참으로 기세가 등등하군!”

강환장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만 어멈은 강환장이 분노하든 말든 느긋하게 태태의 말을 전했다.

“우리 낭자가 고야와 혼인할 때, 점포와 장원을 제외하고 총 40만 냥을 지참금으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 지참금은, 부인께서 한두 번 말씀하신 게 아니지요. 우리 낭자의 혼수는 우리 낭자의 것이 아니라고. 우리 낭자가 강가에 들어오는 매로전이라고요. 우리 낭자의 혼수 곳간도 부인이 잠그셨지요. 우리 태태가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고야, 우리 낭자의 혼수 단자를 이미 정리해서 강씨 가문의 어르신들에게 보냈습니다. 우리 낭자의 지참금 40만, 오늘부로 모두 강가에 귀속됩니다. 지참금 30만 냥 중, 10만은 어제 고야에게 드렸고, 고야가 고가 노야와 대야에게 주었지요. 나머지 20만 냥은 고야의 명을 받들어 천 냥짜리 은표로 바꾸어서 이미 장방 전 관사에게 넘겼습니다. 나머지 금은, 보물은 모두 곳간에 쌓여 있습니다. 가구는 다 이 원락에 있고요. 낭자가 떠난 후 천천히 확인하시지요, 고야.”

강환장은 등 뒤가 연신 서늘해졌다.

“마차는 준비되었나? 바로 출발하자.”

말을 다 전한 만 어멈은 강환장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여 밖에 분부했다. 조 의원과 손 태의가 같이 일어났다. 조 의원은 강환장을 쳐다보지도 않고 뒷짐을 진 채 강환장을 지나쳐 곧장 밖으로 나갔다. 손 태의는 얼이 빠진 강환장을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어깨를 두드렸다.

“큰일은 아니네. 다만 대내내는 반드시 정양해야 해. 사실 진작 성 밖으로 나갔어야 했어. 어린 부부니까……. 별일 없을 걸세. 나중에 제대로 사과하면 될 일이야. 이가 태태는 대범하고 사리에 밝은 분이거든.”

청휘원 밖, 독산이 고개를 내밀고 안을 살폈다.

지금 수녕백부는 법도랄 게 없을 정도로 기강이 흐트러졌다. 법도는 물론이고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중문 밖에서 소식을 전할 사람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독산은 할 수 없이 직접 들어왔다. 청휘원 문 앞까지 들어왔는데, 바쁘게 드나드는 어멈들을 붙잡아도 말을 다 끝내기 전에 다들 곧바로 거절했다.

“지금 바빠. 그럴 시간 없어.”

독산은 다급해서 빙글빙글 도느라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실로 방법이 없어서 눈 질끈 감고 청휘원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세자야!”

수화문으로 들어가자마자, 얼굴이 시퍼레져서 상방 문 앞에 서 있는 강환장이 보였다. 독산이 크게 기뻐하며 후다닥 다가갔다.

“세자야! 조금 전에 진왕부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은자는 이미 해결했으니, 우선 집안일부터 잘 처리하라고 그러셨답니다.”

“뭐라고?”

강환장은 머릿속이 윙윙 울렸다. 독산이 분명 눈앞에 있는데, 그가 하는 말은 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환장은 비틀거리며 문 앞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동은 넓은 마차 안에 기댄 채 누워있었다. 수련은 옆에 무릎 꿇고 앉아 그녀에게 탕을 건네고 만 어멈에게도 건넸다. 만 어멈은 분노한 얼굴로 그릇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세자야가 정신이 나간 거라고, 전 관사가 그러더라고요. 맞는 말이지 뭡니까. 세자야는 정말 정신이 나갔습니다! 낭자가 넘어지기 전엔 분명 멀쩡했던 분이, 지금은 왜……. 이게 뭡니까? 대체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만 어멈은 줄줄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소동을 뭐라고 묘사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이동은 눈을 살며시 감고 있었다.

내가 넘어지기 전엔 분명 멀쩡했다라…….

그녀는 고 이낭이 고명을 받은 날 쓰러졌다. 거의 깨어 있던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혼미했지만, 며칠 못 버틴 건 알고 있었다. 고 이낭이 고명을 받은 일과 강환장의 말이 빈 껍데기밖에 남지 않았던 그녀를 그 자리에서 무너뜨렸다. 그때 그녀는 오로지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설마, 같이 돌아온 걸까? 어떻게 같이 돌아왔지? 말이 돼? 내가 혼수상태였던 그 며칠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때 강가는 열화와 같이 흥하고, 금상첨화로 번영하던 때였는데?

그는 태자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황상의 총애를 깊이 받는 조 귀비와 조 귀비 소생 육황자에게 미래를 걸었다. 고 이낭의 고명이 내려오기 이틀 전, 태자가 돌연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니, 태자는 병으로 죽은 게 아니라 누군가의 손에 죽었다. 하지만 어떻게 죽었든지, 태자가 죽었다. 황상의 유일한 적자, 적장자 태자가 죽었다.

그때 그녀는 몹시 낙담했다. 강환장의 운이, 강가의 운이 너무 좋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남들과 다른 생각이 또 한 번 통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혹시 태자의 죽음에 강환장, 그리고 강가가 휘말린 건 아닐까.

아니면 혹시, 손을 쓴 것이 바로 강환장일까?

“낭자!”

만 어멈이 흔들자, 이동은 부르르 정신을 차렸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넘어진 다음에 강환장이 이상해졌다고 어멈이 그래서, 왜 내가 넘어졌을 때부터 이상해졌는지 생각했어. 내가 넘어지기 전엔 내가 죽으면 강가가 어떻게 될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었겠지. 누가 그런 걸 생각하겠어. 그런데 지금은 생각한 게 분명해. 만약 내가 죽으면, 우리 이가의 돈을 가지고 가문에 어울리는 엇비슷한 처를 들일 수 있겠지. 그러니까 나 같은 상인 가문 여인을 상대할 필요가 없어진 거야.”

“허, 그게 맞다면 정말이지…….”

만 어멈은 놀랍기도 하고 경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말을 끝맺지 못하고 안색이 변해서 길게 한숨만 내쉬었다. 낭자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낭자가 넘어진 다음에 일어난 일, 정말이지 낭자의 말과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강환장이 갑자기 정신이 나간 것처럼 구는 것도 완벽하게 설명됐다.

반드시 정양해야 하는 낭자를 이 기회에 화병으로 죽이려고 발광하는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정신 나간 생각이지요. 낭자가 죽으면, 태태가 용서하겠습니까? 강가를 용서하겠냐고요.”

상황이 눈앞에 벌어졌어도, 수련은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저 어쩌면 그렇게 어리석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일개 노비인 그녀도 빤하고 훤히 보는 일을, 고야가 보지 못한다고?

“제가 나이 들어 정신이 흐려진 모양입니다. 그걸 왜 생각 못 했을까요? 정말이지……. 십여 년 동안 뒤로 물러나 있었더니 뒷방 늙은이가 되었네요. 얼른 태태께 소식을 전해야겠습니다. 만사 신중히 하셔야 한다고 전해야 해요.”

만 어멈은 이 노야가 세상을 떠난 후 거의 전쟁이라고 불러도 좋을 치열한 재산 다툼을 장 태태와 함께 겪어온 사람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악독할 수 있는지 그때 직접 겪었었다.

“그 생각을 못 했다니, 내가 어리석었지. 낭자가 일깨워줘야 깨닫다니! 여봐라! 대교는? 아, 대교는 성에 남았지. 대해! 네가 다녀오너라. 별원에 가서 태태께 말씀드려라. 한마디면 된다. 낭자는 지금 예전의 태태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고. 태태는 스스로 잘 지키셔야 한다고. 얼른 가라! 서둘러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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