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1화 (41/463)

41화: 엄청난 큰일

“엊저녁, 전 한림학사 고명양(顧名揚)의 손자 고유덕(有德)과 고유덕의 아들 고사현이 수녕백부를 찾아 소란을 피웠답니다. 강환장이 고유덕의 적장녀 고방택을 납치했다고요. 고방택은 수녕백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환장이 납치한 것인지 아닌지는, 소인 아직 확실히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음, 계속해라.”

“고유덕과 아들 고사현은 관에 고발한다고 협박해서 강환장에게 은자 10만 냥을 받아 갔습니다. 고방택을 첩으로 들이는 돈이라고요. 강환장은 그 자리에서 천 냥짜리 은표를 세어서 10만 냥을 고유덕 부자에게 내어주었답니다.”

“정확한 정보이냐?”

진왕이 너무 놀라 묻자, 북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그날 수녕백부 당직 문지기에게 들은 것입니다. 그 문지기가 오늘은 번을 서지 않았는데, 제가 우연히 만난 척 가장하여 고작 10전을 주었더니 술술 말하더군요.”

진왕은 살며시 숨을 내쉬며 계속하라고 북망을 바라봤다.

“오늘 오전, 고유덕 부자가 10만 냥을 바꾸러 덕융 전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뚜껑을 열었더니 백지만 나왔답니다. 전장에서 나온 고유덕 부자는 강환장이 백지로 두 사람을 속였다고 고함치며 집으로 돌아가서 사람을 불러 모아 수녕백부로 쳐들어갔답니다. 소인, 일부러 수녕백부에 가봤습니다. 측문에서 몰래 들어가 봤더니, 고유덕 부자뿐만 아니라 고가 태태와 고가 일곱 낭자, 소야 한 명도 있었습니다. 고가가 이씨의 혼수 곳간을 부쉈고, 고가 종복, 강가 종복 모두 정신 나간 듯이 이씨의 혼수를 빼앗았습니다. 수풀에 적금 반지가 떨어져 있고, 호수에 은표가 둥둥 떠다니고, 소인은 행여 들키면 해명할 길이 없을까 봐, 지체하지 못하고 얼른 돌아왔습니다.”

진왕은 입이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한참 만에 겨우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이마를 두드리며 일어서서 빙글빙글 돌았다. 북망이 지금 말한 엉망진창인 일과 그 큰 뜻을 품고 유식한 말을 하며 행동거지가 우아한 강소화를 도저히 연관 지어 생각할 수가 없었다.

“북망,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진왕은 이마를 문질렀다. 강환장을 자신의 장사로 이제 막 곁에 들였다. 조정 형세에 대한 분석, 황상에 대한 의견, 조정 대신들에 대한 관점, 지극히 정확하고 정곡을 찔렀다. 이런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소인은 의견이 없습니다. 내택의 일은 소인은 모르는걸요.”

북망은 이런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 이건 그의 업무 범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진왕은 대답을 찾은 듯했다.

“네 말이 맞다! 이런 너저분한 일은 모두 내택 일이지. 사내는 밖, 여인은 안. 소화처럼 큰 재목이 내택의 사소한 일을 염두에 둘 리가 있나. 이제 막 혼인했으니 앞으로 순조롭게 정리되겠지.”

진왕이 쥘부채로 손바닥을 두드리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런 것이겠지. 그런 것이다! 나중에 소화에게 이야기 좀 해야겠군. 바깥일을 잘하려면 우선 안을 잘 다스려야 해. 우선 시간 내서 내택 일을 잘 정리하라고 말이야. 음, 잘 정리해야 해. 이렇게 엉망으로 두면 안 되지. 어사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강부에 지금 큰 소동이 났다니, 그럼 외숙의 일은…….

진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약속한 일이었다. 4만 은자라……. 왕비의 혼수를 건드리지 않는 이상, 그에겐 그렇게 큰 현은이 정말로 없었다. 왕야라고는 하나, 어찌나 궁핍한지 청렴결백까지는 아니라도 비슷했다.

이를 어쩐다?

“수녕백부에 다시 가 보아라. 신시(申時: 오후 3시-5시)가 되어도 강환장이 나오지 않는다면……. 일단 돌아와서 고해라.”

북망이 나간 다음, 진왕은 일어서서 조바심 나는 듯 서성거렸다.

수녕백부에 이 소동이 났으니, 강부의 은자…… 강부에는 은자가 없을 것이고, 은자는 모두 이씨의 지참금일 텐데 이씨의 지참금이 모두 강탈당했다라……. 이가야 큰 부자라 그 정도 지참금은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이런 소동이 났으니 강환장이 어찌 아내에게 손을 벌릴까? 설령 벌린다고 해도, 이씨가 화가 많이 났을 텐데 은자를 내놓을 리가 있나. 누구라도 화가 머리끝까지 날 일인데.

해 지기 전까지 은자를 내놓지 못하면……. 휴. 강환장도 참. 굳이 오늘 해 지기 전이라고 이야기해서는. 내일이라고 했으면 이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강환장이 은자를 내놓지 못하면, 외숙은……. 강환장의 말이 맞지. 큰형님과 넷째가 저 지경으로 다투는데, 두 사람이 외숙의 일을 이용하도록 둘 순 없지. 나는 더더욱 꼬투리 잡히면 안 되고. 게다가 외숙은 간이 작고, 외조모는 큰일을 못 견디는 분이시다. 요즘 누워계시는데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아이고, 은자라…….

“왕야, 묵칠 소야의 사환 야우(夜雨)가 뵙길 청합니다. 소야가 전하라 한 말씀이 있답니다.”

문밖에서 사환이 공손히 고하자, 진왕이 서둘러 불러들였다.

화려한 빛이 흐르는 은남빛 은사 주단 짧은 웃옷에 긴 바지를 입은 야우가 달려와 민첩하게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예를 갖춘 후 희색 만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왕야, 저희 칠소야가 소인을 보내서 왔습니다. 오늘은 아라 소저가 만월이 된 경사스러운 날이라서 칠소야가 계(季) 대소야, 안원후부(安遠候府) 소(蘇) 대소야, 그리고 여러 소야를 모셔서 함께 아라 소저를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전에 왕야와 말씀을 나눈 후로 왕야도 뜻이 같은 분임을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떠들썩한 자리에 왕야를 빼놓을 수가 없다고, 왕야를 모셔 오라고 일부러 소인을 보냈습니다. 이 말도 꼭 전하라 하셨습니다. 왕야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걸 알기에 왕야께서 상을 내릴 때 쓰시라고 특별히 천 냥 더 준비했습니다.”

단정히 앉아서 차를 마시던 진왕은 차를 내뿜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일부러 천 냥을 더 준비해줬다는 말을 이렇게 대놓고 하다니.

초대하러 온 것이냐, 아니면 얼굴에 먹칠하러 온 것이냐?

진왕은 희색 가득한 얼굴로 순진하고 무고한 두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는 야우를 빤히 바라봤다. 차를 내뿜게 만든 천 냥 은자,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겸연쩍어할 수도 없었다.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느낌이 몰려왔다. 문득, 이 묵칠 소야와 상고 휘묵이 방식은 다르지만, 똑같이 묘하게 같은 느낌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희 칠소야가 다른 사람에게는……. 됐다. 그건 됐고. 아라 소저가 만월이 된 경사스러운 날이라니? 만월? 그게 무슨 날이냐?”

만월에 무슨 축하를 하는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뢰옵니다, 왕야. 칠소야의 말로는 아라 소저가 1년에 생일을 한 번만 보내는 건 아라 소저에게 너무한 일이랍니다. 아라 소저의 출생은 큰일, 만월도 큰일, 그리고 삼조(三朝: 혼인, 출생한 지 셋째 날), 백일, 모두 큰일이라 다 축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진왕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번엔, 정말로 피를 토하고 싶은 심경이었다.

묵칠! 이 상고 휘묵 같은 인간아! 이 묵…….

진왕은 갑자기 머릿속이 번뜩 밝아졌다. 묵칠의 큰 씀씀이는 온 경성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자가 없었다. 거기에 이런 짓을 할 만한 성격이었다.

오늘 급히 써야 할 은자, 묵칠에게 이야기해볼까?

“돌아가서 칠소야에게 말해라. 오늘 내가 중요한 일이 있어서 건너가지 못한다고. 마침 잘 왔다. 내가 오늘 일이 있어서 급히 은표가 좀 필요하다. 한 시진 안에 바로 바꿀 수 있는 은표로 4만 냥 준비할 수 있는지, 너희 칠소야에게 물어보아라. 가능하다면, 날도 저물었는데 내가 전장에 가지 않아도 되지 않으냐. 은자는 내일 바로 돌려준다고 해라.”

“예! 왕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소인 말을 타고 온 것이라 금세 다녀올 수 있습니다. 왕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야우는 매우 시원스럽게 대답하고는 공손하게 물러가서 다급하게 말에 올라 자기 소야에게 보고하러 갔다.

그러고는 정말로 금세 돌아왔다. 돌아왔을뿐더러, 얇은 은표 네 장도 들고 왔다. 한 장에 만 냥, 딱 4만이었다.

진왕은 매우 기뻐하며 다급히 사람을 불러 은표를 외숙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강부에도 사람을 보내, 은자는 이미 해결했으니 안심하고 집안일을 처리하라고 강환장에게 전하게 했다.

수녕백부.

강환장은 손발이 서늘해져서 전 관사를 죽어라 바라보며 곧장 그쪽으로 달려갔다.

“은표는? 아직 가지고 오지 않았지? 아직 가지고 오지 않았나? 아니면 이미 장방에 넣었나? 아직 이씨가 가지고 있나? 은표는 아무 일도 없는 게지?”

목소리가 다 쉬어 버린 전 관사가 강환장을 빤히 바라봤다.

“세자야……. 보십시오. 이걸 보십시오. 보시라고요! 20만 냥! 한 장, 한 장, 이렇게 두꺼웠습니다. 한 장, 한 장, 20만 냥이나 있었습니다! 여기에 다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제대로 보십시오! 이게 다 세자야……. 다 고가! 고가가! 세자야, 보셨지요? 이번엔 똑똑히 보셨지요? 고가입니다. 고가가 안팎에서 짜고 쳐들어온 거라고요!”

전 관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지금까지 꼭 붙들고 있던 은표, 고작 얇은 한 뭉치만 남은 은표를 강환장의 눈앞에 내밀었다.

강환장은 전 관사의 무례함을 나무랄 겨를이 전혀 없이 은표를 빼앗았다. 손을 떨면서 세어 봤더니, 얇디얇은 천 냥짜리 은표 뭉치, 모두 아홉 장이었다.

강환장은 털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진왕에게 약속했는데. 4만 냥을 바로 보내겠다고. 지금, 즉시, 바로 보내야 하는데!

은표를 가지러 돌아온 것인데, 인제 어쩌지?

상대는 황상이다!

잠시 넋을 잃었던 강환장은 화들짝 일어나서 은표를 쥔 채 청휘원으로 달려갔다.

이씨는 심술궂고 계략이 많으니 분명 뒷일을 생각했을 것이야! 여지를 남겨 두었을 것이야! 분명 30만 냥이 전부가 아닐 것이야! 은자라면 얼마든지 있겠지!

무슨 일이 있어도 4만 냥은 만들어내야 한다. 이 세상에 무슨 일도 이 4만 냥보다 중요한 일은 없어!

이 난장판은, 큰일부터 해결하고 나서 돌아와서 처리하면 된다. 여기서 일어난 일은, 큰일도 아니다.

강환장은 한 손엔 은표를, 다른 한 손엔 장삼 자락을 움켜쥔 채 청휘원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전 관사가 치켜든 손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전 관사는 입을 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세자야, 정말로 미치셨군요!

드디어 강환장이 돌아온 걸 본 오 어멈은 겨우 안도하던 차였다. 그런데 말 한마디 하기도 전에 강환장이 바람처럼 달려가는 모습이 곁눈에 보였다. 오 어멈은 놀랍기도 하고 분노도 치밀어서 몸에 힘이 풀려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사현은 그 틈에 벗어났다. 손엔 몇 장이나 움켜쥔 건지도 모를 은표를 꼭 쥐고, 품엔 금은 장신구를 잔뜩 쑤셔 넣은 채 토끼보다 더 빨리 달아났다.

춘연은 강환장을 보고도 상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로지 추미만 주시했다. 추미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는 한, 그녀도 버틸 수 있었다.

단 한 번도 강환장을 신경 쓴 일이 없는 추미는 강 이낭자와 강 대낭자가 강환장을 보고 힘이 풀린 틈을 타서 단번에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한 손으로 강 이낭자의 옷깃을, 다른 손으로 강 대낭자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큰 소리로 고함치며 힘껏 흔들어대자, 강 이낭자와 강 대낭자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금은 장신구가 짤랑짤랑, 우르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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