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양 구야(舅爺)
대교는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진 강환장을 보고도 다가가 부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낭자의 병이 갈수록 깊어진다고 청국이 그랬다. 낭자가 친정에 있을 때 얼마나 건강했나. 종일 놀다가 들어와서 힘들어 죽겠는데도 낭자는 여전히 활기 넘쳤다.
낭자가 뭘 잘못해서? 이가가 뭘 잘못해서?
낭자가 정말 눈이 멀었지! 태태도 어리석으셨던 거야!
대교는 고개를 돌려 물결이 출렁이는 금명지를 바라봤다. 저자가 조금 전에 조금 더 심하게 어지럼증을 느껴서 호수에 빠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구하기야 구해야겠지만, 물을 실컷 먹은 다음에 구하면 되는데…….
“진왕의 마차를 살피고 있거라.”
강환장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어두운 얼굴로 분부하고는 뒷짐 진 채 금명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동안 너무나 조급해하고 초조해했어!
아직 너무 일러. 선황이 빈천(殯天: 황제의 죽음)하기까지 4, 5년은 남았어. 황상이 태자를 세우는 것도 4년이나 남았고. 서두를 것 없다. 하나도 서두를 것 없어.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이번엔, 작은 걸음도 제대로 움직여야 해.
“세자야, 저기, 진왕부의 마차 같습니다.”
대교가 말했다. 기분이 안 좋은 건 안 좋은 거고,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해야 했다. 시력이 좋아서, 금명지 입구에 마차가 들어오자마자 멀리서도 진왕부 표식을 알아봤다.
“가 보아라.”
강환장이 순간 정신을 가다듬었다.
“진왕부 마차입니다.”
대교가 열댓 걸음 가 보고 똑똑히 확인하자, 강환장은 흡족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곁에 대교가 있었다. 하지만 문 이야는 어디에 있을까.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재주가 놀랍도록 뛰어난 문 이야였다. 그리고 영해도.
강환장은 어제 고가 부자 일이 떠올랐다. 영해가 있었다면 그런 사소한 일을 그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영해는 또 어디에 있을까.
서두르지 말자, 서두르지 말자.
강환장은 또 스멀스멀 올라오는 조바심을 재빨리 억눌렀다. 서두르지 말자. 조금 기다리면, 올 것은 다 찾아온다.
“오, 강소화(昭華)였군.”
한눈에 강환장을 알아본 진왕이 친밀하게 그의 자를 부르며 웃음 지었다.
“소화의 풍모가 출중하여 한 번 보고도 잊을 수가 없군.”
“왕야, 과찬이십니다.”
강환장이 장읍했다.
“자네도 연무를 보러 온 겐가?”
강환장이 진왕 곁을 바짝 따르며 대답했다.
“예, 듣자 하니 오늘 호성영과 천무영이 대결을 한답니다. 올해 금명지 연무는 분명 매우 재미있을 것입니다. 놓치기 아까운 대결입니다.”
호성영은 사황자 연왕(燕王)이 통솔하고, 천무영은 대황자 양왕(梁王)이 통솔했다. 동복형제인 연왕과 양왕 둘 다 황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두 사람의 암투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오늘 이 금명지 연무부터였다.
전에는 이 연무를 보러오지 않았었다. 양왕과 연왕, 이 동복형제가 칼끝을 겨누고 대놓고 싸우기 시작한 것이 바로 오늘 연무부터였다는 걸, 문 이야가 그에게 의탁한 첫날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그때야 뒤늦게 깨달았었다.
이번엔 반드시 서둘러 진왕의 신임을 얻어야 했다. 반드시 남보다 훌륭한 자신의 수많은 장점을 진왕 앞에 드러내야 했다.
그 당시, 아무도 진왕이 즉위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문 이야와 그는 앞으로의 국면과 진왕의 생각을 세세히 분석했었다. 국면은 너무나 명확했다. 대황자, 아니면 사황자. 어느 쪽이 즉위해도 진왕으로서는 상관없었다. 이 쟁투에서, 진왕이 해야 할 일은 중립.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양쪽의 포섭 속에 어느 쪽도 거스르지 않고 어느 쪽도 가까이하지 않는 것.
쉬워 보여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황상이 매우 정정할 때라, 이 쟁투가 몇 년 동안 지속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긴 세월 동안 갈대처럼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능이 평범하고 성격이 온화한 진왕은 어릴 때부터 가장 큰 바람이 무사히 자라는 것에 불과했다. 보위는 자기와 별 상관없음을 어릴 때부터 명확히 깨달았다.
그래서 강환장이 할 일은 진왕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갈대 노릇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지금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지만 그 결과를 말하면 안 되고, 말할 방법도 없었다. 진왕이 다른 두 황자를 거리낄 필요가 없고, 진왕이 곧 황상이 된다는 걸 잘 알지만, 지금으로서는 예전에 문 이야가 세운 전략대로, 진왕이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갈대 노릇을 잘 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왕은 걸음을 멈추고 한참 동안 강환장을 빤히 바라보다가 희미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럼 자네는 누가 이길 것 같은가?”
“어찌 됐든 피를 나눈 동복형제이니, 누가 이기고 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형제끼리 경쟁하는 것이니 멀리서 지켜보고, 양쪽이 다 다치는 일만 없길 바랍니다.”
강환장은 뼈가 있는 대답을 했다. 양쪽이 다 다치는 일, 그는 일단 여기까지만 넌지시 짚어주었다.
진왕이 조금 놀란 듯이 탄성을 뱉었다.
“오? 어찌 멀리 지켜본단 말인가? 자세히 말해 보게.”
강환장은 담담하고 느긋한 표정으로, 전에 문 이야와 함께 몇 번이나 거듭해서 자세히 분석하고 궁리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진왕은 매우 진지하게 듣다가 강환장이 말을 마친 후에도 한참을 침묵했다. 그러더니 그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고 웃으며 물었다.
“소화가 올해 몇 살인가? 혼인은 했고?”
“하릴없이 봄을 스물두 번 보내고, 올해 2월에 막 혼인했습니다.”
“정말 젊은 인재군. 자네가…….”
진왕은 쥘부채로 강환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어느 댁 자제인지 떠오르지 않는군.”
“수녕백부 강가 화원의 아들입니다.”
“아, 생각났다. 생각났어!”
강환장의 다급한 대답에 진왕이 쥘부채를 두드리며 하하 웃었다.
“이미 세자가 되었지? 수녕백이라……. 조상이 군공으로 가문을 일으켰지. 문약해 보이는데 대장군의 자질이 있을 줄 몰랐군. 임무를 맡은 적 있는가?”
“아직 없습니다. 소생 글공부를 매우 좋아하여, 글공부하며 허송세월했습니다.”
“글공부한 것이 어찌 허송세월인가. 왕부에 마침 장사(長史: 참모, 막료)가 없어서 이부(吏部)에서 많은 이의 이력을 보냈는데, 마음에 드는 자가 없더군. 소화처럼 글공부를 많이 해서 식견이 넓은 사람을 원했어. 소화, 재주가 아깝겠지만 맡아주겠는가?”
“바라마지 않던 일입니다!”
강환장은 크게 기뻐하며 장삼 자락을 펼치며 꿇으려고 했고, 진왕이 덥석 그를 잡았다.
“예를 갖출 것 없네. 나도 서책을 좋아하네. 앞으로 잘 가르쳐 주게, 소화.”
“가당치 않습니다. 가당치 않습니다!”
강환장이 연신 장읍했다.
강환장은 진왕 곁에 바짝 붙어서 금명지의 용쟁호투를 끝까지 지켜봤다. 진왕은 기분이 매우 좋은지 능운루에 가서 가볍게 술 한잔하며 인연이 되어 좋은 막료를 얻은 기쁨을 나누자고 한사코 강환장을 초대했다.
두 사람이 능운루 독채에 자리 잡고 앉자마자, 독채 밖에서 사환의 보고가 들어왔다.
“왕야, 양 구야(舅爺: 황제의 처남인 국구國舅)가 급한 일이라고 뵙길 청합니다.”
진왕은 눈살을 살며시 찌푸렸고, 강환장은 속으로 미칠 듯이 기뻐했다. 양 구야가 무슨 일로 왕야를 찾아온 건지 알고 있었다.
좋아, 좋아! 매우 잘 되었어! 이번엔 이 황금알이 내게 떨어지려는구나!
진왕의 생모 양빈은 말단 관리 집안 출신이고, 양빈의 부친은 그녀와 모친, 그리고 유복자 아우를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양빈은 모친과 함께 금이야 옥이야 아우를 보살폈는데 아우가 열세 살 되던 해에 큰 병을 앓았다. 양빈은 아우의 병을 고치려고, 또 아마도 출세할 기회를 노려볼 생각을 품고 모친 몰래 직접 이름을 올리고 입궁했다. 주 귀비 궁에 궁녀로 가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술에 취한 황상의 성은을 입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 후 삼황자를 낳고, 양빈으로 봉해졌다.
그땐 아직 살아있던 주 태후가 황상이 주 귀비만 총애하지 않도록 후궁에 관여하고 견제한지라 주 귀비가 매우 까탈 부리던 때였다.
이황자의 요절한 생모 소 현비가 바로 이황자를 낳은 다음 달에 주 귀비가 트집을 잡아 무릎을 꿇려 벌을 세운 바람에 한여름에 더위를 먹고 쓰러져서 목숨을 잃었다.
그 당시 양빈은 궁에서 전전긍긍,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하고 지냈다. 다행히 황상이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주 귀비가 주 태후 궁에서 삼황자를 볼 때마다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양빈을 무릎 꿇리고 뺨을 치거나 채찍을 휘두르긴 했어도 독한 수는 쓰지 않아서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주 태후가 세상을 뜬 후로, 주 귀비는 황상의 총애를 독차지했다. 그 덕에 성질이 누그러져서 양빈 같은 독수공방하는 후궁을 괴롭히는 일은 거의 없었고 가끔 불러서 간식 같은 걸 하사하기까지 했다.
한숨을 돌린 양빈은 드디어 어머니와 아우를 챙길 여력이 생겼다.
진왕이 혼인하여 왕부를 세운 후로, 양빈은 거의 매일 진왕에게 사람을 보내 외조모와 외숙을 돌봐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외숙을 신신당부하며 부탁했다.
하지만 하필 이 양설곤(楊雪坤), 양 구야는 너무나 누렇게 뜬 떡잎이었다.
첫째, 게을렀다. 가능하면 눈꺼풀도 들어 올리려고 하지 않을 정도로 게을렀다. 둘째, 식탐을 부렸다. 돼지 머릿고기를 가장 좋아해서 머릿고기를 입에 넣으면 큰 입이 불룩 불러올 때까지 욱여넣었다. 셋째, 작은 이득을 탐했다. 한 푼이든 두 푼이든, 작은 이익을 손에 넣지 못하면 밤에 잠도 못 잤다. 그런데 막상 큰 이득은 욕심을 부릴 배포도 없었다.
이런 건 다 됐다고 치고,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어리석음이었다. 천인공노할 정도로 어리석었다.
진왕이 즉위한 다음, 이 양 국구가 벌인 수많은 영광스러운 일들을 떠올린 강환장은 차마 더 떠올리기도 싫어졌다.
이 양 국구가 유일하게 묵칠을 본받아 행동하고 그의 지휘만 따랐는데, 정말이지 유유상종, 그른 떡잎끼리 아끼는 짝이 아닌가.
“모셔라.”
진왕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모시라고 분부했다.
양가엔 이 외숙 하나뿐이라서, 설령 모친이 매일같이 당부하지 않아도 잘 돌봐야만 했다.
양설곤 양 구야는 꾀죄죄한 직금 비단 포자를 입고 허리띠도 매지 않은 채 불룩한 배 위에 손을 올리고 어깨를 움츠리고서 쉴 새 없이 코를 훌쩍이며 벽에 딱 달라붙어서 들어왔다.
진왕은 말문이 막혀서 외숙을 바라봤다. 저택을 마련해주고, 시녀, 어멈을 보내주었다. 모든 걸 다 갖췄다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갖출 건 갖춰주었는데, 이 옷, 대체 무얼 하면 이렇게까지 더럽힐 수 있을까?
“와, 왕야.”
양 구야가 양손을 함께 치켜들어 코를 훔쳤다.
진왕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손에 든 차를 마실 생각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진왕은 가능한 한 다정하게 물었다. 그의 외숙은 간이 참 작았다.
양 구야가 울상을 지으며 다리가 풀린 듯이 주저앉았다.
“큰일 났습니다. 전 죽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밖에 누가 구야와 함께 왔느냐?”
진왕이 깜짝 놀라 묻자, 밖에서 사환이 대답했다.
“아룁니다, 왕야. 혼자 오셨습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말하세요. 내가 있으니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진왕이 호언장담하며 우선 외숙을 달랬다. 일단 이야기를 듣고 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