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설계 된 판 三
전 관사는 듣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큰일 났구먼! 어멈은 우리 저택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겠지만, 우리 저택은…… 엉망진창입니다. 손발이 깨끗한 놈이 하나도 없어요! 이따 술을 많이 마시면…… 혹시나, 얼른 사람을 불러 지켜보세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중문 밖에서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때려라! 때려! 망할 것! 누가 감이 나를 막는지 두고 보자! 천한 노비 놈들, 다 때려죽이겠다!
때려죽일 것이야!”
“썩 비켜! 꺼져! 강환장, 나오라고 해라! 강가 놈! 썩 나오너라! 내 앞에 나올 수 있느냐!”
분노에 가득한 고사현과 고 노야의 목소리였다.
만 어멈과 전 관사는 동시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얼굴을 마주 봤다. 전 관사는 정말로 얼이 빠졌고, 만 어멈은 뻔히 알고 있어서 조금씩 안도하면서 일부러 놀라고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을 딱 맞추는 데 겨우 성공했다. 이런 일을 꾸미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꽤 생소하긴 했다.
“이게 누구야? 목소리가 어째…… 고 대야 같은데?”
“맞습니다! 알아요, 이 목소리! 재가 되어도 알아듣지! 왜 또 온 것이야? 무얼 하려고?”
전 관사의 목소리까지 변했다.
만 어멈은 다급하고 당황한 모습으로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아이고! 이를 어째. 분명 좋은 일은 아니지! 세자야가 저택에 안 계시는데……. 아이고머니나! 이게 무슨 짓이야? 안에 한 무리, 밖에 한 무리! 얼른 대내내에게 말씀드려야겠네. 아이고, 난리 났네!”
만 어멈은 너무 당황한 것처럼 걸음을 떼다가 획 돌아보며 곳간을 가리켰다.
“전 관사, 난 지금 여길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곳간, 어떻게든 전 관사가 지켜봐야 합니다. 아까 말했잖아요. 다른 사람은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낭자의 혼수! 보물! 모두 안에 있어요. 가득하다고요! 얼른, 얼른 가요!”
“예, 예, 예. 마음 놓아요! 마음…….”
전 관사는 연신 대답하면서 상자를 안은 채 뒤돌아보며 혼수 곳간으로 곧장 달려갔다. 그의 뒤 중문 쪽엔 고사현이 선두에서 수화곤을 휘두르며 꽥꽥 고함치면서 뒤쫓아 오고 있었다.
수녕백부 문간방에 있던 종복들은 아직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분노에 잠겨 있었다. 세자야가 자신들의 노후 자금으로 고 이낭을 사 왔다니!
고사현과 고 노야가 다시 찾아오자, 안 그래도 분노한 종복들은 세자야도 저택에 없겠다, 대내내도 몸져누워있겠다, 약속이나 한 듯이 화풀이라도 하려고 하나같이 팔짱을 끼고 바라봤다. 이 망신스러운 난리가 났는데,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해야지!
그렇게 고사현과 고 노야는 막힘 없이 단숨에 대문에서 중문까지 쳐들어갔다. 고 노야부터 머릿수나 채우려고 의자를 들고 뒤를 따르는 오합지졸까지, 모두 투지가 불타고 자신감이 넘쳐서 대문 앞에 막 도착했을 때보다 훨씬 격앙되고 불타올랐다.
수화곤을 든 고사현은 맨 앞에서 뛰쳐 들어갔다. 하지만 선두에 서 있긴 한데,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두서가 없었다. 일단 자기가 맨 앞에서, 그것도 이렇게 순조롭게 쳐들어오게 될 줄 전혀 몰랐다. 쳐들어오긴 했는데 흥분으로 머리가 달아올라서 침착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소란스럽고 사람이 많은 쪽으로 무턱대고 달렸다.
고 이낭은 수화곤을 들고 쳐들어오는 오라비와 아비를 계단에 서서 입을 떡 벌리고 바라봤다. 가장 먼저 ‘오라버니와 아버지가 날 잡으러 왔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겁에 질려 돌아서서 달아나려 했다. 청서가 그런 그녀를 덥석 잡아끌었다.
“고 이낭, 어딜 가려고. 어머니가 왔고, 동생들이 왔고, 아버지와 오라버니도 왔는데, 어딜 가려고? 그러지 말고 이야기나 해봐. 아비와 오라비가 대내내 돈을 10만 냥이나 가지고 갔더니, 재미 붙였나 봐? 세자야가 안 계신 틈에 또 찾아와 소란을 부리다니 말이야. 이번엔 얼마나 뜯어가려고? 달아나려고? 어디로 가려고? 아비, 오라비가 찾아왔는데, 맞이해서 함께 강도질하지 않고 어딜 달아나려고?”
“헛소리하지 마! 허튼소리! 우리 고가가 궁핍해도 재물을 탐내는 족속이 아니야! 허튼소리 하지 마!”
고 이낭이 매섭게 호통치자, 그 말에 주변에서 박장대소했다.
“아이고야. 맞는 말이네. 재물을 탐내는 족속이 아니지, 암.”
“대뜸 10만 냥을 달랬으니, 재물을 탐내지 않는 게 맞지. 아라 낭자였대도 몸값 10만 냥은 못 받았을 거야. 정말이지, 재물 욕심이 너무 없네!”
“그건 다르지. 아라 낭자는 기녀라고 해도 체면이 있는데, 우리 저택 이분은, 체면도 없지. 체면은 없고 은자만 바라네! 그런데 염치도 없이 재물을 탐내지 않는다고 잘도 말하네!”
“아이고, 어머니.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염치가 없네. 하긴, 염치없는 물건이 무슨 말을 못 하겠어. 무슨 짓을 못 하겠냐고!”
이미 자리 잡고 앉았던 관사 어멈들이 벌떼같이 몰려와서 구경하다가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는 말이 갈수록 듣기 거북해졌다. 고가 일가가 말 한마디로 모두의 노후 자금을 싹 쓸어갔으니, 그 분노로 가슴이 활활 타던 중이었다.
고 이낭은 애간장이 끊어지는 듯했다.
환장 오라버니가 정말로 오라버니와 아버지에게 10만 냥을 주었어? 말도 안 돼! 새언니가 나를 첩으로 들이는데 10만 냥을 내놓았을 리가 없잖아! 우리 집에 줄 은자를 내놓을 리가 없잖아! 말도 안 돼! 이씨의 간계야. 분명 간계를 부린 거야!
고사현과 고 노야가 사람을 거느리고 쳐들어오자, 진 태태는 몹시 놀라고 당황해서 아들과 지아비를 바라봤다. 고사현과 고 노야는 얻었다가 잃은 10만 냥 때문에 얼굴이 뒤틀려서, 지옥에서 탈출한 흉악한 악귀 같은 모습이었다.
진 태태는 겁에 질려 연신 비명을 지르면서 어린 아들을 껴안고 고 이낭 뒤로 몸을 숨겼다. 고가 어린 낭자들은 진 태태보다 더 심하게 놀랐다. 오라비와 아버지가 평소에도 자신들을 보면 때리고 욕하는데, 지금은…… 잡아먹을 것 같잖아!
낭자들은 하나같이 진 태태보다 백 배는 처참하게 고함을 지르고, 진 태태보다 더 빨리 달아났다. 놀라서 겁에 질린 어린 낭자들이 고 이낭 곁으로 달려들었다.
제일 빨리 달려든 오낭자는 고 낭자 곁에 달라붙다가, 고 이낭 허리에 매단 적금 금보가 보이자마자 재빨리 잡아채서 품에 넣었다. 고 이낭보다 한 살 어리지만 키도 크고 기운도 센 이낭자는 고 이낭 옆으로 달려오자마자 대뜸 고 이낭을 밀쳤다.
“뻔뻔한 물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이낭자는 고 이낭을 밀치면서 고 이낭 머리에 꽂은 적금 비녀를 뽑았다. 고 이낭은 온몸의 장신구를 지키면서 다급하게 비명을 질렀다.
“비켜! 다 비켜! 염치없는 것들! 꺼져! 꺼지란 말이야!”
청서는 진작 고 이낭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관사 어멈 사이로 숨어서 포복절도하며 바라봤다. 속이 다 후련했다.
“얼른! 곳간을 지켜! 대내내의 혼수가 곳간에 다 있어! 은표도! 얼른!”
누군가 꽥 고함치자, 허드렛일하는 어멈 몇이 자기가 움직인 건지 아니면 밀려서인지, 무턱대고 이동의 혼수 곳간 쪽으로 내달렸다.
그 목소리, 그리고 뛰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한창 신이 나서 때려 부수던 고사현과 고 노야는 가야 할 방향을 찾았다. 고사현이 크게 고함치고는, 전 관사가 온몸으로 지키는 곳간을 향해 달려갔다.
강부의 종복들은 저마다 꿍꿍이를 품고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이며, 누구보다 다급해 보이는 모습으로 재빠르게 달렸다. 다들 고사현 뒤를 쫓는 사이, 고사현은 우선 전 관사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러 걷어찬 다음에 곳간 문을 걷어찼다.
곳간 문이 열리자, 강부 종복들의 걸음이 더 빨라졌다. 하나같이 소리를 지르면서 다들 앞장서서 고사현을 밀쳐냈다. 튕겨 나간 고사현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엉겁결에 입구까지 내쫓겼다. 가까스로 몽둥이를 짚고 중심을 잡은 고사현은 어멈들이 필사적으로 곳간 안으로 달려들어 가서 대내내의 혼수를 지키는 걸 눈을 희번덕이며 노려봤다.
전 관사가 품에 안고 있던 상자는 누구에게 떠밀렸는지, 걷어차여서 산산조각이 났다. 한순간, 상자 안에 있던 은표가 바람에 흩날렸다. 막 곳간 문 앞으로 내쫓긴 고사현은 그걸 보자마자 흥분해서 우어, 하고 고함치더니 수화곤을 내던지고는 먹이를 덮치는 굶주린 호랑이처럼 은표를 잡아채려 손을 뻗었다.
동시에 아직 곳간에 들어가지 못한 종복들이 그보다 더 재빠르게 은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어디에서 불어온 요사한 바람에 은표가 흩날렸다.
하늘이 도왔는지, 이날 이른 아침부터 바람이 불었는데 지금은 바람이 꽤 거세졌다. 요사한 바람이 작은 회오리처럼 은표를 휩쓸어서 높이 날아올랐다가, 낮게 떨어졌다가, 빙글빙글 춤을 추며 날아갔다. 수운간은 물가에 있어서, 연달아 부는 바람에 흩날린 은표가 금세 수면 위로 떨어졌다. 은표가 수면 위에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비바람과 함께 우박이 떨어지면서 물이 튀고 수면에 뜬 은표가 빙글빙글 돌더니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고 노야는 포위를 뚫고 앞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그는 기세등등하게 몰려온 종복들에게 깔려 넘어져 있다가 눈이 시뻘게져서 은표를 노려보며 기어갔다. 하지만 결국엔 계속해서 처참하게 절규만 할 뿐이었다.
고 이낭은 얼이 빠진 채 계단에 서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혼란한 장면을 바라봤다. 피가 거꾸로 솟구쳐서 눈앞이 시커메졌다.
이건 이씨의 간계야. 분명 이씨야, 그 여인이야! 나를 죽이려는 거야. 나를 이 자리에서 죽이려는 거야!
강환장은 말을 몰고 수녕백부를 나섰다. 대교와 독산은 뒤를 바짝 쫓으며 금명지를 향해 달려갔다.
이른 시간이라 가는 내내 빠르게 달린 그들이 금명지에 이르렀을 때, 온 금명지가 텅 비어서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말에서 내린 강환장은 편안하게 기지개를 켜 몸을 풀어주고 주변을 둘러봤다. 대교는 재빠르게 말을 수습했고, 독산은 고개를 움츠린 채 대교의 뒤를 따르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런 독산의 모습에 강환장은 혐오스러운 듯 눈살을 찌푸리고는 그를 노려보며 분부했다.
“네가 말을 지키고, 대교는 날 따라오너라.”
“예?”
‘예?’ 소리를 내던 독산은 강환장의 냉랭한 시선에 끽소리도 하지 않고 대교에게 고삐를 넘겨받아 말을 끌고 터덜터덜 밖으로 나갔다.
대교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매무새를 고치고 차분하게 강환장 뒤로 가서 고분고분 고개를 숙였다. 시선도 함부로 돌리지 않았다.
강환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대교 이놈은 그래도 꽤 그럴싸한 꼴이군.
향기로운 따듯한 바람이 부는 늦봄의 금명지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강환장은 아침햇살을 맞으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기분이 너무나 상쾌했다.
어젯밤 고씨의 수줍고 고운 모습이 지금 이 금명지의 봄볕처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강환장은 양팔을 활짝 펴고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고 또 들이마셨다. 처음으로 이 젊고, 활기찬 몸이 가져다준 행복을 만끽했다.
요즘, 내가 너무 초조해했지.
어젯밤에 품에 고씨를 안고 잠들었더니, 돌아온 이래 매일같이 꾸던 악몽을 꾸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보이던 끝도 없이 서서히 흐르던 끈적끈적한 선혈이 나타나지 않았다. 지극한 공포로 몰아넣던 피비린내, 뜰 안에 가득 쌓였던 머리 없는 시신, 그리고 여기저기 나뒹굴던 머리통…….
번쩍 눈을 뜬 강환장은 비틀거리며 옆에 있는 나무를 양손으로 짚었다.
그 광경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