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설계 된 판 一
진 부인이 온몸이 괴로운 듯 가슴을 두드렸다.
“데리고 나가라! 보기만 해도 화가 치미는구나. 그놈의 집구석 전체가 파렴치하구나. 철면피야! 나가라고 해라. 끌고 나가! 앞으로 다시는 내 거처에 들이지 마라. 저 천것을 보고 싶지 않아! 볼 수가 없어!”
청서가 나와서 고 이낭의 옷깃을 대뜸 잡고 깔끔하게 일으켜서 질질 끌고 나갔다.
상방에서 나오면서 바람을 쐬자, 고 이낭은 조금 정신이 들면서 상황이 지나치게 괴이하다는 걸 드디어 깨달았다. 오라버니가 자기를 너무 아끼니까 시기해서라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렇지 않으면 아완과 아녕까지 이렇게 나올 리가 없어. 하지만, 무슨 일이기에?
어제 오라버니의 태도를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지 않아. 무슨 일이 있겠어?
설마, 이씨가 나를 해치려고 판을 짰나?
청서는 단숨에 고 이낭을 진 부인 정원에서 끌고 나간 다음 손을 풀고 손수건을 꺼내 손을 박박 닦았다. 고 이낭이 넋이 나가 움직이지도 않자, 진심으로 우러난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고 이낭을 밀었다.
“서둘러, 서둘러. 곧 연회 시작이야. 주인공이 늦으면 안 되지! 얼른 가자. 고가 태태, 그리고 너희 고가 이낭자, 삼낭자, 사낭자, 오낭자, 육낭자, 칠낭자! 아우, 숨차다. 고가 태태는 참 잘도 낳는다! 암퇘지보다……. 아이고, 이건 장점이지. 우리 가문은 아이가 부족하니까! 그리고 너희 집 이야도, 곧 다 도착할 거야. 아무리 그래도 가서 맞이해야 하지 않겠어?”
“뭐라고?”
고 이낭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일가를 다 부르다니. 꿈에도 생각한 적 없는 일이었다. 정신을 차린 고 이낭은 목소리를 죽이고 날카롭게 외쳤다.
“왜 다 불렀어? 누구 마음대로 불러?”
“어머나?”
청서는 뒤로 물러나면서 한 손으로 손수건을 털며 위아래로 고 이낭을 훑었다.
“고 이낭, 그게 무슨 말이지? 높은 나무에 올랐다고, 이제 친어미, 아비도 모르는 체하는 거야? 누구 마음대로 불렀냐고? 지금 누구 마음대로 불렀냐고 했어? 그걸 누가 허락해야 해? 네 친아비, 친어미, 친자매야! 고 이낭, 무슨 말을 그렇게 하지? 정말 뻔뻔하네!”
청서는 끌끌 혀를 찼고, 고 이낭의 얼굴은 새파래졌다. 제 여동생들이 어떤 물건인지, 너무나 잘 안다.
강가에 막 들어와서 아직 자리도 못 잡았는데, 가족들을 부르다니……. 일부러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거지. 청서, 이 악독한 나쁜 년!
고 이낭은 청서를 노려보며 삿대질하며 이를 갈았다.
“잘 들어! 설사 내가 이낭이 되었다고 해도, 고가는 강가의 친척이야! 내가 이낭이 되면, 우리 어머니가 부인의 친동생이 아닌 게 돼? 내가 부인의 생질녀가 아닌 게 되냐고! 내가 우스워지는 걸 보려고? 흥!
잊지 마. 내가 우스워지면, 부인도 우스워져! 거들먹거리다 큰코다친다?”
고 이낭이 연신 코웃음 쳤다.
청서도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닌지라 가슴을 토닥이며 화사하게 웃었다.
“아이고야, 무서워라. 정말 무서워 죽겠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어머니, 자매를 불러서 다 같이 떠들썩하게 축하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 체면 세워주는 거라고. 말 좀 해 봐. 네 어미, 자매를 불러서 축하하는 게, 왜 널 웃음거리로 만드는 거지? 자, 형님한테 제대로 설명해 봐. 왜 어미와 자매를 부르는 게 널 웃음거리로 만드는 거냐고? 얼른 이 형님한테 말해 보라니까?”
“흥!”
고 이낭은 청서와 말씨름하지 말자 싶어서 코웃음 치고 돌아서서 바람처럼 밖으로 달려갔다.
앞날은 길어! 지금은 저런 것을 상대할 때가 아니야. 어서 어머니랑 사람들을 막아야 해. 들어오면 안 돼. 절대로 안 돼!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장방 전 관사는 우선 손 관사에게 한바탕 하소연했다. 그 하소연은 어젯밤 벌어진 일까지 이어졌고, 펄쩍 뛰며 고가를 욕한 전 관사는 세자까지 대놓고 욕하지는 못해서 은근슬쩍 에둘러 몇 마디만 했다.
고가가 새로 찍어 빳빳한 은표, 바로 현은으로 바꿀 수 있는 은표를 뜯어갔다는 소식을 오늘 이른 아침에 들었다. 그 10만 냥은 나이 든 종복들의 노후 자금, 그리고 두 낭자의 지참금이라나!
그 이야기를 들은 전 관사의 심장이 쿡쿡 쑤시고 아팠다. 아파서 세수도 못 하고 이도 닦지 못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서 다리, 허리가 다 안 좋았다. 2년 전부터 슬슬 은퇴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은퇴하고 나면 집을 먹여 살릴 수가 없었다. 버틸 순 있어도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고가에서 10만 냥을 뜯어가지 않았다면, 당장 은퇴할 수 있는데. 좋은 논 2백 묘가 있는 장원이라니. 그야말로 신선처럼 살 수 있는데!
전 관사는 원망스러운 마음에 마음이 아프고 골이 쑤시고 이가 시렸다. 손 관사도 똑같이 숨통이 조이도록 화가 났다. 그와 마누라 모두 이 저택에서 일했다. 그 10만 냥이 아직 있다면, 두 사람 몫을 더하면 적어도, 적어도 논 백 묘가 생긴다. 백 묘!
두 사람은 침을 튀기며 주거니 받거니 욕을 퍼부었다. 욕을 할수록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흐른 걸 본 전 관사는 일어나서 만 어멈을 만나러 중문으로 향했다.
20만 냥이 장방으로 들어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노후 자금을 먼저 빼내야 해!
이건 강가가 내게 진 빚이니까!
만 어멈은 곧바로 사람을 보내 말을 전했다. 은표는 대내내 방에 있는데, 대내내는 어제 시달린 일로 밤새 잠을 못 자다가 날이 밝았을 때야 겨우 잠드셔서 깨울 수가 없다고. 이따 대내내가 깨면 사람을 보내서 부르겠다고.
장방으로 돌아온 전 관사는 손 관사와 함께 다시 욕을 퍼부었다. 한참 마음 아프게 욕하고 있는데, 대문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떠들썩한 일이 벌어진 느낌에, 두 사람은 함께 장방에서 비집고 나와 구경하러 대문으로 향했다.
대문 밖에 허름한 마차 세 대가 멈추더니 꾀죄죄하고 낡은 옷을 입은 어린애들이 연달아 뛰어내렸다. 뒤로 갈수록 더 어린아이가 줄줄이 내리더니 금세 대문 앞에 쪼르륵 섰다. 마지막에 진 태태가 둘째 아들을 안고 내려서 곧장 계단으로 향했다.
마부가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거기 태태, 마차 값 내셔야지요!”
저, 저, 고가 어린것들 꼴 좀 보라지. 제길, 거지만도 못하군!
전 관사가 혀를 차고는 손 관사와 둘이서 빙그레 웃으며 영벽에 기대서 구경했다.
진 태태는 못 들은 듯이 그저 아들을 안고 계단으로 올라갔다.
마부는 다급해져서 그녀를 잡아당겼다.
“태태, 마차 값 안 주셨습니다. 마차 세 대, 60전입니다.”
“무엄하다! 냄새나는 그 손 안 치워? 염치없는 천한 것!”
고가 이낭자 고방정이 벼락같이 고함치며 마부의 손을 쳐냈다. 삼낭자는 이낭자 뒤에 서서 가슴을 활짝 편 채, 팔짱을 끼고 즐겁게 구경 중인 문지기를 향해 매섭게 고함쳤다.
“얼른 저 천것을 때려서 쫓아내지 않고 무얼 해! 대체 일을 어찌 하는 거야! 이모에게 말씀드려서 장을 치라고 한다?”
문지기 우두머리가 눈짓하자, 문지기 하나가 나른하게 팔을 내리고 내키지 않는 듯이 계단 몇 개를 내려가서 진 태태 앞을 가로막았다.
“진 태태, 어젯밤에 분부가 내려왔습니다. 앞으로 고가가 출입할 때는 일절 측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측문, 들으셨지요? 여기서, 앞으로 가서, 왼쪽으로 돌아서, 쭉 가시면 있습니다. 잘 기억해 두십시오. 이제 뒤로 출입합니다! 일절! 측문이라고요!”
“무슨 법도가 이래? 다들 미쳤어?”
삼낭자가 펄쩍 뛰며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이낭자가 덥석 잡아당겼다.
“소리 지르지 마. 우리 그 큰언니, 낯짝 두꺼운 망할 것이 첩이 되어서 그래. 우리까지 다 노비가 되었어! 염치도 없는 것! 우리까지 망했어!”
“저기 태태, 마차 값 내시라고요!”
마부는 초조해서 미칠 것 같았다. 이 여인네들이 마차 값을 정말로 떼먹으려 하면, 설마 때려야 하나?
“거기, 젊은이.”
문 앞에서 구경하던 대요가 목소리를 높였다.
“마차 값은 내가 주겠소. 백씨, 사람을 불러 길 안내하게. 여인네들하고 일일이 따질 것 없지.”
여기서 지켜보다가 고가 모녀를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안으로 들여보내라고, 만 어멈이 대요에게 지시했었다.
전 관사는 고소해하며 여인들을 바라봤다. 어딜 봐서 서생 집안 식솔인지. 시정에서 가장 몰락한 집안에서 나온 무리 같고만.
고가 모녀가 우르르 계단에서 내려가는 걸 본 전 관사는 침을 뱉고 싶었는데 참았다. 어휴. 따지고 보면 불쌍한 사람들이지.
“전 어르신, 만 어멈이 소인더러 어르신을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대내내 앞에서 은표를 확인하고 가져가시라고 청휘원으로 같이 가잡니다.”
한 사환이 달려와 잡아당기자, 전 관사는 손 관사에게 한마디 남기고 얼른 뒤쫓아 안으로 들어갔다.
옥묵을 끌고 거처로 돌아간 고사현은 은표가 있어서인지, 그날 밤 유난히 위풍당당했고 연달아 몇 번이나 통쾌하게 즐겼다. 그야말로 강한 기개를 보여주고는 강한 기개에 힘이 풀리자 쓰러져서 푹 잠들어서 다음 날 정오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다.
진작 아들 거처에서 기다리던 고 노야는 그가 깬 걸 보고 씻으라고 재촉했다. 얼른 옷 갈아입고, 얼른 외출해서, 얼른 전장에 가자고.
고사현도 부친이 재촉할 것도 없이 후딱 얼굴을 닦고 깨끗한 옷을 골라 입고서 상자를 끼고 나섰다. 두 사람은 고개를 치켜들고 가슴을 활짝 펴고 어슬렁어슬렁 전장으로 직행했다.
전장에 들어간 고사현은 상자를 궤대(櫃臺: 계산대) 위에 천둥 울리듯 내려놓았다.
“너희 동가(東家: 점원·피고용인이 주인을 이르는 말), 나오라고 해라! 10만 냥짜리 장사다! 얼른 주인 나오라고 해라!”
눈치 빠르기 짝이 없는 전장 일꾼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둘러 두 사람을 안쪽 독채로 모셨고, 전장의 장궤(掌櫃)가 재빨리 들어가 공수하며 예를 갖췄다.
“이 안에 이 전장에서 발행한 은표, 10만 냥이 있네. 잘 듣게. 은표를 가져가고, 즉시 현은 10만 냥으로 바꿔 주게. 가지고 나올 것 없고, 이 전장에 맡기겠네. 이 몸이 필요할 때마다 와서 가지고 가지. 이자는……. 들어볼 테니 일단 말해 보게!”
고사현은 패기 만만하게 거들먹거렸고, 고 노야는 눈도 떼지 못하고 흐뭇한 모습으로 아들을 바라봤다.
정말이지 너무 뛰어난 놈이야. 기개가 있어!
“예, 예. 나리, 상자를 열어서 소인에게 보여주시겠습니까?”
식견 넓은 장궤는 공손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경계를 잃지 않았다.
“좋지! 똑바로 보라고!”
고사현은 불꽃 같은 기세로 손바닥으로 상자를 내리쳐 뚜껑을 열어 장궤 쪽으로 밀어주었다. 고개를 내밀고 지켜본 장궤는 곧바로 눈살을 찌푸리더니 상자 안으로 손을 넣지도 않고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나리, 상자 안을 좀 보시지요. 직접 꺼내서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고사현은 눈을 부릅뜨고 흥, 하고 외치고는 상자를 덥석 당겨서 목을 빼고 바라봤다. 순간 눈이 휘둥그레져서 튕기듯이 벌떡 일어났다. 그는 상자 안 종이를 움켜쥐고서 손을 떨며 빠르게 한 장씩 넘겼다. 다시 넘겨 봐도 모조리 하얀 종이였다. 은표가 아니야!
분명 은표였는데? 내 똑똑이 보았어. 한 장, 한 장 세어서 넣었지. 분명 은표였는데 어째서 백지가 된 것이야?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