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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33화 (33/463)

33화: 10만 냥 三

“왜 굳이 지참금을 30만 냥을 준비해서 보낸 줄 아는가? 우리 태태하고 고내내가 꼼꼼히 셈해 봤거든. 이 집에서 앞으로 치를 큰일이 몇 가지 있지. 우선 대낭자와 이낭자의 혼수, 세자야의 친동생이고 강가에 낭자는 딱 두 분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떳떳하게 해 보내야 하니까. 어멈은 식견이 넓으니까 알겠지만, 체면이라는 게 적어도 7, 8만 냥 준비해가지 않으면 도저히 세울 수 없는 것 아닌가?”

오 어멈의 가슴이 쿵 뛰었다. 순간 품에 안은 상자가 뜨거운 감자처럼 난감해졌다.

“두 번째, 이 저택의 종복 문제였지. 이건 어멈이 나보다 더 잘 알겠지. 한 번 봐봐.”

만 어멈이 뒤에 있는 어멈들을 가리켰다.

“다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어서 늙거나 병들었지. 다들 백야, 부인 곁에서 반평생 시중든 사람인데 노후를 돌봐줘야지. 우리 이가의 법도대로라면, 어멈 같은 사람이 몇 년 더 일하다가 그만두면, 장원 하나에 좋은 논 2백 묘를 내어주던가, 아니면 경성에서 장사가 잘되는 점포 하나 중에 고르게 하지. 노후에 기댈 곳은 있어야 하니까. 나머지는, 아무리 못해도 각자 50묘는 나눠줘야지. 그것보다 적으면 어떻게 노후에 먹고살아. 안 그래? 다행히 강가 저택엔 사람이 적어서, 이 돈은 5, 6만 은자이면 충분하고.”

오 어멈은 가슴이 뜨거워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뒤를 따르는 허드렛일 하는 어멈들은 눈이 활활 불타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가장 적게 잡아도 한 사람당 땅이 50묘였다. 50묘! 좋은 논 50묘!

세상에!

만 어멈이 짜증스러운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남은 10만 냥 안 되는 돈은 저택을 수리하고, 다들 그럴싸한 옷, 장신구를 마련해줘야지. 어찌 됐든 백부인데, 그만한 체면은 갖춰야지. 거기에 평소에 먹고 쓰는 것, 명절에 상금, 이런 것들도 전처럼 오로지 아끼기만 할 수 없잖아. 다들 얼마나 고생했어. 이렇게 계산해 보면 연말까지 버티면 남은 은자가 얼마 없지만, 그래도 그만하면 충분하지. 연말이 되면 점포, 장원에서 이자를 거둘 수 있고, 큰일은 더 없으니까. 그럼 평안하게 지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럴 줄 누가 알았나……. 후유.”

만 어멈의 말은 거기서 뚝 끊어졌고, 전청이 저 앞에 보였다.

강환장은 단정하게 앉았지만, 눈은 쉴 새 없이 내원 쪽으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안고 다가오는 오 어멈과 나란히 걸어오는 만 어멈을 보고서야 저도 모르게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고씨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식견이 얕고 분별이 없어서 혹시라도 난리를 부리고 순순히 돈을 내놓지 않으면 어쩌나 했다. 고가 부자가 또 소란을 피울 텐데. 관아에 가는 건 무섭지 않지만, 고씨의 명성에 해가 갈 테니 꺼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룁니다, 세자야. 세자야의 분부대로 현은을 은표로 바꿔뒀습니다. 오늘 복륭 은호에서 막 발행한 돈입니다. 즉시 바꿀 수 있는 은표로, 모두 천 냥짜리입니다.”

만 어멈이 무릎을 구부리며 고했다.

“음. 저들에게 내어주게.”

강환장이 손을 휘두르며 혐오 가득한 눈빛을 상자에서 고가 부자 쪽으로 옮겼다. 똑같이 혐오스러운 물건들이었다.

고 노야는 불을 뿜을 듯이 눈을 반짝였고, 고사현은 아직도 적게 부른 걸 후회하고 있느라 언짢은 얼굴로 눈을 흘기고 있었다.

“나중에 분쟁이 없도록, 모두 있는 자리에서 확실히 셈하고 넘기는 게 좋겠지요. 어떻습니까, 세자야.”

만 어멈이 오 어멈에게 눈짓하자, 오 어멈이 상자를 열고 상자를 강환장 앞에 쿵 하고 내려놓았다.

10만 냥을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10만 냥! 우리 노후 자금에 쓸 돈! 우리 관 값!

고 노야는 대뜸 달려왔고, 고사현도 후회할 겨를이 없어졌다. 더 멀리 앉아 있었지만, 제 아비보다 별로 느리지 않게 거의 동시에 달려들었다. 술에 빠진 붉은 금붕어 눈깔 네 개가 상자 안에서 먹향을 내뿜는 새 은표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만 어멈은 상자에서 은표를 꺼내서 눈깔 네 개가 빤히 바라보는 가운데 천천히, 한 장, 한 장 펼쳐놓고 열 장씩 한 묶음을 만들고, 다시 열 장을 펼쳐서 한 묶음으로 쌓고, 다 세어 보니 딱 열 묶음이 맞았다.

“고 노야, 고 대야, 똑똑히 보셨지요? 천 냥짜리로 총 백 장입니다. 다시 세어 보시겠습니까? 고 노야?”

오 어멈이 은표 열 묶음을 가리키며 물었다.

“됐네, 됐어! 똑똑히 봤네!”

고 노야가 굶주린 호랑이처럼 다가가 은표를 잡아채려고 하자, 고사현이 대뜸 잡아 끌어당겼다. 아무래도 젊은 고사현이 날렵한 동작으로 아비를 밀치고는 현란할 정도로 깔끔한 동작으로 은표를 다시 상자에 집어넣었다. 탁, 하고 상자를 닫고는 단번에 품에 꼭 끌어안고 뒤돌아서 아직도 이 상황에 치가 떨려 손을 떨고 있는 강환장을 향해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우가 주인 없는 이씨 가문 재물을 얻더니, 이렇게까지 넉넉해졌군. 좋아, 좋아. 오늘부터 우리는 겹사돈이 된 셈이지. 오늘 밤엔…….”

고사현이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통쾌하게 즐겁게 보내라고, 아우! 이 은자는 이 형님이 잘 쓰다가, 다 떨어지면 다시 찾아오지!”

“고 대야, 이 은표엔 이름이 적힌 것도 아니라서 누구든 가지고 가면 바꿔준답니다. 밖이 어둡고 사람도 없으니, 조심해서 가지고 가세요. 빼앗겼다고 다시 돌아와서 우리 세자야 심기 거스르지 마시고요.”

만 어멈이 고가 부자 뒤에서 당부하듯 비아냥거리듯 하는 말에 고사현이 슬쩍 돌아봤다. 그는 어멈을 힐끔 노려보더니, 거들먹거리며 상자를 끌어안고 턱을 치켜들고서 자리를 떴다.

사람들 눈을 피해 고가 저택으로 돌아온 옥묵은 곧장 고 낭자의 거처로 달려갔다. 고 낭자의 방 안이 엉망진창이 된 걸 보고 다른 곳으로 찾으러 가 봐도 고 낭자는 보이지 않았다. 진 태태는 아들을 끼고 벌써 잠들었고, 이낭자 거처엔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고 노야와 고사현은 집에 없었다. 두 사람은 항상 집에 없지만, 오늘은…….

옥묵이 애를 태우며 오늘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는 사람이 없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다들 고가 부자를 따라 구경 갔고 남은 사람은 하나같이 눈치가 없거나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이라 아무리 물어도 쇠귀에 경 읽기처럼 쓸 만한 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옥묵은 다시 고 낭자의 거처로 달려와 샅샅이 살폈다. 살필수록 가슴이 두근두근해서 방 안에서 서성거렸다.

대낭자가 어디로 갔지? 혼자 도망갔나?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세자에게 말을 전하라고 했는데, 돌아오기도 전에 도망갔을 리가 없지.

설령 달아나더라도, 내가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같이 갔을 거야.

지금 다른 사람은 다 있는데 대낭자만 없잖아. 대야도 없고, 노야도 없고. 설마 두 사람이 대낭자를 팔았나?

그 생각에 옥묵은 손발이 차가워졌다. 고 대야가 고 낭자를 팔 생각을 하루 이틀 한 게 아니었다.

옥묵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쉴 새 없이 가슴을 두드렸다.

진정해. 초조해하지 마. 고 대야한테 가서 무슨 일인지 떠봐야겠어.

고 대야만 생각하면 역겨워서 아무리 그래도 대야의 거처에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중문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어찌 됐든 두 사람 모두 집에는 돌아올 테니 기다리자 싶었다.

노야를 먼저 만날 수 있다면 제일 좋은데. 대낭자를 어디에 팔았는지 알아내서, 세자를 찾아가는 거야. 분명 대낭자를 구해주실 거야!

옥묵은 결심하고 단숨에 중문으로 달려갔다. 촘촘한 관목 뒤에 쭈그리고 앉아서 노야 혹은 대야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밤이 깊어서 이슬이 맺히기 시작할 즈음이 되자, 추워서 도저히 쭈그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옥묵은 일어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몸을 녹였다.

곧 한밤중이 되어서 대문 쪽에서 드디어 기척이 들렸다. 시원스럽게 껄껄 웃는 고 노야의 목소리에 옥묵의 가슴이 점점 더 가라앉았다.

좋은 가격에 대낭자를 팔았나 봐!

월동문 밖, 고 노야가 배를 내밀고 앞에서 걸었고, 고사현은 뒤에서 양손으로 상자 하나를 꼭 끌어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안으로 들어왔다.

“노야, 대야. 대낭자, 대낭자가…….”

옥묵은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나갔다. 고가 사람 중에 대야를 만나는 게 제일 무서웠다. 그녀를 탐낸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옥묵이냐? 늦은 시간에 아직 쉬지 않았어?”

고 노야가 배를 내밀고 몹시 온화하게 물었다. 뜬금없이 큰 재물을 얻었으니 기분이 너무 좋아서 누굴 봐도 기분이 좋았다. 아주, 아주 좋았다.

고사현이 순간 눈빛을 빛내며 바짝 다가와 옥묵의 턱을 쥐었다.

“요것 봐라. 우리 옥묵이 이렇게 예쁘게 자랐구나. 누구? 대낭자? 네 대낭자는 지금쯤 강가 아우와 물과 물고기처럼 운우지정을 나누느라고 정신없을 것이다. 대낭자 생각할 것 없다. 자, 이 몸과 같이 가자. 이 몸에게도 물고기가 있단다. 오늘 밤에, 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지경으로 황홀하게 해주마.”

옥묵은 ‘강’ 자를 듣자마자 곧바로 달아나려고 돌아섰지만, 고사현이 허리띠를 잡아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여인은 부드럽게 대해야지. 여인을 다루는 데도 학문이 있단다. 이 계집애는 그래도 봐줄 만하구나. 잘 즐기고, 내일 너무 늦지 않게 일어나거라. 일찍 전장에 가서 현은으로 바꾸어 와야지 마음이 놓이지 않겠느냐.”

고 노야는 한 손에 상자를 끼고 다른 한 손으로 쉴 새 없이 버둥거리는 옥묵을 쓰다듬는 아들을 흡족한 눈으로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풍류스럽고 멋을 아는 내 아들, 내 젊었을 때 풍채 그대로구나!

수녕백부, 곡란원.

고 낭자는 불안한 마음으로 강환장의 상방 문 앞에 서 있었다. 들어가고 싶은데, 시녀 소복이 팔짱을 낀 채 턱을 높게 치켜들고 문 앞을 막고서 아무리 해도 들여 보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리를 뜰 수도 없었다.

밖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들어와서 지금까지 알려주는 사람도 하나 없어서, 아무것도 몰랐다. 앞에 있는 이 시녀도 딱 한마디만 했다.

세자야는 청서 이낭 거처에 가셨어요!

돌아오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다시 물어도 상대도 하지 않고 입을 비죽이며 눈을 까뒤집고 하늘만 바라봤다.

청서 거처에 가서 오라버니를 찾아야 하나? 하지만 청서의 거처가 어디지?

물어도 시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설사 안다고 해도 지금은 갈 수 없었다. 청서는 그녀를 싫어했다. 그녀는 자기 직감을 지극히 믿었다. 그리고 그녀도 청서를 미워했다.

밤이 깊어질수록 고 낭자는 갈수록 추워지고 절망했다.

한기가 보따리를 뚫고 살가죽을 지나 뼛속으로 스며들자, 고 낭자는 팔을 꼭 끌어안고 움츠렸다.

보아하니, 오라버니는 오늘 청서 거처에서 쉬려는 듯했다. 그럼 내일 아침엔 청서 거처에서 단장하고 곧바로 외출할까, 아니면 돌아와서 단장할까. 아침에도 오라버니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째야 할까.

이모를 찾아가?

이모를 떠올린 고 낭자는 부르르 진저리쳤다. 이모는 분명 그녀를 돌려보낼 것이다.

이모는 안 돼! 그럼…… 새언니한테 가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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