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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31화 (31/463)

31화: 10만 냥 一

수녕백부 밖, 장정들은 벌써 내쫓았고 고 노야와 아들 고사현 두 사람은 대청에서 하나는 상석에 하나는 좌측에 당당하게 앉아 있었다.

고사현이 강환장을 흘겨보며 말을 꺼냈다.

“어이, 강가야. 이가의 큰 재물을 손에 넣었는데, 은자 몇만 냥을 연연하나? 기껏 그 돈이 아까워서, 체면 떨어지게 내 동생을 납치해? 인간이 할 짓이냐!”

강환장은 시퍼레진 얼굴로 매섭게 고사현을 노려봤다. 이십여 년 망나니로 살아온 고사현은 이미 맷집이 강해져서, 태연하게 꼰 다리를 흔들어대면서 차를 홀짝였다. 강환장이 자기를 어쩌지 못하는 것 정도야 잘 알아서, 사람을 죽일 것 같은 강환장의 시선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환장아, 네 형님 말이 맞다. 방택은 우리 고가의 적장녀다. 우리가 서생 가문, 벼슬을 해 온 대갓집 출신인 건 일단 접어두고! 방택의 용모만 봐도, 네가 이야기 해 보렴, 경성의 아라 낭자하고 비교해도 차이가 나지 않지? 방택은 글공부도 했다. 시를 짓는 솜씨도 전혀 뒤지지 않아. 연주를 못 하지만, 경성에서 인기 있는 낭자 중에,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고 연주까지 모두 정통한 사람도 얼마 없지 않으냐? 인기 있고 유명해지려면, 첫 번째 용모, 두 번째는 재주 하나만 있으면 된다.

우리 경성에서 역대 가장 유명했던 으뜸 기녀 중에 다 갖춘 사람이 있더냐? 없지! 다들 재주 하나뿐이었다. 금을 잘 타는 사람도 있고, 또 누군가는 빼어난 글씨를 쓴다는 재주가 있었지. 경성에서 유명한 아라 낭자도 빼어난 금 솜씨, 좋은 차를 구별하는 것, 그것 말고 다른 재주가 있다고 들어본 적 있느냐?

방택이 시를 짓는 재주는 뛰어나다고 할 순 없으나, 그만하면 되었지. 여인 아니냐. 사내하고 비교할 수 없지. 환장아, 우리 방택 같은 아이는 용모면 용모, 재주면 재주 다 갖췄다. 정말로 밖에 내보내면 아라보다 떨어질 것 같으냐? 아라의 몸값을 알아? 얼마 전에 남쪽 상인이 몸값을 내려고 했는데, 입을 열자마자 5만 냥을 부르더란다! 5만 냥!”

고 노야는 갈수록 흥분해서 침을 튀겼다. 경성 으뜸 기녀 이야기는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물론, 유일하게 잘하는 일이기도 했다.

강환장은 이마에 핏줄이 툭툭 튀었다. 고씨를 아라 같은 천것과 함께 입에 올리다니. 정말로 친아비란 말인가?

“많이 바라지도 않아. 은자 10만 냥! 은자를 주면 방택은 네 것이다!”

고사현은 찻잔을 탁자에 탁 내려놓으며 시원스럽게 가격을 불렀다. 강환장은 기가 막혀서 눈앞이 어질하고 목이 바짝 탔다.

고가 부자가 이렇게 파렴치한 걸 어째서 예전엔 몰랐을까. 예전엔…….

강환장은 화가 나서 손가락이 달달 떨리고, 분노가 불끈불끈 치밀어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거의 20년 전부터 감히 그 앞에서 이렇게 무엄하고 수치를 모르고 날뛰는 사람은 없었다. 황상조차도 그를 대할 땐 예를 갖췄고, 항상 자(字)로 불렸다.

“고씨는 친동생입니다! 어떻게, 지금 그 아이를 팔겠다는 겁니까? 염치도 없이!”

강환장이 이를 갈았다. 그러나 욕하는 소리에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고사현이 눈썹을 치켜들고 하, 하더니, 참으로 우스운 듯 말을 꺼냈다.

“누구 이야기냐? 나? 내가 염치가 없어? 그럼 너는 뭐냐? 너는 어쩌면 그리 낯짝이 두꺼워? 내 동생이 마음에 든다고 억지로 차지해? 어찌? 그러고도 내가 내 얼굴에 똥칠하는 것이냐? 내가 그 아이를 팔아? 하! 팔아? 그럼 물어보자, 너는 무엇이냐? 돈 하나도 들이지 않고 남의 집 황화규녀를 차지하려고? 낯짝이 두꺼워도 너무 두꺼운 것 아니냐? 사창가에서도 돈을 써야 사창가 계집이 너를 침상에 들여준다! 아까 아버지가 한 말, 너도 들었지? 내 동생이 아라보다 못한 게 어디 있는지, 한번 말해 보아라. 아라를 품으려면, 많이도 필요 없다, 하룻밤에 얼마를 들여야 하는지 말해 보아라. 내가 염치가 없어? 무슨 낯짝으로 그런 말을 해!”

“강 조카, 그 말은 아니지. 네가 전엔 사통…… 흠, 그건 일단 접어두고, 방택을 납치해 가더니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 평소에 좋게 봤는데, 어쩌면 이럴 수가 있나. 그렇다면 이 늙은이도 체면 차릴 것 없지. 관아로 가세. 자네가 양갓집 규수를 납치했네. 다들 똑똑히 본 일이라고! 증인, 물증 다 있어!”

얼굴을 구긴 고 노야의 불룩한 눈 밑이 쉴 새 없이 떨렸다. 그도 화가 났다.

강환장은 눈앞이 어질어질해졌다. 이 둘이 이토록 파렴치하다니! 무뢰배 같으니!

예전엔……. 예전엔…….

심하게 어지러웠다. 과거에 고가가 어땠는지, 저 하늘 끝에 걸린 구름처럼 어렴풋이 보이긴 하는데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잡히지도 않았고.

예전에, 고가, 그리고 집안의 뻔뻔하고 가난한 친척들을 누가 다 상대했었지? 이씨?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그 여인이 무슨 재주로 상대해. 웃기는 이야기지!

그래, 영해다. 영해야!

영해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리고 요(姚)씨 형제도. 요씨 형제가 있었으면 고가 부자가 이런 식으로 말을 꺼내지도 못할 터인데. 진작 목을 잡아채서 저 멀리 던져 버렸을 것인데.

내 수하들, 다 어디에 있지?

강환장은 예전, 예전 사람들이 너무나 급박하게 필요했다. 이렇게까지 그들을 갈망한 적이 없었다. 얼른, 지금! 바로 예전으로 돌아가야 해!

“잘 들어라. 지금 은자 10만 냥을 내놓고 계속 친척으로 살던가, 아니면 관아로 가자. 내 동생을 납치해서 귀하디귀한 황화규녀를 차지해놓고 은자 하나 내놓지 않겠다고? 어찌? 이가의 눈먼 돈을 꿀꺽하더니, 재미 들였느냐? 하! 한 번으로 부족해서 한 번 더 하려고? 우리 고가가 이가인 줄 아냐? 어림도 없다!”

고사현은 기세가 등등했다. 양가 규수를 납치했다는 송사야 고사현이 상관할 바 아니었지만 강환장은 감당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이, 이게 무슨……!”

강환장의 이마에 핏줄이 펄떡였다. 어찌나 심하게 뛰는지, 머리가 다 지끈지끈했다.

오 어멈은 손을 늘어뜨리고 서서 눈알을 굴리며 요리조리 살피다가 세자야가 몸을 부들부들 떨자 입술을 질끈 깨물고 나서서 말렸다.

“고 노야, 고 대야, 일단 진정하세요. 납치라니, 과한 말씀입니다. 분명 대낭자 스스로…….”

고사현이 펄쩍 뛰며 오 어멈을 향해 침을 뱉었다.

“개소리하네! 온 거리 사람이 다 봤네! 이 집 세자가 내 동생을 얼싸안고 이 집으로 억지로 끌고 왔는데, 스스로는 무슨! 개소리하고 자빠지기는!”

“고 대야, 이건, 이건…….”

오 어멈은 후다닥 뒤로 물러나면서 온 얼굴에 튄 침을 닦았다. 화도 치밀었다.

고씨 집구석 전체가 무식한 무뢰배구나!

세자야, 정말 눈이 멀고 정신이 나가셨군요. 굳이 이런 고 낭자를 첩으로 들이겠다니요. 아비와 오라비가 이 꼴인데, 본인이라고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고 대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그 댁 대낭자도 기꺼이 원한 일입니다. 정말로 소동이 나면 우리 체면도 떨어지지만, 고가라고 다르겠습니까? 대낭자 밑에 여동생들이 줄줄입니다. 앞으로 혼인하셔야지요. 다들 빛 좋은 개살구라고 하지만, 친척끼리 상의하지 못 할 일이 무엇입니까.”

오 어멈은 화가 난 데다가, 처음부터 고가를 무시하던 차라 말도 거침없이 나왔다.

고 노야는 고개를 치켜들고 코웃음 쳤고, 고사현은 오 어멈을 흘겨봤다.

“이 집 세자와 이야기 중인데, 어디 노비가 끼어들어!”

오 어멈도 고사현을 흘겨보며 코웃음 쳤다.

“대야,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대낭자가 우리 가문에 들어오게 되면, 앞으로 대야는 이 저택에 들어오고 싶어도 뒷문으로 다녀야 합니다. 그것도 그나마 저랑 이야기 주고받아야 합니다만.”

고사현은 입가를 실룩이다가 차갑게 코웃음 치고 고개를 돌려 상대하지 않았다. 고 노야는 미간을 좁혔다.

휴. 언짢은 일이긴 하지. 체면도 안 서고.

드디어 숨통이 트인 강환장은 싸늘하게 고사현을 흘겨봤다. 오 어멈이 이야기하는 사이, 애써 마음을 다스렸다.

고씨를 반드시 집에 들여야 해. 고씨는 내 후반생에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 잘 지켜야 해. 이들 부자는…… 일단 내버려 두고, 수하를 다 모아서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 제대로 수습하자!

은자는, 그게 뭐 대수라고! 10만 은자 정도야…….

역시 가슴이 쿡쿡 쑤셨다. 그와 강가 모두 막 일어서려는 참이라 돈이 필요하면 당분간은 이씨에게 손을 벌려야 했다.

이씨를 생각하니 더 짜증이 났다. 돌아와서 지금까지 모든 것이 나름 순조로운데 이씨만 아직 저렇게 병들어 있으니.

예전부터도 저렇게 제 앞길을 막기만 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턱 막혔다. 고씨가 그 혼수, 그 돈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부터 항상 생각했었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지금, 이 시절 이씨는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괘씸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처음부터 성격이 이렇게 교만할 줄이야. 살짝 까진 것 정도로 감히 이렇게 오래 누워있다니!

지금 그녀는 예전과 달리 오래 누워있었다. 그리고 후원도. 그가 기억하기로, 전에는 고씨를 이낭으로 들인 다음에야 청서를 들였다. 전엔 추미도 없고, 춘연도 없었다. 고씨는 1년 후에야 강가로 들어오는데, 작은 가마로 떠들썩하게 집으로 들였다.

이 모든 것이 예전과 달라졌다.

또 뭐가 달라졌을까?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 모든 걸 차근차근 정리해 봐야 하건만 온통 망연하기만 했다. 큰 사건 몇 가지 말고 다른 건 기억 나지 않았다.

몇십 년 동안 한 번도 후원 일을 신경 쓴 적이 없었다. 사내는 바깥일을 다스리는 법. 게다가 후원에 무슨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어야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 후원에서 쉴 새 없이 화가 치미는 사소한 일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예전에도 이랬었나?

기억나지 않았다. 그의 기억은 공부에 들어간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장자가 양손을 휘저으면서 ‘아버지!’ 하고 부르며 아장아장 달려오던 때부터. 그 전 시간인 지금은, 이때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도 이랬는지도 모른다.

뭐가 어찌 됐든, 더는 고가와 옥신각신할 수 없었다. 얼른 고씨를 저택으로 들이고 신분을 바로 세워준 다음에 아예 후원을, 그리고 이씨를 모두 그녀에게 맡겨야 했다. 고씨만 있으면 이렇게 혐오스럽고 성가시기 짝이 없는 사소한 일에서 벗어나서 아무런 걱정거리 없이 큰일에 몰두할 수 있으리라. 무수한 대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환장은 결심했다.

고작 은자 아니냐. 주자! 하지만 10만 냥이라니…….

마음이 또다시 쿡쿡 쑤셨다. 10만 냥은 실로 너무나 많았다. 조금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에 만 냥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몇십 년 동안 은자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은자는 수치일 뿐이니까. 은자로 옥신각신 흥정하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올리나…….

고사현의 말문을 막은 오 어멈은 쉴 새 없이 강환장을 힐끔거리며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세자는 부인이 아니라서 세자 앞에서 함부로 의견을 낼 수 없었다.

“청휘원에 다녀오게. 전에 내가 준비하라고 했던 은표 중에 10만 냥을 우선 달라고, 내가 그랬다고 대내내에게 전하게.”

강환장은 이를 악물고 오 어멈에게 분부했다.

됐다. 10만 냥이 적은 돈은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은자는 숫자에 불과해. 강가는 내가 혼인한 이래 흐름이 바뀌어. 앞으로 몇십 년 동안 은자가 물처럼, 산처럼, 질릴 정도로 많아지니까.

게다가 내려놓고 생각하면 되지. 어찌 됐든 고씨의 친정이니 돈 좀 보태주어도 그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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