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건곤일척 二
“고 대야가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오늘 오후에, 환한 대낮에 그랬다고요. 본 사람이 많답니다. 세자야가 고 낭자를 끌고 우리 저택에 온 걸 봤대요!”
다른 어멈이 비집고 나와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말했다. 목소리까지 달라진 듯했다.
강환장은 어멈들을 밀치고 저택 대문으로 달려갔다.
고씨가 납치되었어? 날 위해 강가 다음 대 대들보를 낳아 줄 고씨가? 나를 위해 뛰어난 아들을 길러낼 고씨가, 납치돼?
어멈, 시녀들은 등롱을 들고 강환장 뒤를 따라 우르르 대문 쪽으로 달려갔다.
중문을 지나쳤을 때, 오 어멈이 노기 등등한 얼굴로 맞은편에서 나타나서 예를 갖출 겨를도 없이 강환장을 맞이했다.
“세자야, 고가에서 찾아와 난리를 부립니다! 세자야께서 대낭자를 납치했다고요! 고 낭자는 제 발로 저택에 들어왔는데 말입니다! 세자야, 이 일을 어쩝니까. 부인은 화가 나서 혼절하셨어요! 이를 어쩝니까. 어쩌면, 어쩌면 저렇게 염치없답니까? 하루도 못 기다려서? 굳이 이 야밤에 뛰어온답니까?”
오 어멈은 말을 할수록 화가 치밀어서 한바탕 욕설을 퍼부을 뻔했다.
강환장이 멈칫했다.
“고씨가 왔다고? 우리 저택에?”
“예. 조금 전에요. 산발하고서, 매무새도 다 흐트러져서요. 신도 한 짝만 신고서 측문으로 달려왔습니다. 오씨가 얼마나 놀랐게요. 도적을 만난 줄 알았답니다. 뒤에 사람들이 우르르 쫓아오는 것 같은 꼴이라서, 식겁해서 일단 안으로 들였답니다. 그랬더니…… 사내랑 짐 보따리 싸서 달아나는 거였다니! 그런데 왜 우리 저택으로 왔답니까!”
오 어멈은 갈수록 화가 났다. 측문으로 은자 수레가 나간 일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났다. 고 낭자를 몰래 들여보냈으니, 큰 잘못을 또 저지른 것이다.
고씨가 수녕백부에 있다는 걸 들은 강환장은 저도 모르게 크게 안도했다.
강환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걸 들은 오 어멈이 눈알을 굴렸다.
“세자야! 고 노야와 대야가 저택 입구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세자야가 고 낭자를 납치해 갔다고요. 장정들을 우르르 데리고 와서 이러쿵저러쿵. 하나같이 제 눈으로 봤답니다. 그땐 날이 밝을 때라서 똑똑히 봤다고요. 고 낭자를 세자야…… 키 큰 사내가, 피풍의 안에 감쌌다가, 드러냈다가 하면서 꼭 끌어안고 있더랍니다. 거의 딱 달라붙어서 가더래요. 세자야, 저런 헛소리를 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고씨가 조금 전에 저택에 들어왔다고 했나?”
강환장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고가에서 수녕백부까지 두 골목만 지나면 된다. 빨리 걸으면 이각, 고씨가 허약해서 걸음이 느려도 반 시진이면 도착한다. 조금 전에 저택에 들어왔다니, 지금 벌써 해시(亥時: 오후 9시-11시)였다.
“예!”
오 어멈이 손 어멈을 가리켰다.
“손 어멈이 고 낭자를 들여서 세자야 거처로 보냈습니다. 조금 전에 데리고 간 것 맞지?”
“예, 조금 전입니다! 세자야는 모르시겠지만, 난민보다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머리는 산발이고, 매무새도 흐트러지고. 야밤에 우리 저택에 왔으니 당연히 부인 거처로 가야 할 텐데, 웬걸요, 눈이 풀려서는 죽어도 세자야 거처에 간다지 뭡니까. 세자야 말고는 아무도 필요 없다고요.”
손 어멈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책임을 슬쩍 남에게 돌렸다.
“측문에 아무도 없으면 안 되니까, 제 말은, 고 낭자가 그 꼴로 달려왔길래 혹시 뒤에 또 일이 생길까 봐, 오 어멈 혼자 감당하지 못할까 봐 걱정인데, 그렇다고 고 낭자 혼자 들여보내자니, 꼴이 너무 무서워서, 저도 오 어멈도 고 낭자 혼자 들여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부인께 데려다준다고 했더니, 싫다고, 싫다고. 눈이 멍한 것이 너무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세자야 거처로 데리고 갔습니다.”
어찌 됐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고 낭자 잘못이었다. 고 낭자 때문에 다들 불안에 떨었다는 말이었다.
“강환장! 이 망할 놈! 훤한 대낮에 감히 내 동생을 납치해? 썩 나오너라!”
고사현의 날카로운 고함이 앞에서 들리자, 강환장은 화가 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감히 이 몸의 이름을 불러?
“어째서 아직도 입구를 막고 서서 난리를 부리는 것이냐? 문지기 것들은 다 죽었어? 그리고 너희들도, 하나같이 다 죽었느냐? 어서 고 노야와 고사현을 들이지 않고 무얼 해! 장정들은 몽둥이로 때려서 내쫓아라!”
강환장이 이를 갈며 매섭게 외쳤다.
그는 밖에서 소란을 피우는 고 노야와 고사현보다 수녕백부 종복들이 더 치가 떨렸다.
예전이었다면, 수녕왕부 대문 앞이었다면, 어디 감히 이런 난리를 부리도록 용납했겠는가. 입도 떼기 전에 고 노야와 고사현을 떼어내서 끌고 들어온 다음에 장정들은 쫓아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저 두 부자가 대문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걸 팔짱을 끼고 두고만 보고 있었다.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죽어야 마땅한 죄였다.
강환장은 잔뜩 들뜬 어멈들을 냉혹한 눈빛으로 쓱 훑어봤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의 눈빛에 이 여인들은 이미 갈가리 찢겨 죽었을 것이다.
강환장의 곡란원에 뛰쳐들어간 고 낭자는 행여 누가 볼까 봐 바깥채에 앉아 있지도 못하고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다른 쪽 청서가 그 소식을 들었다.
추미는 청서보다 더 빨리 알았다. 추미가 알게 되었으니 춘연도 알았다. 곧 저택 위아래, 진 부인과 강완, 강녕 두 낭자만 빼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게 되었다.
물론, 수녕백 강 백야(伯爺)는 알 리가 없었다. 그는 이런 속된 일엔 관여하는 법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저택에 있지도 않았다. 그는 지금 뜻이 맞는 문인, 서생 동료들, 그리고 매우 청아한 미인들과 성 밖 청아한 꽃놀이 배에서 술을 마시며 시를 읊고 있었다.
청서는 시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수건을 갈기갈기 찢을 듯이 비틀었다.
천한 년이, 이런 식으로 세자야 거처로 뛰쳐들어가다니. 어떻게 이렇게 염치가 없을 수가!
만 어멈의 소식을 들은 추미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른 소식을 춘연에게 보내고, 또 사람을 보내 세자야가 아직 후원을 거니는 중이란 소식을 알아왔다. 그녀는 방 안을 서성거리다가 작은 금괴를 꺼내서 검은 무명 피풍의를 걸치고 곧장 청서의 거처로 달려갔다.
혹시 무슨 상황이라도 생겼을 때 반드시 청서가 나서도록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이동은 오히려 가장 늦게 소식을 들었다. 만 어멈이 직접 소식을 전하러 온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고씨 가문도 서생 집안인데, 당당한 적출 대낭자가 야밤에 몰래 이 저택에 숨어들다니요. 지금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나중엔 더 설명하기 어려워질 테니 고 대야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고 대야가 아는지 모르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는데, 웬걸요, 고 낭자가 아무도 모르게 도망 나왔다네요. 낭자,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이제 고 노야와 고 대야도 들이닥쳤습니다. 올 때부터 둘 다 술이 좀 올라서 오는 내내 욕을 하고 오는 바람에 할 일 없는 사내들이 구경하며 졸졸 따라왔습니다. 이건 큰일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세요. 마음대로 떠들라지요. 다 개싸움입니다. 낭자는 정양해야 하고, 큰일도 아니라서 원래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고!”
만 어멈이 한숨을 내쉬었다.
“말씀드리지 않았다가, 혹여 고야…… 고야가 찾아와 난리를 부리면, 그때 전혀 모르고 계시다가 말을 잘못하기라도 하면 괜한 오해가 생길까 봐요. 낭자, 걱정하지 마세요. 고 낭자 행사를 봐서, 이런 짓을 하는 걸 보면 멍청한 헛똑똑이입니다. 쉽게 요리할 수 있을 정도로 멍청해요. 낭자, 절대로 신경 쓰지 마세요. 제아무리 서생 집안, 제아무리 외사촌 누이라도 첩이 되면 똑같은 노비입니다. 앞으로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에요.”
이동이 빙그레 웃었다.
“어멈, 설득할 것 없어. 그 정도 이치는 나도 잘 알아. 우리가 신경 쓰고 따질 것 없는 상대야.”
만 어멈의 눈썹이 높이 치켜 올라갔다.
한 번 넘어지더니, 정말로 예전과 달라지신 모양이야.
예전이라면 이야기를 듣자마자 노발대발해서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으셨겠지. 바로 이렇게 차분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태태가 얼마나 근심했었는데. 혼인한 지 겨우 두어 달 만에, 한 번 넘어지더니 이렇게 성장하다니……. 하지만 이런 성장은……. 어휴!
낭자가 성장했다고 말할 때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태태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해졌다. 태태는 이 성장을 피맺힌 성장이라고 했다. 태태는 차라리 낭자가 성장하지 않길 바랄 것이다. 평생 자라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만 어멈 역시 그러했고.
“밖에서 벌어진 일은 신경 쓰지 마, 어멈. 상관하지 말고, 첩을 들이고 싶으면 들이라고 해. 어떤 식으로 들여도 상관없어. 고 낭자는 강환장이 애지중지 떠받드는 사람이니, 이런 식으로 몰래 저택에 들어온 것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짓을 했어도, 고 낭자가 입을 열기 전에 강환장이 온갖 이유를 대고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며 벗어나게 해줄 거야. 마음대로 하라고 해.
어멈, 어멈은 은자만 생각해. 그리고 혼수 바꿔 치는 일도 얼른 마무리해. 이왕 저택에 들어왔으니까, 다시 돌려보낼 리는 없어. 마침 잘 됐지. 고가가 난리를 부리는 틈에 추미한테 말을 전해. 이왕 온 거, 얼른 합방하고 첩으로 들이게 하라고. 애지중지 떠받드는 사람이니, 떠들썩하게 해야지.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시끄러울수록 좋아. 어멈이 상황을 보고, 서두를 수 있으면 바로 내일로 해.”
숨을 크게 고른 이동의 목소리가 곧 작아졌다.
“어멈, 오늘 오후에 강환장이 또 은자를 재촉했어. 아무래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돈인가 봐. 그리고, 점포 쪽도 다 준비됐어?”
지나치게 침착한 이동의 태도에 만 어멈은 또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이동의 유모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태태의 시중을 들었고 태태가 낭자를 낳을 때 가장 먼저 산파에게 건네받아 품에 안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태태 곁에서, 태태와 마찬가지로 낭자가 자라는 걸 전부 봐왔다.
“낭자…….”
만 어멈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
“마음 푹 놓고 쉬고 계세요. 점포 쪽도 준비되었어요. 움직일 수 있는 자금은 다 빼냈습니다. 손해 조금 보면 끝날 일이에요. 태태가 조금만 기다리자고 하세요. 급하게 움직이면 의심할 거라고. 경성엔 대단한 사람이 많고 똑똑한 사람이 많아서, 만사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그르친다고요.”
“알았어. 어멈, 부인이 뭐라고 하는지, 어멈도 들었지? 강가 사람은 강환장부터 이 저택에서 허드렛일하는 어멈까지, 하나같이 내 혼수를 자기들 손에 넘겨야 하는 매로전이라고 생각해. 자기들 돈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안 넘긴 것이 이미 큰 잘못이라고 생각해. 심지어 우리 이가도, 강환장 눈엔 주인 없는 재물이야. 억지로 빼앗아 가지 않으면 하늘도 용서하지 않을 것처럼 굴지. 어멈, 우리 세세히 준비해야 해.”
“낭자, 걱정하지 마세요. 긴 세월 동안 이가 재산을 탐내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그건 무섭지 않아요. 다만……. 휴. 아닙니다. 말씀 안 드리렵니다. 낭자, 푹 쉬세요. 난리를 부릴 만큼 부렸을 테니, 슬슬 나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