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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25화 (25/463)

25화: 고집스러운 옛 기억 二

강환장이 돌아서더니 조 의원과 손 의원을 향해 공수했다.

“두 분, 졸형(拙荊: 아내의 겸양어)이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두 분을 모셔서 병을 진단하라고 하다니, 실로 난처하셨지요. 강환장, 이 자리에서 두 분께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세자야,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에요.”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고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 손 태의는 허허 웃으며 약상자를 거두라고 약동(藥童)에게 눈짓했다.

하지만 성미가 꼿꼿한 조 의원은 언짢은 얼굴로 미간을 단단히 좁혔다.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세자야. 귀댁 대내내의 병은 실로 심각합니다. 귀댁 대내내의 병은 반드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양해야 합니다. 세자야께서 이리 큰 화를 내시면 환자에게 지극히 좋지 않습니다.”

강환장은 얼굴을 흐린 채 대답하지 않았고, 손 태의가 조 의원을 잡아당겼다.

“청백리도 집안일은 잘 처리하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지 않나. 끼어들 일이 아닐세. 세자께서 이리 말씀하시는데…….”

“집안일이야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요. 다만 환자 일은 한마디 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세자야, 오늘처럼 이렇게 매일 화를 내실 거면, 대내내의 후사를 지금부터 준비하셔도 됩니다.”

말을 마친 조 의원은 강환장을 향해 소매를 휘두르고는 뒷짐 진 채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세자야, 대내내의 병은 심각한 것이 맞습니다. 허허, 이 늙은이는 이만 물러갑니다.”

손 태의는 허허 웃어 보이고 공수하고 물러갔다. 강환장의 얼굴이 살짝 하얘졌다. 영리한 사람이라 두 의원의 태도를 보고 이씨의 병이 더 심각해졌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바로 깨달았다.

상방 앞을 지키고 선 시녀와 어멈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인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방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듯이 조용한데, 그 한가운데 선 강환장은 문득 매우 껄끄러워졌다.

그 껄끄러움에, 안 그래도 분노했던 마음이 더 불타올랐다. 그는 싸늘하게 코웃음 치며 휘장을 젖히고 내실로 들어갔다.

이동은 둥근 허리 받침에 기댄 채 창백하고 허약한 모습으로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강환장은 침상 앞에 서서 이동을 빤히 내려다봤다. 강부의 현재,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모든 순조롭지 않은 일, 거슬리는 일이 모두 이 여인 때문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멀쩡하다가, 왜 갑자기 안 좋아진 거요?”

아프다고 하니, 진짜든 가짜든, 일단은 안부를 물어야 했다. 그래서 물었으나, 그 안부는 매우 각박하고 조롱 가득했다.

이동은 눈을 뜨고 천천히 눈동자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는 다시 감았다.

“고가에 청서와 추미를 보낸 게 당신이오?”

“예.”

이동의 목소리가 작고 허약했다.

“청서와 추미만 보낸 것이오?”

이동의 담담한 모습에 강환장은 다시 분노가 슬금슬금 치밀었다.

“그럼 누굴 보낼까요?”

이동은 이번엔 눈꺼풀도 들지 않았다. 강환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동을 빤히 봤다.

“잘 들으시오. 똑똑히 들으란 말이오! 나는! 고씨를 반드시 들일 것이오! 그러니 악독하고 간사한 수작은 다 치우시오! 명심하시오, 수녕백부는 이가가 아니오!”

말을 마친 강환장은 소매를 휘두르며 사라졌다.

이동은 그가 멀어진 후에야 서서히 숨을 내뱉었다.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렇게 교만하고 거만한 어리석은 인간에게 몇십 년 동안 푹 빠져 있었다. 환심 한 번 사려고, 모든 걸, 하물며 목숨까지 그의 앞에 떠받쳤다.

예전엔 얼마나 총명하고 지혜로웠나. 얼마나 소탈하고 멋스러웠나. 인간 세상 용봉처럼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총명함, 지혜로움이 지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그가 총명하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멀었던 것이겠지. 코가 썩어 문드러졌던 거겠지.

청휘원에서 나온 강환장은 아까 중문에서 꺼지라고 외쳤던 시녀를 다시 만났다. 시녀는 그를 보자마자 부들부들 떨면서 저 멀리에서 무릎을 구부리며 불렀다.

“세자야, 부인께서 얼른 오시랍니다. 부인이…….”

강환장은 시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아서서 가버렸다. 벌벌 떠는 걸 보고만 있어도 울화통이 터졌다.

진 부인의 상방엔 강 대낭자와 강 이낭자도 있었다. 아들을 본 진 부인은 막 거뒀던 눈물을 다시 흘리기 시작했다.

“옥가아, 드디어 돌아왔구나. 이 어미는 마음이…….”

진 부인은 잠시라도 손을 놓으면 바로 숨이 멎는 것처럼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자네가 이야기하게. 나는 화가 나서……. 가슴이 아파서…….”

진 부인이 오 어멈에게 눈짓했다.

강 대낭자는 그나마 침착한데, 강 이낭자는 흥분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큰 오라비를 힐끔 보고, 또 오 어멈을 힐끔 보고, 오 어멈을 끌고 와서 모든 걸 한 번에 이야기하게 따귀 한 대 때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큰 오라버니가 크게 화를 내며 재수 없는 올케를 당장 벌하는 걸 곧바로 볼 수 있을 텐데. 그리고 곳간 가득한 물건을 몽땅 꺼내와서 언니랑 둘이 나눌 수 있을 텐데!

“무슨 일이냐면 말입니다.”

오 어멈은 수석 관사의 풍모를 드러내며 말을 꺼냈다.

“곧 장마철이 시작되지 않습니까. 어제 부인이 말씀하시길, 저택에 각 곳간을 자세히 살펴본 다음에 고칠 곳이 있으면 얼른 사람을 불러 고치는 게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비에 젖어서 물건에 곰팡이가 슬면 안 되니까요.”

오 어멈은 열심히 생각하고 저울질한 끝에 지난 밤에 만 어멈이 은자를 열 수레 분량이나 밖으로 빼돌린 일은 빼놓기로 했다.

만 어멈의 한마디에, 물건이 열 수레나 당당하게 저택 밖으로 나갔다. 책임을 따지려고 들면 아무리 그래도 총 관사인 오 어멈도 관리를 잘못했다는 허물을 벗을 수 없었다. 설령 그녀가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해도, 사촌 동생인 측문 관사 오씨는 벗어날 수 없다. 세자는 부인처럼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고, 게다가 요즘은 화가 많아져서 거론하지 않는 게 나았다.

만씨가 측문을 통해 물건을 저택 밖으로 빼돌린 일 이야기가 나오면, 절대로 못 봤다고 하라고 사촌에게도 이미 당부해 두었다. 만씨가 모두를 속이고 몰래 빼돌린 것이라고 하라고.

저택 위아래 모두 자신의 사람이라서 정말로 옥신각신할 일이 생기면 만 어멈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대내내도 무섭지 않았다. 세자야가 얼마나 대내내를 홀대하는지, 그 점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대내내는 편찮으시잖습니까. 소인, 이런 작은 일로 대내내를 귀찮게 할 것 없다 싶어서 곧바로 배방 어멈에게 이야기했지요. 그런데 웬걸, 처음엔 만 어멈이 나갔다더니, 나중엔 만 어멈은 열쇠가 없고 대내내에게 있다지 뭡니까. 대내내는 몸이 안 좋다고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고요. 그래서 부인께 보고드렸습니다.”

진 부인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 어멈은 그녀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부인은 대내내를 애틋하게 생각하시고 귀찮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대내내의 혼수 곳간을 빼놓았다가, 장맛비에 혼수가 다 젖으면, 사돈 태태가 또 얼마나 듣기 거북한 말씀을 하실지요. 부인은 이리저리 생각하시다가 일단 자물쇠를 부수라고 하셨지요. 만 어멈이 돌아오거나, 아니면 대내내의 몸이 조금 좋아지면 다시 자물쇠를 달면 된다고요. 그래서 소인이 대내내의 배방 어멈 몇을 불러 함께 곳간 문을 열었습니다.”

오 어멈의 이야기가 드디어 가장 중요한 곳에 이르자, 강 이낭자는 들떠서 들썩거렸다. 바닥 가득 쌓인 적금 장신구, 진주, 옥. 바닥 가득 흩어진 능라 주단. 도처에 쌓인 금은보화!

그런 장면을 상상만 해도 흥분으로 두 눈이 빛났다.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곳간 문을 열었더니, 얼마나 엉망인지…….”

오 어멈은 마음 아픈 듯이 고개를 저었다.

“문을 마주 보는 곳에 있던 상자 열몇 개가 모두 텅 비었고, 엉망진창으로 나와 있지 뭡니까. 능라가 온 바닥에 깔려있었습니다. 곳곳에요. 그리고 적금 장신구, 진주, 옥 장식이 몽땅 바닥에 쌓여 있었습니다. 세자야, 소인 식견이 부족하여 그렇게 엉망인 곳간은 처음 봤습니다. 소인 그 당시에…….”

오 어멈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생각하길, 자기 혼수 곳간도 정리 못 하는 대내내가 나중에 안살림을 맡으면 집안이 얼마나 엉망이 될까…… 싶었지요.”

강환장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가고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눈빛으로 오 어멈을 바라봤다.

이씨는 장점이라고 꼽을 만한 게 거의 없었지만, 정리하는 능력은 달리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는 곳간에 잘 들어가지 않았지만, 들어갈 때마다 그곳은 마음이 편안해질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심지어 시 한 수 읊고 싶을 정도였다.

그가 공부를 관장할 때, 이씨의 곳간 정리 순서와 방법을 모방해 공부 곳간을 정리했고, 이씨가 어멈 몇을 불러서 그에게 보내주기까지 했었다. 나중에 여(呂) 승상이 그가 정리한 곳간을 보고 입이 마르게 칭찬도 했었다. 특별히 상주서까지 올려서 황상에게 그의 일 처리 능력을 칭찬하기까지 했다.

이씨의 곳간이 말도 할 수 없이 엉망이었다? 그야말로 웃기는 소리였다.

“소인이 곳간 문을 열자마자, 만 어멈이 와서는 소인에게 삿대질하면서 소인이 자기 고내내의 혼수를 뒤진다고 나무라지 뭡니까. 그래서 소인은 부인의 분부대로 하는 거라고 말했지요. 우리 가문에서 자기네 고내내의 혼수를 훔치려는 거라고까지 하지 뭡니까. 소인을 욕하면 몰라도, 이렇게 가문을 모욕하다니, 소인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조사할 것도 없이, 딱 봐도 대내내의 혼수 중에 지참금 30만 냥이 싹 없어졌지 뭡니까. 덜렁 빈 상자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진 부인의 울음소리가 커지고, 강 대낭자도 흥분해서 큰 오라버니를 빤히 바라봤다. 대내내가 은자 30만을 훔쳤다! 은자 30만 냥을!

“소인이 지참금을 묻자, 만 어멈이 켕기는 게 있는지 우물쭈물하면서 대내내의 분부라고 했습니다. 대내내에게 돌리는데, 일개 종복인 소인이 어찌 더 캐묻겠습니까. 할 수 없이 돌아와서 부인께 고했지요.”

오 어멈은 또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부인이 대내내에게 사람을 보내 어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본인이 썼다고 하셨습니다. 어디에 썼냐고 했더니 눈을 감고 죽은 체하지 뭡니까. 휴, 세자야, 이것 좀 보십시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어머니를 꼬드겨서 대내내의 혼수를 뒤졌어? 무슨 짓을 할 생각이지? 대내내의 혼수를 자네가 손대도 되는 건가?”

집으로 돌아온 이래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던 강환장은 매우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강환장의 말이 너무 의외라, 오 어멈은 경악한 표정으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째서 대내내의 혼수를 뒤진 거지?”

강환장이 살짝 이를 갈면서 앞으로 한 발짝 다가오며 다시 물었다. 오 어멈은 그제야 반응하며 당황한 얼굴로 진 부인을 바라봤다. 진 부인은 울음도 멈추고 눈을 깜빡였다. 넋이 나간 와중에 망연한 얼굴이었다. 완전히 얼이 빠졌다.

오 어멈이 어찌 부인 탓을 하랴. 털썩 무릎을 꿇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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