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23화 (23/463)

23화: 함정 二

고 낭자는 수녕백부에서 돌아온 이래 줄곧 조마조마, 안절부절못하며 소식을 기다렸다.

온 집안 시중을 들어야 하는 옥묵으로서는 고 낭자의 심부름만 하면서 시시각각 바깥을 살피며 소식을 알아올 수가 없었다.

옥묵은 점심 식사 때가 되어서야 수녕백부에서 화려하게 치장한 두 이낭이 왔었다는 사실을 문간방 어멈에게 들었다. 그녀는 서둘러 태태 거처의 취희를 찾아가 자세히 묻고는 밥 먹을 겨를도 없이 고 낭자에게 쪼르륵 달려가 고했다.

고 낭자는 오라비가 입을 열자마자 만 냥, 그것도 일단 만 냥이라고 했다는 걸 듣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정말 못돼 먹었어! 죽으라는 거야? 이 집안사람들은 하나같이 나 잘되는 걸 못 보네! 꼴 보기 싫은 거지!

고 낭자는 허둥지둥대다 옥묵에게 분부했다.

“서둘러! 얼른 환장 오라버니를 찾아가. 가서, 가서…… 그냥 이렇게 말해. 수녕백부 사람이 왔었다고. 그런데 청서랑 추미가 왔다고. 내 오라버니는…… 그래, 이낭 둘이 온 걸 보고 언짢아져서 만 냥을 달라고 한 거라고. 그 말 신경 쓸 것 없다고…….”

말을 다 하기 전에 고 낭자는 생각을 바꿨다. 오라비가 만 냥이라고 꺼낸 이상 분명 그 횡재를 반드시 손에 넣으려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해. 오라버니는 고고한 사람인데 동생이 첩이 되어서 체면이 상했다고. 은자를 달라는 건, 돈 때문이 아니라…… 온전히 돈 때문은 아니라…….”

“대낭자, 제 생각엔 있는 대로 세자야에게 솔직히 말씀드리고, 세자야에게 방법을 생각해 달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옥묵이 건의했다.

자기네 대야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들도 똑똑히 알고 있는데 그 영특하다는 세자가 그것도 모를까.

“그래, 그럼. 얼른 가. 그리고, 청서와 추미, 두 이낭이 왔다고 분명히 말해야 해!”

고 대낭자는 이낭이라는 두 글자에 힘을 주었다. 옥묵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려다가 다시 물었다.

“대낭자, 세자께서 수녕백부에 안 계시면요?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어요?”

“그건…….”

고 낭자는 눈을 깜빡, 또 깜빡였다.

오라버니가 저택에 없으면 밖에 일이 있을 텐데, 밖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럼 어디에 갔는지 문간방에 물어봐. 혹시 모른다면 저택 앞에서 기다려. 명심해. 들키면 안 돼. 환장 오라버니에게 몰래 말해야 해.”

“네.”

옥묵은 주저하다가 결국 일단 대답했다. 세자가 어디에 갔는지 문간방에 물어보라면서 들키지는 말라니. 어떻게 알아 오라는 건지.

됐다, 일단 가 보고 이야기하자.

청서와 추미가 고가에 간 사이에, 오 어멈은 혼수 단자를 들고 오씨 등 심복 몇을 거느리고 기세등등하게 ‘낡아서 수리해야 하는’ 곳간을 살피러 우르르 몰려갔다.

강씨 저택의 곳간은 확실히 낡아서 수리할 필요가 있었다. 긴 세월 동안 텅 빈 곳간엔 쥐마저도 옮겨가고 없었다.

오 어멈은 뻔한 목적이 있으면서도, 정당한 척하느라 이동의 혼수 곳간과 가장 먼 곳부터 시작했다.

곳간이 텅 비었는데도 오 어멈은 보란 듯이 꼼꼼하고 진지하게 곳곳마다 표기하고 적었다. 그래야 나중에 얼른 사람을 불러 수리하기 좋다고.

이동의 혼수 곳간에 이르자, 오 어멈은 더 엄숙, 진지, 공정해진 얼굴로 문을 열라고 지시했다.

“이 곳간 안엔 다 대내내의 혼수입니다.”

“자네 대내내의 혼수인 걸 나도 아네.”

오씨에게 불려온 이동의 배방 어멈이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오 어멈이 그녀를 흘겨봤다. 갈수록 마음에 안 들었다.

“부인의 분부로 곳간을 조사한다고, 오늘 아침에 이미 이야기하지 않았나.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은 곳들이라, 얼른 확실하게 조사하고 사람을 불러 수리해야 하네. 나중에 장마철에 폭우가 내려 자네 대내내의 혼수가 홀딱 젖으면, 그땐 누구 탓을 하려고?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저의가 뭔가? 부인이 자네 대대내의 혼수를 탐내기라도 한단 말인가?”

배방 어멈이 깔끔하게 잘못을 인정했다.

“오 어멈의 말씀이 맞죠. 다만 곳간 열쇠를 만 어멈이 하나 가지고 있고, 또 하나는 대내내가 직접 관리하십니다. 만 어멈은 아침 일찍 대내내의 심부름으로 나갔습니다. 오늘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씀을 남기셨어요. 내일 직접 만 어멈에게 열쇠를 받으시던가, 아니면 수고스럽지만 대내내께 한 번 다녀오셔야 합니다.”

오 어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가 대내내에게 찾아가? 무슨 염치로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찾아가더라도 자네들이 가야지! 나는 부인의 명령만 듣네! 가서 대내내께 말씀드리게, 부인의 분부라고! 곳간을 작게 손 봐야 하는지, 크게 손 봐야 하는지, 오늘 반드시 정리해야 하네! 내일 바로 사람을 불러 시작해야 해!”

“예.”

배방 어멈은 시원스럽기 그지없이 대답했고, 오 어멈의 기분은 조금 좋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배방 어멈이 금세 쪼르르 달려왔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대내내 말씀이, 곳간 안이 너무 어수선하답니다. 만 어멈은 며칠 바빴고, 대내내는 몸이 안 좋아서 아직 정리하지 못하셨다고요. 우선 다른 곳간부터 수리하고, 여기는 내일 만 어멈이 돌아오면 직접 보라고 한 다음에 알아서 사람을 불러 수리하겠답니다.”

오 어멈의 안색이 시퍼레졌다.

“자네 대내내, 지금 이게 무슨 뜻인가? 어수선하니 마니, 설마 내가 물건을 건드리기라도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부인께 말씀드리겠네!”

오 어멈은 바람같이 진 부인에게 달려갔고, 배방 어멈은 그녀의 뒷모습을 흘겨보며 살며시 코웃음 치고는 느긋하게 돌아갔다.

우리 낭자가 그리 만만한 줄 알았나!

상방으로 들어간 오 어멈은 씩씩거리며 배방 어멈의 말을 과장해서 전했다.

“부인, 말씀 좀 해 보세요. 대체 무슨 뜻일까요? 부인께서 자기 혼수를 탐내는 거라고 대놓고 말하는 거 아닙니까. 부인이 그깟 혼수를 안중에나 두겠어요?”

진 부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매우 화가 나는데, 화가 난 까닭을 정리하기 힘들었다. 혼수를 단속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도 혼수 곳간 열쇠를 모두 자기가 들고 있었다. 직접 그 자리에 있지 않은 한, 절대로 다른 사람이 곳간을 열고 상자를 여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진 부인이 화가 난 게 분명한데 아무런 말 없이 얼굴을 굳히고 있는 걸 본 오 어멈은 금방 깨닫고 말을 돌렸다.

“부인, 이건 대내내를 위해서, 다 대내내를 생각해서 하시는 일이잖습니까.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이건 불효입니다. 며칠 전 통방 일도 그렇고, 오늘 일도 그렇고, 부인, 대내내가 아무리 상인 집안 출신이고 외동딸이라 오냐오냐 자랐대도 그렇지요. 혼인해서 며느리가 되었으면 며느리 도리를 해야지요. 며느리가 처자 때와 같습니까? 우리 가문이 이가처럼 법도 없는 상인 가문인가요? 이런 식으로 웃어른에게 대드는 불효를 용납하면 안 됩니다.”

“자네 말이 맞네! 우리 가문은 법도 있는 가문이네!”

진 부인은 화를 낼 이유를 찾았다. 며느리가 너무나 불효하구나. 이마가 살짝 까진 것으로 죽네, 사네 하며 드러누운 것도 모자라 옥가아에게 여우들을 들이밀어서 아들과 자기 사이를 이간질하려 하지 않아! 오늘은 또 이런 일까지! 시어미가 안중에 없어도 유분수지!

“부인, 내버려 둬선 안 될 일입니다. 한 번이 두 번 된다잖습니까. 벌써 두 번쨉니다. 이번에도 또 내버려 두면, 앞으로 부인을 어디 안중에 두겠습니까? 부인, 부인께서 좋은 맘으로 너그럽게 대하면 상대는 더 욕심낼 겁니다. 만만히 여길 겁니다. 앞으로……. 어휴. 이를 어쩐답니까.”

오 어멈은 계속해서 부채질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걸 내버려 두면 안 되지! 가서 내 말을 전하게. 곳간을 열라고 해! 해야 하는 대로 하란 말일세!”

진 부인이 노기 탱천하여 분부하자, 오 어멈이 눈알을 데구루루 굴렸다.

나를 화살받이로 세우려고? 내가 대내내하고 틀어질 이유야 없지.

“부인, 대내내 몸이 안 좋은 거, 부인도 아시잖습니까. 행여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면요. 부인이 악독한 시어머니가 됩니다.”

“그건 그렇지. 그럼 어쩌면 좋겠나?”

진 부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 상인 가문 출신 며느리, 정말이지 교활하고 간계가 많구나.

“부인, 이건 집안일입니다. 부인은 이 집안에서 아무도 거역하지 못하는 가장 웃어른이시고요. 열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대내내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기강이 흐트러집니다!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도 열지 않으면, 웃어른을 거역하는 거니, 자물쇠를 부숴버리면 됩니다. 부인, 기강을 잘 세우셔야 합니다.”

“지당한 말이네!”

진 부인이 손뼉 치며 찬성했다. 이 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이 집안에서 자신을 거역할 사람은 없었다.

“가게! 열지 않겠다면 자물쇠를 부숴버리게. 이 집안을 그 아이가 멋대로 휘두르게 할 수 없어!”

오 어멈은 시원스럽게 대답하고는 바람같이 달려 나와서 건장한 어멈들을 골라 자물쇠를 부수러 곳간으로 곧장 달려갔다.

이동은 어멈의 보고를 들으면서 천천히 안신탕을 입에 머금었다.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희미하게 떠올랐다.

이 집안에 주인부터 종복까지, 하나같이 일은 잘 못 하면서 망치는 덴 선수였다. 올바른 길로 가도록 가르치는 건 어려워도 이 진창끼리 난리를 부리게 만드는 건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충분했다.

오 어멈 일행이 기세등등하게 나타나자, 배방 어멈들은 말리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은 듯 손을 비비고 발을 동동 구르며 쉴 새 없이 오 어멈에게 빌었다.

“이 곳간에 있는 건 모두 대내내의 혼수이고 아직 정리되지 않았는데, 만약…….”

턱을 치켜든 오 어멈은 어멈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건장한 어멈들이 큰 망치로 자물쇠를 부수는 걸 지켜보다가, 자물쇠가 부서지자 앞장서서 문을 열고 곳간으로 들어갔다.

곳간 안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정중앙에, 혼수가 들어온 날에 지참금을 담아서 들고 들어온 큰 상자 열 개가 비뚤비뚤 놓여 있었다. 뚜껑이 활짝 열린 것도 있고, 한쪽에 나뒹구는 것도 있었다. 은자 상자 바로 옆에 있는 능라 주단을 담은 큰 상자도 뚜껑이 열려서 비단이 밖으로 늘어져 있었다. 비단 상자 바로 옆엔 금 장신구를 담은 상자가 바닥에 뒤집혀 있었다. 각양각색의 적금 팔찌, 비녀, 반지, 귀걸이가 온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오 어멈은 넋이 나갔다. 어수선하다더니, 이렇게까지 어수선할 수가. 세상에, 자기 혼수 곳간조차 이렇게 엉망인데, 앞으로 안살림을 맡아서 하게 되면, 온 집안이 엉망진창이 되지 않겠나.

오 어멈 뒤의 오씨 등을 비롯해서 다른 어멈들도 눈이 휘둥그레져서 바닥에 뒹구는 적금 장신구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오 어멈이 지시하기도 전에 침을 흘리며 뛰쳐 들어갔다.

“어지럽혀 놓은 것 좀 보게. 얼른 치우세. 비켜, 대내내 대신 우리가 정리해드리겠네.”

곳간 정중앙에 놓인 빈 상자들을 바라보는 오 어멈은 아까워서 마음이 쿡쿡 쑤실 지경이었다. 어멈들이 다급하게 안으로 몰려 들어오다가 밀치자, 오 어멈은 자기와 부딪친 어멈의 따귀를 후려쳤다. 그녀는 나머지를 밖으로 내몰면서 배방 어멈들을 향해 호통쳤다.

“대내내의 혼수를 이렇게 엉망으로 두다니! 다 앞으로 나오게! 빈 상자는 어찌 된 일인가? 얼른 대내내의 혼수 단자를 가지고 오게! 뭐가 없어졌는지 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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