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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20화 (20/463)

20화: 일을 키우다 二

오 어멈은 바람처럼 진 부인의 상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진 부인의 지시도 없이 모두를 물리고 진 부인 곁에서 허리를 숙여 분통을 터트리며 귓속말했다.

“부인,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이냐? 세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느냐?”

진 부인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에요!”

오 어멈이 탑상에 몸을 틀고 앉아서 수레 이야기를 했다.

“부인, 아무래도 지참금을 빼돌린 것 같아요!”

진 부인이 미간을 단단히 찌푸린 채 얼굴을 구기고 있다가 한참 만에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건 제 지참금이니까, 이치대로라면…….”

“부인! 그건 대내내의 지참금이지만, 우리 강부의 은자라고요!”

오 어멈은 초조해서 목소리가 다 커졌다.

진 부인의 얼굴이 순간 구겨지고, 오 어멈은 말을 꺼낸 순간 바로 후회했다. 진 부인은 자신의 혼수를 꼭 쥐고 있었다. 이 저택에서 몇 번이나 쫓겨날 뻔했을 때도 부인은 이를 악물고 혼수를 내놓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부인의 금기를 건드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 어멈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부인, 대대내의 지참금은 부인 것과 다르지요! 부인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이가 같은 상인 가문과 혼인을 맺은 이유가 뭔가요? 당연히…….”

오 어멈은 또 한 번 말을 돌렸다.

“이가가 부자라서잖아요. 지참금이 아니었다면, 우리 세자야가 대내내 같은 여인을 처로 들였겠어요?”

“자네 말이 맞지.”

그 말에 진 부인은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옥가아 인품에, 우리 같은 가문인데 이씨가 상인 가문 출신인 것만 생각하면…… 게다가 철까지 없으니……. 내 마음이…….”

“부인, 대내내는 가문, 인품 하나같이 변변찮고 그나마 혼수가 있어서 봐줄 만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지참금은 대내내의 것이 아니에요. 이가에서 우리 강가에 마땅히 해야 하는 보상이라고요. 그 돈을 다 빼돌렸다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자네 말이 맞네!”

진 부인이 분개했다. 돈을 무시하고, 돈 이야기는 입에 올리기도 싫지만, 강부가 매우 궁핍하다는 건 너무나 잘 알았다. 이 혼사는 바로 이가의 은자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정말로 은자를 빼돌렸나?”

“십중팔구는요!”

진 부인이 드디어 말귀를 알아들은 걸 본 오 어멈은 재빨리 본론을 이야기했다.

“제가 측문을 지키는 오씨에게 이미 분부했습니다. 다음에 또 수레가 나가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막으라고요. 수레 열몇 대라니……. 부인, 이대로 넘기면 안 됩니다. 수레로 열몇 대라고요!”

수레 열몇 대를 생각하기만 해도 오 어멈은 뼈부터 살덩이까지 쿡쿡 쑤셨다.

“그럼 어쩌지?”

진 부인은 수레 열몇 대가 어느 정도인지 개념이 없지만, 오 어멈이 다급해하는 걸 보고 덩달아 조바심이 났다.

“측문으로 내보낸 수레가 무엇인지, 봉운을 보내서 대내내에게 물어볼까요? 어째서 부인께 기별도 하지 않았느냐고요. 뭐라고 대답하는지 보고, 다음 수를 생각하세요!”

수레는 이미 집 밖으로 나갔고, 진 부인이 혼수 곳간 열쇠를 가진 것도 아니라서 오 어멈도 딱히 좋은 수가 없었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봉운이 금세 돌아왔다.

“아룁니다, 부인. 밖으로 내보낸 물건이 없다고 하세요. 측문으로 내보냈고, 외발수레였다면 아마도 낡은 물건이나, 옷 같은 걸 버린 게 아니겠느냐고요.”

“말하는 것 좀 보게! 부인을 속이려 하다니, 바보로 여기는 건가!”

오 어멈이 화가 나서 발을 굴렀다.

“다시 가서 전해라. 헛소리라는 걸 아니까 솔직히 말하라고!”

진 부인도 화가 나서 봉운에게 분부했고, 봉운은 난처한 얼굴로 오 어멈을 바라봤다.

이런 말을 대내내에게 어떻게 전하라고요!

“그만두는 게 좋겠어요. 죽어도 인정하지 않으면 그땐 어쩌겠어요. 게다가 ‘병’들어 있잖아요!”

오 어멈이 ‘병’자에 힘을 주어 말했다.

“부인이 조금만 심하게 말해도 또 눈을 까뒤집고 죽네 사네 하면 오히려 부인이 잘못한 게 될 거예요!”

“이 상인 가문 여식! 이 간사한 계집! 대체 우리 강가가 무슨 죄업을 지었길래, 이런 화근을 집에 들인 걸까! 불쌍한 옥가아……. 아이고, 내 팔자야…….”

진 부인이 눈물을 훔치고 또 훔쳤다.

“부인, 울지 마세요.”

오 어멈은 정신이 딴 데 팔린 채 부인을 위로하면서 속으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렇게 하세요, 부인. 곳간을 오랫동안 수리하지 않았다고, 곧 장마가 다가올 거라서 곳간을 열고 하나하나 살펴봐야 한다고요. 곳간을 열어주면 제가 혼수 단자를 들고 갈게요. 직접 하나하나 대조하면 뭐가 없어졌는지 바로 알지 않겠어요? 그때 부인께서 야단치시면 되죠!”

“좋은 생각일세!”

진 부인이 손뼉 치며 칭찬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강환장을 배웅한 청서는 우선 오후에 있을 축하연에 관한 일을 지시하러 큰 주방으로 향했다. 싱글벙글 큰 주방 사람들의 축하 인사를 받은 그녀는 재빨리 청휘원으로 가서 요즘 가장 유행하는 열여섯 폭 금사 수화(繡花) 치마로 갈아입었다. 그녀의 치마는 담록색이고, 추미는 도홍색, 위에는 똑같은 유운(流雲) 문양의 암화운금(暗花雲錦) 얇은 웃옷이었다.

(※수화繡花: 바늘에 채색 실을 꿰어 미리 설계된 꽃이나 글자 등의 다양한 문양을 도드라지게 수놓는 비단 공예)

청국이 작은 상자를 들고나와서 우선 눈부신 적금 녹보석 팔찌를 각자 끼워주고 전사여의(纏絲如意) 팔찌도 끼워주었다. 마지막으로 넓은 화개 부귀 적금(花開富貴赤金) 팔찌 한 쌍을 꺼내서 그것도 손목에 끼워주었다.

청서는 손목에 휘황찬란한 팔찌를 빤히 바라봤다. 눈빛이 다 금빛으로 물드는 듯했다.

두 사람에게 팔찌를 끼워준 청국은 담록색과 도홍색 직금(織錦) 두 벌을 건넸다.

“언니들, 참 예뻐요. 이 옷과 장신구는 모두 어제 힐수방에서 두 사람을 위해서 주문한 거예요. 대내내가 두 분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춘연 언니도 똑같은 것으로 준비해서 가져다줬어요.”

청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청국을 바라봤다.

이게 다, 온몸에 휘감은 이 모든 게 다, 빌려주는 게 아니라, 다 내 거라고?

“밖에도 당부해 놨어요. 두 분 언니가 필요한 게 있으면 분부만 하세요.”

청국은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두 사람을 밖으로 배웅했다.

중문 쪽엔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있었다. 이동이 특별히 제작한 큰 마차에 청서와 추미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탔다. 중문을 나간 마차는 몇 골목 너머에 있는 고가로 향했다.

추미는 청서를 곁눈으로 살폈다.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손목에 찬 팔찌로 향하는 청서를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제 손목에 찬 팔찌 세 개를 흔들어 맑은 소리를 내면서 청서에게 차를 따라 주었다.

“언니, 차 드세요. 언니가 비웃을지도 모르지만, 나랑 춘연은 대내내의 혼사가 정해진 다음에 이가에 들어갔어요. 막 이가에 들어갔을 땐 정말 너무 놀랐어요.”

“놀라? 왜?”

청서는 기분도 좋고 흥은 더 좋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남의 집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목욕부터 하잖아요. 언니도 분명 잘 알겠죠. 다른 집이 어쩌는지 저는 모르지만, 이가 목욕탕에 들어갔더니, 욕통이 주르륵 놓여 있지 뭐예요. 어멈 서넛이 저 하나를 시중들고요. 솔직히 말하면요, 목욕 하나 하는데 따지는 게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날 목욕 시중든 어멈들, 향수행(香水行: 목욕탕. 목욕탕을 연 사람)에서 여인네들 목욕 시중드는 사람들이었더라고요. 언니는 딱 들으면 향수행에서 부리는 비결을 잘 알겠죠? 부귀한 집안에서도 낭자가 출가하는 날에나 향수행에서 사람을 부른대요.”

추미는 이야기하면서 청서의 표정을 빤히 살폈다. 청서의 미소가 약간 어색했다. 향수행의 비결을 알게 뭐람. 향수행이라는 것도 처음 들었는걸.

“목욕하고 나왔더니, 겹겹이 입은 옷은 더 말할 것도 없었어요. 하나같이 다 고급이었어요. 그 다음엔 힐수방의 수낭이 있더라고요. 그거 알아요? 수낭이 다섯이나 있더라고요. 우리 넷의 치수, 발, 머리둘레를 재더라고요. 그때 이상했죠. 머리둘레는 왜 재는 거지? 머리 크기를 보고 똑똑한지 아닌지 보려는 건가?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가을 겨울에 쓸 말액(抹額: 이마에 묶는 부녀자의 장식용 머리띠) 같은 걸 만든다고 잰 거더라고요. 이어서 옷감을 골랐죠. 해가 질 때까지 골랐었어요. 언니, 있잖아요. 난 옷 만드는 옷감 종류가 그렇게 많고 따지는 게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어요.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이어서 장신구를 고르는데, 눈이 돌아가는 줄 알았어요. 눈앞이 반짝반짝하는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언니가 비웃어도 좋아요. 나는 가난한 집 출신이라, 이렇게 클 때까지 그렇게 좋은 건 처음 봐요.”

“부자는 확실히 다르지.”

청서는 겨우 미소를 지으며 입꼬리를 끌어올리려 애썼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자기도 알 수 없지만, 어찌 됐든 웃는 얼굴은 아니었다.

“부자는 많죠. 하지만 종복에게 이렇게까지 돈을 쓰는 건, 내가 식견이 좁아서 그런지, 정말로 별로 못 봤어요.”

추미는 조심스럽게 조금씩 요점을 꺼냈다.

“그건 그래.”

청서는 진 부인을 떠올렸다. 강가는 거의 왕래하는 가문이 없어서 다른 집이 어떤지 모르지만, 강가에서 일한 지 몇 년 동안 진 부인은 한 번도 상을 준 적이 없었다. 낡은 옷, 헌 물건도 물건을 걷어가는 사람에게 팔았다.

가끔 못 먹게 된 음식이나 간식을 나눠주긴 했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몰라도, 어찌 됐든 그녀가 받은 건 모두 너무 오래 두어 맛이 변해서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봉운이 그러는데, 진 부인에게 사실 은자가 있다고 했다. 적지도 않고. 예전에 지참금을 꽤 두둑이 가지고 왔는데 긴 세월 동안 꽉 틀어쥐고 큰돈은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다고 했다.

“이가 태태는 통이 크고, 대내내도 태태처럼 통이 크세요. 다른 건 몰라도…….”

추미가 말을 멈추고 겸연쩍은 듯 웃었다.

“언니, 웃지 말아요. 내가 뭘 감추지 못해요. 내가 한 이야기, 다른 사람에겐 하지 말아요. 보는 눈 없다고 비웃지도 말고요. 내가 가난한 집 출신이라는 거 언니도 알잖아요.”

“내가 널 왜 비웃어. 그런 걱정하지 말아.”

청서는 다급하게 대답하고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앞으로 당겨서 그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 내가 세자야 시중을 든 다음 날 아침 이야기부터 하자면, 그날 아침 일찍 대내내가 백 냥을 보내주셨어요. 나는 뒷받침해 줄 집안이 없다고. 혹시…… 세자야가 좋아하는 게 있는데 내가 돈이 없어서 대접하지 못할까 봐. 백 냥을 주시면서 마음대로 쓰라고 하셨어요. 언니, 나 정말 너무 감동했어. 그런데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뭐예요.”

청서는 이미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기에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듣자, 하마터면 침을 흘릴 뻔했다. 다급히 꼴깍 삼키고는 더 바짝 다가가며 초조한 듯 재촉했다.

“또 뭔데? 얼른 이야기해봐.”

추미는 제가 말이 너무 많다는 걸 깨달았다는 듯이 우물쭈물하며 손수건을 비틀었다.

“어서 말해 봐. 우리가 남이니? 걱정하지 마. 네가 한 말, 네 입에서 나와서 내 귀로 들어가고 끝이야. 절대로 다른 사람은 모를 거야!”

청서는 추미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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