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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18화 (18/463)

18화: 좋지 않은 아내 운 二

하물며 메뚜기떼가 폭발한 해에도 강가 장원은 무탈했다. 따지고 보면 손실이 심각하긴 했지만, 장두(庄頭: 장원 우두머리)가 겨울에 벌써 이상한 걸 깨닫고 봄이 되자마자 병아리, 새끼 오리를 십여만 마리 사들였다. 메뚜기떼가 닥쳤을 때, 닭과 오리가 한창 자랐고, 강가의 모든 장원엔 닭과 오리가 벌레를 잡아먹었다. 그물을 쳐서 벌레를 잡고, 잡은 벌레를 말리고, 그 해에 달걀과 오리알을, 그리고 다음 해 성장한 닭과 오리를 팔았다. 메뚜기 재해로 입은 손실을 보충했을 뿐만 아니라 큰돈을 벌었다.

그 일로 황상이 대조회에서 몇 번이나 그를 칭찬하기까지 했다. 만사에 마음을 쓰고 아주 작은 부분도 눈여겨보며 진부한 것을 신기한 것으로 바꾸는 재주가 있다고.

공부 좌시랑도 바로 그 일로 모두가 기대한 대로 순조롭게 그의 손에 들어왔다.

메뚜기를 먹고 큰 닭과 오리는 지극히 맛이 좋은데, 고상하고 순결한 고씨가 그 닭과 오리로 새로운 비취압설(翡翠鴨舌: 압설은 오리혀)을 개발했다. 그 요리는 세속적이지 않은 뛰어난 맛으로 강씨 가문의 유명한 음식이 되었다.

비취압설을 떠올린 강환장은 입에 침이 고였다. 고씨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더욱 포근하고 따듯해졌다. 처운이 기구하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고씨가 있었다.

고씨는 현명하고 유능한 데다가 생각이 깊으니 고씨가 이 집안을 맡으면 분명 이씨보다 백 배는 잘 관리하지 않겠는가.

강환장은 머릿속이 번뜩 밝아졌다.

그자가 그랬지. 나와 강가의 명운은 내가 혼인한 후에 좋아지기 시작한다고, 반드시 이씨와 혼인해야 시작된다고. 아내를 죽이거나 아내의 덕과 복이 상하면, 자손에게 화가 돌아간다고 경고했어. 그럼, 이씨를 아무 탈 없이 방치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마침 꾀병을 부리고 있으니 잘 되었지! 어서 고씨를 들이자. 그 여인은 몸져누웠으니,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고씨가 대리해야겠지. 아무도 토를 달지 못해!

고씨가 후원을 다스려준다면, 강가는 분명 예전보다 몇 배는 좋아질 것이다. 적어도 예전처럼 구린 돈 냄새가 풍기진 않겠지. 고씨의 청아함은 나조차도 따라잡을 수 없으니…….

진왕이 즉위하면, 집안일을 맡아서 한다는 명분으로 어떻게든 고씨에게 고명을 얻어 주어야겠다. 고씨가 고명을 받으면 내 아들이 서얼이라고 멸시했던 고얀 것들도 조심할 수밖에 없겠지!

생각을 끝낸 강환장은 일어서서 곧장 청휘원으로 향했다.

이동은 침상에 누워 눈을 내리깐 채 아무런 표정 없이 그를 맞이했다. 강환장의 미간이 더 찌푸려지더니 혐오의 빛을 감추지도 못했다.

“……이건 당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오. 금방 나을 병도 아니고, 당신이 병든 바람에 어머니까지 병이 들었소. 다 당신을 위해서 고씨를 들이는 거요. 고씨가 집안일을 대신 맡아주고, 어머니를 모시면 당신도 안심하고 요양할 수 있지 않소, 그러면 더 빨리 회복할 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동은 텅 빈 눈으로 앞을 바라보며 평온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됐소.”

강환장은 저도 모르게 안도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했다. 허락하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는데, 저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어쩐지 긴장하고 있었다.

“푹 쉬시오. 아, 참. 5만 은자를 준비해주시오. 며칠 뒤에 써야 하오.”

“현은(現銀)인가요?”

이동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왔다. 낯짝도 정말 두껍지!

강환장이 어이없다는 듯 이동을 힐끔 바라봤다.

“5만 현은을 어찌 들고 다니나. 천 냥짜리 은표로 준비해서 이따 내 거처로 보내주시오.”

“지금 내겐 지참금으로 가지고 온 30만 냥밖에 없어요. 장원과 점포에서 들어올 돈은 작년 섣달에 벌써 들어왔고, 이제 겨우 3월이라서 더 나올 돈이 없어요. 지참금을 들고 나가서 은표로 바꾸라는 말인가요?”

이동이 느릿느릿, 또박또박 물었다.

강환장은 위에서 곁눈으로 내려다보면서 희미하게 그렇다고 대꾸하고는, 며칠 안에 써야 한다고 말하고 곧바로 돌아서서 나갔다.

다들 이가의 돈을 보고 이씨를 아내를 맞았다고 하는데, 이가에 돈이 좀 있긴 하지만, 은자 30만 냥? 고작 그 정도 은자로, 돈 때문이라고 해?

강환장을 눈으로 배웅한 수련은 이동의 침상 앞에 살짝 무릎을 꿇은 채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서 입술만 뻐끔거렸다.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이동이 수련을 토닥였다.

“괜찮아. 잘 됐어. 좋은 기회야. 만 어멈을 불러오렴.”

“낭자, 정말로 지참금을 내놓으려고요? 그건 낭자의 지참금이에요! 생사 갈림길이 아니고서야 지참금을 쓰는 게 어디 있어요!”

수련은 다급해졌다.

“강씨 가문 곳간에 두는 것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어. 이 김에 옮기자.”

이동이 느릿느릿 말하자, 수련은 얼떨떨하게 잠시 있다가 아, 소리를 내더니 벌떡 일어섰다. 두어 걸음 내딛더니 획 돌아서서 이동을 바라보는데, 불쑥 눈물이 흘렀다.

“낭자, 혹시…….”

이동은 웃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 한 번 끄덕였다.

“너희가 있잖니. 우리, 그 사람 무서워할 것 없어.”

수련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참 동안 목이 메어서는 겨우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동의 분부를 들은 만 어멈은 밖으로 나가서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핑계를 대고 강가에서 나와서 이가로 달려갔다.

장 태태는 탑상에 단정하게 앉아서 만 어멈의 말을 유심히 듣고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대내내가 분부했으면 시키는 대로 신경 써서 따르면 되지 나한텐 왜 달려온 건가.”

“무슨 말씀이신지 소인도 압니다. 하지만 대내내의 지참금입니다. 생사가 걸린 일이 아니고서야 지참금을 쓰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건…… 너무 큰 일입니다. 게다가 대내내가 몸져누워있는데, 소인, 실로…….”

만 어멈은 미간을 좁혔다. 정말로 대내내가 걱정되었다.

“걱정할 것 없네. 아동은 달라졌어.”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말하던 장 태태는 말을 멈추고는 마음 아픈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하지 말게! 가서 대내내가 시키는 대로 해. 만 어멈, 솔직히 이야기하지. 아동이 시집을 잘 못 갔어. 아무래도 몇 년은 고생할 것 같아. 아동이 그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자네가 마음 좀 써주게. 아동이 귀히 자랐어도, 정과 의리를 안다네. 분별도 있지. 앞으로 자넬 홀대하진 않을 걸세.”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에요! 그동안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태태, 마음 놓으세요. 낭자가 어릴 때부터 봐왔지 않습니까. 어휴. 그러게요, 그러게요! 어휴.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태태, 마음 놓으세요!”

인사하고 물러난 만 어멈은 투지를 불태우며 바람같이 달렸다.

힘든 건 두렵지 않아. 아무리 힘들어도 노야께서 막 세상을 떠났던 몇 년만큼 힘들까!

청서는 석류나무 아래 서서 이처럼 햇살이 아름답게 빛난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눈 앞에 펼쳐진 화초도 전에 없이 아름다웠고, 유칠(油漆)이 얼룩덜룩한 허름한 정자조차 싱그럽고 보기 좋았다.

진 부인이 조금 전에 그녀와 추미, 춘연을 불러서 약속했고, 대내내도 그녀를 불러서 은자를 내어주며 세 사람을 이낭으로 올리는 축하연을 맡으라고 말했다.

청서는 살짝 고개를 들고 귀밑머리를 쓰다듬었다.

뭐가 어쨌든 대내내는 세자야의 눈치를 봐야 한다. 세자야가 자신을 챙기면 대내내도 자신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지금도 그렇지 않나. 대내내는 은자를 내주고 축하연을 맡으라고 했고, 추미와 춘연은 제게 참으로 공손하게 굴었다. 대내내가 시킨 것이든, 두 계집이 알아서 기는 것이든, 어느 쪽이든 좋은 일이었다.

대내내가 참으로 통이 커서, 단번에 은자 백 냥을 주었고.

청서는 염낭에 든 은표를 만지작거렸다.

이낭이 되었으니, 이제 이 집안에서 주인들만 빼면 다 내게 잘 보여야 해. 다들 어떻게든 알랑거리려고 할 텐데, 이런 연회에 무슨 돈이 들겠어? 돈이 들지 않을뿐더러, 어쩌면 적지 않게 돈을 거둬들일 수 있을지도 몰라.

세자야도 갈수록 나한테 잘해주시고.

청서는 몸이 살짝 달아올랐다. 전날 밤, 풍만하고 보들보들해서 품에 안기 딱 좋다고 세자야가 칭찬했었다. 하지만 백화향(百和香)의 느낌이 없는 것이 옥에 티라고 했는데, 백화향이 무슨 향이기에?

이 백 냥, 분명 쓸 일이 없을 테니, 향포(香鋪)에 사람을 보내 백화향을 조금 사 오라고 할까…….

(※백화향百和香: 백 가지에 가까운 수많은 향료를 섞어 향이 짙고 태우면 향기가 오래 간다. 매우 고귀한 것에 대한 비유)

“햇볕 아래 서서 멍하니 뭐 하니?”

청서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놀라서 진저리치며 돌아서다가 봉운인 걸 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왜 이렇게 살금살금 나타나! 깜짝 놀랐잖아.”

“네가 넋을 놓고 있었으면서?”

봉운은 청서와 같은 해에 강가에 들어와서 청서보다 1년 먼저 부인 곁에서 시중을 들게 되었다. 이 저택에서는 두 사람이 가장 절친했다.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너무 좋아서 넋을 놓은 건 아니겠지?”

“좋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 얘도 참.”

청서는 말은 그렇게 해도 웃음을 거두지 못했다.

“좋아할 일이 왜 아니야. 드디어 견뎌냈는데. 몇 년 있다가 자식이라도 낳으면 이제 평생 발 뻗고 자겠다.”

봉운은 진심으로 우러나서 축하했다. 그녀는 원래도 마음씨가 고왔다.

“뭘 그렇게까지.”

청서는 얼버무리고 말을 돌렸다.

“어머니 몸은 어떠셔? 또 안 좋아졌다고 왕 어멈이 그러시던데.”

“응, 며칠 전에.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했어.”

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봉운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

청서는 무심결에 염낭에 든 은표를 만지작거렸다. 후회되어 혀를 깨물고 싶었다.

봉운의 어미가 병이 심해서 독삼탕을 먹어야 한다고 했고, 온 집안이 눈이 벌게서 봉운의 월전만 기다리는데…….

난 이번 달에 벌써 두 냥 받았는데, 혹시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주기 싫은 게 아니라, 빌려주고 못 받을까 봐 걱정이었다.

“대내내는 몸이 어떠셔? 대체 언제 좋아지신다니? 온 집안이 대내내의 몸이 낫기만 기다리는데. 그리고 월전도.”

봉운은 초조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병이 깊이 드셨어.”

청서는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그녀는 대내내의 몸이 낫길 바라지 않았다. 월전이 많이 밀린 것도 아니고, 게다가 돈이 부족하지도 않았다. 앞으로는 더욱 부족할 일이 없을 것이고.

“그냥 좀 까진 거잖아. 왜 털고 일어나지 않으셔? 대체 무슨 소란을 피우고 싶으신 거래?”

봉운은 은근히 진 부인의 영향을 받은 듯 투덜거렸다.

“심하게 다친 것 같아.”

청서는 모호하게 말하고는 봉운이 더 묻기 전에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심하게 다친 건지 아닌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 대내내는 어릴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자랐고, 이 나이 되도록 살이 까진 적도 없었대. 배방(陪房)으로 온 소유 언니, 왜 그 부엌어멈, 그 언니가 그러는데 대내내가 모기를 제일 싫어한대. 한 번 물리면 금세 벌겋게 붓는다나. 그런데 하필 또 화원 거니는 걸 좋아하셔서 하루에 두어 번은 나가시니까, 안사돈 태태가 그 집안 모든 회랑에 면사를 달았대. 대내내가 좋아하는 곳은 위에 지붕도 치고. 1년에 면사랑 지붕 다는 돈만 해도 만 냥은 든다더라고! 이번에 다친 것도, 우리 눈엔 별거 아니지만, 이가에서는 하늘 무너질 큰일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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