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하늘의 뜻이 변하다
강환장이 일어서서 밖으로 향하자, 독산이 뒤에 떨어져서 대교를 쿡쿡 찔렀다.
“그, 은자는 얼마 들었어? 은자가 어디 있어서? 형편이 넉넉한 모양이구나!”
대교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은자라니? 안 물어봤는데. 세자께서 독채를 잡으라고 했지, 얼마인지 물어보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내 형편 이야기가 왜 나와. 내가 돈을 내는 것도 아닌데. 세자께서 쓰시는 돈은 관사가 알아서 하시잖아. 월말에 결제하러 오면 그만 아닌가?”
독산은 대교를 빤히 바라보고, 대교는 독산을 빤히 바라보고, 둘 다 서로의 머리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저 멀리 중경도(中京道) 정안성(定安城) 밖, 십 리 장정(長亭: 여객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장소, 십 리마다 하나씩 있었다).
영원(寧遠)은 말에 올라 고삐를 쥔 채 제자리에서 맴돌며 슬퍼서 눈물을 후드득 흘리는 패거리들을 향해 손을 휘휘 저어주었다.
“이 몸은 이만 간다!”
채찍을 휘리릭 휘두르며 고함치는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그는 벌써 역로(驛路)를 따라 말을 몰고 사라졌다.
노관사 복백(福伯)은 말발굽 소리를 듣고는 서둘러 고삐를 당기며 옆으로 비켜섰다. 영원이 단걸음에 쫓아와 고삐를 잡아당기며 복백과 나란히 걸었다.
“벗들이 많아서 한참 걸릴 줄 알았습니다, 칠야(七爺)”
나이 들수록 웃음이 많아진 복백은 표정이 온화했다. 영원은 그런 그를 힐끔 바라봤다.
“이별에 지체할 일이 뭐가 있어. 끊을 땐 바로 끊어야지.”
“영명하십니다, 칠야.”
“개뿔!”
영원은 채찍을 높이 치켜들어 휘리릭 휘둘렀다.
“경성까지 십 리 남았군. 이제 말해 보게, 소(邵) 영감이 아버지에게 뭐라고 하던가?”
“소 영감이라니요, 사야(師爺: 관리의 개인 참모, 막료)지요! 소 사야께선 별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영원이 흘깃 바라보는 시선에, 복백은 쓴웃음 지었다.
“칠야도 참……. 소 사야가 뭐라고 했을지 칠야도 아시잖습니까. 정교함을 따지시는 분 아닙니까. 정말로 딱 두 마디 하셨습니다. 누군가 하늘을 거스르고 운명을 바꾸려 하니, 하늘의 뜻이 곧 변한다.”
영원의 안색이 변했다.
영원의 부친 정북후(定北候)가 지금 영원의 나이 때 패주하는 오랑캐를 쫓아 병사를 거느리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겨우 숨이 붙어 있는 아사자를 주워왔었다. 그자가 바로 소 사야였다.
정북후부로 데리고 온 소 사야는 거의 9년이나 몸져누워있었다. 괴팍하고 고집스러운 정북후는 이왕 구해온 이상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명의, 국수(國手: 이름난 명의)를 줄지어 모셨고, 인삼, 녹용, 표범의 태, 곰 발바닥 같은 걸 줄줄이 먹여댔다. 어차피 정북후부에 돈은 넉넉했고, 그런 물건들은 더 널리고 널렸다.
10년째 되는 해, 드디어 몸이 나은 소 사야가 처음 내뱉은 한마디가, ‘자기 같은 사람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며 살지 말아야 하는 몸’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자기가 살아난 건 정북후가 구해서가 아니라 하늘이 그에게 살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소 사야는 그날부로 영씨 사당에 살기 시작했고, 낮엔 자고 밤엔 별을 봤다.
그러나 소 사야는 별을 보기는 보는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북후가 아무리 물어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다만 영씨 가문을 위해서 오로지 한 가지 일만 했다. 바로 정북후 자녀의 운명을 점쳐 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로 정북후 적장녀, 영원의 큰 누나인 영매(梅)의 팔자(八字)를 보더니, 미간을 좁히고는 그길로 폐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족히 이레를 폐관하다가 봉두난발로 나와서 하는 첫 마디가, ‘자기는 살아선 안 된다.’였다. 그리고 다음 말이, 영매의 운명은 그녀가 정혼한 다음에야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영매의 혼담은 그녀가 열일곱일 때부터 오갔다. 정북후와 부인 한(韓)씨의 금지옥엽인 영매의 시가를 고르기가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정북후와 한 부인은 보물 같은 딸을 아주 조금이라도 서럽게 할 가능성이 있는 집안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고, 그렇게 영매는 열아홉 살이 되고 말았다.
새해가 되자마자, 소 사야가 입을 열더니 영매의 혼사가 정해졌다고 했다. 두 달 후, 주(周) 태후가 얼마 전에 배우자를 잃은 아들, 황제의 아내로 영매를 들이려고 친히 서신을 내렸다.
서신을 읽은 정북후는 소 사야를 찌르려고 검을 뽑아 들었다. 선황후가 살아 있던 두 달 전에 주 태후가 이 혼사를 주선할 거라고 말했다면 서둘러 영매의 혼사를 정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물론 찌르진 못했다. 소 사야가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정북후가 풀이 죽어서 나오더니 고귀하디 고귀한 이 혼사를 받아들였다.
이 모든 일을 영원은 어젯밤에야 겨우 들었다.
“소 영감이 내 운명은 어떻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영원이 눈알을 굴리며 물었다.
“칠야 운명이야, 태어나자마자 점쳤지요.”
“뭐라는데?”
“그건 저야 모르지요. 정말로 모릅니다.”
복백은 성실한 얼굴이었다.
“소 사야가 노야를 모시고 들어가서 속닥속닥하던걸요. 저는 칠야를 안고 밖에 있느라 한마디도 못 들었습니다.”
“그럼 아버지 안색은 어땠어? 기뻐하셨나? 슬퍼하셨어? 놀라셨나? 분노하셨어?”
영원은 포기하지 않았다.
“노야가 어디 감정을 드러내시는 분입니까. 소인, 정말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영원은 복백을 한참 흘겨보다가 ‘하!’ 소리를 냈다.
“우리 아버지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신다고? 빤히 눈 뜨고 거짓말하는 실력이 꽤 늙었구나! 그럼 계속 말해 봐, 큰 누님의 혼사가 정해지면 운명을 점칠 수 있다고 그랬다면서? 그래서 뭐라던가?”
“대낭자의 운명을 점치지 않았습니다. 그냥 몇 마디만 했어요. 칼끝은 모두 감추고, 피하고 양보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목숨만 보전하라.”
“그게 다야? 큰 누님은 그 말을 듣고도 입궁했고?”
영원의 얼굴이 두려울 정도로 어두워졌다. 복백은 쓴웃음 지었다.
“휴, 대낭자가 떠나신 후, 소 사야가 또 대낭자 팔자를 점쳤지요. 단 한마디였습니다. 서른여섯에 독으로 죽는다.”
영원의 손에 들린 채찍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복백은 말에서 내려 채찍을 주워 말에 다시 타고 영원 손에 찔러주며 중얼거렸다.
“드디어, 천도(天道), 하늘의 뜻이 변하겠지요.”
“경성에 사람을 얼마나 두었지? 다 최숙(崔叔) 아래 있나?”
영원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별안간 물었다. 복백은 얼떨떨해했다.
“예? 누구요? 최신…… 말씀이십니까? 최신은 이미 죽지 않았습니까. 칠야도 참.”
“어허! 지금까지도 눈속임하려는 건가? 아무래도 설교를 제대로 좀 해야겠군.”
영원이 채찍을 높이 휘둘렀다.
“이번에 아버지가 나를!”
영원은 채찍 끝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힘주어 ‘나’라고 말했다.
“보내려는 건, 제대로 싸워보겠다고 결심하셨다는 뜻이지.”
복백은 화들짝 놀라서 무심결에 허둥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왜 그렇게 말하냐면!”
영 칠야가 채찍을 휘두르며 자문자답했다.
“우리 아버지는 말이다, 왜 그 말 있잖은가, 아비만큼 아들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 우선, 내가 똑똑하다는 걸 아신다. 매우 똑똑한 걸 말이야.”
복백은 아무런 말 없이 하늘을 올려다봤다. 매우 똑똑한지 아닌지는 몰라도, 어찌 됐든 뻔뻔하긴 했다.
“다음, 아버지가 내 성격을 제일 잘 아시지. 소탈하고 발호하지 않고, 용기와 책략이 있지. 장수가 적을 물리치며 멀리 있을 때는 주군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다는 이치도 아주 잘 알고…….”
복백은 힐끔 그를 바라봤다.
뻔뻔할 뿐만 아니라, 언변도 좋군. 소탈하고 발호하지 않긴. 법도도, 하늘도 무시하는 극악무도한 사람이. 장수가 멀리 있을 때는 주군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어? 멀리 있지 않을 때도, 따른 적 없잖습니까!
“아버지는 내 이런 성품을 잘 알면서도 나를 경성으로 보내셨으니, 나더러 마음껏 이 세상을 휘둘러 보라고 대놓고 말씀하시는 거지! 큰 누님이 당당한 태후가 되도록 도와서, 편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도록! 성공하면 당연히 좋고, 실패하면 우리 영가는…….”
영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실패해도 우리 영가를 연루할 순 없지!”
영원이 매서운 얼굴로 혀를 찼다.
“젠장. 이 일은 아무래도 이 몸이 제대로 계획을 세워 봐야겠군. 혹시 실패하면 대신 책임질 사람이 있어야겠어.”
복백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실이었다. 노야는 물불 안 가리고 목숨을 걸기로 했다. 대낭자가 궁으로 들어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황후가 된 후로, 부인은 계속 몸져누웠고, 노야는 10년 동안 폭삭 늙었다.
“아버지가 얼마나 선견 있는 분인가. 큰 누님이 출가하기 전에 이미 경성으로 사람을 모았을 거야. 최숙 같은 사람은 꿍꿍이가 무궁무진한 사람이야. 뒤통수에도 눈이 몇 개인지 몰라. 사냥 갔다가 호랑이에게 습격당했다고? 최숙이 호랑이를 습격했겠지.”
복백은 옷깃을 여미며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번 해 보자고 나를 경성으로 올려보내는데, 부하가 누가 있는지, 내게 숨기고 감춘다? 나는 친아들이고, 큰 누님은 친딸이야! 솔직히 말하지 못해? 경성에 누가 있어!”
“칠야, 제발 이 늙은이를 난처하게 하지 마세요. 소인이…….”
복백은 죽을상이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상대는 모른다 치자, 우리 편도 몰라서야 어쩌란 말이야. 이 몸더러 어찌 싸우라는 거야?”
“칠야, 그것이…….”
“알았어. 그럼 물어보자!”
영원이 복백의 말을 잘랐다.
“우리 이번에 움직이는 거, 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셨어? 내가 결정권자야, 아니면 자네가 결정권자야?”
“칠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칠야시지요. 다 칠야의 분부대로 움직입니다.”
복백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다 내 분부대로 움직인다면서, 경성에 누가 있느냐고 묻는데, 그걸 대답 안 해? 그러면서 내 분부를 듣긴 개뿔! 결정권자가 난데, 내 수하에 몇 명이나 있는지도 모르잖아. 제가 사람을 쓰려면, 어르신에게 먼저 여쭤야 합니까? 이래도 내가 결정권자야? 이 임무를 어찌하라고. 안 되겠군! 이 임무를 어찌해야 하는지, 아버지에게 가서 여쭤봐야겠어!”
영원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말머리를 돌려서 뒤로 달려가자, 복백은 놀라서 땀을 삐질 흘렸다. 그는 덥석 달려가 영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칠야! 칠야! 진정하세요!”
칠야 이분은 어릴 때부터 법도고 뭐고 하늘 무서운지 모르는 사람이라, 정상 범주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물어보러 돌아가겠다고 한 이상 정말로 단걸음에 돌아갈 사람이었다.
줄곧 직진해야지 돌아보면 절대 안 된다고, 소 사야가 말했었다.
“칠야! 칠야!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할 말……. 예, 예, 하지요, 해요. 제가 말씀 안 드리는 게 아니라……. 아이고, 이 조상님아!”
영원이 얼굴을 구긴 채 채찍을 당장에라도 내리치려는 듯 흔들고 있는 걸 보고 복백은 재빨리 승낙했다. 이대로 정안성으로 돌아가게 내버려 뒀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라고!
“진작 그럴 것이지. 깨달았으면 됐어.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천천히 정리해서 저녁에 역참에 당도하면 찬찬히 말해. 그리고, 즉시 최숙에게 소식을 전해. 오늘부터 모든 인원을 움직인다고. 경성 7품 이상 관원, 경성 밖 4품 이상 관원의 집안 대소사, 누구랑 누가 사이가 안 좋은지, 누가 외실(外室: 저택 밖에 따로 둔 작은집, 첩)을 감춰 뒀는지, 누구 집에서 연회를 여는지, 누가 누구랑 혼인을 맺고 싶어 하는지, 뭐 이런저런 거 다, 큰일, 작은일, 막론하고 싹 다 수소문해서 이 몸에게 보고해. 하루에 한 번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