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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9화 (9/463)

9화: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중요하다

수련은 겁에 질려 눈이 다 휘둥그레졌다.

“대내내! 어떻게 그런 생각을. 세자야가 그럴 리가…….”

이동이 수련의 손을 토닥였다.

“이러지 말고 진정해.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내가 이번 일을 잘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너도 도와야 해.”

“네.”

위기감과 뭔가 잘못됐음을 느낀 수련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두 계집애가 날 밀었을 때, 네가 가장 똑똑히 봤어. 그 애들, 장난이었니, 아니면 날 죽이려고 작정했니?”

이동이 바라보며 묻자, 수련은 이동을 마주 보며 입술을 달싹일 뿐 끝내 말을 하지 못했다.

“날 죽이려고 했어.”

이동이 판단을 내려주자, 수련은 입술을 깨물다가 모질게 결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낭자와 이낭자의 흉악한 얼굴,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렸다.

“강환장이 그 일을 모를까?”

수련은 고개를 숙였다. 그날 그녀 혼자 본 것이 아니었다. 대낭자와 이낭자의 시녀도 같이 있었다. 세자의 사환 독산의 어미도 곁에 있었으니 그녀처럼 똑똑히 봤을 것이다.

“내가 어쩌다가 넘어졌는지, 그 사람도 똑똑히 알고 있어. 훤하게 알고 있다고. 내가 얼마나 다쳤는지 역시 잘 알지. 의원의 처방, 진단, 한 장, 한 장 다 훑어봤어. 그 사람, 의서를 많이 읽어서 의술을 꽤 알아.”

수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둘은 그 사람의 친동생이야. 뭘 어쩌겠어. 나도 그 사람더러 뭘 해달라고 할 생각 없었어. 하지만…….”

이동은 씁쓸한 얼굴로 수련을 바라봤다.

“그 사람, 내가 혼자 넘어진 거라고 싹 잡아떼잖니. 어떻게 그래? 내 앞에서 인정하기라도 하면, 내가 자기 누이를 죽이라고 하기라도 할까 봐? 나는 그 사람 아내야. 부부는 일심동체라잖아. 그런데 이렇게까지 날 경계해?”

수련은 창백해진 얼굴로 이동을 바라보며 입술을 떨었다.

낭자가 하는 이야기, 깊이, 세세히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아니면, 그들 모두 내가 죽길 바랐던 거겠지. 강환장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래서 내 앞에서 딱 잡아떼고 인정하지 않는 거야. 자기 누이 둘이 날 민 걸 부인하는 게 아니라, 두 사람이 날 죽이려던 그 마음을 부인하는 거야. 그리고 본인도. 날 해치고 싶은 본인 마음도 말이야.”

수련은 부르르 몸서리치고 진저리쳤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요 며칠 줄곧 그 생각을 했어. 곰곰이 생각했어. 당분간이야 별일 없겠지. 이 집에 들어온 지 두 달도 되지 않았으니까. 지금 내가 죽으면, 첫째, 며느리를 해쳤다는 혐의를 도저히 벗을 수가 없을 것이고, 둘째, 어머니가 분명 내 혼수를 가지고 가실 테지. 단 한 푼도 강가에 남기지 않으실 거야. 이 저택을 되찾아 오느라 쓴 은자도 다 돌려받으려고 하실 수도 있어. 어머니는 미쳐 버릴 거야.”

이동은 또다시 멍해졌다. 어머니가 미쳐 버리면, 강가는 아마 기르는 짐승까지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내가 지금 죽으면 강가는 끝장나! 하지만, 1, 2년, 4, 5년 뒤에는? 만약 그 사람이, 강환장이 너희들부터 하나하나 제거해서 내 양팔을 다 꺾어놓고 나를 해치면? 혹은 어머니까지 같이 해치면?”

이동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지고 가벼워졌지만, 수련은 몸을 덜덜 떨었다. 낭자가 하는 말이 아무 근거 없이 나온 건 아닐 것이다.

“그, 그, 그렇지 않을 거예요…….”

수련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머니가 그랬어. 사람 마음이 얼마나 음험한지, 절대로 그 바닥을 알 수 없다고.”

이동은 서서히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들고 다람쥐, 포도가 잔뜩 수 놓인 떠들썩하고 즐거워 보이는 휘장을 바라봤다.

예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난 줄곧 눈 가리고 외면했어. 알고 싶지 않았어. 그보다 알게 되는 게 두려웠을지도 몰라.

“낭자, 제 생각엔, 세자야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만약 맞으면?”

이동은 수련을 바라보며 쓴웃음 지었다. 그는 그녀를 평생 이용했고, 평생 혐오했다. 차라리 통쾌하게 죽이기라도 했으면 나았을 텐데.

수련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낭자가 이렇게 심하게 다쳤는데, 세자야와 강씨 가문 사람들의 태도는……. 우리끼리 감히 아무런 말도 못 했지만, 속으로는…….

낭자가 하는 말 역시 깊이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낭자가 이 혼사를 정한 후로, 다들 강가가 욕심내는 건 이씨 가문의 은자라고 말해 왔다.

낭자가 스스로 잘 지켜야만 한다고, 우리 어머니조차 그렇게 말했었잖아.

“낭자, 그럼 우리 어떻게 해야 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수련은 목소리가 떨려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낭자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할까? 며칠 동안 내내 생각했어. 앞으로, 우리, 어떻게 해야 하지?”

이동의 시선이 수련의 너머로 향했다. 어디를 보는 걸까.

“낭자, 어차피 혼인했으니까……. 고야의 마음을 잡으려고 애쓰는 수밖에 없어요.”

수련이 상심한 듯이 건의했다.

아직 혼인하지 않았다면, 설령 정혼은 했다고 해도 이 혼사를 무르고 다른 혼사를 정할 방법이 태태에게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만월연도 이미 끝났다.

“강환장을 제대로 살펴야 해. 그 사람을 살펴야 목숨을 지킬 수 있어. 내 목숨, 너희들의 목숨. 다른 건 그다음 이야기야.”

이동의 말에 수련은 가슴이 욱신욱신 조여왔다.

“내 머리, 아프기 시작하면 못 견디게 아파. 아플 땐 눈앞이 핑핑 돌아. 어떤 때는 말을 하려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잊어버려. 그리고 기억이 잘 나지 않은 일도 많아.”

긴 세월이 흘렀으니, 과거의 사람이든 일이든 당연히 많이 잊었다.

“맞아요. 어제 소유가 탕을 들고 들어왔을 때, 몰라보셨어요. 빤히 바라보면서 낯이 익다고 하셨죠.”

수련은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런 상태로는 집안일을 맡을 수 없어. 하고 싶지도 않고. 일단 맡지 말아야겠어. 나중 일은…… 일단 내 몸이 좋아지고, 강환장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보고 생각하자. 강환장이 양심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그때 가서 이야기하자. 지금은 일단, 우린 우리 사람을 챙기고, 우리의 은자를 챙겨야 해.”

이동은 거기까지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수련과 시녀들은 반드시 그녀와 한마음이어야 했다. 무슨 일을 하든 그녀들 없이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환장이…… 정말로 그녀처럼 다시 돌아온 거라면, 조금이라도 마각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아니면 죽음뿐이리라.

“알겠어요!”

수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의원도 그랬다. 낭자의 병은 반드시 요양해야 한다고. 집안일을 맡았다간 정양할 수가 없다.

“대교를 만나고 와. 앞으로 세자께서 출타하시면 자주 따라 나가라고. 혹시 세자께서 물으시면, 대교가 무술을 좀 할 줄 아니까,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말씀드려. 그리고 세자가 누굴 만나는지, 태도는 어땠는지, 눈여겨보라고 대교에게 말하고.”

“바로 갈게요.”

이동의 분부에 수련은 서둘러 일어섰다.

3월,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금명지(金明池)도 개방되었다.

금명지와 그리 멀지 않은 곳, 담장 전체에 가득 하늘을 뒤덮을 듯이 핀 목향(木香)이 유명한 능운루(凌雲樓)엔 빈자리 하나 없이 손님이 가득했다.

강환장은 다루에 앉아 찻잔을 쥔 채 조금 초조한 얼굴로 맞은편 능운루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흘째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황상을 만났던 상황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러나 그날이 언제였는지, 확실히 기억나지 않았다.

맞은편 건물에서 후다닥 달려 나온 독산이 단숨에 강환장 앞까지 뛰어왔다.

“세자야, 알아냈습니다. 목향 담벼락 정면에 있는 목향각으로 정했답니다.”

강환장의 눈빛이 빛났다.

“음. 언제 온다더냐? 넌 어느 독채로 잡았고?”

독산이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세자야, 족히 은자 두 냥을 찔러주었는데, 목향각을 잡았다는 말만 하더라고요. 다른 걸 물으니 더는 대답하지 않아요. 말 한마디에 은자 두 냥이라니. 세자야, 이건 너무…….”

강환장은 화가 나서 찻잔의 찻물을 찻잎째 독산의 얼굴에 뿌렸다. 요즘 가장 화나고 답답한 일이 바로 온 저택 위아래 가득한 궁상스러운 기운이었다.

수녕왕부에 언제 은자가 부족했던 때가 있었나 말이다!

은자가 뭐라고!

“독채를 잡았냐고!”

강환장이 이를 갈며 묻자, 찻잎을 덮어쓴 채 얼굴이 축축이 젖은 독산은 다리가 다 덜덜 떨렸다.

“아, 아룁니다, 세자야. 독채는 사람이 적든 많든, 혼자라고 해도 은자 5, 50냥이……. 50냥이랍니다!”

독산은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서 강환장 앞에서 마구 흔들었다. 강환장은 화가 나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은자는 상관 말고, 시킨 일만 잘하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건만, 고작 몇 푼 안 되는 그 돈 때문에 큰일을 다 망치게 생겼다.

“밖에 누가 있느냐?”

강환장은 분노를 억눌렀다. 큰일이 우선이었다.

“아룁니다. 대교가 말을 끌고 왔습니다.”

독산은 목소리가 다 떨렸다. 세자가 요 며칠 예전과 다르게 무서울 정도로 화를 잘 냈다.

강환장은 멈칫했다. 대교가 누군지 기억했다. 하북에 재난 구제하러 갔던 그해, 새벽에 배가 뒤집혔을 때, 헤엄을 치지 못하는 자신을 대교가 뭍까지 끌어 올렸다. 야수 같은 재난민들이 우르르 몰려왔을 때, 대교가 그 야수들을 등진 채 그를 품에 감쌌다.

“들어오라고 해라.”

대교가 독산을 따라 안으로 들어오자, 강환장은 흡족한 얼굴로 그를 살펴봤다. 혈색 좋은 얼굴, 맑은 두 눈, 진청색 주단 장옷, 허리엔 진청색에 파란 테두리를 두른 허리띠, 진청색 무명 바지, 같은 색 각반을 가지런하게 맨 모습.

한눈에 봐도 말끔하고 가지런하고 정신력, 체력, 모두 갖춘 모습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수녕왕부의 기백이지!

“능운루에 다녀오너라. 내일로 독채 한 칸 잡아라. 목향 담장과 가까울수록 좋다. 어서 가라.”

강환장이 분부하자, 대교는 대답하고 돌아서서 나갔다.

독산은 밖으로 나가는 대교와 강환장을 번갈아 바라봤다. 대교에게 은자를 주지 않았다고 귀띔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다가 용기가 나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세자가 예전과 좀 달라서, 함부로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대교는 금세 돌아와서 공수하며 보고했다.

“아룁니다, 세자야. 장궤 말이, 목향 담장 바로 맞은편 독채는 진왕부에서 정했다고 합니다. 진왕부에서 지시하길, 내일 사시(巳時: 9시-11시)에서 오시(午時: 11시-1시) 초까지는 준비를 끝내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러니 점심때 쓰시겠지요. 저녁까지 쓰실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고요. 소인, 세자야의 중요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목향각 바로 옆인 체당청(棣棠廳)으로 정했습니다. 내일 목향각이 저녁에 비게 되면 우리가 쓸 거라고 장궤에게 말해두었습니다.”

강환장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교를 가리키며 독산을 꾸짖었다.

“좀 배우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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