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부엌 어멈의 잡담
수련이 곁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왕 어멈이 그런 식으로 말을 했대? 못살아.”
문죽도 따라 웃었다.
“이 집안에서 왕 어멈이 그런 식으로 대해도 되는 사람은 고 낭자밖에 없지, 뭐. 고 낭자랑 그 시녀가 고기를 제일 밝히고 느끼한 걸 그렇게 좋아한다던데? 그러면서 아닌 척한다고. 한 번은 왕 어멈이 곤 계탕이 느끼하다고 부인께서 타박하셨나 봐. 부인이 왕 어멈을 불러서 혼내시는데 고 낭자가 옆에서 이랬대. ‘계탕은 그저 입맛 바꾸려고 먹는 거지, 이렇게 기름이 둥둥 뜬 건 둘째치고, 조금만 기름이 떠도 질려서 입맛이 딱 떨어져요.’라고.”
이동은 이야기를 듣다가 멍해졌다. 전에 그녀가 안살림을 맡았을 때, 이낭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체면 있는 시녀, 어멈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곧바로 주방에 이야기했다. 그녀는 한 번도 먹는 것으로 각박하게 굴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먹는 것에 돈이 들면 얼마나 든다고.
“나중엔 월전 이야기가 나왔어요. 왕 어멈 말이, 1년하고 두 달 치 월전이 밀렸었대요. 대내내랑 막 정혼했을 때 월전을 나눠줬었는데, 단숨에 1년 치를 받았다고 하면서요.”
이동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때 나눠준 월전을 그녀가 직접 계산했었다. 그때 계산하면서 얼마나 마음 아팠었는지. 자기가 뜨겁게 사랑하는, 신선 같은 소년이 그토록 궁핍한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대낭자랑 이낭자 책망도 하더라고요.”
문죽은 이야기하면서 이동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들의 기준으로 보면 이 강씨 가문과 저택의 모든 종복의 기강이 엉망이었다. 예를 들면 왕 어멈, 감히 이렇게 방자하게 주인 뒷말을 하다니.
“대낭자랑 이낭자가 아니었다면, 분명 대내내가 안살림을 맡았을 거라고요. 월전도 진작 싹 채워줬을 거라고 말이에요. 대낭자랑 이낭자는 말썽꾸러기 사고뭉치 한 쌍이라고, 무슨 일이든지 두 사람 손만 거치면 다 망한다고요.
월전 이야기를 하다가 봉운 어미 이야기를 했어요. 봉운 어미가 병이 난 지 벌써 4, 5년이래요. 봉운의 아우를 낳을 때, 몸 풀고 나서 숯을 살 돈이 없는데 방은 너무 춥고, 그 바람에 고질병이 남았대요. 봉운이 벌써 부인 거처에서 대시녀가 됐을 땐데, 원래라면 봉운의 한 달 월전만 해도 800전 정도는 되어서 숯도 못살 정도가 아니었을 거래요. 그런데 그때 강부가 너무 가난해서, 부인이 절약한다고, 가장 먼저 종복들의 월전을 몽땅 깎았대요.”
이동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진 부인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안다. 진 부인은 자기 종복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에게 충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감정도 없고, 희비도 느끼지 않는다고 여기고, 설령 생으로 굶겨 죽여도 변함없이 절대로 변심하고 충성스러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가장 먼저 종복들의 월전부터 아끼기 시작한 것이고.
“봉운 일가는 모두 이 집안의 노비라서 월전 하나로 살잖아요. 그래서 병을 1년 넘게 질질 끌게 되었대요. 의원마다 똑같이 말했대요. 그때 남은 고질병이 너무 심해서, 제대로 고치려면 독삼탕(獨蔘湯: 맹물에 삼 한 가지만 넣고 끓인 탕)을 먹어야 한다고요. 작년에 월전을 보충해서 줬을 때, 봉운 아비가 가족들의 1년 월전을 계산해 보고 산삼을 살 수 있겠다고 했다는데, 봉운이 두 냥밖에 못 받을 줄 어찌 알았겠어요. 남은 건 이낭자 새 치마 만들어 주는 데 썼다지 뭐예요. 며칠 전 밤에도 봉운 어미가 숨이 넘어갈 뻔했대요. 봉운이 완전히 초조해져서 매일매일 어머니가 어떻게 됐냐고 왕 어멈을 찾아간대요.”
이동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생에선 강환장의 말 한마디면 그녀는 힘들어도 알았다고 말하며 이 집안의 안살림을 맡았다. 처음 닥친 문제가 바로 종복들에게 빚진 월전이었다. 그러나 강가 위아래 할 것 없이 장부가 모두 엉망이었다. 전체 장부엔 매달 월전 항목이 있는데, 내택 장부엔 월전을 나눠준 명세가 없었다. 관사 어멈들은 저마다 말이 달랐다. 진 부인은 더더욱 모르쇠로 응했고.
이동은 강가를 깔끔하고 질서 있게 관리하겠다는 뜻을 세웠으니, 당연히 확실히 조사한 후에 빚진 것을 나눠주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제대로 조사하기도 전에, 진 부인 생신날 빈객이 가득한 그 자리에서 봉운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피가 철철 흐르도록 고개를 조아리며 병든 어미가 곧 죽는다고 말했다. 그녀의 월전 800전만 기다리고 있다고, 제발 월전을 달라고.
이동은 관자놀이가 펄떡이고 가슴까지 쿡쿡 쑤셨다.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고 낭자가 그녀를 설득했던 그 날처럼.
‘우리 같은 집안사람은 인자함과 너그러움을 제일 중시한답니다. 돈을 너무 중요하게 보지 말아요. 그러면 안 돼요…….’
돈을 중시하고 각박하다는 평판이 그녀에게 붙은 것이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마침 봉운 언니가 주방에 말을 전하러 왔더라고요. 부인께서 심장이 아프다고, 저녁을 담백하게 준비하라고요. 왕 어멈이 부인께 부탁해 봤는지 봉운 언니에게 물었더니,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왕 어멈이 저를 가리키면서, 대내내한테 부탁해 보라고 하더라고요. 대내내는 부자니까, 조금만 융통하면 충분할 거라고. 봉운이 아무런 말 없이 저를 쳐다보는데, 저야 대내내 분부가 없어서 함부로 뭐라고 하지 못했죠.”
“쉬운 일이지. 우리 쪽에 산삼이 한 상자는 있는걸.”
수련이 웃으며 하는 말에 이동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렇게 멍청한 사람을 상관할 것 없어.”
이동이 너무 갑자기 마음을 바꾸자, 문죽과 수련 모두 얼떨떨해져서 얼굴을 마주 봤다.
“대내내…… 눈과 귀를 위해서 봉운과 가까이 지내자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문죽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음. 봉운은 부인을 모시는 통괄 대시녀잖아. 어머니가 그렇게 아픈데, 부인에게 부탁드려 봤대? 부인이 아무리…….”
이동은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부인은 자비로운 분이잖아. 봉운이 이야기만 하면 분명 가만히 계시진 않을 거야. 설사 부인에게 말을 꺼내고 싶지 않다고 해도, 아무 관사 어멈에게 먼저 돈을 빌리고 월전을 받은 다음에 갚으면 되잖아. 어떻게 그렇게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하지? 융통성이 없는 것 같아. 가까이 지낼 필요도 없겠어.”
수련은 문죽을 바라보고, 문죽은 눈을 크게 뜨고 수련을 바라봤다. 낭자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어딘가 억지스러웠다.
“그건 그렇긴 해요. 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수련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소서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걔네 고모네는 사정이 괜찮다던데요. 왕 어멈 가족도 다 가복이고 다들 이 집에서 일해요.
그리고 하루는 구매 담당이 주사(朱砂)를 가지고 왔길래 별생각 없이 이것저것 물었었는데, 저택에서 쓰는 향유만 해도 작년에 7백 근 넘게 썼대요. 깜짝 놀랐어요.”
이동은 그래, 하고 대답하고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장부가 엉망진창이라는 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생엔 집안일을 맡지 않을 생각이었다. 강가, 강환장 그 사람도 필요 없다고 단단히 결심했다. 엉망진창인 장부는 영원히 엉망진창인 채 있으라지.
“부인 곁에 다른 시녀도 있으니까, 괜찮은 사람 있는지 잘 살펴봐.”
이동의 말에 문죽이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또 한 가지 있어요. 왕 어멈 큰아들, 서가아라고 하는데 올해 열두 살이에요. 글공부도 몇 년 했고, 기민하고 영리하다네요. 생긴 것도 멀끔해요. 아주머니가 오늘 저한테 부탁하더라고요. 세자야를 모실 사람을 고를 때, 서가아를 보내주면 안 되냐고요.”
이동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도 왕 어멈의 아들을 안다. 나중에 강환장 곁에서 일하긴 했다. 청서의 연줄을 통해서였다.
그 서가아는 강환장에게 일거리를 받은 지 몇 달 되지 않아서 은자 여남은 냥에 매수 당해서 강환장의 공문을 훔쳤다. 강환장은 그 일로 의기소침해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이동에게 벼락같이 화를 내며 집안 단속을 잘못했다고 나무랐다. 고 이낭이 집안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곤란한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는 강환장을 위로한답시고 이렇게 말했었다.
‘부인께서 살림을 맡으셨을 때 어디 이런 일이 있었나요? 남귤북지(南橘北枳), 귤나무는 강남, 탱자나무는 강북, 장소를 바꿔 심으면 다른 게 난다더니 역시 환경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는 걸까요?’
이동의 관자놀이가 또 쿡쿡 쑤셨다. 그때 너무나 분노했다. 성질이 나서 모질게 마음먹고 샅샅이 조사했고, 잘못이 밝혀지면 그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고 모두 벌했다. 관아에 보내고, 팔아치우고, 고 이낭을 어릴 때부터 모셨던 시녀 옥묵도 사적으로 기별을 전한 죄를 물어 멀리멀리 팔아치웠다.
그때 그녀가 엄중히 처벌하며 분위기를 단속해도 강환장은 가만히 있었다. 옥묵을 구해달라고 고 이낭이 빌어도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강부는 그녀 손에서 차츰 자리 잡아갔다. 내외 유별하고 법도가 엄밀한 것으로 경성에서도 조금씩 이름이 났다.
그런데 그해 겨울, 수련이 후원 호수에 빠져 죽었다.
“대내내!”
수련이 목소리를 높여 그녀를 불렀다. 정신을 차리고 바라봤더니, 수련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이 포근해졌다.
“난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냥…… 생각나는 일이 있어서 그래. 세자야는 지금 일손이 부족하지 않…….”
말을 마치기 전에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강환장이 돌아온 게 맞는지, 서가아 일로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왕 어멈에게 가서 내가 심하게 다쳐서 금방 낫지 못한다고 전해. 세자가 사람을 고를 생각이 있다면, 아마도 청서가 맡아서 할 거라고.”
이동이 분부하자, 문죽은 바로 알아듣고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나갔다. 이동은 수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곁으로 와서 앉으라고 눈짓했다. 수련은 의아한 듯 이동을 바라봤다. 낭자가 넘어진 이후로 모든 게 이상했다.
“내가 걱정되니?”
이동은 수련의 시선을 마주 보면서 나직이 물었다. 수련이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대내내, 저희가 말씀 올릴 때, 한참 이야기하다 보면…….”
수련은 침을 꼴깍 삼키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
“눈빛이 멍해져서는 저희가 하는 말을 못 들으시잖아요…….”
그렁그렁하던 수련의 눈물이 뚝 떨어졌다. 이동이 들고 있던 손수건을 건넸다.
“생각할 게 있어서 그런 거야. 이번에 넘어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잖아.”
이동은 씁쓸해졌다. 진지하게 따지면 그녀는 이미 죽었다.
“대내내!”
“너랑 청국하고 다른 애들, 가장 늦게 들어온 아이도 벌써 10년째야. 난 너희들을 자매처럼 생각해. 그러니까 말해 봐. 세자야는 이번에 내가 넘어져서 머리를 박은 김에 차라리 죽길 바라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