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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7화 (7/463)

7화: 이낭 둘

“어제 동쪽 곁채 당직이 누구였니?”

장 태태가 입을 열기 전에 이동이 기운 없이 수련에게 물었다.

“동쪽 곁채?”

장 태태가 얼떨떨한 듯 물었다.

“제 몸이 이렇잖아요.”

이동은 헐떡거리며 대답하면서 수련을 바라봤다.

“요 며칠…… 세자가 동쪽 곁채에 묵으시는데……. 어제 누가 당직 섰니?”

“추미와 춘연이에요.”

수련은 자기네 낭자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지만, 지극히 협조적으로 대답했다. 장 태태의 안색이 변해서 이동을 빤히 바라봤다.

“어머니, 제가 그 아이들을 들였어요.”

이동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장 태태는 한참 멍하니 있다가 억지로 웃음 지었다.

“이 바보 같은 녀석. 그걸 말할 필요가 있겠니? 당연히 네 뜻이겠지. 아니라면, 설령 그놈이 그럴 뜻이 있다고 해도 그 계집애들이 어찌 감히 그러겠어!”

이동은 장 태태의 팔을 끌어안았다.

“어머니, 예전에 제게 하신 말씀, 이제 다 깨달았어요. 예전에 저는 바보였지만, 이젠 아니에요. 어찌 됐든 첩은 들여야 하잖아요. 다른 사람을 첩으로 들이느니, 차라리 추미 그 아이들을 들이는 게 나아요. 어머니 말씀처럼, 앞으로 누굴 첩으로 들이든, 누굴 총애하든, 추미랑 그 애들이 있으면 저도 만회할 여지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 거처에 있는 청서도 기회를 봐서 첩으로 올려줘야겠어요.”

이동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고 가벼운 말투였다. 혹은 올해 찻잎이 작년만큼 향기롭지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장 태태의 놀란 표정이 비통함으로 바뀌어 갔다.

“얘야! 말해 보렴. 이 어미에게 말해 보렴!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 무슨 일이야? 딸아! 너 왜……. 왜…….”

딸이 온 마음을 다해 강환장과 혼인하려고 한 건 강환장을 사랑해서였다.

장 태태도 예전에 사랑을 했었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사랑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지 안다. 대체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내 딸이 어째서 하룻밤 새에 온 마음 가득하던 사랑이 다 식어버린 것처럼 외로워 보이는 걸까.

이동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머니, 전 그저…… 그를 꿰뚫어 본 거예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마음은 또 어떤지 꿰뚫어 봤어요. 어머니, 전 어머니의 딸이잖아요. 전 바보가 아니에요. 그 사람에게, 그 사람 가족에게 전 그저 움직이고 말하는 아도물일 뿐이에요. 이 집안이 가장 무시하는 게 그 아도물이고요.”

“얘야, 아직 혼인한 지 한 달밖에 안 되었어. 그런 말을 하기엔 이르다.”

장 태태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지금 딸이 하는 말보다 강환장이 아까 수련을 노려보던 매서운 눈빛, 한마디, 한마디 따지듯 심문하던 말이 더 가슴 아팠다. 그녀는 딸이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생각이 은근히 들었다.

“어머니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이동이 어머니의 말을 잘랐다.

“저도 제가 잘못 봤기를 기대해요. 하지만 그런지 아닌지, 조금만 더 지켜보면 알겠죠. 어머니, 어머니도 같이 살펴봐 주세요. 제대로요. 네?”

“알았다!”

장 태태는 금세 침착해졌다. 강환장은 아직 젊고 충동적일 시기다. 아까는 어쩌면 그저 잠시 욱해서 그런 것일지도…….

“딸아, 넌 안심하고 요양해라. 어미가 있지 않니. 어미가 똑똑히 살펴보마.”

“응!”

이동은 씁쓸하기도 하고 포근하기도 했다. 웃고 싶은데 또 눈물이 났다.

모든 걸 든든하게 받쳐 주시던 어머니가 다시 곁에 계셔서 너무 좋았다.

장 태태를 배웅한 후, 이동은 눈을 감고 한참 생각하다가 수련을 불렀다.

“문죽을 불러와.”

문죽이라는 두 글자를 이동은 매우 생소하게 내뱉었다.

그녀가 걸음마를 배웠을 때부터, 어머니는 그녀의 시녀를 골랐다. 3, 4년 동안 고르고 골라서 수련, 청국, 문죽과 녹매, 대시녀 넷을 뽑았다. 이들은 그녀가 강가에 들어온 이래, 5년 안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난산으로 죽은 문죽은 아이도 같이 죽었다. 그녀가 달려갔을 때, 문죽은 마지막 숨이 붙은 채 빤히 그녀를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숨이 멎을 때까지, 문죽은 알려줄 말이 너무나 많은 듯이 그렇게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다.

“대내내!”

문죽이 휘장을 젖히고 들어왔다. 이동은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문죽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초승달 같은 눈, 동글동글한 얼굴에 얼핏 보이는 보조개, 언제나 희색이 넘치는 문죽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이 시려서 눈가가 저절로 촉촉해졌다.

“대내내! 또 아프세요?”

문죽을 비롯해 이동을 오래 시중든 사람들은 그녀의 안색이 조금만 변해도 곧바로 알아차렸다.

“괜찮아. 이리 가까이 와. 부인을 모시는 봉운, 너도 알지?”

문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이, 고민 있는 것 같더라.”

이동은 말을 고르며 이야기했다. 강환장은 십중팔구 자기처럼 돌아왔다. 돌아온 다른 사람이 또 없으리란 법은 없었다. 반드시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만 했다.

“넘어지기 전에 우연히 들었는데, 그 아이 어미가 병이 들었다는 것 같아. 도울 것 없는지 가서 물어봐. 그 아이랑 잘 지내게 되면, 부인 곁에 우리 눈과 귀가 생기는 거야.”

“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문죽의 얼굴에 보조개가 생기고 눈빛에 희색이 가득해졌다.

낭자가 다시 집안일에 신경 쓰기 시작하셨어. 이건 좋은 일이야.

“잠깐.”

이동은 저택에 있을 때는 시시각각 조심하라고 말하려다가 말을 바꿨다.

“지금은 예전과 달라. 그러니까 거처에서 나가기 전에 반드시 내게 기별해야 해. 내가 허락한 다음에 나가야 한다.”

이번에는 절대로 시녀들이 비명횡사하도록 두지 않을 것이다.

수녕백부에서 떠나 마차 안에 단정하게 앉은 장 태태의 얼굴이 매섭고 싸늘했다.

강환장을 잘못 본 것일까. 아니면 그저 혈기가 왕성할 때라 철이 없는 걸까.

어느 쪽이든 손을 쓰긴 써야 한다. 정말로 잘못 본 것이라면…….

장 태태는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았다.

정말로 잘못 본 것이라면 딸애는 평생 어떻게 지내야 할까. 겨우 열몇 살인데, 채 다 피지도 못한 나이에. 다 내 탓이다…….

장 태태는 이마를 문지르며 최악의 상황을 미리 고민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강환장은 아직 젊어. 젊을 때 이런 고얀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나. 하지만 혹시 모를 화근은 미연에 방지해야겠지.

오후, 고 낭자가 이동을 문안하러 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청서가 이동의 침상 앞 각답에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청서는 손에 명주실을 쥐고서 부채 주머니 위에 하나씩 내려놓으며 이동에게 보여주었다.

고 낭자가 들어온 걸 본 이동은 실을 치우라고 청서에게 눈짓했다.

“이따 다시 고르자.”

“낙자(絡子: 매듭으로 지어서 만드는 주머니) 짜려고? 나도 좀 보여줘요.”

고 낭자가 다정하게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우리 세자께서 쓰실 건데, 어떻게 대낭자에게 보여드려요.”

청서가 날렵하게 부채 주머니와 실을 치우며 하는 말에 고 낭자의 미소가 굳었다.

“새언니, 오늘 안색이 좋네요.”

고 낭자가 고개를 돌려 이동에게 말을 걸었다. 이동은 지친 표정으로 기운 없이 대답했다.

“그래요? 아직도 심하게 어지러워요. 청서가 그러는데, 대낭자가 나보다 한 살 많다면서요?”

“한 살하고 열 달이니까 두 살이라고 봐야죠. 대낭자는 우리 세자야보다 겨우 한 달 적어요. 제가 똑똑히 기억한답니다.”

청서가 웃으며 하는 말에 고 낭자의 얼굴이 조금 하얘졌다.

“정혼한 집이 있던가? 넘어지고 일어났더니, 기억이 잘 안 나네.”

이동이 미안한 듯이 물었다.

“대내내께서 잊어버린 게 아니라, 대낭자의 혼처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대낭자는 정월에 태어난 덕을 본다고 며칠 전에 부인께서도 그러시던걸요. 세는 나이로 열아홉이라고 하지만, 사실 세는 나이가 바로 만 나이라서 사실은 명실상부한 열아홉이거든요.”

청서가 웃는 얼굴로 하는 말에 고 낭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동은 지극히 가볍게 아하, 하고는 눈살을 조금씩 찌푸렸다.

“그럼 혼담이 오갈 때가 되었네. 아, 머리가 또 아프네. 청서, 나 대신 대낭자를 배웅하렴. 그리고 주방에 가서 해장탕 준비하라고 이야기하고 와. 세자께서 오늘 또 분명 술을 많이 드시고 오실 거야.”

“네!”

청서는 신이 난 듯 대답하고는 내쫓듯이 고 낭자를 밖으로 몰아냈다. 그렇게 고 낭자를 청휘원 대문 밖까지 몰아내고는 돌아서서 주방으로 향했다.

고 낭자가 몇 걸음 떼는데, 옥묵이 걸음을 서둘러 따라오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대낭자, 아까 회랑에 서 있다가 수련이 월전(月錢)을 분부하는 걸 들었어요. 대내내가 그러셨다는데, 이번 달부터 대내내의 몫에서 은자 두 냥, 동전 1천 전(錢)을 따로 떼어서 청서에게 준대요. 또 하는 말이, 한두 달만 그렇게 하고, 대내내 몸이 나으면 대내내 몫에서 떼지 않고 정식으로 장부에 올릴 거래요.”

고 낭자는 이야기를 듣다 말고 벌써 얼굴이 창백해져서 비틀거리다가 돌의자에 주저앉았다. 은자 두 냥, 동전 1천 전. 그건 이낭의 월전이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장부에서 내어주겠다니……. 청서에게 명분을 주려는 걸까?

고 낭자는 애가 탔다. 더는 머뭇거릴 수 없었다.

1년을 기다릴 수가 없어. 기다리기만 하다가 다 헛수고가 될 거야!

청휘원.

문죽은 사뿐사뿐 안으로 들어와 예를 갖추고는 침상 앞 각답에 옆으로 앉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대내내의 말씀이 맞았어요. 봉운 어미가 병이 심한 게 맞대요. 우리 거처에 막일하는 시녀, 소서네 고모가 봉운네랑 같은 거처에 살아요. 소서 고모가 바로 왕 어멈이에요. 주방에서 심부름 일을 하죠. 왕 어멈을 만나러 주방에 가서 100전을 주면서 대내내가 입맛이 없으니 맛있는 요리 좀 해서 올리라고 했어요. 100전을 줬더니 왕 어멈이 땅콩 한 줌을 내주면서, 앉아서 이야기 좀 하다가 가라고 그러더라고요.”

문죽은 속을 다 털어놓는 듯이 진심을 보이면서 나긋나긋 말을 이었다.

“왕 어멈 말이, 이 집안에서 일을 시키면서 돈을 주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대요. 대내내가 오신 이후로 바로 월전이 오르는 걸 보고 대내내가 대범하고 예절을 아는 사람인 걸 바로 알아봤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대내내가 이 집안 안살림을 맡으면 이제 고생 끝이라고요.”

이동은 들릴 듯이 말 듯이 그래, 하고 대답했다. 예전에 그녀가 매달 내준 상금만 해도 월전과 비슷한 정도였다. 아랫사람들의 고생길이 끝난 건 맞지만, 그녀의 고생길이 시작됐었다.

“원망이 가득하더라고요. 노야, 부인 같은 진짜 상전이 밥 한 끼 먹으면서 몇 번씩 불러대는 건 그렇다 쳐도, 고 낭자 같은 사람이 빈손으로 와서는 ‘운퇴(雲腿: 운남 지방의 화퇴火腿. 중국식 햄) 있으면 꿀을 발라 쪄서 한 접시만 보내.’ 이런다고요.”

문죽은 왕 어멈의 말투를 흉내 내며 말을 이었다.

“말하는 것 좀 보라고, 쪄서 한 접시만 보내면 돼, 라니! 자기가 용봉 고기를 먹는 공주도 아니고, 우리 저택에 납셔주어서 ‘꿀로 찐 운퇴로 대충 때우지 뭐.’ 이런 것처럼. 쳇, 제가 뭐라고! 그래서 내가 시녀 애한테 그랬지, ‘운퇴 같은 소리 하네, 없어! 노야께서 드시고 남은 닭발은 있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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