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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6화 (6/463)

6화: 속셈을 꾸미다

저녁이 되자, 강환장은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술 냄새를 풍기며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돌아왔다.

“좀 괜찮아졌소?”

“심하게 어지러워요.”

강환장이 침상 가에 몸을 틀고 앉아서 묻는 말에 이동은 경계심을 감추며 대답했다.

“술 많이 드셨나요?”

“한 근 넘게, 꽤 많이 마셨지…….”

강환장의 몸이 흔들렸다.

“해장탕을 끓여 오라고 할게요.”

이동은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의 주량을 알고 있었다. 두어 근 마셔도 취하지 않는 진정한 술고래가 취한 척하다니, 무슨 생각으로?

“괜찮소. 어머니 거처에서 먹었소. 아동, 할 말이 있소. 당신이 화가 난 걸…… 나도 아오. 이해하오! 하지만 당신은 손윗사람 아니오. 강가 장자의 아내, 미래의 강씨 종부요. 이런 작은 일도 품지 못해서야, 앞으로 어떻게 우리 강씨 가문의 종부가 되겠소.”

강환장은 한 손으로 침상을 짚고 술에 잔뜩 취한 모습으로 얼굴이 거의 닿을 듯이 이동에게 다가왔다.

“잘 들으시오. 우리 강가 같은 고귀한 백 년 서생 가문에서 당신이 은자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소?”

강환장이 가식적으로 환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은자가 무엇이라고! 아도물이오, 아도물! 처는 남모르게 가르쳐야 한다고 하지. 우린 부부니까, 내가 가르쳐야 하지 않겠소. 자리 잡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아시오? 덕이요! 부녀자의 덕! 덕으로 사람을 복종하게 해야 해! 작은 일도 자리에 누워 꾀병을 부리며 물고 늘어지다니, 부녀자의 덕은 어쩌고? 어떻게 아랫사람을 이끌겠소. 어떻게 자리 잡을 것이오?”

이동은 혐오스러우면서도 두려워져서 저도 모르게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한때 그는 그녀 앞에서 자화자찬한 적이 있다. 문인의 붓끝, 무사의 칼끝, 변사(辯士)의 혀끝 중에 자기가 부족한 건 칼끝뿐이라고.

지금도 얼마나 정답게 말하는지. 무쇠가 강철이 되지 못함이 안타까운 듯이, 그녀가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운 듯이,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인 것처럼, 그것도 취중 진담인 것처럼 하다니. 얼마나 감동스러운가!

예전이라면 감동해서 눈물 콧물 다 흘렸을 것이다.

강환장은 이동이 대답하기도 전에 취기가 올라온 듯이 그녀 쪽으로 꼬꾸라졌다.

“왜 이렇게 취하셨대요.”

수련이 꿍얼거리면서 청국과 함께 다급하게 강환장을 부축하러 다가왔다.

“술을 많이 드셨다. 동쪽 곁채로 모시고 가서 추미와 춘연을 불러 시중들게 해. 잘 모시라고 당부하고.”

이동은 한마디 할 때마다 숨을 헐떡거리며 힘겹게 말을 겨우 내뱉었다.

수련은 이동을 빤히 바라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말 몇 마디 했다고 숨도 못 쉬다니.

“대내내가 누워계시는 동안 줄곧 청서가 세자를 모셨어요.”

수련이 조금 주저하며 말했다.

“며칠 동안 시중드느라 청서도 힘들었을 거야. 오늘은 쉬라고 해.”

이동은 눈을 감고 취해서 자는 척하는 강환장을 힐끔 바라봤다.

이렇게 대범하게 굴면 의심하지 않을까?

아니, 절대로!

예전엔…… 드러내고 시기하지도 못했었다. 무시할까 봐. 서글픔과 괴로움 모두 가슴 깊은 곳에 꾹꾹 묻었다. 조금이라도 드러내면 그가 경멸할까 봐.

으스스한 어둠이 내려앉은 강부, 진 부인의 정원(正院) 후조방(後罩房: 본채 뒤에 나란히 지은 가옥)에서 옥묵이 나지막이 보고했다.

“봉운 언니 말이, 막 혼인하자마자 첩을 들이면 쓸데없는 말이 나오기 쉽다고 세자야께서 그러셨대요. 첩을 들인대도 1년은 있어야 한다고요. 다른 말씀은 없으셨대요.”

고 낭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1년이라니. 1년을 어떻게 기다리라고. 올해 벌써 꽉 찬 열아홉이다. 올케가 오늘 배가 시녀 넷을 곁채로 들였다고 들었다. 그리고 청서도 있었다. 1년 뒤에도 오라버니가 자신을 기억이나 할까.

고 낭자는 입맛이 씁쓸해졌다.

청휘원, 동쪽 곁채는 밤새 조용했고, 강환장은 날이 밝기도 전에 돌아갔다. 이동은 눈을 감고 차는 척하며 기척에 귀 기울였다.

그러고는 하늘이 환하게 밝은 뒤에야 눈을 떴다. 심하게 어지러워서 지금 바로 의원을 불러야 한다고 진 부인에게 전하라고 기운 없이 분부했다.

의원이 오기도 전에 장 태태가 도착했다.

“어머니, 어머니가 왜 오셨어요?”

이동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옥가아가 아침 일찍부터 사람을 보냈더구나. 와서 네 곁에 있어 주라고 말이다.”

장 태태는 강환장의 이런 행동이 매우 흡족한 모양이었다. 식어버린 이동의 마음이 더 서늘해졌다.

“어머니, 저 심하게 어지러워요. 배에 탄 것처럼 밤새 흔들거리고, 앞도 흐릿해 보이는 것 같아요. 무얼 보든, 뭐가 낀 것처럼 희미해 보여요.”

이동은 기운 없이 어머니의 팔을 잡았다.

강가에서 나가고 강환장에게서 달아나려면 반드시 어머니의 도움이 있어야 해. 어머니 도움 없이는 하려는 일을 하나도 할 수 없어.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려면, 전생에선 목숨 걸고 숨겼던 것들을 모두 어머니에게 보여주어야겠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한 그 진실들을 모두.

장 태태의 안색이 변했다.

“의원을 불렀느냐? 어제부터 이랬니? 왜 말하지 않은 게야.”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며칠 몸조리하면 괜찮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머니, 못 버티겠어요.”

이동의 머리가 뒤로 기울자, 장 태태가 놀라서 목소리가 다 변했다.

“딸아! 딸아, 이 어미 놀라게 하지 말아라!”

겁에 질린 장 태태는 의원을 여럿 불러오라고 연신 분부했다.

그렇게 모두 의원 셋을 모셔왔다. 외상으로 유명한 호 의원, 그리고 경성 명의 조 의원과 은퇴한 태의 손 의원. 마지막에 온 손 의원은 강환장과 함께 들어왔다.

세 의원 모두 두어 번씩 맥을 짚어 보고는 미간이 불룩해지도록 얼굴을 찌푸린 채 중얼중얼 상의했다. 나이가 가장 많은 손 태의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대내내는 두부(頭部)에 손상을 입어 뇌가 진동한 바람에 기가 흐트러지고, 기의 흐름이 순조롭지 않아 열이 많아진 것입니다. 그로 인해 두통, 어지럼증, 초조 불안, 불면 등 증상이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머리는 오장육부의 정기가 몰린 정명지부(精明之府)라 하며…….”

“의원, 그런 의경(醫經) 내용은 나는 모릅니다. 문제인지 아닌지, 고칠 수 있는지 아닌지만 말씀하시면 됩니다.”

장 태태가 손 태의의 일장 연설을 잘랐다. 강환장은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힌 이동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냥 살짝 넘어졌고, 금세 나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억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달라졌나…….

“문제이지요! 당연히 문제이지요! 대내내는 머리를 다쳤습니다! 머리란 정명지부이거늘! 어찌 괜찮을 수가 있겠습니까.”

손 태의의 얼굴이 매우 심각했다.

장 태태는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고칠 수는 있습니까?”

“대내내의 병은 기를 다스리는 게 중요합니다. 일단 단치소요산(丹栀逍遙散) 몇 첩 지어 드시면서 상황을 봅시다. 정양해야 하는 병이라, 심기를 평온히 하고 걱정, 근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경이나 불법을 들으면서 마음을 가다듬으면 더 좋지요. 기만 다스려지면, 금세 좋아집니다.”

손 태의가 조 의원과 호 의원을 돌아보자, 두 사람은 의견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손 의원, 그 말씀은 제 딸 아이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거지요? 아무 일 없다는 거지요?”

“대내내는 젊고 한창 활기찬 때입니다. 심신을 가라앉히고 근심 걱정하지 않으면 문제없습니다. 다만, 반드시 심신을 가라앉히고 근심 걱정하지 말 것,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손 태의의 말엔 복선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 경험이 풍부하고 영명해진 그는 추잡하고 더러운 일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머리가 이렇게 깨질 정도라니,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누가 알까. 돈이 너무 많으면 화를 초래하기 쉬운데, 또 이가엔 이 외로운 모녀뿐이지 않은가.

흠, 심기를 다스리면 분명 좋아지지. 하지만 심기를 다스리기가…… 쉽지 않겠지.

강환장은 처방을 내리는 의원들과 함께 바깥채로 나갔고, 장 태태는 칼로 심장을 베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딸을 바라봤다.

“어머니, 조금 더 같이 있다가 점심 먹고 돌아가세요. 네?”

이동은 이가로 돌아가고만 싶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지내고 싶었다.

“그래.”

장 태태는 목이 멨다.

의원을 배웅한 강환장이 들어와서 처방을 장 태태에게 건넨 다음 수련을 불렀다. 넘어졌을 때 피를 많이 흘리진 않았는지, 그 당시에 바로 혼절했는지, 아니면 조금 있다가 혼절했는지, 언제 깨어났는지, 깼을 때 정신은 맑았는지, 요 며칠 다른 점은 없었는지 등등을 물었다.

이동은 찬물이 끼얹어진 듯이 가슴이 철렁하고 서늘해졌다. 강환장은 어느 정도 의술을 알았다.

수련은 이동의 의중을 가늠하면서, 다른 사람과 대질할 수 없는 부분이 나오면 과장해서 이야기했다.

“……막 깨어냈을 땐 좀 멍해 보이셨어요. 바보처럼요.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셨고요. 들리지 않으시는 줄 알았어요. 물건을 가리킬 때도 입만 뻐끔하시고 말을 못 하셨어요. 한참 만에 물건 이름을 말씀하시고요. 다른 점은…… 예전과 비교하면 좀 멍해지셨어요. 눈이 자주 멍해지시고, 텅 빈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워요……. 작은 기척에도 쉽게 놀라시고요. 또, 며칠 동안 거의 웃지 않으셨어요. 툭하면 넋을 놓고 계세요. 넋을 놓고 계실 땐, 산 사람 같지 않고 빈 껍질 같았어요…….”

강환장은 수련의 안색을 빤히 살피며 계속해서 캐물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강환장을 바라보는 장 태태의 눈빛이며 입가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내 앞에서 감히 이렇게 방자하게 수련을 심문하다니. 내 딸 아이를 믿지 않아. 안중에도 없고.

강환장의 심문하는 모습에 장 태태의 마음이 서늘해졌다. 수련의 말엔 가슴이 쿡쿡 쑤셨다. 아파서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강환장은 질문할수록 난감한 기색이 짙어졌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장 태태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이 찢어질 것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

“어머니, 제가 아동을 잘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아동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어머님껜 더 죄송합니다. 어머니,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아동 대신 이 고생을 하지 못하는 게 너무 한스럽습니다. 저는…….”

강환장은 괴로워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말을 잇지 못했다.

“인생의 화와 복은 예측할 수 없다고 하지 않나. 이게 어디 자네 탓인가. 자넨 착한 사람일세. 내가 아네. 어서 일어나게.”

장 태태는 감동한 척 손을 내밀어 강환장을 부축했고, 강환장은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이동은 강환장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경멸과 분노가 가득한 눈빛이라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가 볼까 봐 두려웠다.

“한동안 자주 와서 아동 곁에 있어 주십시오. 아동이 나을 수만 있다면, 아동이 기뻐한다면, 저는…… 저는 뭐든 할 수 있습니다.”

강환장은 공손하고 간곡한 얼굴로 손을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장 태태가 애틋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착한 사람 같으니. 가서 일 보게. 아동 곁엔 내가 있겠네. 이 아이, 아무 일도 없을 걸세. 아무리 힘든 일도 다 지나갈 걸세. 어서 가보게.”

강환장이 밖으로 나가자, 이동은 안도의 한숨을 살며시 내쉬었다. 강환장 앞에서 몇십 년 동안 비굴하게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 산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다만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산에 짓눌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도 어머니도.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그 산에서 나오고 산을 파내서 어머니 앞에서 저 멀리 치워 버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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