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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5화 (5/463)

5화: 고 낭자

고 낭자의 붉어진 얼굴에 피어난 미소가 갈수록 어색해졌다. 얼마나 난감해하고 거북해하는지, 보는 사람이 다 난감해질 지경이었다.

부귀한 분위기가 넘치는 방에 어울리지 않는 궁상스럽고 초라한 자기 모습에 고 낭자는 이 자리에서 달아나고 싶을 정도로 서글퍼졌다.

강환장은 고 이낭이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었다. 빈천함이 그녀의 소탈함을 바꿀 수 없고, 귀하면서도 돈의 구린내에 물들지 않을 사람이라고도 했고.

이동은 뒤로 등을 기대며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예전엔 강환장이 하는 모든 말을 진리로 여겼었다.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고 낭자를 집으로 들이기 전엔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남루한 의복을 입었을 때의 모습, 그리고 궁색함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동의 기억 속에 고 이낭은 언제나 만수(滿繡: 무늬가 빈 곳 없이 촘촘히 자수를 놓음.) 초사(綃紗: 명주실로 바탕을 조금 거칠게 짠 비단)나 사릉(寺綾: 비구니가 만든 비단)을 입어서 선녀처럼 하늘하늘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초사를 좋아했다. 격사(緙絲)보다 훨씬 값비싼 만수 초사를 좋아했다. 초사에 수 놓는 실은 열여섯 가닥으로 쪼개야 해서 뛰어난 수낭(繡娘)도 하루에 꽃잎 반쪽 정도밖에 수를 놓지 못했다. 하지만 오로지 고 이낭을 위해 초사에 수를 놓는 수낭을 열 몇 명이나 저택에서 먹여 살렸다.

그녀는 사릉도 좋아했다. 사릉이 만수 초사보다도 더 값이 나갔지만 강환장은 해마다 특별히 사람을 보내 고 이낭에게 줄 사릉을 구매했다.

강환장이 말하길, 태생이 순수하고 소박한 그녀는 소담한 초사만 좋아한다고 했다. 초사에 수 놓은 꽃도 같은 색실만 쓴다고. 그녀가 사릉을 좋아하는 건 사릉에 속세의 분냄새가 묻지 않아서라나.

“새언니 몸이 안 좋으니까 이만 돌아갈게요.”

고 낭자는 이동의 그윽하고 서늘한 시선에 가시 옷을 걸친 듯 거북해져서 그녀를 설득해 보라는 강환장의 당부도 잊고 황급하게 물러가겠다고 인사했다.

“고마워요. 조심해서 돌아가요.”

이동이 느릿느릿 대답했다.

다급하게 밖으로 나가던 고 이낭은 강환장의 통방(通房: 잠자리 시중도 드는 시녀 겸 첩) 대시녀 청서와 부딪칠 뻔했다.

“어머, 고 낭자! 무슨 일이세요?”

청서는 손에 받쳐 든 토기 사발이 깨지지 않도록 재빨리 몸을 틀고는 놀란 듯이 물었다.

청서의 손목에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하수 팔찌(蝦須: 새우 수염처럼 가느다랗고 긴 금사金絲 팔찌. 지극히 정교하고 아름답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팔찌에 콩알만 한 홍보석이 찬란하게 빛났다.

고 낭자는 눈이 시큰해졌다. 반짝거리는 하수 팔찌가 자기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낡은 의복을 비웃고, 깃댄 신발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온몸에 흐르는 가난, 자신이 가장 아파하고 가장 증오하는 가난을…….

고 낭자는 고개를 숙인 채 달려나갔다.

청서는 토기 사발을 받쳐 들고는 고 낭자를 보다가 아직도 흔들리는 휘장을 바라봤다. 그녀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이동은 허리받이에 기댄 채, 토기 사발을 받쳐 들고 들어오는 청서를 바라봤다.

강환장이 총애하는 또 다른 첩이었다. 청서는 고 이낭보다 자식을 하나 더 낳기까지 했지만, 안타깝게도 팔자가 좋지 않아서 넷 다 딸이었다.

강환장은 그녀가 온화하고 유순하다고 했다. 충성스럽고 우직한 사람이라고. 그래, 순종적이고 우직한 얼굴이긴 했다.

누구나 강환장이 정이 깊고 의리가 있어서 옛정을 지극히 중시한다고 했다. 일고여덟 살부터 그의 시중을 든 청서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살이 쪄도, 강환장은 매달 반드시 그녀 거처에 한두 번은 들렀다.

이동 역시 강환장이 정이 깊고 의리 있다는 증거 중 하나였다. 그녀는 자식 하나 낳지 못했고, 상인 집안 출신이고, 저속하고 돈 냄새나 풍기며 시와 서책을 모르는 데도 정실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안주인으로서 강가를 대표해서 모두와 교류하는 그녀가 아무리 저속해도 그는 얼굴 한 번 붉히지 않았다.

정말이지 모든 것이 완벽한 사내 아닌가!

“대내내!”

수련이 넋이 나간 듯한 이동을 살며시 흔들었다. 괴로워서 큰 소리로 울고만 싶었다. 넘어진 그 날 이후로 대내내는 자주 이랬다. 갑자기 정신이 어떻게 된 듯처럼.

청서는 토기 사발을 안은 채 유순한 미소를 지었다.

“대내내의 안색을 뵈니 좋아진 것 같네. 수련, 너무 초조해하지 마. 병이란 실을 뽑는 것처럼 천천히 낫는다고 했어.

대내내, 아침에 부인께서 산삼을 보내셨어요. 세자야가 요 며칠 고생하셨다고 저더러 닭이랑 함께 고아서 몸보신하게 드리라고 하시길래, 몸보신은 대내내가 더 하셔야 할 것 같아서 한 그릇 더 고아 왔어요. 대내내, 입맛에 맞으실지 한 번 드셔 보세요.”

“감사해요, 청서 언니.”

수련이 토기 사발을 받았다.

피로가 몰려온 이동은 이내 시선을 거뒀다. 예전엔 그녀의 마음속이 항상 시기와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끔은 그가 인정해주는 한마디, 칭찬하는 눈빛 하나에도 날아갈 듯이 행복해했었다. 대체 무엇을 질투한 건가. 뭐가 그렇게 행복했었나. 대체 무엇에 홀리고 무엇이 씌어서.

이동은 피곤해서 눈을 감았다.

청서는 탕을 내려놓고 물러갔고, 수련은 침상 앞 각답(脚踏: 의자나 침상 옆에 발을 받치는 용도의 소형 가구)에 앉아서 한숨을 폭 내쉬었다.

“대내내, 얼른 나으셔야죠. 더 이상 세자께 화내지 마시고요. 아까 소유 언니가 왔었는데, 청서가 대내내께 탕을 올릴 건데 상충하는 건 없는지 본다고 처방을 보여 달랬대요. 무슨 탕을 끓일 거냐고, 대신 봐준다고 했더니 이리저리 말을 돌리면서 끈질기게 처방을 보여 달랬대요. 보세요, 하나같이 신경 쓰이는 일들이라니까요. 계속 이러고 계시면…….”

수련은 아직 부어 있는 자기네 낭자의 얼굴을 보다가 또 눈시울을 붉혔다.

“하긴, 뭘 어쩌겠어요. 대낭자, 이낭자는 세자와 친 오누이인데요. 아무리 세자께서 대내내를 아끼신다고 해도 두 사람을 이기겠어요? 세자께서 하신 말씀이 맞아요. 대내내는 강가 며느리니까, 대낭자, 이낭자의 안 좋은 명성이 밖으로 퍼지면 대내내의 명성도 안 좋아져요. 태태도 말씀하셨잖아요. 낭자 시절엔 천금처럼 받들어져 컸대도 혼인하면 곳곳이 서러운 일뿐일 거라고요…….”

이동이 수련의 말을 잘랐다.

“사람을 보내서 좀 알아봐. 고 낭자가 오늘 돌아가는지 아닌지. 그리고 부인이 고 낭자에게 새 옷이나 장신구 같은 걸 마련해 줬는지도 알아봐.”

“네! 대내내, 걱정하지 마세요.”

수련이 순간 기운 차리고 눈빛을 빛냈다. 낭자가 그런 걸 걱정하기 시작하는 걸 보면 곧 털고 일어나시겠지 싶었다.

“그리고, 추미랑 애들 불러와.”

“예?”

수련은 대낮에 귀신 본 표정이 되었다.

추미, 춘연, 동유, 하섬은 장 태태가 딸을 위해 고심해서 고른 시녀로, 앞으로 통방으로 들일 아이들이었다. 이 네 사람을 배가(陪嫁: 주인이 혼인할 때 같이 데리고 가는 종) 시녀로 데리고 가느냐 마느냐로 이동이 혼인하기 전에 장 태태와 얼마나 많이 말다툼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수녕백부로 들어온 다음 날, 이동은 네 사람을 가두라고 분부했다.

“사람 몇 불러서 양쪽 곁채를 치우라고 하고 네 사람을 거기로 보내.”

이동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수련을 못 본 체하며 계속해서 지시했다.

“낭자……. 이, 이건?”

수녕은 너무 놀라서 말을 다 더듬었다.

“내가 다쳐서 이 꼴이잖아. 세자 시중들 사람은 있어야지. 늦었다. 얼른 가. 해 지기 전에 다 옮기도록 해.”

“낭자, 괜찮으신 거죠? 이게…….”

수련은 이동의 이마를 짚었다. 자기네 낭자가 넘어진 바람에 멍청해졌거나, 아니면 미친 것 같았다.

“난 멀쩡해. 그냥 털어낸 거야. 머리에 이렇게 큰 구멍이 나도록 넘어졌는데, 아직도 깨닫지 못했겠니? 역시 어머니 말씀이 맞아. 얼른 가.”

“정말로 털어내셨다면……. 그럼 정말 부르러 가요?”

수련은 기쁜 와중에 살짝 걱정도 되고 확신도 서지 않았다. 정말로 털어낸 거라면 그야말로 아미타불인데, 혹시 아니라면…….

“얼른 가.”

수련은 온갖 생각을 하면서 청국을 불러서 시중들게 하고 서둘러 사람들을 불러서 직접 곁채를 정리하러 갔다.

강부 위아래, 모든 이가 청휘원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수련은 곁채를 치우고 추미 등 세 사람을 그리고 옮겼다. 아무도 모르게 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지만, 이쪽에서 사람을 불러 지시하기 무섭게 저쪽에 있는 진 부인이 바로 그 소식을 들었다.

“그나마 현명하게 구는구나.”

“어쩜 이렇게 선량하세요, 부인.”

진 부인이 흡족한 듯 말하자, 오 어멈이 비죽거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 아닐까 봐 걱정이에요. 부인, 생각해 보세요, 대내내는 애지중지 자란 사람입니다. 또 상인 가문에서 자랐고요. 조금이라도 현명한 사람이라면 조금 다친 것으로 지금까지 저러고 있진 않을 겁니다.”

그 말에 진 부인이 바로 화를 냈다.

“내 무슨 꿍꿍이가 있을 줄 알았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다고 가서 전해라!”

“부인, 왜 이렇게 올곧으세요. 자기가 몸이 안 좋으니 시침들 사람을 마련해 준 거잖아요. 잘못도 아닌데 허락하지 않으시면, 나중에 그걸 믿고 질투하고 포악하게 굴면 또 어째요. 그건 그거대로 골치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말이지. 그러게 애초에 이가와 혼인 맺는 게 아니었다니까. 이걸 보게, 상인 가문은 상인 가문 티가 난다니까! 뱃속 가득 나쁜 꿍꿍이뿐이야! 대체 무슨 생각이람? 또 누굴 해치려고?”

진 부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부인, 깊이 생각해 보면 나쁜 일은 아니에요. 세자야를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미인계를 생각해 낸 걸 거예요. 영웅은 미인계를 피할 수 없다잖아요. 대내내가 데리고 온 아이들, 하나같이 여우랍니다. 여우로 세자야를 유혹하려는 거예요. 세자야가 부인, 그리고 이 가문과 멀어지게 하려고요.”

“뜻대로 안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두지 않아.”

진 부인이 등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화가 나서 얼굴이 다 누렇게 떴다.

“얼른 방도를 생각해 보게. 난 혼란스러워서 모르겠네. 정말 기가 막히는군.”

진 부인은 괴로운 듯이 가슴을 눌렀다.

“이런 일은 독에는 독, 그 방법밖에 없어요. 우리 가문에서 용모로 그 여우들을 이기는 건…… 고가 낭자밖에 없어요. 차라리 고 낭자를 집으로 들이세요.”

오 어멈이 진 부인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세자는 고 낭자와 어릴 때부터 청매죽마였잖아요. 고 낭자가 또 용모며 품행이며 얼마나 뛰어납니까. 고 낭자가 세자 곁에 있으면 부인께선 아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인은 안도하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방택(芳澤), 저 아이, 가문이 너무 한미한 것만 아니면 옥가아랑 천생배필인데. 인간이란 완벽할 수 없지.”

“부인, 제가 이런 말씀 드린다고 나무라지 마세요. 고가가 얼마나 궁핍합니까. 거기에 아이는 또 잔뜩 낳았잖아요. 고 낭자는 혼수를 여섯 대(擡)도 들고 가지 못해요. 누구와 혼인하겠어요. 기껏해야 첩이 될 팔자죠. 우리 세자 같은 분 옆에 있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전생에 복을 쌓은 거지요.”

오 어멈은 무시하는 얼굴로 입을 비죽였고, 진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휴. 그건 그렇지. 그럼 그렇게 하세. 빠를수록 좋아. 자네가 방택 그 아이를 넌지시 떠보게. 옥가아 쪽은, 그 아이가 돌아오면 내가 이야기하겠네. 양쪽 다 이야기가 끝난 다음에 고가에 가고. 고가……. 흥! 그냥 이야기만 전하면 되지, 뭘. 기억하게. 일이 성사되기 전에 절대로 말이 새어 나가선 안 돼. 이씨는 절대 몰라야 하네. 괜히 좋은 일을 망칠라.”

오 어멈은 웃으며 대답하고 나와서 정원 문 앞에 서서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이른 아침부터 장 태태에게 모욕당하고 꾹 참고 있었는데 드디어 속이 후련해졌다.

감히 나를 모욕해? 그럼 새로 들어온 며느리에게 내가 누군지 보여줘야지. 고가 낭자가 이 집안에 들어오면 괴로움이라는 게 뭔지 톡톡히 알게 될 거다. 고 낭자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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